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8. 별종
“뭐 하는 짓이냐?”
특별할 것도 없이 연병장을 뛴다.
‘D’라는 약을 투여받은 이들에게 큰 의미가 없는 짓이다.
“형님?”
김치용도 봤고, 3중 4소대 5분대 인원도 봤다.
하지만 곧 훈련 시작 시각이었기에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세주는 무시하고 뛰었다.
‘380일 뒤 벽에 똥칠하는 건 절대 사양이다.’
-남은 거리 42.195km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딱 마라톤 거리만큼 남았다.
‘좋다고, 일단 뛴다.’
*
프로비던스는 세주에게 별도의 운동을 지시했다.
딱 한계에 다다를 만큼만.
-하나 더.
손가락 세 개로 지탱한 팔이 천천히 내려간다.
턱이 땅에 닿았다.
완벽하게 일자로 펴진 몸 위로 땀이 흐른다.
아주 천천히, 한 개에 약 7초.
프로비던스의 지시 그대로 세주는 행했다.
그렇게 일주일.
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몸이 달라졌다.
-독소 제거 90%.
간간이 알려주는 소식은 더없이 훌륭한 자극제였다.
누워서 다리를 기구에 건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굽혀 복근에 부하를 준다.
병사들을 위해 마련된 운동기구 중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부분 기구가 너무 무거웠다.
애초에 스팀팩을 맞은 병사들을 위한 거다.
-필요 없어. 일단은 몸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
‘좋다고.’
그의 몸에 선명한 근육이 생길 동안, 악마 소위를 비롯해 부대 내 모든 이들이 그를 별종이라고 불렀다.
앞에서야 별종이지, 뒤에서는 미친놈, 또라이, 자살도 특이하게 하는 놈 등으로 불렀다.
그 사이, 하나둘 장애물 코스를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훈련병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20분이 걸려도 불가능한 것이, 일주일 만에 13분 내로 끊었다.
그중에서도 김치용은 13분 48초를 기록하며 선두 그룹에 섰다.
-집중.
프로비던스는 귀신같이 세주의 상태를 체크했다.
다시 근육을 쥐어짜는 운동을 한다.
다리를 쭉 뻗고, 몸을 구부린다.
문어도 아닌데, 미친 유연성을 요구했다.
쫙 펼쳐진 오른쪽 다리로 몸을 숙이고 손으로 발끝을 잡는다.
반대쪽도 똑같이 한다.
이 동작을 근 30분 넘게 반복했다.
프로비던스는 홀로그램으로 계속 동작을 보여줬다.
보고, 그대로 행하고 다르면 말해준다.
단순한 반복 운동이지만 효율성만큼은 최고였다.
“훈련병.”
모든 훈련에 열외인 훈련병.
그러다 보니 찾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찾는 사람이라고는 지금 세주를 부른 이뿐이다.
다리를 가로로 찢고 몸을 구부린 채, 고개를 들었다.
‘저 자식은 왜 자꾸 와?’
싸가지 일병이었다.
“벌써 일주일째입니다. 본 훈련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습니까?”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와서 가끔 돌아올 의향을 묻는다.
“없습니다.”
세주는 간단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싸가지 일병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돌아섰다.
‘시비 걸러 오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구경하러 오는 걸지도.’
아니면 와서 매번 저렇게 사람을 비웃고 갈 수는 없다.
지금도 가면서 풉풉댄다.
‘거 새끼 참.’
세주는 무시하며 다시 몸을 비트는 것에 집중했다.
프로비던스는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운동 중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세주의 근육 하나하나를 쥐어 짜내는 그런 운동이었다.
-오늘 새벽, 독소 제거 완료 예정이다.
“알아.”
수건으로 땀을 닦은 세주가 말했다.
내무실로 돌아온 세주를 김치용이 맞았다.
“형님. 아직도 혼자서 그러고 계십니까?”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다.
여전히 형님이고 그 앞에서 별종이라고 하는 놈이 있으면, 무서운 눈빛으로 변한다.
“놔둬.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도 영리한 거야.”
“끼어들지 마라. 샌님.”
이인준의 말에 김치용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시 화장실 좀.”
여전히 부작용은 그를 괴롭게 하나 보다.
그가 화장실로 향했다.
