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12. 에임 모드
7시 58분.
위병들이 미복귀자 신고를 위해 무전기를 들 때였다.
“복귀 신고함다!”
어두운 곳 저편에서 누군가 외치며 달려왔다.
그들은 배운 대로 총구를 들어 앞을 겨눴다.
“멈춰, 사진.”
그리고 암구호를 묻는다.
“헥헥.”
달려온 남자가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에도 위병은 재차 물었다.
“사진.”
“카메라.”
“통과.”
세주는 숨을 헐떡이며 위병소를 통과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상황실로 향했다.
일단 복귀 보고를 제대로 마치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턱.
상황실로 들어서자마자 이마 정중앙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묵직한 총구가 이마를 밀었다.
“외출 잘 보냈습니까?”
동시에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각진 모자를 쓴 박민우였다.
이 자식은 툭하면 총을 꺼내는 게 특기인가보다.
“나쁘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모자 뒤에 숨은 눈을 바라보며 답하자.
철컥.
동시에 노리쇠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간 읊어봅니다.”
피식.
그 사이에도 자신을 비웃어주는 싸가지 일병과 ‘나 좀 재밌게 해줘’ 라는 얼굴의 악마 소위가 보인다.
“08시 06분입니다.”
“복귀 시간 읊습니다.”
“08시 00분입니다.”
“몇 분 지났습니까?”
“06분 지났습니다.”
“탈영은 사형입니다.”
박민우의 기세는 진짜였다.
난 지금 널 쏠 거다.
그 한 줄의 말을 전심전력, 행동으로 보여준다.
-형?
‘괜찮아. 안 쫄았다.’
나이 서른셋에 몸에 기생 오버테크놀로지 변태를 기르며, 재입대까지 한 상태다.
겨우 이런 일에 겁먹을 소냐.
거기에 오늘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온 참이다.
‘적당히 하고 치워 줘라.’
“시간, 지킵니다.”
“네.”
박민우가 총구를 치웠다.
악마 소위가 뒤에서 지켜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무실로 돌아온 세주는 속으로 말했다.
‘어때? 형 좀 멋있었지?’
-그 상황에서 만일 상대가 방아쇠를 당겼으면 사망 확률 99.99%인 건 알지?
‘에이, 설마. 쐈으려고.’
이래봬도 눈치 100단이다.
딱 보니까 안 쏠 각이었다.
-상병 박민우, 작천 참가 총 9회. 인간 및 외계인 합산 살해 수 12회.
‘응?’
-12명 중 한 명이 되지 않은 걸 축하해. 아 그중 둘은 훈련소에서 죽었네. 방금처럼 하극상에 가까운 짓을 해서 죽은 건 한 명뿐이네. 괜찮은데?
잠깐, 스톱.
세주는 내무실에 들어와 멀뚱히 문을 막고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니미, 진짜 죽을 뻔했잖아.’
그것도 오늘 두 번째다.
“형님? 뭐하십니까?”
지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참이다.
“외출은 즐거우셨습니까?”
김치용이 웃으며 그를 반겼다.
“그냥 그랬어.”
몸 안에 이상한 기생 로봇이 있어서 마음대로 뭘 못 해서 엄청 서운하거든.
아니, 생각해보니 PC방도 만화방도 못 들렸다.
‘나 뭐 한 거냐?’
눈앞에 홀로그램 문자가 보였다
[초인프로젝트 LV0, 튜토리얼 완료.]
‘그래 이걸 했지.’
갑자기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아, 지랄 맞네.”
*
자려고 누운 세주의 귀로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초인프로젝트에 맞춰 모드 개방 동의하지?
‘동의 안 하면 안 할 거냐?’
-기본적으로 형의 동의와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스템이야.
구라치고 있네.
‘너 그러다 손모가지 날아간다.’
-난 손목 없는데?
누가 몰라서 그러냐?
-모드 개방을 위해 시뮬레이션 모드에 돌입한다.
‘어, 안 해. 너 또 나 이상한데 던지고 살리네 마네 그거 하려고 그러지?’
-아니야.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할게.
‘네가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
-그만큼 믿어달란 말이지.
‘오냐.’
어쨌든 세주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우웅!
정신이 먼 곳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주변이 변해있었다.
“실탄 사격장?”
말 그대로 한 번 놀러 가봤던 곳이다.
