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 배알이 꼴리다 못해 내장이 배배배 꼬인다
결국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베스트로 해내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소리다.
“점심시간입니다. 형님.”
“가자.”
오전마다 행해지는 교육시간은 치용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는 졸았고, 따분해했으며.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끝나자마자 세주를 챙겨서 식당에 가는 게 그의 가장 큰 기쁨인지.
만면에 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보면 또 순박해 보이기도 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사채를 쓰다 만나서 웃는 치용을 봤다면 절대로 순박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겠지만.
현재로서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먹는 것뿐이었다.
와구와구.
“음식이랑 원수졌어?”
인준이 옆에서 말했다.
다른 훈련병들도 일반인에 비해 세 배 이상은 먹는다.
하지만 세주는 그보다 더 먹었다.
“질 수 없습니다. 형님.”
옆에서 치용이 그에 질세라 허리 요대를 풀고 먹는다.
야, 이 미친놈아. 누가 경쟁하재?
-에너지 수치 2.5 축적.
‘그게 어느 정도야?’
식사를 끝내고 잠깐의 휴식 시간에 물으니, 갑자기 눈앞이 까매진다.
그리고 어느새 프로비던스가 만든 공간이다.
세주는 편의상 이곳을 테크룸이라고 불렀다.
-에임 모드 확인해 봐.
세주가 손으로 보이는 모드를 보고 뒤로 당겼다.
테크룸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도 며칠이나 걸렸다.
스마트폰을 처음 만졌을 때만큼이나 재밌긴 했다.
당기면 오고 밀면 간다.
가고 싶은 것에 손바닥을 대면 이동한다.
당긴 에임 모드 옆에 이어진 선이 보였다.
선 끝에 물음표가 떠 있었다.
“이건 뭔데?”
-에임 모드에 따라오는 스킬.
스킬? 게임에 나오는 그거?
보통 평타보다 몇 배는 효율이 좋은 게 스킬이다.
꽤 많은 게임을 섭렵한 세주는 가슴이 뛰었다.
“좋아. 오픈해 봐.”
-자세히 봐.
그제야 물음표에 옆에 뜬 숫자가 보인다.
15,000.
“만 오천?”
영특한 두뇌가 단숨에 결론을 이끌어낸다.
“설마, 아니지?”
-형이 상상하는 그거야.
“야, 밥을 그렇게 처먹어도 겨우 2.5라며. 근데 만 오천?”
필요 에너지양이다.
저 말은 영원히 에임 모드 스킬은 개방하지 말란 말이나 다름없다.
-이게 끝이 아닌데 형?
붕붕.
세주 옆으로 빛이 번쩍이는 네모 칸들이 떠올랐다.
-우선 연구실, 기술실, 실험실은 필수로 개방해줘. 나도 일하고 싶다. 진심. 근데 형이 이걸 개방해줘야 나도 일을 할 거 아냐?
연구실 40,000.
기술실 70,000.
실험실 100,000.
아, 에임모드 스킬 개방은 양반이었구나.
여긴 개 쌍놈들이 즐비한 곳이다.
하루에 세 끼, 충당하는 에너지 7.5.
그것도 위장이 터질 때까지 먹는다는 가정이다.
거기에 프로비던스가 자신이 가동하기 위해 하루에 3의 에너지를 쓴다.
고로 하루에 남은 에너지는 4.5다.
에임 모드 개방에만 3333일이 필요하다.
“약 9년 뒤에 에임 모드 스킬 개방하겠네.”
쓸데없이 좋아진 머리가 단숨에 계산을 끝냈다.
-먹는 것 말고 에너지 충당하는 방법 좀 생각해 봐.
“…그건 네가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니냐? 양심 없는 세입자야?”
-락이 걸려 있다니까. 형이 잘하면 락도 풀리고 그러겠지.
“락은 무슨 락!”
소리를 꽥 지른 순간.
후웅!
하늘 위에서 거대한 철벽이 떨어졌다.
쿵!
“…놀라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보자, 락이라고 쓰인 거대한 철벽이 보인다.
그 밑에 부가 설명도.
[ROCK-잠김]
[아무나 열 수 없음. 노력 좀 합시다.]
“저 부연 설명은 네가 적었지?”
-아냐. 다 시스템에 내장된 거지.
개소리다.
세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진짜라니까.
“후, 좋아. 하여간 에너지가 무지막지하게 필요하다는 거네.”
-어어.
부웅.
다시 현실로 돌아온 세주는 창틀에 팔을 기대로 턱을 올렸다.
