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24화 (24/206)

#  24

24. 무쌍

후루룩.

컵라면 다섯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삶은 달걀 열 개를 먹는다.

두 개씩 입에 욱여넣고 씹는다.

우적우적.

중간에 졸려서 눈이 감겼다.

‘입을 움직이는 데도 졸리다니.’

졸면서 계속해서 먹었다.

위장이 빵빵해져서 윗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허리 요대가 배를 조일 때가 돼서야 일어났다.

“훈련하고 저만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다니. 내 살다 살다….”

취사병이 하는 말이 들렸다.

신경도 쓰지 않고 내무실로 돌아갔다.

침상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테크룸이고 뭐고.

‘나 잔다.’

일단 숙면이다.

졸려 뒤질 것 같았다.

*

저녁 여덟시.

여름이라 낮이 길지만 산속은 아니었다.

어둠에 서서히 스며들고.

겨우 앞뒤 분간만 가능해진 순간까지.

앞장선 박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모든 소음을 최대한 죽인 채 따라온다. 묻지도 말고, 나보다 앞서가지도 않는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멈춘다.”

악이라는 대답도 없이 박민우는 출발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독한 행군이다.

그나마 세주는 견딜 만했다.

‘저격병은 이런 일 허다하게 한다.’

치용과 인준, 유진이 바싹 붙어서 걸었다.

걷는 소리조차 죽이라는 말에 모두 발걸음을 신중하게 뗀다.

덕분에 행군 속도는 이제껏 했던 훈련 중에서 최저 속도였다.

1시간을 넘게 그렇게 산속으로 들어오니, 이제는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달도 구름에 가려져 달빛조차 없었다.

‘브로.’

물론 세주는 예외다.

프로비던스가 자신의 렌즈로 눈앞을 비춘다.

오직 세주에게만 보이는 푸른빛이다.

다들 조심스럽게 걷는 게 보이고.

선두 쪽으로 눈을 돌리니.

‘박민우가 없어?’

언제 사라졌는지, 조교의 모습이 안 보인다.

하지만 선두에 걷는 훈련병은 그것도 모르고 앞으로만 나아간다.

조교가 없어졌다고, 멈추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흐으음?’

-먹이를 기다리는 승냥이 떼 같네.

프로비던스의 말과 같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리를 죽이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손에 검은 봉 하나씩을 쥐고 있는 무리다.

이상한 고글을 끼고 있는데, 야시장비로 보였다.

몇몇이 눈에 익었다.

‘2소대네.’

맨 앞은 번개콩이라는 별명에 조교다.

저 뒤로 양대로도 보인다.

어딘가 흥분한 모습이다.

세주는 앞으로 걸음을 빨리해서 나갔다.

“형님.”

그걸 느낀 유진이 세주를 잡으려다가 놓쳤다.

선두로 튀어나간 세주가 맨 앞에 있던 이의 어깨를 잡았다.

흠칫하고 놀란 이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왜?”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번개콩 조교가 곤봉을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

천으로 둘둘 말린 몽둥이다.

긴박한 순간이지만, 슬로모션처럼 몽둥이의 궤적이 보인다.

선두에 있던 훈련병을 어깨를 잡은 채로 뒤로 던졌다.

“욱!”

날아간 이가 신음을 흘린다.

동시에 앞으로 한 걸음.

스코프를 쓴 조교가 세주의 움직임을 쫓아 곤봉을 다시 휘두른다.

‘느리네.’

세주의 대련 상대는 치용이다.

그보다도 느렸다.

쌔액!

날아오는 봉을 피하고 주먹으로 턱 끝을 노렸다.

휭!

번개콩이 고개를 뒤로 젖혀 피했다.

그 사이 한 걸음 더 다가온 세주가 팔꿈치를 상대 명치에 꽂았다.

꾸직!

‘아, 실수.’

반쯤은 고의로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독한 놈이었다.

갈비뼈가 부러져도 고통을 참고, 다시 봉을 휘두른다.

팔꿈치에 확실히 감이 왔음에도, 상대는 공격을 감행한다.

고개를 숙여 봉을 피하고 한 번 더 팔꿈치를 들고 쫓아가자 놀라서 뒤로 물러난다.

탁.

세주는 왼발을 크게 앞으로 밟으며 물러나는 이를 향해 오른발을 올려 찼다.

틱!

하이킥이 턱 끝을 스친다.

팩하고 조교의 고개가 꺾인다.

제대로 차면 당분간 죽 밖에 못 먹을 것이다.

‘봐줬다.’

초인 프로젝트와 피부의 변화, 거기에 레이퍼와의 맞대결 등.

