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3화 (13/206)

#  13

13. 내 머리가 이렇게 좋았나?

“닥쳐라. 넌.”

눈치를 보니 인준이 했던 욕이 뭔지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쇠귀에 경 읽기, 너 방금 금수 취급받았다고 이 친구야.

지능이 저 정도면 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상길이 같은 새끼.”

“뭐?”

“넌 상길이 놈을 닮았다. 재수 없는 새끼.”

“되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

“상길이 같은 놈.”

“그만둬라.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잖아.”

“상길.”

“하. 이 무식한 자식, 나도 그 자식을 알아야 욕이란 게 되는 거다.”

“마상길 형제 같은 놈.”

조악한 도발이었다.

“하지 마라. 무식한 양아치.”

“싫은데, 상길 같은 놈?”

불끈.

인준의 주먹이 쥐어지는 게 보였다.

하, 이런 거로도 싸움이 되냐?

대단하다. 대단해.

세주는 속으로 둘의 유치함에 갈채를 보내고 말렸다.

“제발 다른 데서 싸워줄래? 무릎이라도 꿇으리? 그럼 딴 데로 갈래?”

“아닙니다. 형님.”

무릎이란 소리에 치용이 진저리를 친다.

“장애물 코스가 끝났다.”

인준이 화제를 돌렸다.

세주도 알고 있다. 그가 외출을 다녀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대부분 병사들이 통과했다.

그리고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게 되는 중 하루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주말도 없이 행해지던 훈련 중 달콤한 휴식이었다.

그런데 그 황금 같은 휴식 시간에 세주 앞에서 재롱잔치를 피우는 둘이다.

“그래서?”

군화를 벗으며 세주가 말을 받았다.

옆에서 치용이 침상으로 올라와 앉았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몸에 근육이 전보다 배는 두꺼워 보였다.

이인준도 마찬가지고.

‘브로야. 내 몸은 왜 이러냐?’

-에너지.

에너지 드립은 진심 그만 듣고 싶었다.

“다음 훈련부터 4인 1조로 훈련이 진행된다. 그 전우조 같이 하고 싶다.”

“뭐?”

미안하다. 잠시 브로와 얘기를 나누느라 못 들었다.

“형님, 저도 같이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훈련부터 전우조가 나뉘는데, 나랑 같이하고 싶다고?”

좌 치용과 우 인준을 보며 세주는 양쪽으로 고개를 한 번씩 돌렸다.

“왜?”

당연한 물음에 치용이 말한다.

“이유가 무슨 필욥니까? 형님과 전 하나입니다.”

하지 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인상은 무슨 조선족 깡패도 줄 세워서 후드려 패게 생겨가지고.

“이유가 필요해? 네 옆이라면 살아남을 것 같아서.”

방금 막 악마 소위 머리에 돌을 던졌다가 걸려서 그 사람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으음.”

전우조라.

프로비던스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이제까지 외계생명체들과 싸운 건 프로비던스와 반세주가 아니라.

군인들이다.

‘필요할 거야.’

현재 상황과 앞으로 전투에 임해서 생존율을 높이고, 인류 멸망을 막으려면.

닥치는 대로 배우는 게 낫다.

“좋아.”

“…에? 좋다고 한 겁니까?”

치용이 되물었다.

네가 같이하자며.

“와,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거절은 무슨.”

세주는 둘에게 답하고 침상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 전우조는 넷이잖아?’

넷이 한 조다.

둘을 보니 나머지 한 명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나 상관없어.”

인준이 답했고.

“싸가지 없는 놈은 제가 알아서 쳐 내고, 싹수 있는 놈으로 하나 잡아 오겠습니다.

이게 치용의 답이었다.

새삼 세주는 이 둘을 데리고 함께 할 생각에 아찔했다.

‘내 업보다. 업보.’

애초에 치용을 구하고 인연을 맺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

-외계인 피로 정제한 약이 인간의 잠재력을 깨우는 거야. 그렇게 변한 신체를 단련하는 게 바로 이 훈련소의 목적이고.

아침부터 프로비던스가 떠들었다.

‘그래서?’

-형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이곳에서 배울 게 있을 거야.

‘당연한지. 내가 왕년에는 판단의 반세주라 불린 몸이다.’

온라인 세상에서 말이다.

-아, 그러세요?

비아냥거리는 프로비던스를 무시하고 아침 구보를 하러 나갔다.

말이 구보지 역시 지옥 행군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훈련병들 대부분이 이제 지옥에서 유황불로 몸을 지질 정도로 단련된 이들이라는 거다.

