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9화 (19/206)

#  19

19. 이해 불가, 계산 오류

-기본적인 틀은 현상재생에 가까울 거야. 한 번에 100씩 총 열 번. 형은 나랑 대련하면서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콜.’

프로비던스를 때릴 수 있다니, 기회다.

더구나 이 작은 기생 로봇이 추천하는 건 항상 도움이 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추천도 하지 않는다.

흥미 없는 척했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이었을 거다.

-좋아. 그럼 승인 떨어졌고, 어떻게 지금 한 번?

‘레츠 고, 브로. 고통이 어떤 건지 깨달을 차례야.’

-접수. 승인 완료.

말과 함께 오른쪽 어깨에 놓인 프로비던스가 푸른빛을 뿜는다.

기본적으로 현상재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무실 뒤편으로 세주와 꼭 닮은 남자가 나타났다.

“야, 왜 나냐?”

-현재 변형할 수 있는 형태가 이 몰골뿐이야.

“뭐? 몰골? 하여간 이 싸가지 없는 놈. 오늘이다. 궁둥이 맞고 울면서 ‘형님 살려 주세요.’ 할 날이.”

-후회할 말을 하시네.

레이퍼를 현상 재생한 덕에 넘은 수많은 사선.

그건 세주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어떤 외계 괴물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패기다.

탁!

바닥을 박차고 턱을 당기고 달린다.

그리고 왼 주먹을 뻗는다.

슉.

깔끔한 잽이다. 맞으면 바로 스트레이트.

흔들리는 사이 훅으로 자세를 무너뜨린다.

마무리는 니킥이다.

완벽한 시나리오를 그렸다.

휘릭.

그런데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주먹을 피했다.

급하게 오른쪽 주먹을 뻗었지만, 머리를 젖히며 그것도 피한다.

‘제길.’

품에 프로비던스가 들어온다.

-형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 커버링이야.

웅.

그의 손이 푸르게 빛나는 게 보였다.

펑!

가슴팍에서 폭음이 터졌다.

동시에 발밑이 허전했다.

몸이 공중에 뜬 채 뒤로 훨훨 날아간다.

날아가는 그에게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말했지? 3초 컷이라고.

쿵.

“컥!”

숨이 턱 막히고, 가슴뼈가 쪼개진 것 같았다.

“하악, 하악.”

낙법을 쓸 엄두도 못 내고 떨어졌다.

등과 엉덩이가 시큰거렸다.

방금 프로비던스가 한 게 뭔지는 모른다.

그저 가슴에 손을 갖다 댔을 뿐인데, 뒤로 몸이 날아갔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러면서도 세주는 손을 들었다.

간신히 든 손이 프로비던스에게 향했다.

왼손 중지였다.

-하여간 곧 죽어도 덤벼요.

그걸 보고 세주의 얼굴을 한 프로비던스가 웃는다.

곧 호흡을 바로잡은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해.”

-그래. 난 형의 그런 도전정신이 좋더라.

프로비던스가 웃는 얼굴이 자신과 똑같을 게 분명한데.

심각하게 재수 없는 웃음이었다.

*

“우웩!”

아침부터 오바이트를 한 세주의 등을 유진이 두드렸다.

“괜찮습니까?”

세주가 손을 흔들었다.

변기에서 나와 세면대 앞에 섰다.

퀭한 눈이 보였다.

옷을 벗으면 전신이 멍투성이다.

레이퍼 현상재생은 홀로그램일 뿐이었다.

실전과 같은 감각으로 싸우도록 프로비던스가 순간순간 몸에 자극을 줬지만, 부상은 없다.

정신력이 마모될 뿐이지.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걷는 것만으로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도 배울 가치가 있어.

‘오냐. 꼭 알차게 배우마.’

-형, 레이퍼랑 근거리에서 싸워 봤잖아.

‘군용 대검 한 자루로 잡았지.’

-그건 이긴 게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 한 거야. 동반자살이라고 해야 옳지.

그래. 프로비던스가 손수 설명했었다.

팔 하나 남고 죽인 거라고.

-그런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하자. 응?

얄밉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이렇게 잘 놀릴 수 있을까?

한 대만 때리고 싶다고 그렇게 간절히 빌었고, 그 기회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그 한 대를 때리기가 이렇게도 어렵다.