세주도 세면도구를 챙겨 나오다 이인준의 부작용은 뭔지 궁금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쉽게 알 수 있었다.
‘머리가 빠지고 있네.’
정수리가 훤히 비었다.
박민우의 말대로라면 그리 위험하지 않은 부작용이니 다행일지도.
‘풉.’
하지만 머리가 벗겨진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프로야. 다른 사람들한테 투여된 외계인의 피는 뺄 수 없어?
-가능하지만, 그리 추천은 안 해.
-오호. 왜?
-현재 상황에서 실행 시 약 900일 동안 가동이 중지되니까.
-900일?
3년 조금 안 된다.
그 시간이면 반세주의 몸은 이미 성폭행 외계인에게 당해서 걸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패스다.
씻고 침상에 눕자, 곧바로 잠이 솔솔 왔다.
-숙면을 위한 음악을 제공한다.
프로비던스는 세심한 녀석이었다.
세주의 전체적인 몸 상태를 위해 뭐든 했다.
새벽 시간,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몸에 독소가 제거된 걸 확인했다.
-독소 제거 완료. 외계인의 피 인벤토리에 보관.
-임무 완료, 다음 우선순위 임무 선택.
-마스터의 생명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므로 동의 없이 실행.
-육체 개조, 초인 프로젝트 실행. LV0. 필요 기간 10일.
*
달랐다.
기상나팔 소리조차 짜증 나지 않은 아침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 공기, 냄새, 촉각, 들리는 소리.
모든 게 달랐다.
'프로야.'
-바빠. 왜 자꾸 불러?
'내 몸 왜 이러냐?'
-이상 있나? 잠시 체크하겠다.
'아니, 너무 좋아서 그래.'
-당연한 결과다. 그동안 몸에 쌓인 노폐물과 독소가 제거되었으니, 이론적으로 지금 육체는 갓난아기만큼이나 깨끗해졌다. 내 덕에.
“와.”
장난이 아니었다.
스팀팩? 외계인의 피라고 불린 그 ‘D’라는 약이랑은 비교가 안 된다.
세상이 맑고 깨끗해 보였으며, 복도 건너편, 내무실 안의 중얼거리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기상!”
동시에 조교가 들어와 모두를 깨웠다.
아침 점호를 끝내고, 식사하는 자리였다.
우 김치용, 좌 이인준은 업보라도 되는 듯 붙어 있다.
“니들 밥은 다른 데서 먹지 그러냐?”
변한 몸에 적응 중이던 세주가 말했다.
이래저래 찍힌 몸인 세주와 둘은 달랐다.
김치용은 어느새 5분대 에이스이자 34소대의 TOP3 중 하나였다.
이인준도 나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소위 말하는 A급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세주는 폐급 병사였다.
“형님, 불편하십니까?”
김치용이 일어나려 했다.
“바보야. 그게 아니라 자기가 폐를 끼치는 것 같으니까 그러는 거야.”
이인준이 숟가락을 입에서 빼며 말했다.
“이 새끼가, 너 형님한테 반말하지 말라 그랬지?”
“그 레퍼토리 안 바꾸냐?”
‘이 새끼들아, 제발 나랑 떨어져서 싸워라.’
웃기는 일이, 이 둘은 세주가 아니면 서로 말도 섞지 않았다.
고로 싸울 일도 없었고.
“형님, 전 배신, 배반은 안 합니다. 의리 하면 김치용, 김치용 하면 의립니다.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
지랄도 이 정도면 존중할 만하다.
“아, 그래.”
그래, 김치용은 그렇다고 치자.
반대편 이인준이 남아 있다.
머리가 그사이 또 빠졌나보다 앞머리도 듬성듬성 삼자가 되어간다.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뻔했다.
서른셋, 세주도 탈모에 대해 고민을 하는 남자다.
“왜?”
빤히 바라보자 그가 물었다.
"아냐."
대체 이 자식은 왜 붙어 있는 걸까?
세주의 눈빛을 보던 인준이 말했다.
“당신 옆에 있으면 살 것 같거든.”
이 무슨 개 같은 소리인지.
-눈치와 감이 좋은 전우다.
프로비던스가 적절하게 양념을 쳐줬다.