고작 몇 주 만에 이뤄진 일이다.

“후욱!”

호흡을 가다듬고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온 뒤였다.

“오늘부터는 정신 교육을 병행합니다.”

박민우가 3중대를 이끌고 움직였다.

과연 만기전역하고 재입대한 사람들답게.

오와 열 따위는 맞추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예비군만 되도 발맞추어 걷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게 대한민국 남자다.

거기에 누구도 그들에게 질서를 강요하지 않았다.

훈련소의 방침은 명확했다.

시키는 거 잘해라.

하기 싫어? 그럼 하지 말고 죽던가.

탈영하면 죽는다.

개겨도 죽는다.

초반에는 겁을 먹은 이들도 꽤 됐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거다.

어쨌든 훈련에 적당히 참여하고 생활에 충실하면 죽을 일은 없었다.

“반갑다. 제군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단상에 서서 생긋 웃었다.

악마 소위처럼 ‘나 변태야’ 같은 웃음은 아니었다.

싸가지 일병처럼 ‘너흰 병신’ 같은 웃음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기쁨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순수한 웃음이다.

나이는 50대 초반 정도?

희끗희끗한 머리와 가운이 잘 어울렸다.

“난 임상험 중령이다.”

어딘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보통 이곳에 있는 사람은 젊었다.

아무래도 전투를 위한 이들만 모인 것 같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몇 대 치면 뇌진탕 걸려서 쓰러질 것 같은 중년 남자가 나왔다.

“오늘 할 교육은 레이퍼에 대해서다. 기본소양 교육에서 봤겠지?”

번쩍.

프로젝터의 빛이 켜지고, 그를 투과해서 등 뒤로 화면이 나왔다.

“훈련병들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가장 많이 볼 놈들이고, 죽여야 할 놈들이지. 자, 그럼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뭘까?”

뻔한 말을 되묻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었다.

-저 자식도 재수가 없는 것 같아 형.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마음을 대변해줬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옆으로 비켜서고, 레이퍼에 대해 설명했다.

레이퍼, 악마 소위가 알까기라고 부르는 놈의 정식명칭이었다.

그리고 훈련소 첫날.

바로 옆에서 녹색 피를 뿜으며 죽은 녀석이 바로 스폰이라는 거였다.

레이퍼에게 당하면 등에서 촉수가 나와서 오바이트가 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게 바로 스폰이었다.

“놈들의 피부는 갑각류와 흡사하며, 근거리에서 쏘는 총알도 튕겨 낸다. 거기에 놈들의 갑각은 세 겹이다.”

학창 시절 노는 게 좋기도 했지만, 좋은 대학을 목표로 삼기도 했었다.

적당히 책상에 앉았고 공부도 했다.

하지만 무리는 무리였다.

세주는 그때 알았다.

자신은 천재도 영재도 아니라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내 머리가 이렇게 좋았나?’

단상에 앞에 선 재수뽕 중령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암기 어렵지 않아요. 그냥 듣고 곱씹으면 끝이에요.

‘이게 말이 돼?’

-돼.

‘이제야 내 숨겨진 재능이 나타난 거냐? 브로?’

-뭔 헛소리야. 형 초인프로젝트 끝냈잖아. 초인, 말 그대로 인간을 넘어서는 걸 목표로 삼는 거야. 두뇌도, 육체도.

‘아우, 시발. 대박.’

진짜다. 그저 교육을 받을 뿐인데.

모든 것이 머릿속에 박힌다.

그 감각에 희열이 차올랐다.

본래 천재였던 자들은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세주는 아니었다.

그는 평범했었다.

그리고 지금 평범을 넘어 비범이 되는 순간을 느끼며 오르가즘 이상의 감각을 느꼈다.

“어이, 거기. 무슨 상상하는 거야?”

재수뽕 중령이 손에든 레이저 포인트로 한 곳을 가리켰다.

세주가 눈이 부셔 손을 들어 가렸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건 화장실에서 혼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훈련병.”

“3456번 훈련병. 아닙니다.”

“그래. 아니겠지.”

풉.

주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새끼들아.

네가 갑자기 천재가 된 기분을 알겠냐? 앙?

-형, 포커페이스.

후. 다년간 단련된 포커페이스가 흔들리다니.

그만한 쾌감이었다.

화면을 다시 보자, 막 레이퍼가 스폰을 만드는 과정이 보였다.

주둥이에 나온 긴 혀가 인간의 항문을 파고든다.

‘시발, 하필 저런 장면에서 저런 말을 하고 지랄이냐.’

