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26화 (26/206)

#  26

26. 그래, 너 천재해라

레이퍼의 다리가 중간쯤부터 찢겨 허공으로 난다.

“어딜 쏘는 거야!”

뒤에서 인준이 외쳤다.

철컥.

볼트 액션 타입이기에 다시 노리쇠를 당긴다.

퉁하고 탄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어딜 쏘긴, 정확히 노린 곳이지.

훈련 기간 내내 프로비던스는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레이퍼에 대해.

‘오른쪽 1번 칼날 다리.’

유일하게 세 겹이 아니라 한 겹의 갑각으로 이뤄진 부위, 다리다.

그리고 그 다리 하나만 없다면.

노리는 곳이 훤히 보인다.

타다다닥!

다리 하나를 잃어도 레이퍼 놈은 미친 말처럼 잘 달렸다.

‘두 번째.’

-적중률 99%.

백 퍼센트라고 해라.

놓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붉은 점이 놈의 몸통 밑, 불룩 솟은 혹으로 향한다.

경도는 고무공 정도.

탕!

총알은 견딜 수 없다.

탄피가 날며 화약 냄새를 풍겼다.

퍽!

노리는 약점을 부순 직후다.

투다다다다!

타이밍 좋게 뒤에서 세 명이 소총을 연사로 두고 갈긴다.

탄피가 사방으로 튄다.

끼에에엑!

레이퍼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투다다다닥.

총탄이 쉴 새 없이 몸에 박힌다.

약점을 부수면 갑각의 경도가 낮아진다.

소총의 총탄이라면 충분히 죽일 있을 정도로!

녹색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다다, 닥.

세 발자국 앞, 달리던 속도가 무뎌지더니 결국 놈의 몸이 무너진다.

쿵!

머리부터 커다란 동체가 쓰러지고.

철컥.

세주는 총기의 노리쇠를 정렬하고 앞을 주시했다.

꿈틀대며 녹색 체액을 사방에 뿌리는 레이퍼 한 마리.

잦게 떨리던 놈이 곧 멈췄다.

-생체 반응 없음, 격퇴 완료. 축하해.

‘뭘?’

-첫 사냥이잖아.

그래. 첫 사냥이다.

앞으로 이런 놈들을 수백, 수천 마리를 잡아야 하는 그런 싸움의 시작.

“잡은 거죠?”

유진이 앞으로 걸어오며 묻는다.

“갑각이 생각보다 허약한데.”

인준이 의문을 표했다.

“약점 기억 안 나?”

세주는 총구를 위로하며 말했다.

“기억은 나지. 그리고 그 약점을 맞추는 건, 포기하라는 말도.”

“난 천재라니까.”

“퍽이나.”

“얌마, 형님이 직접 보여줬는데 못 믿는 거냐?”

치용이 뒤에서 끼어든다.

잘한다. 김치용.

“그래. 보여줬지.”

인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세주의 눈에 쓰러진 탄약고 근무를 서던 병사 둘에게 향했다.

놔두면 지나가던 레이퍼가 채갈까 싶다.

“치용, 저기 둘 탄약고 안에 넣어줘. 문도 닫아두고.”

자신들이 떠난 뒤에 기절한 둘이 죽는다면 평생 꿈에 나올 거다.

“그럼, 다시 가자고.”

한 마리만 잡고 끝낼 생각은 없다.

운석처럼 떨어진 알이 한두 개도 아니고.

‘몇 마리나 있어?’

-모르지. 전체를 파악하는 스캐닝 시스템은 에너지가 훠어어얼씬 많이 필요해.

왜 안 하나 했다. 에너지 타령.

그 말과 함께 프로비던스가 갑자기 어깨에서 날아가 죽은 레이퍼에게 다가갔다.

레이퍼한테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정말 될까?

긴장감을 안고 지켜보고 있으니.

“안 갑니까?”

치용이 어서 가자고 재촉한다.

“잠시만.”

프로비던스가 곧 되돌아왔다

-추출 가능. 이놈한테는 에너지 48 추출 가능해.

48.

‘…되게 애매하네.’

군코바에 비하면 고농축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려 10배다.

그렇다 해도 예상한 것보다는 너무 작다.

