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1화 (11/206)

#  11

11. 앤틱한 블루투스 스피커일지도

탕! 탕! 탕! 탕! 탕!

초탄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여섯 발.

총성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콰지지직!

나무 바닥이 부서지며 총탄 여섯 발을 몸에 박은 외눈박이 붉은 눈 로봇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피시시시식!

놈의 머리와 가슴 부위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략 10분, 쥐죽은 듯 조용한 곳에서 부스럭거리며 누군가 일어난다.

나무판자 밑이었다.

꾸물꾸물 기어 올라온 이는 전신이 먼지 구덩이에 빠졌다 나와 회색 먼지를 옷 대신 입은 반세주였다.

“콜록. 콜록.”

참았던 기침을 하며 그는 이제는 그저 무거운 쇳덩이가 된 38구경을 옆으로 던졌다.

“히야, 죽을 뻔했다.”

그리고 잠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몇 달 전만 해도 평생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화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다.

‘마냥 즐기기에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고.’

한 번 죽으면 YOU DIE 라고 뜨며 리스타트 하는 게임도 아니고.

총알을 맞으면 죽는다.

정말 죽는다. 기필코 죽는다.

만약 방금 이 로봇의 총탄 중 도탄이 날아와 머리에 맞았으면, 반세주 자신의 자서전은 여기서 끝이었다.

반세주, 훈련받다가 오버테크놀로지라는 변태 로봇의 꾐에 빠져 죽다.

“야, 이제 내보내 줘.”

기동을 멈춘 놈이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다.

자신이 쏜 총탄이 머리 부분을 뚫은 게 보였다.

파지직 거리며 스파크가 튀는 것이, ‘방심하면 나 살아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근데, 이건 액션 캠 아니냐?’

놈의 머리가 익숙한 가전제품으로 보였다.

주변에 나뭇가지라도 있으면 건드려 보겠는데, 손대기가 여간 꺼려진다.

길가에서 본 개똥만큼이나 손대기 싫다.

“액션 캠 맞는 것 같은데.”

천천히 세주의 눈이 여섯 발의 탄환을 꽂고 장렬하게 전사한 로봇을 훑었다.

가슴은 지금이라도 뜨끈뜨끈한 햄버거를 뱉을 전자레인지였다.

그 밑에 전선으로 칭칭 연결된 다리가 보인다.

왼발은 넓적한 프린터였고, 오른발은 오래된 라디오였다.

쭉 한 바퀴 돌아보고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쓰던 거네.’

익숙한 이유, 사두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아니 왜 샀는지 모를 제품들의 집합이었다.

‘확실해.’

세주는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프로비던스라는 놈은 변태 또라이가 분명하다고.

저런 걸 조합해서 적이라고 상대해야 한다고 내보내다니.

기동이 멈춘 로봇과 1시간가량 있다 보니, 배가 고팠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냐고 위장에게 따지고 싶었다.

“아씨, 미친 브로? 형 배고픈데 내보내지 주지 않으련?”

위장은 말을 할 수 없으므로 프로비던스에게 따졌다.

‘여기 가상현실 아니냐? 근데 왜 배가 고프냐?’

이런 의문도 들었지만, 궁금하다고 해결될 문제 따위는 아니었다.

한 시간 후.

세주는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비던스는 답이 없었다.

고로.

‘라이는 한 마리가 아니다.’

살아남고자 한다면 싸워라.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다.

“후.”

세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부 세주가 쓰다 버리거나, 제대로 쓰지 못해 골방에 처박아둔 물건들인데, 양팔에 달린 것만은 아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저가 봉사로 GOP에서 눈을 부라리며 들고 있던 물건.

K-2 소총 두 자루다.

미야모토 무사시도 아니고 액션 캠 대가리 로봇은 양팔에 소총을 달고 있었다.

세주는 서슴없이 그것을 뜯어냈다.

곧 움직일 것 같던 로봇은 기우뚱하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쾅!

다시 먼지가 풀풀 날렸다.

소총 두 자루를 들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

‘든든은 개뿔!’

38구경 권총 한 자루로 놈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다.

은폐, 기습, 운.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여섯 발 중 한 발, 액션 캠을 꿰뚫은 총탄이다.

아마도 그 한 발이 아니었다며 놈은 아직도 살아남아 람보처럼 총알을 쏴대며 세주를 죽이기 위해 쫓아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독소를 빼서 전신이 깃털 같던 세주도 총알 세례를 받으며 그대로 하나님과 하이파이브를 하러 갔을 것이다.

“좋다고, 좋아.”

철컥.

노리쇠를 당기고 탄환을 확인한다.

