# 29
29. 비무장지대.
데저트 이글 한 정에 200만 원.
멋들어진 흑색 외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침 어제 월급도 들어온 참.
훈련소에서 받은 돈은 그동안 알차게 써왔다.
그래서 월급인 딱 250만 원이 남았고.
“하나 주십시오.”
“사게? 잘 생각했다. 이런 종류는 나오자마자 나가서 구하기도 힘들어. 보기만 해도 알잖아? 이 자태하며, 이게 바로 남자를 위한 총이지.”
국군 장병 카드를 건네자, 서슴없이 슥 하고 그었다.
“화끈하십니다.”
유진이 말했다.
“필요하니까.”
그 외에도 무기는 많았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와라. 좋은 거 많다.”
홍콩 야시장 호객행위랑 다를 바 없는 말투다.
체통이 없는 중위를 뒤로하고.
탄약도 남은 돈을 탈탈 털어서 샀다.
세주가 산 데저트 이글은 곧바로 상황실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기본사항 기록 후 내무실로 보내진다.
내무실에 있는 개인 총기 보관함에 떡하니 놓이는 거다.
“살 수가 없습니다. 형님.”
치용이 인준과 같이 창고를 거닐다 둘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너무 비싸.”
인준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 비용은 예상했지만, 그 범주를 벗어난 거다.
군에서 아무 무기도 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본 화기는 주어졌다.
K-2 소총, 일명 뽈록이라고 부르는 아머.
그리고 저격병인 세주에게는 자동소총 대신 볼트액션 타입의 저격 소총 K-14.
척탄병인 인준에게는 추가로 수류탄 이 세 개 더.
치용은 긴 정글도.
유진은 빨간약이라 부르는 나노킷.
나노킷은 사용한 횟수와 소모한 에너지양을 꼬박꼬박 기재해야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급소는 달랐다.
60발 연사, 탄창 개조 K-2.
소염 기능을 부착한 총신 개조 AK-12.
유탄발사기 달린 기관단총.
레이저 포인트가 달린 자동 권총.
이중으로 겹치게 만들어 무겁지만 보호구로서 기능을 높이 더블 아머 등.
실제로 전투에 도움 될 만한 커스터 마이징 무기가 많았다.
“돈 벌면 오면 되지.”
조금 전, 전 재산을 탕진한 남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250만 원 쓰셨습니다.”
유진이 치용 쪽을 보고 말했다.
치용과 세주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자기 돈처럼 치용의 카드를 써왔지만.
“저도 이제 돈을 모아야 해서 안 됩니다.”
“야, 달라고 안 할 거야.”
의리의 김치용이라며? 그 치용은 보급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눈을 반짝인다.
무기라는 건 남자의 로망이다.
그도 돈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구나.
-형이 거지도 아니고, 됐다고 해. 이 자식이 커버링까지 가르쳐줬더니 수업료도 안 내고.
믿는 구석도 있었다.
‘진정해. 브로. 250? 우습지.’
무기 쇼핑을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오자, 김완이 세주를 보고 손가락을 들었다.
“푸하하하. 너 저거 샀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세주의 개인 총기 보관함이다.
저격 소총 한 자루와 멋들어진 데저트 이글 한 정이 놓여 있다.
“큭큭큭, 돈벌레가 좋아했겠다?”
돈벌레, 보급소 담당 중위의 별명이다.
그가 데저트 이글을 건넸을 때, 아주 신나 보이긴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하하.”
김완이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다가 말했다.
“저거 반동이 얼마나 심한 줄 알아? 연습도 없이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거든.”
그건 네 알 바가 아닌데.
얄밉게도 말한다.
-형, 그냥 패자.
“형님.”
뒤에서 치용이 나서려는 걸 물리고.
‘쉿.’
프로비던스도 닥치게 만든 뒤.
“제 일입니다.”
가뿐하게 무시했다.
“뭐 인마?”
김완이 눈을 부라린다.
내무 부조리 따위는 없다.
목숨 걸고 싸우는 이들을 갈구다니, 그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전투 중 앞에 선 놈 대갈통에 총알을 쏘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김완은 용기가 넘쳐흐르는 남자다.
세주를 제외한 셋의 눈빛이 타오른다.
“뭘 봐 이 새끼들아.”
김완은 그들의 어깨를 툭툭 밀치고 나갔다.
“이해해줘라. 얼마 전에 동기 하나가 죽는 걸 보더니 상태가 안 좋다.”
분대장 견장을 단 남자가 TV에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한창 걸그룹이 나와서 흐뭇한 춤을 췄다.
“신경 안 씁니다.”
세주가 말하고 침상에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
웨에에에엥!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린다.
출전의 사이렌이었다.
“첫 출전이지?”
