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7화 (7/206)

#  7

7. 진짜네

“형님?”

“괜찮아?”

“반세주 씨?”

꼬박꼬박 씨를 붙이며 이름을 부르는 분대장의 관심까지 독차지했다.

“괜찮아.”

세주는 말하고 다시 필사적으로 오리걸음을 시도했다.

허벅지 근육이 땅기고 아픈 건 그대로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할수록 나아졌다.

-육체 활성화 정도 확인. 마이너스 8%

-정신 방어를 위한 심력 테스트 필요.

‘시끄럽다. 이 악마야.’

세주는 자신이 정말 미친 게 아닌 가 의심이 들었다.

끼아아아악!

갑자기 머릿속에 귀신의 얼굴과 기겁할 비명이 들렸다.

시야가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어둠 속 한가운데서 갑자기 나타난 그건, 세주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머리를 늘어뜨린 나무 뒤에 숨은 귀신.

실제로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도 못 해본 공포의 극치다.

“흐헉!”

결국 그가 바닥을 굴렀다.

-정신 방어를 위한 심력 테스트, 쓰레기 수준.

‘야, 이, 이, 이, 십장생아!’

-내 이름은 프로비던스다.

‘너 몇 살이야?’

아재 특유의 크리티컬 공격을 던졌다.

-생물학적 나이는 의미 없으므로, 정신적인 나이를 말한다면 태어난 지 9일이 지났다.

9일?

세주가 훈련소에 온 날짜였다.

“훈련병, 이상 증상이 극심하면 의무대로 갑니다.”

박민우였다.

“아닙니다!”

다시 외치고 걷는다.

-육체와 정신적인 수준 최악.

-다년간의 흡연과 운동 부족으로 반사 신경 및 기본 육체 스펙, 최악.

그 사이에도 프로비던스라고 말하는 얄미운 꼬마 유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체 평가 등급, F급.

시발, 또 폐급이야.

-전체 개조 필요. 에일리언 블러드 추출 요망. 필요 기간 8일.

아침 행군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의무대 가고 싶습니다.”

결국, 세주는 손을 들고 요청했다.

일단 이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가 봅니다.”

세주는 가까스로 의무대에 갔다.

“무슨 일?”

병장이 싸가지 없는 말투의 표본을 보여줬다.

“쉬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대뜸 용건을 밝히자 의무대 병장이 실실 웃었다.

“오늘 하루 당신을 위해 비워둔 안락한 휴식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비아냥거리며 침대를 가리켰다.

세주는 그곳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몸에 세를 든 미친 새끼를 불렀다.

‘야, 이 또라이 새끼야!’

이런 슈발 꼬맹이.

세주는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

유령도 좋았고, 외계인의 피도 좋다.

몇백일 뒤에 벽에 똥칠한다고?

그것도 인정하겠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그런 걸 보이게 하면 무슨 수를 써도 널 죽여 버릴 거다.”

마음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의지를 확실히 표현할 수 없다.

결국, 입 밖으로 의지를 표현했다.

-그런 거? 혹시 이거?

다시 주변이 어두워졌다.

세주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의미 없었다.

끼아아아악!

소복을 입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여자가 괴성을 지른다.

‘내가 이런 걸 무서워했었냐?’

“끙.”

등이 흥건하게 젖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한 번 더 본다고 익숙해질 리가 없었다.

‘생전에 남자랑 갈 데까지 가보지 못해서 한이 맺힌 귀신 코스프레다.’

세주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고 나서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후, 저기, 잠깐 우리 얘기 좀 할까? 영특한 꼬마 유령 어르신?’

일단 저 미친 버진 고스트의 출현을 막아야 했다.

-말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한 거라면 더더욱 실망이고, 너무 심력이 약해. 생각보다 심각한 사태다.

‘야이, 미친 새캬! 사람은 누구나 공포심을 갖고 있어. 난 기계가 아니라 심장이 뛰는 사람이다. 트라우마와 같은 공포를 선사한다면 누구나 다 기절할 만큼 놀란다고!’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참았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그러니까 잠깐 얘기 좀 하자.”