28들이 꽉 찬 탄창이 세 개, 각각 여섯 발, 네 발이 남은 탄창이 둘.

일단 부족한 탄환을 빼서 열 발을 한 탄창에 모으고 총기 두 자루에 탄창을 끼웠다.

다시 이곳에 숨는다면 이놈이랑 똑같이 속아줄까?

상대는 몇 놈일까?

‘최악을 가정해보자.’

일단 안 속아준다.

‘에이 시발, 나라도 안 속겠다.’

만일 인간의 시체가 널브러진 곳에 ‘뭔 일 있나?’ 하고 대가리 먼저 들이밀 새끼가 어디 있겠나.

손수 들어서 죽은 놈을 옮기는 건 무리.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이미 일반 성인 남성의 근력은 뛰어넘었지만, 그렇다고 차를 통째로 들어 올릴 괴력의 사나이가 된 건 아니다.

결론은 라이를 치울 수 없으므로 속일 수 없다.

그렇다면 이곳이 아닌 곳에서 싸우는 건?

‘미친 짓이지.’

이 벽은 엄폐물로서 최적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놈을 잡을 땐 은폐와 기습과 운이라면.

‘이번에는 엄폐와 뒤통수다.’

총기는 두 자루였다.

그게 승기를 잡아 줄 유일한 요소일지도 몰랐다.

“일단.”

세주는 죽은 라이를 일으켰다.

들어서 나르는 건 무리지만, 벽에 기대 세워 두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놈을 세웠다.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리 무겁냐?’

학구적 호기심 보다 짜증이 나서 분해해보고 싶었지만, 그런 시간 낭비를 할 때는 아니었다.

놈을 문가에 기대고 세우니, 훌륭한 방패막이 된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슬며시 소총을 끼웠다.

그 후 놈의 몸에서 얇은 와이어 하나를 찾아서 꺼냈다.

꾸드드드드득.

듣기에 몹시도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겨우 새끼손가락 굵기의 와이어 하나가 나왔다.

길이가 꽤 길었다.

‘좋아, 좋아.’

*

이곳의 시간은 어떻게 된 건지, 석양이 보이는 시점에서 멈춰 버렸다.

덕분에 사위가 밝은 편이었다.

위이이잉! 쿵!

노을 사이로 라이 놈이 나타났다.

느릿느릿한 놈의 걸음 소리에 세주는 심장이 쩌릿쩌릿했다.

위이이이이잉! 쿵!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건물 뒤편에 숨은 세주의 눈에 두 번째 라이가 보였다.

‘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뱉었다.

한 놈은 전 놈과 대동소이한 모습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놈.

아버지의 집에서 무려 30년을 버티다 작년인가 고물상에 넘어간 놈이다.

음원 파일보다 CD, CD보다 카세트테이프, 카세트테이프보다 LP판 세대의 물건이었다.

요새 20대 애들에게 보여준다면.

겉모습을 보며 ‘오, 앤티크 블루투스 스피커네’란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고풍스러운 자태.

전축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자태에 웃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놈이 가진 게 우습지 않았다.

‘시발, 그건 반칙이지.’

놈의 등에 45도로 기울어진 포신이 보인다.

박격포였다.

세주는 그걸 보자마자 건물 뒤에서 숨어 있다가 달렸다.

꽈-앙!

총성 정도는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로 취급받을 굉음이 터졌다.

천둥이 바로 옆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세주는 최선을 다해 달렸다.

꽈아아앙!

그 사이 그가 몸을 숨겼던 엄폐물이 포탄을 맞았다.

“염병!”

욕을 뱉으며 세주는 몸을 날렸고, 그 뒤로 돌가루가 비산했다.

*

주르륵.

귀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안 보여.’

눈을 잃은 걸까?

끔찍한 상상에 세주는 오한이 들었다.

“웩.”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목구멍에 뜨거운 죽을 부은 것 같았다.

“쿨럭! 웩!”

목이 따갑고, 침과 눈물이 흘렀다.

귀에서 윙윙하고 이명이 들렸다.

그제야 사물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

감각이 돌아옴과 동시에 자신의 왼손에 아직 와이어가 붙들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작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와이어를 냅다 당겼다.

투다다다다다다!

당기는 손길을 따라 총성이 울렸다.

로봇의 옆구리에 끼우고 와이어로 방아쇠를 감아둔 총이었다.

천운으로 포격에도 멀쩡하게 잘 감겨 있었다.

위이이잉!

기계음이 들리고, 뿌연 시야에 적의 모습이 보였다.

투두두두!

팅!

그 와중에 소총을 든 놈의 머리에 총탄이 박혔다.

파직! 펑!

놈의 머리는 입대 전 살았던 원룸의 고장 난 인터폰 모양이었다.

