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25. 명중률 98%
훈련소에는 훈련병들만 있는 게 아니다.
군무원도 있었고, 간부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드시지요.
그래. 그러자.
현재로서는 먹는 게 답이다.
우적우적.
“잘도 먹네.”
인준이 먹는 세주를 보고 감탄을 뱉었다.
“여기는 다 형님 거다 넘보지 마라.”
치용이 부끄럽게도 음식을 세주 앞에 차곡차곡 쌓는다.
박민우가 사 온 것의 반은 뺀 것 같다.
“그건 좀 너무한데?”
“뭐?”
김치용의 인상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깝다.
누구라도 야생동물 앞에 서면 겁을 먹듯이.
치용을 본 훈련병이 꼬리를 말았다.
“불만 있으면 날 통해라.”
치용 호랑이가 으르렁거렸다.
편하긴 한데.
좀 부끄러웠다.
*
탕.
타겟을 정확히 맞추는 것.
그게 저격수의 의의다.
문제는 그들의 적이 레이퍼라는 외계 생명체라는 거다.
“맞춰라! 오탄 한 발에 아군의 생명이 사라진다!”
정확하게 맞춰도 7.62mm 탄은 놈들의 갑각을 뚫을 수 없다.
그래서 저격수들은 놈들의 눈과 입을 노린다.
하지만 맞추는 것 자체가 최고의 난이도다.
저격은 500m만 넘어도 적중률이 떨어진다.
외계인의 피로 정제한 약을 먹은 훈련병이기에 1km 거리도 맞춘다.
하지만 레이퍼는 1km를 2분 내로 주파한다.
볼트 액션 저격 소총으로 다섯 발.
2분 이내에 쏠 수 있는 한계다.
그리고 그 다섯 발로 놈들의 눈이나 생명체를 감지하는 센서인.
얼굴 중앙에 있는 돌기를 맞춰야 한다.
눈을 맞추면 놈이 시야를 잃는다.
코처럼 생긴 돌기를 맞추면 생명체를 탐지하는 레이더를 잃는다.
맞추기만 한다면 말이다.
엎드린 채로 손바닥만 한 타겟을 꿰뚫는다.
12주 차가 넘어서자 훈련병들 대부분이 조교가 말했던 기준에 다다랐다.
다섯 발 중 한 발, 20%의 확률.
그게 조교가 바라던 결과였다.
“앞으로 2주 뒤 작전에 나가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뉘는 건 현재 훈련병들이 든 총기에 달려있다.”
훈련 일정도 어느새 2주 만이 남았다.
기다리던 순간이기도 하나, 두렵기도 하다.
‘작전이라.’
분명 레이퍼 부대와 맞부딪치는 일이 될 테니까.
다가오는 그 일에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그들을 맞이한다.
칼날 같은 다리, 두꺼운 갑각, 무서운 빠르기.
인간이 만든 가장 합리적인 살해 도구인 총기를 무용하게 만드는 놈들.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다.
-쫄았어?
프로비던스가 타이밍 좋게 묻는다.
그래. 일반 훈련병이었다면 겁먹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치용, 인준, 유진이 특이한 놈들이지.
지금도 악몽을 꾸고 탈영을 꿈꾸는 놈들이 있다.
레이퍼를 알면 알수록 공포가 그들을 좀먹는 거다.
하지만 반세주는.
-단단한 솜털에 에임 모드, 커버링, 그동안 에너지를 투자해서 쌓은 경험치, 그런데도 쫄면 형 완전 쫄보지.
‘형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다. 형 누군지 몰라? 다 오라 그래.’
긴장은 되지만, 두려울 필요는 없다.
훈련소에서 기간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
“자대 어디로 갈 겁니까? 전우조 희망하면 유지해준다고 하던데.”
유진이 물었다.
치용도, 인준도 아니고 유진이라니.
“같이 가게?”
솔직히 셋 다 데리고 갈 생각이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싶은데 안 되나요?”
배시시 웃는다.
안 되긴, 되지.
이 자식의 웃음은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훅 넘어가게 한다.
아, 물론 남자 대 남자로, 그러니까 참 호감 가는 우정을 만드는 놈이다.
“같이 가자.”
치용과 인준도 두 번 물어보면 화를 낼 기세였다.
“형님, 저 김치용입니다. 의리 하면 뭐다?”
“미친 의리 성애자. 나도 같이 간다.”
둘과 유진까지 포함한 넷이 전우조로 묶여서 가길 요청한 날.
프로비던스가 제안했다.