-내 얘기 다 듣지 않았나? 가장 시급한 건 외계인의 피를 빼는 일이므로, 당장 연병장으로 돌아가는 걸 추천한다.

“일단, 이름이 뭐라고?”

사태 파악을 위해서 세주의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프로비던스.

“넌 뭔데?”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오버 테크놀로지다. 어렵게 말하자면….

“아니, 거기까지.”

이해하지도 못할 말 들어서 뭐하겠나.

“혹시, 아니었으면 하는데.”

후하고 세주가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며 말을 이었다.

“내 몸에서 사는 거냐?”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잠시 정신 착란 증세가 왔다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멍청한 건가? 아니면 이해력이 딸리는 건가? 난 애초에 네 안에 살고 있다. 내 이름은 프로비던스, 주인의 생체에너지를 기반으로 기동한다.

‘기생충이네.’

세주는 긴 설명을 세 글자로 결론 냈다.

“내가 미쳤다고 말해다오.”

-넌 미치지 않았다.

“그럼 꿈이라고 해다오.”

-머저리, 꿈이 아니다.

“한 대만 때렸으면 좋겠다.”

이제 태어난 지 9일 된 놈이 말하는 폼이 처맞기 딱 좋다.

-누굴?

너, 너, 너.

“아니다.”

-돌아가라. 외계인의 피를 빼야 한다.

“안 빼면 어떻게 된다고?”

-580일 이후에 사망. 320일 이후에는 벽에 똥칠하며 미칠 확률이 80%다.

“진짜?”

-신뢰가 필요하다면 증명하겠다.

“응. 증명해.”

의심은 신뢰를 쌓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다.

그에 대해 의심하고, 증명하며 그를 믿게 되는 과정.

그게 바로 신뢰라는 거다.

촤르르륵!

갑자기 침대 커튼이 열렸다.

세주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의무병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미친 척하고 제대를 노리는 거면 관두는 게 좋습니다. 훈련병.”

그런 거 아냐.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럼 혼잣말 그만합니다. 그리고 멀쩡하면 나갑니다. 다시 한번 어쭙잖은 짓 하면 대가리 차 버립니다.”

“네.”

세주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왔다.

-연병장으로 가.

프로비던스라 부르고, 또라이 꼬마 유령이라 읽는 놈의 말을 따랐다.

-아직 아무것도 능력이 개방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외계인 피 배출 작업을 중지한다. 동의하나?

“내가 동의해 줘야 하나?”-물론이다.

“동의.”

-고유의 스캐닝 시스템을 잠시 기동하겠다. 기동 후 에너지 축적을 위해 이틀간 전체 기능이 정지된다. 동의하나?

“어어, 뜻대로 하소서.”

-스캐닝 시스템, 일시 가동.

변한 건 없었다.

세주는 뻘쭘하게 자신의 제2의 자아일지도 모르는 놈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는 자신이 미친 게 나은지, 이게 진짜인 게 나은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기왕이면 미친 것보다는 프로비던스란 게 실재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긴 했다.

-저기.

연병장에 들어서자 허공에 유령의 손가락이 나타나 한쪽을 가리켰다.

한 남자가 웃으며 선두로 달리는 게 보였다.

스팀팩 투약 전에는 빌빌거리다 지금은 날아다니는 사람이다.

번호도 모르지만 34중대에서 꽤 유명했다.

스팀팩이 체질에 딱 맞다나.

실제로 그 약을 투여하기 전과 후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됐다.

자신감도 넘치고, 덩달아 현재 장애물 코스를 돌파할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다.

-스캐닝 완료. 저 사람은 오늘 밤 외계인 피의 거부반응으로 안면변형이 일어남.

-변형 형태 시뮬레이션.

-…확인. 호흡 불가로 죽을 확률 100%.

“응?”

-죽는다. 저 남자는.

어딘가 졸리는 목소리로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세주는 아직도 물을 게 많았다.

“프로야?”

멋대로 짧게 지은 애칭으로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미친 꼬맹아?”

역시나 답이 없다.

“뭐냐, 이게.”

그 날 하루 훈련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끝나고 나서 들은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약이 안 드는 인간은 내 처음 본다. 폐급 병사. 일찌감치 포기하고 탈영하지, 그래?”