“내가 꼭 배우고야 만다.”

세면대로 보고 혼잣말을 하며 다짐했다.

-커버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짐하는 와중에도 프로비던스는 설명에 여념이 없었다.

-커버링은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해서 몸에 두르는 기술, 만일 이게 가능했다면 형은 상처 하나 없이 놈을 죽일 수도 있었을 거야.

기술을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익혀야 하는지도 설명한다.

좋은 선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청출어람에서 꼭 한 대 때려주마.’

-3초 컷 당하신 분이 꿈도 크네.

프로비던스가 비웃었다.

작은 비행 로봇의 렌즈가 앞에 홀로그램을 만든다.

반투명한 소년의 모습이 나타나 배를 잡고 화장실 바닥을 굴렀다.

더도 말고 딱 한 대, 정말 간절히 바랐다.

아침 체력 단련 후 외계 괴물에 대한 교육.

그리고 오후 전술 훈련.

저녁 식사 후 개인 트레이닝 시간.

하루가 훅하고 지나갔다.

“괜찮은 겁니까?”

유진이 물었다.

“괜찮아.”

고작 3일 만에 얼굴색이 블루베리만큼이나 시커메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주십시오.”

세주가 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제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절 도와주셨으….”

턱.

세주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는 짓이 귀여웠다.

“마음만 잘 받으마.”

치용과 인준이 평소와 같이 서로를 향해 굿나잇 인사를 건넸다.

“자다 뒈져라.”

“그 멍청한 머리가 내일도 붙어있길.”

참 정다운 녀석들이다.

다시 밤이 오고, 모두 잠든 시간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로써 세 번째.

두 번이나 프로비던스를 만나서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너무 마음이 급한 것 같은데? 자주 맞는다고 되는 거 아냐.

‘나오기나 하지?’

내무실 뒤편, 이제는 개인 연무장쯤으로 취급받는 곳이다.

싸가지 일병이 불침번이 아니면 오는 사람도 없다.

-거, 에너지 아낄 줄 모르시네.

‘무슨 혓바닥이 이렇게 길어.’

세주가 요청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프로비던스다.

그가 다시 모습을 구현했다.

“내가 나를 때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긴 한데.”

-얼굴이라도 바꿔 줄까? 체형은 안 되지만.

말과 동시에 얼굴이 치용으로 변한다.

“하지 마.”

레이퍼보다 더한 괴물을 보는 기분이다.

프로비던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정말 때려주고 싶게 웃는다.

“내 얼굴로 그렇게 웃을 수 있다니, 대단하네.”

-형, 가끔 이렇게 웃던데?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들어 와!”

퉁.

프로비던스는 주저하지 않고 바닥을 박찼다.

커버링은 몸 안에 품은 에너지를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테크룸에서 쓰는 에너지랑은 또 다른 힘이다.

애초에 느끼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앞으로 다섯 번.

프로비던스는 세주가 최소 다섯 번은 당해야 커버링을 익힐 수 있다고 계산했다.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손이 세주의 명치를 향해 나갔다.

세주가 손을 내밀어 그걸 막았다.

벌써 몇 번이나 실패한 짓이다.

덤프트럭에 맨몸으로 덤비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탁!

-음?

펑 또는 퍽, 내지는 세주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야 했다.

하지만 프로비던스의 계산 밖의 상황이 일어났다.

“잡았다.”

푸른빛.

세주의 양손이 빛나고 있었다.

잡은 손을 당기자, 프로비던스의 몸이 앞으로 딸려 온다.

빡!

그리고 이마와 이마가 부딪친다.

“끅!”

정작 들이받은 세주가 이마를 붙잡고 물러났다.

프로비던스는 제자리에 멀뚱히 섰다.

-이해 불가, 계산 오류. 어떻게 한 거야?

“인간의 저력을 얕보지 마라. 우윽. 너 머리에 뭐 넣었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금세 혹이 올라왔다.

-모습은 이래도 기본적으로 티타늄 합금이거든.

“야, 그럼 맞아도 안 아픈 거 아냐?”

-난 통각이 없어. 당연하지.

프로비던스의 말에 화가 끓어오르다 금세 가라앉았다.

때려도 의미가 없다는 건 무척이나 아쉽지만.