당시 여자 친구가 실총을 쏴보고 싶다고 해서 갔던 곳.
-형의 특기에 따라 모드 열었어. 확인 요망해.
세주는 자신 머리 옆에 떠다니는 부유물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비행선 같이 날개가 있고, 그 가운데 동그란 원이 보인다.
푸른빛이 번쩍이는 원을 감싸는 두꺼운 쇳덩이에 밑으로 삐죽 솟은 두 개의 구조물이 보인다.
크기는 고작 큰 수박 정도다.
그게 동동 떠서 세주와 눈을 맞춘다.
“그거 눈이냐?”
-사물을 확인하는 렌즈라는 점에서 인간의 눈과 흡사한 활동을 하지.
“이상하게도 생겼네.”
-본래 내 모습이야. 현실에 구현하기에 형이 가진 생체에너지가 너무 부족해서 차마 구현은 불가능하지만.
“이 와중에 내 탓이냐?”
-팩트일 뿐.
그래, 네 똥이 참 굵기도 하구나.
“모드 개방은 어떻게 하는 건데?”
-시스템 창.
말과 함께 앞에 넓은 홀로그램이 펼쳐진다.
크기가 너무 커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우주의 은하수가 떠오른다.
감탄과 함께 세주가 말했다.
“어쩌라고?”
-기동 가능한 메뉴 오픈.
우우웅.
동시에 그의 앞에 메뉴가 떴다.
[인벤토리]
[모드개방]
둥둥 떠다니는 홀로그램 문자는 누르라는 듯 볼록 올라와 있다.
인벤토리에 손을 올리자 훅하고 주변 풍광이 변한다.
그리고 밝은 형광등이 있는 사방이 막힌 작은 공간이 보인다.
거기에 녹색 체액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저거구나.”
외계인의 피.
-연구가 필요해.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그럼 해.”
-에너지.
“아주 내 피를 쪽쪽 빨아가라.”
-피만 빨아서 된다면 진즉에 했지.
“아우, 이 무서운 놈.”
인벤토리에서 뒷걸음질하자,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세주가 모드 개방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잉.
이전에 한 번 느꼈던 열기다.
뇌를 태울 듯 열기가 머릿속에 치솟는다.
“나 죽으면 너 죽는다.”
-이 와중에 협박이라니, 형의 배짱에 내 친히 감탄의 박수를 치지.
프로비던스의 눈에서 빛이 나와 소년의 영상을 만들어 다시 손뼉을 쳤다.
‘내 언젠가 저놈 대가리 한 대 깐다.’
열기는 잠시 세주를 괴롭히더니 사라졌다.
-첫 번째 모드, 에임.
프로비던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붉은 점이 나타났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도 따라다니는 신비한 붉은 점이다.
“야, 이게 끝이야?”
-응.
“성의 없는 능력이란 생각이 들지 않냐?”
-에너지.
“에너지 타령 좀 그만해 이 에너지 뱀파이어야.”
-팩트.
팩트란 소리도 더 듣고 싶지 않다.
‘에임 모드라, 조준에 관련된 것 같은데.’
세주는 아무렇게나 놓인 권총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붉은 점을 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퍽!
꽤 떨어진 곳에 사격지 정중앙에 구멍이 뚫렸다.
“헐.”
세주가 놀라서 감탄을 터트렸다.
-에임 모드, 우습게 보지 말라고. 내가 가진 모드 중 수위를 다투는 능력이니까.
“어어, 인정.”
붉은 점이 세주의 뜻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점을 향해서 총을 쏘면 적중이다.
‘죽이는데.’
게임으로 치자면 에임핵이나 다름없었다.
*
-모드 온, 에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앞에 붉은 점이 떠오른다.
세주는 돌을 집었다.
겨우 손가락 두 마디를 합친 정도의 자갈.
야구 따윈 배운 적도 없지만 그럴듯하게 와인드업을 했다.
하긴 폼 따위는 상관없다.
설사 강백호의 프리드로우 폼으로 던져도 맞출 거다.
붉은 점이 초점에 맞고 뒤로 뻗은 어깨를 앞으로 던진다.
휙, 쌕!
매섭게 돌멩이가 날아갔다.
이전의 세주도 맞추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지겨울 정도로 흔한 비유지만, 이전이 그냥 커피였다면.
