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21. 불량인가?
‘고민되네.’
병과 선택의 고민은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세주의 선택은 정해졌다.
저격.
효율성을 따져봤을 때 최선의 선택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주에게 적절한 장비가 주어진다면.
레이퍼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에임 모드와 타고 난 재능.
그는 저격을 위해 태어난 남자다.
-난 경고했다.
프로비던스의 말에 세주가 인상을 썼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 브로.’
정이 뭐라고.
치용, 인준, 유진 때문이었다.
척후, 척병, 의무 전부 기본 소양 교육은 받았다.
굳이 프로비던스가 설명하지 않아도 세주도 알았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기술들과 병과 훈련에서 알려주는 것들의 차이.
-그냥 둬. 괜히 내 존재가 알려지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말과 함께 어깨에 놓인 프로비던스가 빛을 비춘다.
소년의 모습이 나타나 배를 가르는 시늉을 한다.
-실험실에서 환갑잔치 하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할 일이나 합니다. 훈련병.
이성적으로는 프로비던스가 맞다.
하지만 사람은 이성으로만 살지 않는다.
‘일단, 치용이부터 시작해보자.’
-난 말렸다. 나중에 실험실에서 그때 더 적극적으로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하기 있기 없기?
‘닥쳐.’
“3456번 훈련병 나옵니다.”
절벽에 모인 저격 병과 지원자들을 향해 싸가지 일병이 말했다.
세주가 앞으로 나섰다.
“준비되면 사격 실시합니다.”
“네.”
소총에 스코프만 달아준다.
그걸로 원거리 저격에 성공하란 소리다.
주는 장비가 짜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철컥.
호흡을 멈추고 흔들림 없이 손가락을 당긴다.
방아쇠를 당길 때는 손가락을 제외한 다른 부위는 움직이지 않는다.
싸가지 일병은 모인 이들에게 사격이 아닌 저격에 대해 교육을 했다.
하지만 세주에게는 상관없는 소리였다.
대강 표적지를 보고.
‘모드 온, 에임.’
에임 모드를 발동한다.
붉은 점이 나타나 표적지를 가리킨다.
마음껏 호흡하며 그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탕!
꿈틀.
싸가지 일병의 눈썹이 흔들렸다.
실패를 예상했다.
사격 자세도 호흡도 전부 엉망이다.
그런데 표적지가 뚫렸다.
“…통과.”
한 타이밍 늦게 말이 나왔다.
조태슬 일병.
그에게 반세주는 이상한 훈련병이었다.
단체 훈련에 빠지고 장애물 코스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같은 소대원을 위해 타 소대원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다.
쉬쉬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그걸로 2소대 번개콩이 벼르고 있는 것도.
그런데 등급은 D급이다.
A급보다 보기 어려운 등급이다.
기계 오류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의무병 담당 조교의 말에 따르면 나노킷 소실율이 0.1% 이내라고 한다.
붉은 광선은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다루는 것 자체는 까다로웠다.
소실율이란 치료에 소모되는 에너지 외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에너지 비율이다.
의무 담당 조교도 9%대다.
그게 말이 되냐고 묻고 싶었다.
그래서 당연히 의무병을 할 줄 알았더니.
저격병을 하겠다고 왔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한 훈련병이었다.
*
“김치용, 잠깐.”
모든 훈련을 마치고 식사까지 마친 이들이 내무실에 모였다.
세주가 치용을 불렀다.
“네.”
의문도 없이 치용이 세주를 따라온다.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팔이 보였다.
‘괜한 걱정일지도.’
놔둬도 잘 싸우고 알아서 잘 견뎌낼지도 모른다.
-관두라니까.
‘시끄러워.’
하지만 그냥 둘 수가 없다.
현상 재생에서 레이퍼와 싸워봤다.
괜히 입대 후 사망률이 50%가 아니다.
이대로 놔두면 치용, 인준, 유진도 부지불식간에 죽을지도 모른다.
가능하다면 모든 이를 가르쳐 전력을 올릴 수도 있지만.
‘그건 무리지.’
그랬다가는 본인이 실험체가 될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러니,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지키자.
내무실 뒤편까지 끌고 왔다.