TV를 보던 병장이 세주를 돌아본다.
“그렇습니다.”
세주는 말과 함께 몸을 도로 일으켰다.
텅!
화기 보관함 네 곳이 동시에 열렸다.
세주와 전우조의 보관함이었다.
무기를 파는 만큼 보관도 각별했다.
상황실에서 버튼으로 조작해서 잠그고 여는 방식이었다.
“으럇!”
아, 깜짝이야.
김치용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이런 미친 새끼. 미칠 거면 곱게 미쳐.”
인준이 바로 옆에 있다가 귀를 부여잡고 말했다.
“기합이다. 기합. 자식아.”
“하하.”
마지못해 웃는 유진까지.
각자 무기를 챙겨 들고 내무실 밖으로 나가자.
위이이잉!
거친 소음이 들린다.
텅 빈 공터.
연병장이라 부르는 곳이다.
수직 이착륙 수송선의 엔진음이 귀를 때린다.
바닥에 푸른빛을 뿌리는 드론을 거대화한 것 같은 모양이다.
유선형 동체를 중심으로 뻗은 네 개의 프로펠러가 세차게 돌아갔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헤비 버드, 이들이 타는 수송선의 이름이었다.
“지휘관 김택동이다!”
며칠 못 봐서 후련했던 얼굴이다.
“휘하 여덟 명, 헤비 버드 탑승!”
“쳇, 신참들이네.”
앞쪽 쥐를 닮은 남자가 말했고.
“닥쳐.”
유일하게 작대기 네 개를 단 남자가 쥐 상의 남자를 윽박질렀다.
박력이 대단했다.
세주 쪽과 마찬가지로 저쪽도 넷이었다.
“한번 붙어보고 싶게 생겼습니다.”
김치용이 자신만의 감상을 뱉어낸다.
혹시나 들었을까 무섭다.
다행히 프로펠러가 세차가 돌아가고 있어서 들리지는 않겠다.
근데, 굳이 귓가에 대고 말하는 이유는 뭐냐?
수송선 밑, 배 부분 해치를 통해 헤비 버드에 올랐다.
여덟 명이 마주 보는 의자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처럼 생긴 1인용 의자였다.
치이익!
그리고 해치가 닫히자.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방음 좋네.
프로비던스도 감탄할 정도다.
김택동이 평소와 똑같은 재수 없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재수 없다고 울지 마라. 우리는 DMZ로 간다.”
*
공동경비구역.
아니, 이제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비무장지대, 그곳에 무장한 군대가 들어서 있다.
“여긴 뭡니까?”
인준이 주변을 보며 물었다.
“진짜 전장이지.”
악마 소위는 어딘가 신나는 얼굴이다.
“오셨습니까?”
하사관 하나가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수송선에 내려온 일행은 그대로 막사로 향했다.
건물 곳곳에 대공포가 보였다.
‘불길한데.’
-쫄지 마. 나 형 그렇게 안 키웠다.
‘미친 자식.’
“불길하네요.”
유진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사내 자슥이.”
치용이 그의 등을 퍽 소리 나게 때린다.
“신참들. 정신 차려.”
바로 옆 전우조 넷.
모두 죽을상이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악마 소위가 앞의 하사관과 멀리 떨어져 걷는 사이 유진이 옆을 보며 말했다.
“전장이지. 어디겠냐.”
쥐를 닮은 일병이 툭 내뱉었다.
더 말해줄 마음은 없어 보인다.
끼에에엑.
저 멀리 레이퍼의 기성이 들렸다.
“더럽게 걸린 거지. 첫 출전이 여기라니.”
병장이 한 마디 더 툭 뱉었다.
아니, 좀 자세히 설명하라고.
편한 대로 말하지 말고.
앞쪽으로 걸어 악마 소위와 거리를 좁히자.
“나흘 전 다시 박격포대가 나타났습니다.”
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격포대?’
레이퍼는 그냥 살아있는 것만 쫓는 맹목적인 괴물이다.
훈련소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산 것만 죽이는 놈들이라고.
그런데 박격포라니.
“너희들이 놓친 덕에 논산에서 하늘나라 갈 뻔했다. 새끼야.”
악마 소위가 반은 농담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규모가 3을 넘었습니다.”
“지금은?”
“동일한 규모의 박격포대와 레이퍼 부대입니다.”
“많기도 하네.”
누가 들어도 다급한 상황인데.
악마 소위는 여유가 넘친다.
“근데 여덟 명뿐입니까?”
“뒤쪽 비상상황도 대비해야지. 다른 부대에서도 지원 올 거 아냐?”
“오긴 하는데….”
하사의 안색이 어두웠다.
-형. 내 감이 말하는데 우리 뺑이 좀 칠 듯.
‘언어 순화 좀 해라.’