아무리 조교라도 1:1로 현재 세주를 위협할 인간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며 훤히 보이는 이들을 향해서 일격을 먹인다.

“억!”

명치, 턱 끝, 관자놀이, 목 뒤.

맞으면 그대로 바닥을 기는 부위다.

2소대원 중 하나가 외쳤다.

“퍼져!”

넓게 퍼져서 3소대원을 압박한다.

장님과 일반인의 싸움이다.

격전지가 넓을수록 상대에게 유리했다.

“전우조 등 붙이고, 제자리 지켜. 다가오는 적은 잡아서 제압한다!”

질세라 외치고, 힐끗 뒤를 돌아봤다.

누구 목소리인지도 모르고 다들 명령에 충실히 따른다.

상황판단이 발군이었다.

시뮬레이션 모드에 쓴 에너지는 헛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장악한다.

그것이 전투에서 이기려면 갖춰야 할 첫 번째 요건임을 잘 알고 있었다.

“윽!”

“여기다!”

사방에서 격투 소리가 들린다.

빈손에 빛 한 줌 없는 어둠 속이지만.

“당황하지 마! 타격이 아니라 그래플링을 활용해!”

그동안 타격기와 그래플링 훈련도 충실히 받아왔다.

그리고 D를 먹고 생긴 맷집.

급소가 아니라면 몽둥이 한 방에 무너질 훈련병은 없다.

세주는 외치면서도 앞을 막는 2소대원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지금 3소대원은 방패다. 그리고 내가 창.’

-뒤, 둘.

프로비던스의 조언과 앞이 훤히 보인다는 장점과 더불어.

빠직.

전투력의 차이가 극심하다.

일격을 버텨내는 이가 드물다.

조교마저도 두 번 만에 나가떨어졌으니.

“이놈!”

거기에 본래 세주의 전우조인 치용과 인준, 유진.

치용이 맞고 인준과 유진이 잡아 꺾는다.

개미지옥이었다.

그들을 향해 봉을 휘두르는 이들이 쉼 없이 잡혀 꺾인다.

“끄악!”

뼈가 부러진 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대부분 2소대원의 목소리였다.

치용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날아오는 봉에 몸을 갖다 댔다.

‘무섭지도 않나.’

분명 보이지 않을 텐데, 겁도 없다.

날아오는 게 칼인지, 몽둥인지 분간할 수 없는데도 잘도 몸을 들이댄다.

세주는 시선을 돌려서 다시 2소대원을 하나씩 노렸다.

‘이건 뭐, 누워서 떡 먹기네.’

보이지 않으면 곤란하겠지만.

떡하니 프로비던스가 빛을 비춘다.

총을 들고 칼싸움을 할 사람은 없다.

프로비던스가 있는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할까?

‘신나는 데?’

무쌍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앞을 본 순간, 양대로가 보였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세주를 노리고 달려온다.

교훈이 필요한 놈이다.

그렇게 맞았으면 정신 차려야지.

달려오는 놈의 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동시에 옷깃을 잡고 그대로 업어치기다.

휘릭하고 양대로의 몸이 공중을 돈다.

업어치기를 하다 허리를 세우고, 떨어지는 머리를 향해 로우킥.

쩍! 꾸득.

어릴 때 격투 게임에서 봤던 기술을 재현한다.

의지를 따라 움직이는 신체다.

기묘한 감각이 가슴을 저몄다.

고등학교 체육대회 계주에서 역전에서 승리했던 것과 같은 희열이.

아니, 그보다 더한 쾌감이 전신에 스며든다.

-그러다 죽이겠다.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했지.’

프로비던스가 거품을 물고 기절한 양대로를 비췄다.

‘봐 살아 있잖아.’

쓰러진 양대로가 거품을 물고 몸을 바들바들 떤다.

-확실한 거지?

‘내가 또 힘 조절은 기가 막히지.’

상황은 금세 종료됐다.

“3소대 대처훈련 끝.”

확!

갑자기 빛이 비치며 주변을 밝힌다.

주변을 감싼 건, 훈련소를 담당하는 조교들과 교관들이다.

보통 병사들은 조교, 간부는 교관이라고 불렀다.

“훈련 끝 모두 복귀한다.”

박민우의 얼굴이 보였다.

표정과 감정을 보이지 않는 그 얼굴이 이상하게 즐거워 보였다.

“훈련이었어?”

양팔이 멍들고 머리에 혹까지 난, 치용이다.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다?”

그걸 보고 세주가 말하자. 치용이 흥하고 콧김을 뿜는다.