우두둑하며 목을 푸는 치용이다.
“거, 형님 저도 할 말이 있었는데. 먼저 하겠습니다.”
“응? 그래.”
아직 복잡한 머릿속이다.
세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척후 기술 배울 생각 없습니까?”
응?
“배워두면 다 쓸데가 있을 것 같은데, 배워두십시오.”
조리 있게 얘기하지 마. 김치용 아닌 것 같으니까.
“형님뿐 아니라 인준과 다른 소대원에게도 가르쳐 두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가르친다고 배울 수나 있을까?”
그 말에 치용이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흐, 맞고 구르다 보면 다 됩니다.”
역시 무식한 새끼.
근데 자신이 가진 기술을 가르치려고 해?
머리로는 모르지만, 몸으로는 아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세주는 그제야 결심이 섰다.
“됐다. 인준이랑 유진도 불러와.”
“역시.”
무슨 생각인지 치용이 그 말과 함께 인준과 유진을 불러왔다.
유진은 지친 기색이고.
“바쁜 사람 오라 가라야?”
“넌 형님이 부르면 그냥 오지. 꼭 한마디를 던지네. 쥐어 터질라고.”
“주둥아리에 수류탄을 꽂아 버리기 전에 닥치지?”
척탄병이 된 인준은 오늘 실제 수류탄 수십 개를 던졌다고 한다.
“조용, 할 말이 있다.”
세주의 말에 셋의 시선이 모인다.
“병과 훈련도 훈련인데, 셋은 나한테 뭐 하나만 배우자.”
“…제가 배우는 겁니까? 제가 가르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치용이 자신이 한 말이 맞나 곱씹어보더니 맞게 말한 것 같은지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
“그렇지 않습니까?”
“아냐. 내가 가르치고 너희가 배우는 거 맞아. 대신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
셋을 가르치는 것도 모험이다.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래야 할 이유는?”
인준이 묻는다.
“다 너희 잘되라고 그러는 거니까.”
유진과 치용도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관둬.
‘시끄럽다.’
프로비던스의 방해를 밀어내고, 세주가 오른손을 들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몇 초 만에 손에 푸른빛이 생긴다.
웅.
오른손에 푸른빛으로 만든 장갑을 낀 것 같다.
“커버링이라고 이름 지은 기술이다.”
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놀랄 것 같은 사람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 이상하게 신났다.
이래서 사람을 놀려먹는 건가 싶다.
“배우면 알겠지만, 쓸 만한 기술이다.”
“…커버링?”
인준이 혼잣말하듯 묻는다.
“내가 이름 지은 거야. 손을 감싸는 게 그럴듯하잖아.”
“그게 뭡니까?”
치용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척후는 에너지를 다루고 몸으로 사용하는 이들이다.
그는 보자마자 세주가 보여 준 것에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악마 소위가 보여준 것과는 농도가 다르다.
오렌지 향 음료수를 먹다가 통째로 짠 오렌지 주스를 마신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유진이 물었다.
셋 다 들었고 봤다.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과 악마 소위의 시범을.
‘D를 먹으면 새로운 힘을 축적하고 컨트롤 하는 기관이 생긴다. 그 새로운 힘을 끌어 쓰는 것이 지금 내가 하는 짓이다.’
NP (Noble Path) 노블 패스라 부르는 기관이 새로 생긴다는 거다.
눈에 확인되지 않기에 학설로만 존재하지만.
실재하기에 모두 믿는 것.
그게 에너지의 존재다.
긁적.
세주가 머리를 긁었다.
-이제 뭐라고 할래? 내 몸 안에 사실 이 시대가 낳은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로지 인 이 몸이 있다고 말할 셈이야?
‘어쩔까?’
-사실은 50년 뒤 미래에서 회귀했다고 해. 믿을지도 몰라.
‘잘도 믿겠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안 믿어. 그니까 아무 말이나 지껄이시지.
비아냥거리기는.
“그냥.”
“…네?”
유진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그냥이라고. 그냥 보니까 되더라.”
“그거 말이라고 하는 건가?”
인준이 말한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세주가 말했다.
“내가 천재인가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