-엄청난 고생이 예상됩니다.
‘응. 그냥 닥쳐라.’
프로비던스가 말 안 해도 알겠다.
앞쪽에 얼기설기 지은 담에 철조망이 얹어진 게 보였다.
그 앞에 천막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었다.
“신참 있다. 설명이나 해줘.”
“네.”
하사가 뒤로 돌아온다.
“넷은 와봤지?”
“네.”
“먼저 들어가.”
그리고 한쪽을 가리킨다.
50명은 들어갈 것 같은 큰 천막이다.
“넷은 신입?”
“네.”
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상황만 설명했다.
우리가 훈련소에서 본 레이퍼는 이곳 너머, 비무장지대에 쪽에서 쏜 거라고 했다.
“뭘 쏜다고 했습니까?”
“레이퍼.”
“그게 쏜다고 날아옵니까?”
“훈련소에서 봤다며?”
봤지.
알이 날아와서 레이퍼가 튀어나오는걸.
“놈들의 박격포다. 포탄은 아니지만 봐서 알다시피 끔찍한 위력이지.”
슈웅!
그 사이 머리 위로 그때 봤던 알이 날아간다.
꽈르릉!
그리고 저 뒤에서 폭음이 울리고.
펑!
날아오던 알이 공중에서 터졌다.
“봤지? 대공포가 저걸 막는다. 뭐, 놓치면 훈련소에서처럼 거지 같은 경우가 발생하는 거고.”
그럼 보병들은 뭘 한다는 거냐?
“2014년 이후 북한은 망했다. 강남을 침공한 함선이 여기로 물러났고, 그 이후 북한 쪽에서 레이퍼들이 쏟아졌다.”
물어야 할 게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럼 민가에 떨어지면? 강원도 근처나 전방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놓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건 훈련소의 경우에서 알 수 있었다.
“민가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지옥이지.”
논산까지 닿는다면 다른 곳도 절대 안전할 수 없다.
“다행인 건, 이놈들은 철저하게 군사시설만 노린다. 그리고 사실 논산까지 간 건 박격포대가 아냐. 저거지.”
전방 비무장지대 하늘 위.
마침 무언가 창공을 가른다.
파드득.
큰 나비 같았다.
애벌레 같은 몸통에 두 장의 펄럭이는 날개.
“저놈들은 똥꼬에서 레이퍼를 떨군다.”
꽈릉! 꽈릉! 펑! 펑!
뒤에서 대공포가 열심히 일했다.
떠오르자마자, 포탄이 날아가 그대로 직격한다.
다시 허공에 녹색의 비가 뿌려졌다.
넋이 빠져 보는 넷을 향해 하사가 말했다.
“환영한다. 전장에 온걸.”
*
나중에 들어서 알 수 있었다.
데몬플라이라고 부르는 알 까는 나비 놈들이 남방한계선을 넘으면.
저놈들을 잡아 죽이는 작전도 있다는 걸.
그리고.
끼에에엑!
“쏴!”
넷은 곧바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집단의 싸움, 아니 전쟁을 볼 수 있었다.
“쫄지 말고 당겨! 여기까지 못 온다!”
비무장지대는 그 이름을 잃었다.
“개 같은 곳이네.”
치용의 말과 같았다.
달려드는 레이퍼 놈들은 개떼 같았다.
까맣게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리고 그 앞을 인간들이 저지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희생이 발생한다.
“꺽!”
“여기 뚫린다!”
그 사이 레이퍼 몇 마리가 달려들어 저지선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자 칼을 든 척후병이 달려들어 놈들을 난도질한다.
그 뒤를 유탄과 기관총 등이 무차별 폭격을 해서 놈들을 밀어낸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저지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퉁퉁!
박격포를 쏴서 뒤쪽을 타격하고.
공대지 미사일도 날아가 뒤를 덮친다.
퍼-엉!
폭음이 울리고 초토화된다.
사방이 놈들의 시체다.
“앞쪽은 보병이 막는 거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신고식이다. 여기서 보기만 해.”
넷을 데려온 악마 소위가 말했다.
그 뒤에서 간간이 데몬플라이가 날았다.
‘정말 개같이 많네.’
감탄한 세주에게,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노다지다.
‘그러게.’
다른 사람에게는 지옥이, 세주에게는 노다지였다.
보이는 모든 레이퍼, 한 마리당 대략 50의 에너지였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나 하나 들어간다고 이놈들을 다 죽일 수 있을까?’
-웬 약한 소리? 우리 형, 또 자신감 잃고 쫄았어요?
‘현실을 보자는 거다.’
-우리는 저놈들을 죽이는 게 아냐.
‘그럼?’
-저놈들을 보내는 놈을 죽여야지.
전혀 위로도, 안도감도 줄 수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