이마를 문지르던 손을 내렸다.

푸른빛으로 물든 손이 보인다.

커버링이라 부르는 기술을 익혔다.

-어떻게 한 거야?

프로비던스가 다시 물었다.

“널 때리고 싶다고 간절히 신에게 빌었다.”

-…뭐?

“그걸 믿냐? 그냥 됐어. 몸 안에서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거, 그거 밖으로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 말과 함께 세주의 팔 한쪽이 푸른빛에 둘러싸인다.

“지금은 팔 한쪽만 간신히 감쌀 정도긴 한데.”

-인간들은 이럴 때 이렇게 말하곤 하지.

“뭐?”

-이거 실화냐?

“…넌 국어를 다시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말과 함께 세주가 커버링을 풀었다.

동시에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이거 엄청 피곤하네.”

-처음 성공한 거야?

“그래. 브로. 너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다.”

-낮 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해. 사용하면 할수록 용량이 늘어난다고 보면 돼. 그럼 다음 수업에 들어갈까?

“놀란 거 맞냐? 뭐 이렇게 페이스 회복이 빨라?”

-놀랄 만큼 놀랐으면 됐지 뭐. 자, 들어.

홀로그램으로 만든 군용 대검 두 자루가 나타났다.

프로비던스가 던진 대검을 받고 세주가 물었다.

“이번엔 뭔데?”

-커버링은 기본적으로 무기에 힘을 덧씌우는 기술이야.

위잉.

푸른빛이 이번엔 대검에 씌워진다.

-맞으면 아프다고 하고 안 끝난다.

두 번째 단계였다.

*

세주는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커버링을 훈련했다.

처음에는 빛을 만드는 과정이 몇 분이 걸렸고.

무기에 씌우기까지는 거의 30분이 걸렸다.

하지만 차츰차츰 시간이 줄었다.

오른손으로 온종일 커버링의 빛을 만들고 나면 팔을 들 수 없을 만큼 뻐근했다.

그래서 다음날은 왼팔로 했다.

뒤로 달리며 사격을 하는 훈련이 그 사이에 있었고.

수류탄은 멀리 던지는 것보다 정확한 곳에 던지는 훈련을 했다.

사격도 수류탄도 세주는 적당히 중간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지금은 프로비던스에게 배우는 것들로 정신없었다.

“신체 능력을 테스트합니다. 실시.”

신체 능력을 테스트한다길래.

예전처럼 팔굽혀 펴기 등 체력장을 상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치이익.

업소용 냉장고같이 생긴 물건에 사람이 하나씩 들어간다.

그럼.

“B급.”

이렇게 등급을 나눠준다.

저거 무슨 기준이냐.

-잠시만.

프로비던스가 휑하고 날아가 기계 옆에 잠시 붙어 있더니 돌아왔다.

-조악한 신체 능력 스캐너야. 근력과 순발력 정도를 테스트하는 거지.

‘조악하다는 건, 넌 쉽게 할 수 있단 거지?’

-근력과 순발력을 종합해서 등급을 매기는 정도니까, 형을 때려눕히는 것만큼이나 쉬워.

으득.

이 기계 새끼.

커버링을 깨달은 것만으로 놈을 이길 순 없었다.

프로비던스는 정말 무섭게 잘 싸웠다.

‘그럼 이 셋도 한 번 봐봐.’

프로비던스의 푸른 렌즈에서 빛이 나와 치용과 인준, 유진을 훑었다.

-근육 바보 A+급.

-대머리 B+.

-비리비리 B-.

‘응? 플러스, 마이너스는 없던데?’

-저 기계는 조악하다니까. 나랑 비교하면 곤란하지.

아, 네 잘나셨습니다.

그나저나 치용이 A+라고?

신은 공평하다.

그에게 뇌를 앗아간 대신 육체를 주셨으니.

‘그럼 나는?’

-형은 굳이 등급을 나누자면 C+급.

‘내가 제일 낮다고?’

솔직히 말하면 저 무식한 김치용도 1:1로 덤비면 눕힐 자신이 있었다.

-또 같은 내용을 말하는데, 저 기계는 조악해. 고작 가진 힘의 총합을 판단하는 것뿐. 출력량을 계산하지 못해.

‘같은 힘을 가졌어도 쓰는 방식은 내가 더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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