-우리 모드 하나 더 열자.
‘내 모드?’
-아니, 이번에는 내 쪽이야.
‘…에너지도 얼마 없는데, 굳이?’
-이 사람이 나 못 믿어? 필요하니까 하자고 하는 거지.
‘뭔데?’
듣는다고 에너지 소모하는 건 아니니, 일단 들어나 봐야 했다.
-칼큐레이팅 모드라는 건데 앞에 일어날 일의 확률을 계산하는 거야.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지.
푸른 렌즈를 통해서 소총의 이미지가 나오고 그 옆에 홀로그램 문자가 뜬다.
적중률 80%
오호, 사격 명중률을 알려준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것도 가능하지.
이번엔 수류탄이다.
화선지에 먹물을 떨어뜨린 것처럼 피해 범위가 보인다.
-그리고 패턴을 파악할 정도로 충분히 상대한 적이라면, 다음 행동 확률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해.
단순한 확률이 아니다.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보는 것, 그게 칼큐레이팅 모드였다.
-남은 에너지를 전부 소모해야 하지만, 훈련소 끝날 때 작전에 나가서 이등병 따와야 한다며?
맞다.
단순하게 훈련이 끝나고 자대 간다고 이등병 마크를 달아주지 않는다.
이 살벌한 군대는 작전 1회 참여시 생존했을 때만, 이등병이 된다.
고로, 조금이라도 살아날 확률이 높은 짓은 하는 게 옳다.
지금도 꽤 막강한 전력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자.’
-이거 오픈하면 남은 에너지 30 정도야.
프로비던스를 딱 6일 구동할 수치다.
“충분해.”
위잉.
-승인 완료.
프로비던스가 단숨에 에너지를 소모한다.
피 같은 에너지가 쑥 사라지고.
-칼큐레이팅 모드 온.
“자, 뭐가 달라진 거냐?”
나름 기대를 하고 물었다.
-음. 이건 전투용이라서 지금은 활용이 안 되는데? 아 그리고 이걸로 내 구동에너지는 하루에 10이야.
이 자식은 정말 미친 로봇인가?
‘그걸 이제 말해?’
-칼큐레이팅 모드 좋다. 음. 좋아. 훌륭해.
‘못 들은 척하냐?’
-뭐라고? 잘 안 들리네. 소리 잡아내는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나?
쌍욕 해봐야 입만 아프다.
이제는 이 정도 짓은 그러려니 할 수준이다.
우웅.
“…방금?”
분명 뭔가 있었다. 공기가 떨렸다.
-고에너지 감지.
우우우웅!
뭐냐!
세주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였다.
슈우우우.
알이다.
붉고 푸른 핏줄이 돋아난 알이 유성처럼 날아온다.
슈우우우우우우. 꽈-앙!
작은 크레이터를 만든 알이 내무실 바로 뒤편에 안착했다.
훅하고 먼지가 잠시 시야를 가렸다.
쩌저적.
불길한 소리가 가라앉는 먼지 사이를 뚫고 들린다.
먼지가 가라앉으며 어렴풋이 시야가 트인다.
봤던 그대로다.
알이다.
붉고 푸른 핏줄이 튀어나온 그리고 그 알이 지금.
‘쪼개진다?’
산 비탈길에 안착한 알이 균열을 일으킨다.
병아리가 튀어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생명 반응 감지.
프로비던스의 푸른 렌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저녁 아홉시.
가로등 불빛 외에는 어두운 시간이다.
알에서 푸왁하고 녹색 액체를 뿌리며 다리가 튀어나왔다.
익숙한 형태였다.
“…레이퍼?”
-감지 완료, 레이퍼다!
떨어지는 유성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기 하나 없이 놈을 상대할 순 없다.
어느새 뒤로 몸을 돌리고 뛰었다.
동시에 외쳤다.
“일어나! 습격이다! 비상! 비상!”
“무슨 일이야!”
불침번이 날 듯이 뛰어온다.
익숙한 얼굴, 싸가지 일병이었다.
“습격입니다!”
그가 라이트를 세주 뒤로 비춘다.
곧 레이퍼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비상! 비상!”
무전기를 뽑아서 외치며 싸가지 일병도 달린다.
어디로 갈까, 고민은 잠시였다.
-형, 탄약고.
내무실에 간다 해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행히 알에서 나오려면 몇 분은 소요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가장 필요한 건.
‘무기.’
세주의 발이 두 배는 빨라졌다.
“뭡니까?”