악마 새끼가 말하고.

“풉. 열심히 합니다. 훈련병. 포기하지 않습니다.”

싸가지 일병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현재 순위 꼴찌, 3456번 훈련병.”

박민우가 한 말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김치용과 안경 남자 이인준의 심심찮은 위로를 받고.

마지막으로 분대장의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미친 기상나팔 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언젠가 부수겠다고 확고한 결심을 하고 나갔을 때였다.

‘없다.’

어제 프로비던스가 지칭했던 사람이 안 보였다.

식사를 해결하고 그쪽 분대장에게 다가갔다.

“한 명 안 보이네? 탈영?”

“다른 부대에 관심도 많네. 하긴 그럴 만도 했지.”

그래. 그 남자는 정말 눈에 띄게 나다녔다.

스팀팩을 맞고 나서 말이다.

“아침에 보니까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어. 난 봤어.”

말하는 분대장의 얼굴에 공포감이 어렸다.

그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외계인이 쳐들어온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다행이지.”

그가 말하고 식판을 들고 떠났다.

밥이 반이나 남은 게 보였다.

절대 다행으로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진짜네.’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 세를 든 녀석의 말은 진짜였다.

고로, 580일 뒤에 죽는 것도 진짜요.

320일 이후에 미치는 것도 진짜였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사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

이틀 뒤, 세주는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외계인 피 추출 작업 시행, 소요시간 8일.

-생체 에너지와 기동 유지를 위해 동의 없이 진행.

“인사부터 하지 그러냐?”

점심밥을 한 숟갈 떴을 때였다.

카레였다.

“뭐라고요? 형님?”

김치용이 귀를 기울였다.

속으로 얘기하는 버릇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아냐.”

‘반갑다. 프로야.’

-프로?

‘이름이 길어.’

-좋다. 마스터.

세주는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들고 씻으며 프로를 불렀다.

‘이제부터 말 잘 들을게.’

농담이 아니다. 미쳐서 죽고 싶진 않다.

벽에 똥칠은 더더욱 하기 싫고.

-당연한 말은 필요 없고 일단 땀을 빼자.

그래. 그래. 노폐물을 배출해서 외계인의 피를 빼낸다는 거.

인정, 아주 십 할 인정한다.

세주는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매일 이 플랜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프로의 말과 함께 눈앞에 자가 영상 홀로그램이라 부르는 것이 떠올랐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글씨다.

[팔굽혀 펴기 300개]

[윗몸 일으키기 300개]

[러닝 43km]

-전체적인 근력 향상과 체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할 만하겠지?

긁적.

세주는 머리를 한 번 긁고는 물었다.

‘생각보다는 약한데?’

-오전 플랜이야, 오후에 똑같은 일정을 되풀이할 거다.

그러면 얘기가 다르지.

‘하루에 저 운동을 다 소화할 수 있나?’

스팀팩을 맞았다면 가능할 듯하다.

주변에 훈련병들이 하는 걸 봐왔으니까.

하지만 맨몸으로? 그 피도 뺀다면서?

-미션, 매일 아침저녁으로 위 스케줄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요구하지 마. 그냥 시켜.

“오케이. 알았다고.”

‘군에서는 주는 약의 정체를 숨겼고, 그게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달랐다.

이틀간 잠이 든다는 후유증은 있었지만, 정확하게 알았다.

의심이 신뢰로 바뀐 순간이다.

“좋다고.”

세주는 읊조리고 박민우를 찾아갔다.

그를 찾아가 대뜸 말하자, 그가 책상에 앉은 채로 세주를 보며 물었다.

“진심입니까?”

“물론입니다.”

박민우는 정리하던 서류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닙니다. ‘D’를 소화 못 한 채 전장에 가면 죽은 목숨입니다.”

이쪽도 진심이고, 진짜였다.

박민우는 냉정하게 보였지만, 의외로 좋은 놈일지도 몰랐다.

“자율이라고 했으니,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

안 합니다.

세주가 경례를 하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연병장을 뛰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의 짧은 휴식시간이었다.

점심을 마친 훈련병들이 모두 뛰는 세주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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