훈련을 위해 모여드는 이들이 보였다.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보던 세주가 프로비던스를 불렀다.
‘브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먹는 것이 곧 에너지다.
그리고 세주는 사람이기에 음식을 먹는다.
-뭔데?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사람이 아니다.
‘혹시 내가 전기나 구리 같은 걸 먹으면 네 에너지로 치환되는 거 아닐까?’
-….
‘그럴듯하지?’
-하아. 말이 안 나온다.
‘놀랐냐? 형이 이 정도야.’
구리는 그냥 씹어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전기는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기껏 머리가 좋아졌는데 왜 생각하는 건 여전히 똑같지?
‘뭐?’
-아, 형 병신이라고.
‘아니, 이 자식이. 그럴듯하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아무리 초인프로젝트로 인해 내장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힘도 세졌지만, 잘도 구리를 먹고 탈이 안 나겠다. 그리고 뭐 전기? 어떻게 먹을래? 전선을 씹어 먹을래? 감전돼서 플래시라도 되고 싶어?
잠깐 부끄러워져 세주는 쥐구멍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프로비던스에게서 숨을 곳은 없었다.
자신 앞에 사는 놈을 피할 방법은 없다.
‘…플래시 미드 봤냐? 재밌더라.’
-네. 말 돌리기 지렸고요.
‘그 말투 하지 마.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로지, 과학의 총아답게 말하라고.’
-다시 말을 돌리시는 당신의 화술에 없는 알을 ‘탁’ 치게 만드는군요.
‘그래. 개자식아. 내가 잘못했다.’
-알면 됐고.
세주는 툴툴대며 다음 훈련 장소를 위해 움직였다.
“오늘 훈련은 전술 훈련입니다. 4인 1조로 전우조 구성하라고 지시했는데, 아직 구성 안 된 인원 나옵니다.”
인준과 치용이 옆으로 붙었다.
애초에 바로 옆자리이기도 하고.
굳이 줄을 안 서도 옆에 붙어 다니는 놈들이다.
프로비던스만큼이나 찰거머리다.
솔직히 가진 거 없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나 싶지만.
생각해보니, 가진 게 있었다.
900일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이들 몸에 있는 시한폭탄.
외계인의 피를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그사이 조를 구성하지 못한 몇 명이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의외의 인물이 보였다.
다른 사람 챙기기 바쁜 분대장.
정유진이 앞에 서 있었다.
절뚝거리는 그를 보며 세주가 물었다.
“다쳤나?”
“옆 소대 새끼들 때문입니다.”
치용이 이를 갈았다.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곧바로 답이 나오니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일인데?”
“두드려 맞았습니다.”
야, 그게 설명이냐?
인준이 치용을 벌레 보듯 보고는 말했다.
“2소대 3분대장 짓이다. 하는 짓이 교묘해. 우리 분대장을 괴롭히는 모양이야. 예전에 알던 사람 같은데 자세한 건 몰라.”
“전우조는 왜 안 하는 건데?”
유진은 다른 훈련병들을 각별히 챙겼다.
저 정도면 인기가 꽤 있었을 텐데.
“협박. 그 2소대 3분대장이 저런 병신과 한 조가 되면 다 죽는다고 말하니까.”
배알이 꼴리다 못해 내장이 배배배 꼬인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
“넌 왜 보고도 놔뒀는데?”
“내 일 아니잖아.”
“싸가지 없는 새끼.”
세주의 물음에 인준이 답하고 치용이 피쳐링을 넣었다.
물론 인준을 향해서였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만큼 여기가 만만한 건 아니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짜증 난다.
“넌?”
세주가 치용을 향해 묻자.
그가 콧김을 푹푹 뿜었다.
“그 새끼가 자꾸 조교 뒤에 숨습니다! 치사한 새끼!”
그니까 넌 설명하는 스킬 좀 기르면 안 되겠니.
인준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부연설명을 했다.
“멧돼지처럼 돌진하다가 박민우 조교에게 로우킥 두 대.”
짧은 설명이었지만, 확 와 닿았다.
치용은 덤비다가 조교에게 제재를 당한 거다.
상대는 여우 같은 놈이었다.
보이지 않을 때 괴롭힌단 거지?
거기에 일진 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따를 시켜?
어이없는 새끼였다.
“치용이 넌 가만히 있어.”
분대장 돕다가 송장 치르겠다.
박민우에게 맞아 죽거나 총 맞아 죽는 치용을 보고 싶진 않다.
우울한 얼굴로 유진이 서 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전우조에 들어갔다.