“이 정도로 김치용을 잡으려면 멀었습니다. 전차라도 끌고 와야지. 흥.”

전차랑 붙으면 잘도 살아남겠다.

“그래. 네가 최고다.”

인준이 드물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냐.”

그럴 만도 했다.

인준과 유진을 노린 공격도 전부 치용이 몸으로 때웠다.

“수고했어.”

세주도 공치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 한 것도 없네요.”

없기는.

정유진은 변태과다.

인준보다 더 적극적으로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걸 똑똑히 봤다.

“아냐. 너 되게 열심히 했어.”

“네?”

“아니다.”

다 보인다고 말하면 또 핑곗거리가 조악하다.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악마 소위가 옆으로 바짝 붙었다.

“D급.”

“훈련병 반세주.”

“너 다 보였지?”

“잘 못 들었습니다?”

“다 보는 것처럼 싸우던데?”

지켜보고 있었구나.

“아닙니다. 어두워서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였습니다.”

“확실해?”

“제가 어릴 때부터 오감보다 육감이 발달해서, 신내림을 받을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보여서 싸운 게 아니라, 타고난 감으로 싸운 겁니다. 거기에 운도 많이 따랐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개소리를 지껄여줬더니, 악마 소위가 픽하고 웃는다.

“알았다.”

그가 휙 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나도 육감 좋다. 그래서 누가 머리에 던진 돌도 피했고.”

안 지겹냐? 그놈의 돌.

순간 인정할 뻔했다.

“저 아닙니다.”

대답도 없이 악마 소위가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크게 다친 이들은 나노킷으로 치료를 받았다.

‘따로 의사가 필요 없네.’

“빨간약 효과 죽이네.”

치용도 나노킷의 붉은 광선에 상처를 들이댔다.

단숨에 멍이 사라지고 혹이 사라진다.

훈련과 수습을 마치고 돌아오자, 벌써 12시였다.

“명일은 오후 2시 교육까지 휴식과 자유시간이다.”

박민우가 돌아와 말하고 쌩하니 사라졌다.

‘훈련했다고 자유시간도 주네.’

침상에 누워서 바로 테크룸으로 입장.

몸은 침상에 있지만, 정신은 프로비던스를 만난다.

세주는 오늘 훈련을 곱씹었다.

‘브로. 굳이 안 보이는 데 전투를 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훈련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이런 상황에 직면할 확률이 높다는 거겠지?’

어둠 속의 전투가 필수라는 소리다.

프로비던스에게 물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결과다.

세주는 알 수 있었다.

훈련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실전에 투입될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걸.

그러므로 쉴 틈은 없다.

“가자. 시뮬레이션 모드 빡세게 돌려보자.”

-그럼 난이도 좀 높여 볼까?

“좋아. 높여. 오늘 제대로 한다.”

*

텅.

내무실 문이 거칠게 열린다.

휴식시간 중이었다.

“3소대 회식이다.”

PX를 통째로 털어온 듯 냉동 음식과 갖가지 과자 음료수가 몽땅 들어왔다.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누군가 묻자.

박민우가 답지 않게 웃었다.

“무리는 없다.”

-진짜 2소대 조교랑 내기라도 했나 본데?

‘응. 돈 내기라도 했나 보지 뭐.’

알 게 뭐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다.

한참 배를 채우고 나니, 누군가 다가온다.

얼굴은 눈에 익지만, 그다지 인사를 나눈 적이 없던 녀석이다.

“고마웠다.”

누군가 했다.

“아.”

이틀 전에 마무리된 야간 습격 대비 훈련에서 선두에 서 있던 훈련병이다.

“별거 아냐.”

세주는 말하는 것보다 먹는 게 바빴다.

군코바라도 보급되면 좋을 텐데.

훔쳐 먹은 이후로 소식도 없다.

남은 에너지 잔량이 시야 한쪽에 떠 있다.

[196]

적다.

에임 모드 스킬도 열어야 하고 이것저것 오픈해야 할 기능도 넘쳐난다.

‘어디 하늘에서 에너지 뚝 안 떨어지나?’

-군코바? 아니면 레이퍼?

레이퍼는 분명 에너지 덩어리다.

그걸 어떻게 흡수해야 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외계인의 피가 에너지를 부여한 건 사실이다.

고로, 프로비던스가 노래를 부르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레이퍼 사냥.’

이라는 결론이다.

‘한두 마리는 상관없으니까, 레이퍼 놈들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간절히 바라는 바이긴 한데, 실제로 그런 게 떨어지면 지옥이지.

‘그건 나도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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