내무실 앞쪽으로 달리자 1층 창문에서 고개를 뺀 치용이 물었다.
연병장을 막 가로지르려던 참이다.
“둘 다 데리고 따라 와!”
길게 말하지 않았지만, 눈치 빠르게 인준과 유진을 데리고 쫓아온다.
셋이 창틀을 뛰어넘는다.
곧 뒤를 따라온 셋에게 말했다.
“습격이다. 무기 챙기러 간다.”
인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을 찰나.
끼에에엑!
내무실에서 괴성이 들려오고.
“으아아악!”
“뭐야! 시발! 야! 야!”
“끄아아악!”
비명성이 들린다.
레이퍼 한 마리가 내무실 창문 밖으로 뒷다리 중 하나를 내민다.
펑!
창문이 터지며, 놈의 모습이 보였다.
“뛰자고.”
세주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늦장 부릴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건물 끼고 오른쪽.
전용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세주가 탄약고 앞에 도착했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선 이들이 지키고 서 있다.
근무자는 둘.
그중 하나가 총구를 앞으로 내밀며 외친다.
“멈춰!”
바깥의 소란을 못 들었을 리 없지만, 그들은 꼼짝도 안 하고 자리를 지켰다.
“김택동 소위님 명령입니다!”
달려가며 세주가 외쳤다.
그리고 왼손을 뒤로 돌려 수신호를 보낸다.
치용이 옆에 붙고, 유진과 인준이 옆으로 갈라져 뛴다.
“응?”
김택동 소위라는 말과 갑자기 갈라지는 둘.
“머, 멈춰!”
당황한 기간병이다.
저 멀리 비명이 들려온다.
이상이 발생한 건 분명했다.
하지만 탄약고는 장교가 아니면 열어서는 안 되는….
그는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휙.
누군가 뒤에서 목을 조른다.
“컥!”
“이 미친 새끼들!”
남은 한 명이 외치며 총구를 돌리는 사이다.
훅.
세주의 몸이 푸른빛을 남기며 순간 가속했다.
커버링을 다리에만 집중해서 보이는 묘기다.
쭈우욱!
몸이 늘어나듯 상대에게 다가가며 손바닥으로 위병의 턱을 올려쳤다.
쩍!
뼈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무너지는 그의 뒤로 십자로 봉인지가 붙은 자물쇠가 보였다.
“제가 합니다.”
뒤에서 치용이 달려오며 외쳤다.
빠각!
치용이 군화로 걷어차자 자물쇠가 부서졌다.
넘어진 병사 둘을 인준이 한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들어가 탄약을 챙겼다.
“후환 감당되겠어?”
인준이 물었다.
이 와중에도 나중 일을 걱정하냐?
“일단 살아야 걱정도 하는 거다.”
세주의 눈에 K-14 저격 소총이 보인다.
훈련병들에게는 무기는 훈련 시에만 주어진다.
실제 총기는 자대에 가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이다.
탄약고에 총기도 같이 비치되어 있었다.
소총 세 자루를 쥔 세 명과 저격 소총을 든 세주다.
“나가자.”
온 김에 수류탄도 몇 개 챙겼다.
거기에 방어구도 보였다.
아머라고 부르는 레이퍼의 갑각을 본 따 만든 방탄·방검복이다.
묵직한 무게는 단점이나, 훈련 때 들은 말로는 놈들의 일격은 너끈히 받아낸다고 했다.
“안 입습니까?”
세주는 유진이 건넨 아머를 한쪽으로 던졌다.
“난 필요 없어.”
쓸데없이 무겁기만 하다.
“남자라면 역시!”
미친 김치용이 아머를 벗으려고 했다.
“야, 난 커버링이 있단 소리다. 너희는 아직 미숙하잖아. 입어.”
실제로는 단단한 솜털 덕이다.
밖으로 나온 세주의 눈에 타다다다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리는 소리다.
그동안 수없이 봐오고 교육받은 적.
레이퍼의 발걸음 소리.
-전방.
철컥. 세주가 곧바로 총기를 들었다.
‘모드 온 에임.’
붉은 점이 눈앞에 뜬다.
-명중률 98%.
칼큐레이팅 모드 덕에 프로비던스가 곧바로 반응한다.
적이 보이고 조준점 옆에 명중 확률이 홀로그램 문자로 보인다.
“형님!”
뒤에서 나오며 외치는 치용의 목소리와 함께.
세주가 방아쇠를 당긴다.
탕!
퍽!
총알이 박혔다.
정확히 세주가 바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