“형님, 저런 얄팍한 인상은 배신과 배반의 아이콘입니다. 제 동생 중에 상길이란 놈이 있었는데, 그놈과 똑 닮은 걸 보니 배신할 겁니다.”
“그 상길이가 뭘 했는데?”
김치용이 그 말에 옷을 들어 올렸다.
옆구리에 긴 흉터가 보였다.
보기만 해도 더럽게 아팠을 것 같았다.
“이걸 만들어 준 놈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뭐, 적당히 손 봐줬습니다.”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얌전히 말로 타이르지는 않았을 거다.
화를 낼 거라고 예상한 인준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 사람은 이기적이니까.”
인준은 그 말과 함께 식판을 들고 갔다.
옆에서 헹하고 치용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나저나 들으셨습니까?”
“뭘?”
“장애물 코스 외출권 말입니다.”
외출권?
-반사신경과 운동신경을 기르기 위해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그 코스를 일정 시간 내에 통과하면 준다고 했다.
프로비던스의 설명이 잘 버무린 겉절이 김치마냥 곁들여졌다.
‘그랬었지.’
“오늘내일 중으로 한 놈이 채갈 것 같습니다.”
“누가?”
“2중대 놈입니다. 현재 부대 내 최고 에이스라고 불리는 놈인데, 전 그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치용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록이 몇 초였지?”
“한 8분 됐습니다.”
-8분 48초다.
'외출권 따면 좋겠지?'
-정신건강을 위해서 충분히 추천할 만한 선택지다.
'가능할까?'
-확률 계산은 별도로 해주겠다. 일단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 확인해.
말과 함께 눈앞에 홀로그램 글자가 떠올랐다.
초인 프로젝트 LV0 남은 시간 9일 19시간.
'너 왜 자꾸 말없이 뭐 시작하냐? 동의한다고 묻는 거 코스프레였냐?'
-아둔한 마스터의 현재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 우선순위를 내가 정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뭐? 아둔해?'
-몰랐다고 한다면, 그 아둔함에 나 프로비던스 다시 손뼉를 치고야 말겠다.
말과 함께 꼬마 유령이 나타나 허공에 손뼉을 친다.
아니, 유령이 아니었다.
홀로그램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프로비던스 덕에 세주도 그게 그저 영사기가 쏘는 화면과 같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저건 세주의 눈에만 보였다.
“뭘 보십니까?”
“싸가지 없는 기, 계새끼.”
기자와 계자가 떨어진 건 순전히 우연이다.
“네?”
“아냐.”
세주는 말하고 일어났다.
“훈련 이제 시작이지?”
“네. 점심 훈련, 이제 시작합니다.”
“같이 가자.”
“참여하시는 겁니까?”
“장애물 코스만 한 번 타보자.”
“생각 잘 하셨습니다.”
김치용도 나름 세주를 걱정했는지, 안심한 표정이었다.
둘은 곧 장애물 코스로 향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훈련에 참여하는 겁니까?”
박민우의 물음에 세주가 되물었다.
“장애물 코스 조교님보다 빨리 통과하면 외출권 받을 수 있습니까?”
각진 모자 밑으로 박민우의 눈이 세주를 향한다.
“줍니다.”
“꼭 조교님과 같은 자세로 건너야 합니까?”
“낮은 포복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제외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도전하겠습니다.”
'프로비던스 확실하지?'
아까 대답을 듣지 못했었지만, 이곳으로 오며 프로비던스는 확신했다.
-8분 이내 통과할 확률 38%, 9분 이내 통과할 확률 98%.
건방진 기계가 숫자로 대답을 대신했다.
세주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흔한 뼈 맞물리는 소리 하나 없이 문어처럼 몸이 휘어진다.
“유연하네.”
5분대 분대장이 그의 몸을 보며 중얼거렸다.
세주는 그 사이 코스를 확인했다.
총 네 개의 코스다.
기름 바른 드럼통.
빽빽하게 못이 솟은 땅.
낮게 깔린 철조망.
공중에 매달린 외줄.
‘가자. 외출권.’
외출하면 만화방이나 PC방에서 온종일 보내고 말리라.
“준비됐습니까?”
박민우가 물었다.
세주가 몸을 푼 것만으로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을 거다.
“그럼, 시작.”
그가 타임워치 버튼을 누른 직후, 세주가 바닥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