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20화 (20/206)

#  20

20. 척후, 척탄, 저격, 의무.

-그렇지. 그리고 초인프로젝트 다음 단계를 개방하면 신체 능력도 충분히 올라갈 거고.

‘오호.’

외계인의 피 연구는 이제 고작 며칠이 남았다.

‘외계인의 피 연구가 끝나면 뭘 할 거냐?’

-레이퍼 사체 연구가 하고 싶은데. 연구실도 사체도 없으니. 에휴. 내 팔자야.

‘…너도 팔자가 있구나.’

이 미친 로봇아.

-다음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이번 연구가 끝나고 판단해야지. 월급 100만 원 받으면서 500만 원짜리 가계부를 쓸 순 없잖아.

‘그래, 그뤠잇이다. 네 마음대로 해라.’

프로비던스의 말대로 김치용은 A급이 나왔다.

“훌륭하다.”

그러자 임상험이 직접 다가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A급은 흔치 않았다.

주변을 프로비던스로 둘러봐도 열에 하나도 없었다.

가장 흔한 건 B-급과 C+.

“다음.”

지겨운 표정으로 의무실 병장이 출장 업무를 나와 있었다.

세주도 업소 냉장고를 꼭 닮은 바디 스캐너 안으로 들어갔다.

꼭 관에 갇힌 꼴이었다.

문이 닫히자 순간 어둠에 감싸였다가.

곧 푸른빛이 나오더니 머리부터 훑는다.

지이잉.

소음이 들리며 한 줄기 빛이 프로비던스에 닿더니 멈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대로 빛이 세주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형, 원하는 등급 있어?

‘뭐?’

-방식이 조잡해서 내 마음대로 조정해도 되거든.

‘필요 없어.’

C+라니 참 훌륭한 수치다.

본래 군대에서는 중간이 딱 좋으니까.

“D급.”

응? 뭐라고?

등급을 알리는 소리에 악마 소위가 달려왔다.

뭐냐, 저 기쁨에 찬 얼굴은.

“D급? 폐급 인증이냐?”

이 미친놈은 무슨 악감정이냐.

‘브로, 내가 왜 D급이냐?’

-아, 이거 그 외계인의 피 적합도도 판단하네. 형은 몸에 그 피가 없으니까. 등급 판단이 안 되는 거지.

임상헌 중령이 놀란 눈으로 세주를 바라봤다.

기계가 잘못된 걸 안 건가?

“처음이다. D급은.”

그리고는 관심을 접는다.

“다음.”

“내 머리에 돌을 던진 건 잊지 않고 있다.”

웃으며 악마 소위가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에이, 등급이 뭐가 중요합니까?”

치용이 넉넉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인은 높은 등급이다 이거냐?

그렇게 등급 측정이 끝나고, 모두 교육장으로 다시 모였다.

“앞으로 훈련에 열외는 없다.”

악마 소위가 단상 위에서 말했다.

“훈련받아봐서 알지? 혼자서 띵까띵까 놀다가 전장에 가면 죽는 거? 이제부터는.”

악마 소위가 말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그의 뒤로 큰 화면이 펼쳐진다.

“병과 훈련을 받는다. 병과는 총 넷.”

프로젝터의 빛이 장면이 되어 변한다.

첫 번째.

긴 칼을 등에 멘 모습의 병사다.

“척후.”

두 번째.

바주카포 같은 걸 어깨에 걸친 병사가 보였다.

“척탄.”

세 번째.

위장포를 뒤집어쓴 긴 총신을 쥔 병사.

“저격.”

마지막.

왼 팔뚝에 네모난 상자가 붙어 있는 병사다.

상자의 겉에 붉은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의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척후, 척탄, 저격, 의무.

각각의 업무도 자연스레 머리에 박혔다.

그렇다면 선택은?

세주만 궁금한 게 아니었다.

주변에서 치용을 제외한 다들 궁금한 눈치다.

치용은 척후를 보더니.

“마음에 드는데.”

야, 이 미친놈아.