100마리를 잡아도 4800.

300마리를 잡아야 에임모드의 스킬을 개방할까 말까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

‘시간?’

-독소를 제외한 순수 에너지만 축출해야 해서. 대략 5분 정도.

기다려야 하나 싶을 때다.

끼에에엑!

두 번째 레이퍼의 괴성이 저 멀리서 들린다.

일단.

‘사람부터.’

“가자.”

에너지는 언제나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보다 우선일 순 없는 노릇이다.

-좋아. 그런 자세.

‘딱히 네 칭찬을 바라지는 않는다만?’

-내가 누구야?

‘싸가지 없는 기생 로봇.’

-…형, 이럴래?

‘적당히 도움 되는 기생 로봇.’

-그래. 지금은 전시니까. 이 정도로 하자고. 에너지 드레인 용 나노 머신을 보낼 게. 에너지 흡수가 끝나면 자동으로 돌아올 거야.

‘오.’

오토 루팅이다.

“괜찮은데.”

자기도 모르게 읊조리자.

“뭐가 괜찮다는 거냐?”

인준의 사나운 목소리가 들렸다.

막 건물 코너를 돈 그였다.

선두에 선 인준의 뒤에서 나타난 세주의 눈에 레이퍼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쓰러진 시체도.

“이런 시발.”

치용이 욕을 뱉었다.

유진도 안색이 굳는다.

“후.”

세주는 호흡을 조절했다.

흥분? 그럴 필요는 없다.

아무런 피해 없이 적을 몰살한다?

운석형 습격을 본 순간부터,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피해는 예상된 범주 안이다.

“꾸에에엑!”

레이퍼의 혀가 병사 하나의 엉덩이부터 뚫고 들어가 있다.

스폰이 되는 과정이다.

그 밑.

푸아아악!

이미 다섯이나 당해서 스폰으로 변한 이들이다.

등에서 촉수를 뽑아내며 세주 일행을 향해 척척 걸어온다.

후두두둑.

뼈대만 남은 선풍기처럼 촉수가 휘리릭 허공에서 돈다.

녹색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호흡기 보호.”

냉정한 한 마디가 셋의 귀로 파고든다.

세주였다.

셋은 반사적으로 갑주 목 부근을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눈만 빼고 코와 입을 가리는 방어구다.

스으으읍.

호흡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며 방독면의 역할을 하는 기구였다.

“스폰 막아.”

세주가 말하고, 총구를 앞으로 겨눈다.

“1:1로 싸우는 건 절대 피해야 한다. 잊었어?”

그런 세주를 인준이 막았다.

스폰만 해도 다섯에.

“꾸에에엑!”

아니, 여섯이다.

거기에 레이퍼 까지.

교육대로라면 병력이 최소 2개 분대 이상이 있어야 한다.

“훈련이랑 실전이랑 구분해. 항상 좋은 조건으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시뮬레이션 모드에서는 이보다 최악의 상황도 겪어봤다.

그리고 이 정도는 세주에게 너무 쉬웠다.

‘브로.’

-에너지 추출, 48 충전. 칼큐레이팅 모드 대기 중.

“레이퍼는 내가 처리한다. 나머지 스폰 맡아.”

철컥!

끼에엑!

스폰을 만든 레이퍼가 단숨에 세주를 향해 달려든다.

생체 반응을 찾아서 덤비는 놈이기에, 가장 선두에 선 세주를 노린다.

붉은색 점이 다시 첫 번째 다리를 노린다.

촤아악!

그 사이 스폰 한 마리의 촉수가 날아왔다.

-회피 시 타격 확률 3%.

가볍게 땅을 박차고 사이드 스텝을 밟는다.

촤악!

채찍처럼 땅을 친 촉수.

그사이 서서 쏴 자세를 잡는다.

탕! 철컥. 탕!

노리쇠를 당기고 쏘는 속도가 눈부시게 빨랐다.

퍽! 퍽!

두 번의 소음 끝에 다리와 약점이 부서진다.

그래도 놈은 달려든다.

애초에 레이퍼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괴생명체다.

‘죽여 주세요 하고 비는데?’

-그럼 죽여 줘야지. 명중률 33%.