로또 1등 당첨만큼이나 어려운 행운이었다.

허공에 아무렇게나 쏜 총알에 머리를 맞고 기동을 멈춘 로봇이 보였다.

그것에 기뻐할 틈도 없었다.

오른손에 들린 소총을 당겨 품었다.

눈을 전축 박격포 라이에게 떼지 않은 채, 총을 당기고 어깨에 견착한다.

자세를 잡고 그대로 놈의 머리를 노렸다.

‘내가 바로 만발 사수다.’

탕. 탕. 탕.

퍽! 퍽! 퍽!

세 발의 탄환이 그대로 놈의 머리에 삼각형을 만든다.

파직!

스파크가 튀며 전축 로봇이 반쯤 무릎을 구부린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램프에서 나오던 빛이 꺼진다.

놈까지 멈추자, 세주는 그대로 대자로 뻗었다.

“후, 후, 후.”

참았던 숨을 몰아쉬자, 그제야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세주는 지친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까지고 갖은 타박상에 물든 몸이 보였다.

이대로 병원에 가면 맨몸으로 돌바닥을 구른 줄 알겠다.

세주는 걸어서 전축 라이에게 다가갔다.

머리가 약점인 건 몰랐다면.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아니, 처음에 한 놈이 아니라 세 놈이 함께 나타났다면?

끔찍한 상상은 하는 게 아니었다.

“브로, 이제 정말 내보내 줘라.”

지친 음성으로 말하자마자 세주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후.”

전신에 느껴지는 통증도 찢어질 것 같은 귓속의 고통도 없어졌다.

뿌연 시야도 맑게 변했다.

-시뮬레이션 모드, 튜토리얼 클리어 완료. 축하해 형.

누운 세주의 눈에 노랗게 빛나는 전등이 보였다.

그 시뮬레이션 모드에서 봤던 석양과 같은 색이다.

몸을 일으키니 그사이 흘린 땀에 전신에 기력이 없었다.

‘브로.’

-말해.

‘너 혹시 실체는 없냐? 내 몸에서 따로 나온다거나 하는?’

-이미 난 형과 한 몸이야. 따로 분리는 불가능해. 죽기 전에는.

‘후. 고민이네.’

-무슨 고민?

-내가 내 몸을 때리면 내가 아플까? 네가 더 아플까?

-난 안 아픔.

얄미운 자식이다.

세주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푹 젖은 찜질복에서 퀴퀴한 땀 냄새가 났다.

‘널 진심으로 한 대만 때려보고 싶다.’

-자, 좋아. 도전해. 기왕이면 가랑이 사이를 제 손으로 때려보도록 해.

응. 그래.

정말 진심으로 널 한 대만 치고 싶다.

세주는 불가능한 일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삶은 달걀을 샀다.

사흘 굶은 거지새끼마냥 달걀과 갖은 음식을 먹고 얼음 동동 띄운 식혜를 마셨다.

그리고 뜨거운 욕탕에 들어갔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난 뒤 물었다.

‘몇 시지 브로?’

-7시 24분.

‘…야, 이 똘뱅이 로봇아, 깨워야 할 거 아냐? 복귀 시간 늦으면 네가 책임질래?’

-모든 행동의 책임은 그 행동을 취한 사람에게 있으므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닥쳐, 이 또라이 브로!’

세주는 부리나케 달렸다.

몸에 묻은 물기를 닦고, 군복을 무대 뒤편 모델만큼이나 빨리 갈아입었다.

그리고 냅다 달렸다.

“잠깐만요!”

버스가 자기 눈앞에서 가는 걸 본 세주는 절망감을 느꼈다.

‘봐줄까?’

악마 소위, 박민우, 싸가지 일병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절대로, 절대로 봐줄 리가 없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버스로 25분 거리.

현재 시각 7시 35분.

복귀까지 25분!

최단 거리 주파다.

세주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브로! 초인프로젝트 LV0가 됐는데, 뭐 몸이 더 빨라지고 그런 거 없나?’

-빨라져.

‘오, 좋아. 얼마나!’

주변 풍경이 휙휙 지나가는 게 실제로 체감하는 속도도 달랐다.

-수치로 표현하자면 이전에는 100m를 12초대에 통과하는 게 가능했지. 하지만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9초대도 가능하지.

기우뚱.

순간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독소 제거 시스템 이후 자리 잡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너 나 놀리지?’

-형의 가장 큰 장점이 여기서 빛을 보네.

‘뭐?’

-눈치가 빠르잖아.

‘이 또라이 브로!’

더 수다를 떨 시간은 없었다.

그는 부대까지 직선 코스를 그리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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