칼 들고 설치다 골로 가게 생겼는데 뭐가 마음에 든다는 거냐?

“남자는 역시 칼입니다.”

세주와 눈이 마주치자 치용이 말했다.

아닌데. 저격이야말로 남자의 병관데.

멀리서 총만 쏘며 괴물과 맞부딪칠 일 없는 병과, 얼마나 좋냐?

*

네 개의 병과에 관한 기본 훈련은 전부 받아야 했다.

각자 훈련 과정을 거친 후, 특기에 따라 나뉜다.

그게 기본이었다.

그렇게 받은 척후 훈련.

악마 소위가 앞에서 웃고 있다.

“척후병 담당 교관은 나다. 다들 척후해라. 재밌다.”

퍽이나 재밌겠다.

그리고 시작된 훈련.

아니, 교육이다.

넓은 연무장 가운데서 그는 흰 칠판을 가져왔다.

그리고 보드마카로 열심히 적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척후는 근접해서 적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며.”

저런 개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할 줄은 몰랐다.

가까이 가면 그냥 순삭이라 사격 훈련도 뒤로 달리면서 하는데?

“일반적으로 가장 선두에서 적을 맞이한다. 주요 임무는 적들의 돌격을 저지, 그리고 필요시 배후를 쳐서 적군의 숫자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아이언맨 슈트라도 주는 걸까?’

-잘도 주겠다.

그래. 그럼 척후는 단체 자살 특공대가 되는 거다.

“전부 죽으라고 하는 것 같지?”

네. 그렇습니다!

악마 소위의 말에 대답하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아닙니까?”

인준이 손을 들었다.

“아냐.”

악마 소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척후는 아주 특별하다. 재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해.”

재능이 없었으면 좋겠다.

“단점은 말 안 해도 다들 알겠지?”

극단적인 자살 병과다.

단점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장점은 연봉이 가장 높다.”

죽으면 돈이 다 무슨 소용일까.

“그리고 생존율이 가장 높다.”

그의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세주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궁금하기는 그도 매한가지다.

“누구보다 빠르고, 강한 이들이 모인 곳 그게 바로 척후다. 유일하게 레이퍼한테서 뛰어서 도망칠 수 있는 병과다.”

…그게 장점이냐?

그럼 칼은 왜 들고 있는 거냐?

“그리고 몸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말과 함께 악마 소위가 품에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한쪽 팔을 걷고 푹 찔렀다.

“음.”

누군가 신음을 흘렸다.

살을 뚫고 들어가야 할 칼날이 피부에 맞고 튕겨졌다.

-에너지 감지. 확인 요망.

프로비던스가 반응했다.

‘확인해.’

-에너지 소모 150. 승인해줘.

‘많이도 쓴다. 해.’

필요하지 않은 일이면 요청도 안 했을 거다.

위잉.

푸른빛이 악마 소위 팔을 훑었다.

-특이한 방식이네.

‘뭔데?’

-커버링 방식을 피부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하는 거야. 효율성이 최악인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마 소위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게 보인다.

커버링을 해 본 세주는 저 감각을 잘 알았다.

전력 질주로 마라톤 코스를 돈 기분이다.

몸 안의 체력이란 체력은 몽땅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커버링을 무리하게 쓰면 주저앉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술 배우고 싶지 않나?”

악마 소위가 나름 매력적인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배울 필요 없다.

하지만 치용은 아니었다.

“난 척후한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상태.

말해도 듣지도 않을뿐더러, 설득할 생각도 없다.

“화이팅.”

대신 응원을 날려줬다.

“형님도 하시죠. 역시 남자라면.”

“난 괜찮아.”

세주는 얌전히 고사했다.

‘그나저나 역시 외계인한테 얌전히 당하고 있지는 않네.’

-인류는 바보가 아니니까.

병과를 나누고 합리적인 전투방식을 연구한다.

외계인을 상대로 잠자코 맞는 역할은 아닌 셈이다.

다음은 의무였다.