그중 몇 명이 세주의 전우조에 오려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어쩔 생각이야?”
인준이 물었지만, 무시하고 세주가 유진을 가리켰다.
“이리와. 우리랑 같이 전우조 하자.”
“저는 괜찮습니다.”
이런 소심한 자식을 봤나.
그 와중에 남 생각을 하는 거냐?
그리고 박민우, 저 요령 좋은 놈이 이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왜 모른 척하는 거냐?
“이리 오라고.”
세주가 앞으로 척척 걸어 나갔다.
그대로 유진의 손목을 끌고 데려오자.
휘이이익!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2소대 쪽이었다.
몸이 퉁퉁하고 적당한 키에 얼굴이 네모난 바위를 닮은 놈이다.
피부도 구멍이 뻥뻥 뚫려서 현무암을 닮았다.
보자마자 저 새끼구나 싶었다.
눈에 장난기와 악의가 섞여 있다.
“오, 왕자님 등장.”
악의가 가득 찬 놀림이었다.
이 새끼 봐라.
“이 개새끼가!”
치용이 폭발했다.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탕!
아, 깜짝이야.
박민우가 허공에 총을 쐈다.
“죽고 싶은 사람 있으면 계속합니다.”
치용이 씩씩거리며 제자리에 섰다.
현무암 분대장이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치용을 가리켰다.
그걸 본 유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툭.
세주가 그의 머리를 쳤다.
“뭘?”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다랑 까 써. 그리고 누가 네 잘못이래?”
박민우의 눈이 유진을 스쳤지만.
그는 상관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전우조 훈련은 4인 1조로 이뤄집니다. 오늘은 기동훈련입니다.”
4인 1조로 대형을 유지해서 달리는 훈련이었다.
일정 거리를 유지해서 달리고, 손짓 그러니까 수화 신호를 익히는 과정이었다.
이제까지 훈련이 육체를 단련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철저하게 전술에 관련된 움직임이었다.
“상대는 몸집이 크고 숨지 않습니다. 지능은 낮으며, 빠릅니다. 발견 즉시 신호를 보내고 일제 사격을 합니다.”
박민우의 설명에 따라 탄창도 꽂지 않은 소총으로 한쪽을 보며 입을 탕탕탕 소리를 냈다.
“첫 번째 피격 시 상대가 반응하면 뒤로 물러나며 사격. 50m 이내 접근 전에 물리칩니다.”
단조로운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들 훈련에는 진지했다.
하긴 제 목숨 걸린 일이다.
현무암 분대장도 훈련 중에는 입을 다물고 훈련에 임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가 지기 전 훈련이 끝나면 다들 각자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각 소대 기간병이 돌아다니며 도와주기도 했다.
“제가 죽여 버리겠습니다.”
세주는 트레이닝에 앞서 흥분한 치용을 말려야 했다.
“가만히 있어.”
“그 새끼 하는 짓 보십쇼.”
우리에서 나온 사자 새끼를 달래는 꼴이다.
“참아.”
“왜 그래야 합니까?”
의리 하면 치용이라 했던가? 그는 분대장을 건드린 놈들에게 이를 드러냈다.
“한 대만 때리고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네?”
“놔두라고. 아주 음경 되게 만들어 줄 테니까.”
D를 먹은 이들은 시력이 회복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지만 버릇은 어디 가지 않는지.
인준이 미간에 손가락을 가져갔다가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왜 이러는 거야?”
“왜라니?”
“쓸데없는 일이라는 거다.”
유진이 옆에서 듣고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냥.”
“…뭐?”
“꼬우면 빠져.”
인준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아니, 나도 그 2소대 놈이 그리 마음에 든 건 아니니까.”
그래. 맞다.
이인준, 우리의 대머리 병사는 애초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를까.
신경을 썼다는 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다.
냉정한 척하지만 인준은 불같은 남자다.
치용과 매일 말싸움을 하는 것만 봐도 안다.
“야, 너 반말 하지 말라고.”
치용이 인준을 향해 말했다.
후, 이 미친 자식들 또 싸우려고 하네.
“여긴 군대고 훈련소에 우리는 동기다. 형님 성애자 새끼야.”
“하하. 그래. 그 2소대 놈 옆에 네 봉분 하나 더 세워줄게.”
치용이 어울리지 않는 고급 기술을 썼다.
그냥 죽인다 대신 봉분이란 단어를 택했다.
“자신 있으면 해보든가.”
에효,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래. 말리자. 말려.
“왜들 그러세요.”
세주가 나서기도 전이다.
유진이 그들 사이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