‘지금은 TOP다.’
노린 곳은 누군가의 머리다.
맞는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저 아프고, 기분이 더럽겠지.
‘맞아라!’
휘릭.
하지만 상대는 고개를 트는 것만으로 돌을 피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능력을 위한 실험이었으니까.
‘브로. 100% 다 맞추는 건 아니네?’
-상대의 반응속도가 뛰어나네. 형, 저 인간한테는 안 덤비는 게 좋겠다.
‘왜?’
-그냥 봐도 대충 각 나오잖아. 덤비면 죽어. 작살나게 맞고 더 맞을걸? 여기 본다.
그 사이 돌을 피한 남자, 일명 악마 소위가 세주가 있는 곳을 훑듯이 쳐다본다.
급하게 고개를 틀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다.
내무실로 가는 가파른 계단에 발을 올리고 내빼는 중이었다.
“폐급 훈련병?”
금세 따라잡혔다.
악마 소위가 싱글 생글 웃는다.
보기만 해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3456번 훈련병.”
“너지?”
“잘 못 들었습니다?”
이제 슬슬 군대 말투도 완벽하게 입에 익기 시작했다.
“너잖아.”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리발 수준이 A급 병사네. 폐급.”
그 폐급이란 소리 좀 그만해주지? 장애물 코스 1등으로 외출권을 따내는 거 못 봤나?
“좋아. 좋아. 증거 없다. 이거지. 좋다고, 좋아.”
“필승.”
“좋다고, 좋아.”
뭐가 좋다는 건지, 악마 소위가 휘적휘적 걸어서 세주를 뒤로하고 갔다.
경례를 위해 올렸던 팔을 내린 세주도 뒤로 돌아서 갈 길을 갔다.
-왜 하필 저 사람한테 그랬어?
‘너만큼이나 한 대 꼭 때려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치사하게 멀리서 돌을 던진다?
‘그건 너도 동의했잖아. 모드를 개방하고 익히고 훈련하는 건 기본이라고.’
-그렇다고 감당 못 할 야수를 건드려서 먹잇감이 되라고는 안 했지. 시체는 화장? 매장?
‘닥쳐 줄래?’
“음.”
그사이 켜 둔 모드 덕에 다시 뇌가 타오르는 기분이 느껴졌다.
덩달아 양쪽 눈도 뜨거워져 금세 눈물이 고였다.
‘모드 오프.’
뜨거운 냄비에 찬물을 부은 듯 머리에서 김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8차 테스트. 가동시간 11분 22초.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제자리에서 가동하면 10분 이상.
활동을 시작하면 4분 내외.
프로비던스의 말을 빌리자면 에너지의 부족이란다.
‘그 에너지라는 건 어떻게 찾는 거냐?’
그래서 이렇게 묻지만.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많이 먹는 수밖에 없지.
‘다른 방법은 없어?’
-락이 걸려 있어.
‘무슨 락? 락 앤 락?’
-아우, 시발, 아재 개그.
아, 우리 프로비던스. 욕도 참 찰지게 한다.
‘욕도 배우고, 참 습득이 빨라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놈이.’
-언어는 대화하는 사람을 닮는 법이다.
또 내 탓이냐?
‘하여간 그 락은 어떻게 푸는데?’
-나도 몰라. 이 모든 건 전부 형의 부족함 때문이니까.
또, 또, 또, 남 탓이다.
‘그래 네 똥 졸라게 굵다니까.’
-난 생식 기능이 없어.
‘아, 네. 졸라 편하고 좋겠네요. 프로비던스 씨.’
결국, 프로비던스도 모른다는 말뿐이다.
일단 많이 먹는 것으로 그 에너지의 일부가 대체된다는 건 알았기에.
세주는 부지런히 먹었다.
내무실로 돌아와 에너지 바를 입에 물자, 김치용이 말을 건다.
“또 드십니까?”
“성장판이 열렸나 봐.”
“그게 열리면 배고픈 겁니까?”
너무 하이 코미디였나 보다.
“아니, 농담이야.”
“되는 놈한테나 그런 농담을 하라고. 소한테 경을 읽는다고 소가 아나?”
안경 남자에서 대머리 남자로 변하는 중인 이인준이었다.
김치용은 그의 말을 듣고 곧바로 사나운 짐승처럼 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