높지 않은 확률이지만, 추호의 망설임도 없다.

철컥, 탕!

퍽!

총탄 하나가 눈과 눈 사이를 파고든다.

갑주가 약해지면 저격 라이플 한 방으로도 충분히 놈을 잠재울 수 있는 곳.

놈의 유일한 내장기관이 자리 잡은 곳이다.

‘맞추면 죽일 수 있지. 하지만 보이지도 않고, 겨우 주먹 반만 한 걸 맞추겠다고? 빌헬름 텔이 와도 못 맞출 거다.’

임상험이 교육 중 농담 삼아 얘기했다.

그 어떤 저격수도 무리라는 소리다.

당연하지.

그들에게는 에임 모드가 없으니까.

위치를 상상하고 파악하는 건, 프로비던스에게 맡긴다.

그리고 세주는 붉은 점으로 겨냥한다.

애초에 저격 만을 두고 보자면 에임 모드가 없어도, 반세주는 천재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붉은 점의 행운은.

이런 신기를 발휘하게 했다.

33%? 아니다, 세주의 감으로는 80% 이상의 적중률이었다.

끼이이익.

놈이 달려오던 그대로 관성에 못 이겨 앞으로 굴렀다.

텅. 쿠르르르.

흙먼지가 일어난다.

바로 발 앞에 멈춘 놈이다.

‘추출해.’

에너지는 깔끔하게 먹고.

몸을 돌린다.

스폰이 날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탁!

“이런 개자식들이!”

의외다.

인준이 주춤하다가 촉수에 얻어맞았다.

몸이 뒤로 넘어가자 욕설을 뱉는다.

촉수가 휙 돌며 바로 인준의 목을 감았다.

촉수의 힘은 아나콘다와 버금간다.

-죽겠는데.

‘안 죽어.’

휘릭, 탁!

그 촉수를 휘어잡는 손이다.

인간을 가장한 곰.

치용이 촉수를 잡고 당겼다.

“합!”

그러자 스폰 한 놈이 공중으로 붕 떴다.

타다다당!

유진이 놀라운 반응속도로 공중에 뜬 놈을 소총으로 갈긴다.

세주만큼만 못하지만, 저들도 외계인 피를 정제한 ‘D’를 먹은 병사다.

거기에 커버링까지.

스폰 한 마리가 총탄 세례를 받고 죽는다.

“꾸에엑!”

녹색 피를 토하는 놈을 외면하며 치용이 말한다.

“죽을 거면 안 보이는 데서 뒈져!”

신선한 위로에 인준이 눈을 부릅떴다.

“참견 마라!”

정다운 놈들이다.

이해할 수 있다.

인준이 주저하는 것.

등에서 척수가 나오는 괴물이 되었지만, 조금 전까지 인간이었으니까.

-나약해.

그래, 그렇다 해도 나약하다.

전장에서 동정은 사치다.

세주는 팔짱을 낀 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보고만 있을 거야?

‘알면서 뭘 물어?’

-혹시나 한 거지. 에너지 추출 완료 51.

커버링과 시뮬레이션 모드 훈련을 통해 얻은 다양한 기술들.

세주는 저 셋에게 충분할 정도로 전해줬다.

밥을 씹어서 먹여줄 수는 없다.

‘상 차리는 법을 알려줬으니 밥은 알아서 먹어줘야지.’

저 셋은 자신의 전우조다.

실질적인 전투력이 돼야 한다는 거다.

여기서 죽는다면.

미안하지만, 그게 끝인 거다.

등을 맡기지 못할 전우라면, 몸을 돌려야 한다.

“그럼 정신 차려. 대머리.”

“누가 대머리냐!”

치용이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다.

그는 소총을 쏘다가 다가오는 촉수를 잡아서 그대로 스폰을 매쳤다.

꿍!

바닥에 박힌 스폰의 머리를 군홧발로 걷어찬다.

펑!

-오호, 에너지 썼네.

역시 몸 쓰는 거 하나는 탁월하다.

순간 에너지를 발에 집중해서 타격력을 높인 거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우리 바쁜 것 같은데요?”

강단이 좋은 유진은 쉴 새 없이 소총을 갈겼다.