-그러게 타이밍 적절하네.

놀리는 프로비던스를 무시했다.

중령의 교육은 이어졌다.

이후, 세주는 자신의 머리가 고작 암기력만 좋아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 겹의 갑각은 로켓포도 막는다.

여덟 개의 다리 중 앞 네 개는 날이 선 칼날이고.

뒤 네 개의 다리는 뭉툭한 망치였다.

두 개의 다리만 남아도 놈들의 속도는 줄지 않는다.

거기에 놈들의 속도는 어찌할까?

100m를 9초 이내로 달리는 군바리볼트가 우스울 정도다.

놈들의 속도는 120kph.

치타와 버금가는 속도다.

100m를 9초 이내에 달린다 해도 잘해야 40kph나 나올까 싶다.

달리기로는 때려 죽어도 이길 수가 없다.

토끼와 거북이와 같이 경주 중 얌전하게 낮잠이라도 자주지 않는 이상은!

‘약점은 복부 밑 혹.’

악마 소위가 소개팅을 시켜줬을 때 수줍게 돌멩이로 맞춘 부분이다.

‘앞의 네 다리는 갑각이 없다.’

정보가 머릿속을 휘젓는다.

정리되고 차곡차곡 쌓여 분석되고, 결론을 도출한다.

레이퍼의 약점을 터트리면 갑각의 경도가 낮아진다.

그렇다는 건.

‘약점을 노리고 가격, 그 이후 죽이는 게 첫 번째.’

‘두 번째 방법, 애초에 강력한 화력을 집중해서 죽이는 것.’

‘세 번째, 몸 내부에 폭발을 일으키는 것.’

“놈들의 약점을 노릴 수 있다면 노려라. 갑각의 경도가 낮아지면 죽일 수 있다.”

“다수의 인원이 모이며 화력을 집중해서 죽인다.”

“투척에 자신 있는 병사는 놈의 주둥이에 수류탄을 넣는 걸 추천하지.”

재수뽕 중령이 세주와 같은 결론을 냈다.

‘브로.’

-왜?

‘나는 나 자신이 무섭다. 난 천재였나 봐.’

-초인프로젝트 덕분이라니까? 치매 오셨어요?

‘아아, 난 천재였어. 다 죽었어. 전역하면 수능 다시 본다.’

부모님의 소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대 법대 아들과 지방대 나와 중소기업 취직한 아들은 다르지 않겠는가?

-역대 급으로 멋지겠네. 의무 복무가 최소 7년이니까. 아무리 빨리 나가도 마흔이신데. 축하드려요. 마흔 살에 새내기가 되신걸.

‘넌 좀 닥치고 있어 봐. 형 지금 감동 중이잖아.’

-아아, 네네. 그러시든가.

*

-4656 곱하기 4567.

‘21,263,952.’

여덟 자리 곱셈이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천재의 위용이다.

‘뭐, 더 없냐? 브로? 다른 기능도 오픈하자.’

-말했잖아. 형. 다른 기능을 개방하는 것도 시간이 걸려. 그리고 현재 진행하는 것도 있고.

눈앞에 홀로그램 문자가 떠올랐다.

[외계인의 피 연구]

[남은 기간 48일]

-이거 하고 있잖아.

‘멀티 테스킹 안 되냐? 왜 꼭 한 번에 하나씩 해야 하냐?’

-그게 내 탓이야? 다시 말해줘? 누구의 부족함이라고?

하여간 잘되면 제 탓, 안 되면 남 탓.

누가 만든 건지 몰라도 성격을 구성하다가 꾸벅꾸벅 존 게 틀림없다.

-에너지가 부족해.

‘근데 브로 나한테 늦었다고 했었잖아. 그리고 멸망을 막으라고 했고.’

-그런데?

‘우리 너무 여유 있는 거 아니냐?’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다.

여기서 훈련만 받다가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는 누구를 탓할까?

-설마 멸망을 막으라고 형한테 혼자서 레이퍼 군대랑 싸우라고 할까? 레이퍼 1개 부대 숫자 배웠잖아.

120마리가 1개 부대다.

정신교육에서 임상험 중령이 말해준 내용이었다.

-120:1의 싸움을 하시게?

‘아니, 싫은데.’

그건 개죽음이다.

-결론은 하나야. 현재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다 잘못되면?’

-최선을 다하고 잘못되면 하늘에 대고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깔끔하게 가는 거지.

‘어딜 가?’

-평소에 착한 일 좀 많이 해 둬. 천국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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