의무대에 있던 병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강당에 모이기에 심폐소생술이라도 연습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예상외였다.

“지금 보는 건, 나노킷 이라는 겁니다.”

붉은 십자가가 떡하니 박힌 상자를 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상자 밑면을 들며 말했다.

밑면에 네 개의 긴 철로 만든 다리가 보였다.

“팔에 착용할 수 있으며.”

철컥.

말과 함께 실제로 팔에 찬다.

“상처를 치유하는 물건이고, 작동 원리는 단순합니다. 감으로 합니다.”

그러자 나노킷 앞쪽에 붉은 광선이 보인다.

“자, 상처가 나면.”

서걱.

무식한 놈이 오른팔을 커터칼로 긋는다.

“치료합니다.”

붉은 광선에 그 부분을 쏘이자.

“설명 끝. 어차피 다룰 사람은 다루고 못 다루는 사람은 평생 못 다룹니다. 한 명씩 나와서 나노킷 사용해봅니다.”

앞에는 다섯 개의 나노킷이 있었다.

쓸 수 있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이 나뉘었다.

세주는 나노킷을 잡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에너지 쓰는 거네.’

커버링이랑 비슷한 요령이 필요한 물건이었다.

-감 좋고.

프로비던스의 응원을 받으며 간단하게 시동하자.

위이잉.

하고 붉은빛이 앞으로 방사형으로 퍼졌다.

이제까지 그 누구보다 밝고 강렬한 빛이었다.

모두가 놀라서 세주를 주시했다.

곧 나노킷 작동을 멈췄다.

터벅터벅.

놀란 눈으로 의무대 병장이 다가왔다.

그는 세주를 한 번 보고 나노킷을 한 번 보더니, 말했다.

“…불량인가?”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사람에 대해 믿음이 없냐?

“불량은 아니네. 와, 훈련병 재주 좋습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지만 세주는 전혀 춤출 기분이 아니었다.

감탄성이 아주 기계적인 놈이다.

의무 훈련은 짧았다.

나노킷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로 금세 갈렸다.

“이동합니다.”

3소대가 빠지자, 그 뒤로 다른 소대가 빈자리를 메꾼다.

다음은 저격이었다.

싸가지 일병이 그 자리에 있었다.

산 중턱까지 올라온 그들은 앞이 탁 트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떨어지면 죽을 수 있습니다. 주의합니다.”

싸가지 일병이 주의를 줬다.

밑은 낭떠러지, 앞은 트인 창공이 보인다.

“척후, 의무를 봐서 알겠지만 병과 적합 판단은 단순합니다. 반대쪽 표지 보이는 훈련병은 조교의 오른편에 섭니다.”

그의 말에 다들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표적이 어디 있다는 거냐?’

-저기.

프로비던스의 빛이 한쪽을 가리킨다.

눈을 가늘게 떴다.

반듯한 네모난 표적지다.

정말 간신히 보인다.

이 정도 거리면 맞추는 게 문제가 아니라 보기도 어렵다.

“2주간의 병과 적응 훈련 후 테스트 통해서 병과를 정합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정보였다.

귀를 쫑긋 세웠다.

그가 자신의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리고 저격 테스트는 방금 봤던 표적지를 맞추는 겁니다.”

다들 억 소리가 나올 법했다.

그렇게 우르르 산 중턱을 내려와 이번에는 1시간 30분을 걸었다.

수류탄 투척 교장에 다다르자, 2소대 번개콩 조교가 보였다.

“되게 싫은 놈들이 많은 소대네.”

우르르 몰린 훈련병을 보고 놈이 입을 연다.

“척탄은.”

오와 열 따위는 무시한 소대원을 둘러 본 그가 말을 잇는다.

“척후, 의무, 저격에서 아무 특기도 발견하지 못한 놈들이 모인다. 덕분에 아주 살벌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번개콩 조교는 가까이에서 처음 봤는데.

-이 친구도 좀 맛이 간 것 같은데.

그렇다. 저 자식도 정상은 아닌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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