날쌔게 피하며 총을 쏴대니, 다가오는 놈들의 전신에 총탄 자국이다.

“흥.”

그걸 본 인준이 견착 후 침착하게 점사로 방아쇠를 당긴다.

타다당!

퍼버벅.

“머리를 노려야지.”

스폰의 약점이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긴장은 했어도, 몸은 굳지 않는다.

셋은 곧 스폰을 전부 처리했다.

“이제 끝?”

“레이퍼는 어떻게 됐습니까?”

세주가 뒤를 가리켰다.

이미 한참 전에 죽었지만, 생사를 넘는 싸움 중인 셋이다.

녹색 체액이 점점이 묻은 셋의 눈이 세주에게 모였다.

마스크에 가려진, 입이 보였다면 떡하니 벌려졌을 것 같다.

레이퍼를 단신으로 죽인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 그래 너 천재 해라.”

“역시 형님입니다.”

“그, 음. 대단하네요.”

죽은 병사를 본 세주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훈련을 받고 D를 먹은 이들이 여섯이다.

무기가 없다 해도 너무 쉽게 당했다.

-기습이야. 이 정도 피해는 예상했잖아.

‘예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화를 내는 경우가 드문 세주다.

하지만 표정만 보고도 셋은 그의 상태를 짐작했다.

입을 다문 셋을 향해 세주가 말했다.

“일개미 형태, 붉은 개미 속도로 간다.”

주변 경계하며 천천히 전진하는 대형이 일개미.

그리고 빠른 속도로 돌파하는 것이 붉은 개미 진형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눈에 커버링 씌워. 그럼 간다.”

하지만 가능했다.

세주가 가르쳐 준 기술이라면.

*

“이런 미친 개자식들.”

번개콩은 자신의 앞을 막은 40마리의 스폰을 보고 이를 갈았다.

총탄이 떨어졌다.

허리춤에 매달린 수류탄 두 개를 양손에 나눠 쥐고는.

“덤벼라. 혼자는 못 간다.”

“버텨!”

저 멀리서 박민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도 버티겠다 싶다.

스폰 40마리 너머에 보이는 레이퍼의 숫자는 세 마리.

최소 필요 병력이 1개 소대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 남은 병력은 고작 6명이다.

번개콩 자신과 저 멀리 싸우는 김택동 소위와 박민우, 조태슬.

그 6명 중, 둘은 자신의 옆에 있지만 한 명은 왼쪽 다리가 허벅지부터 잘렸고.

한 명은 오른팔이 잘렸다.

병력으로서 의미는 없다.

“와라. 시벌 새끼들.”

악에 받친 번개콩이다.

눈에 핏발이 선 그는 뒤의 둘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창고 벽을 등진 둘이다.

흘린 피로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미안한데, 같이 죽어야겠다.”

“걱정 마십시오.”

“이런 날 각오 안 했겠습니까?”

일병 둘이 말한다.

그래. 이런 날 각오 안 했을까?

이미 이들은 전장을 경험한 이들이다.

죽음은 언제나 옆에서 속삭이는 종달새 같은 거였다.

“후, 후, 후.”

마음을 굳게 먹어도 수류탄을 쥐고 놈들을 향해 달려가기가 쉬울 리가 없다.

그 사이 스폰 놈들이 다가온다.

‘가자, 간다. 다 죽인다.’

그렇게 앞으로 한 발 디딘 순간.

탕! 퍽!

총성이 울렸다.

정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스폰의 머리가 터진다.

총성은 위쪽이었다.

자연스레 고개가 올라갔다.

건물 옥상.

“전부 제자리 대기. 앞쪽 적군 소거한다. 장전.”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다.

“사격 실시.”

옥상 위에서 밑으로 총구 50여 개가 튀어나온다.

투다다다다.

소총의 불꽃이 뿜어지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렸다.

퍼버버벅!

그리고 그 천둥이 눈앞의 스폰을 쓸었다.

탁!

그 사이 옥상에서 내려온 사람이 다가온다.

“두 명은 부상이 심하고, 조교님은 멀쩡합니까?”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소대 전술 훈련에서 번번이 물을 먹인 것도 부족해 자신을 때려눕힌 놈이니까.

D급 훈련병, 반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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