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 결혼을 일찍 했습니다
김치용이 콧김을 쉭쉭 뱉으며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팍하고 땅을 박찬 그는 정말로 빨랐다.
역시 스팀팩!
빠각!
기우뚱.
쿵!
‘말도 안 돼.’
달려드는 김치용을 향해서 왼발을 뒤로 빼고 오른발 하이킥 한 방.
그것도 뒷짐을 진 채로!
그 한 방으로 김치용의 정신이 잠시 가출했다.
그가 모로 쓰러졌다.
나서겠다고 손을 들었던 이들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더 할 사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악마 소위.’
그는 성격이 더럽고, 사람을 괴롭히는 기술만큼이나 잘 싸웠다.
*
“아, 턱 돌아갔네.”
맷집 하나는 인정해야 했다.
김치용은 금세 일어났다.
“괜찮아?”
“뭐에 맞은 겁니까?”
정작 맞은 놈은 뭐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무서운 악마 새끼.
“발.”
“아따, 그게 상단 차기였다고?”
김치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달 뒤에 봅시다.”
이런, 용기 있는 새끼.
김치용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달 정도 운동하면 따라잡을 거란다.
세주가 보기에는 택도 없는 소리였다.
그 한 달 동안 악마 새끼는 논다냐?
아니, 놀아도 김치용이 깨질 것 같다.
“이제까지 배웠던 건 워밍업입니다. 일주일 동안 몸에 부하를 주는 방법은 충분히 알려줬다고 생각합니다. 게으르면 죽습니다.”
박민우가 34소대 전체를 모아놓고 말했다.
“개인 훈련 빼먹지 않습니다. 그게 살길입니다.”
박민우는 말하고 그들을 인솔했다.
한참을 걷자, 넓게 편, 진지가 보였다.
장애물이 잔뜩 깔린 길이었다.
“여기는 1,000m 허들 코스입니다.”
처음 보이는 장애물은 드럼통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데 겉이 번들거리는 게 기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뒤로 바닥에 못을 거꾸로 박아 놓은 곳이 있었고, 다음엔 철조망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다음은 단단한 로프 하나와 바닥에 물을 채워 둔 곳.
외줄을 지상과 평행으로 만들어 둔 곳까지.
높이가 5m는 돼 보여 떨어지면 그냥 아야 하는 수준은 아닐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박민우가 군화로 바닥을 긁는다.
“저기까지.”
그리고 건너편을 가리켰다.
“1,000m입니다. 반사 신경 및 운동 능력을 기르기 위한 코스로 왕복 10분 내로 끊으면 통과입니다.”
‘허허허.’
겉으로 웃지 못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10분?
왕복 달리기만 해도 순수하게 거리만 따지면 2km다.
100m를 15초에 달린다고 가정하면, 1km가 150초, 왕복이면 300초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계속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다면, 5분이 걸린다.
그냥 평지여도 불가능한 짓이다.
그런데 저런 장애물을 건너서?
“불가능 아닙니다. 조교 앞으로.”
박민우의 말에 일병 조교가 나섰다.
그는 모자를 뒤로 돌려쓰고 바로 장애물을 탔다.
다람쥐처럼 드럼통을 밟고 넘고, 못 사이를 통과한다.
외줄은 매달리더니, 기름 바른 것처럼 쭉쭉 나아간다.
“돼 네.”
안경 남자가 넋이 빠진 채 말했다.
“그러게.”
“8분 48초.”
박민우가 시간을 잰 뒤, 중대원을 돌아본다.
“이 기록 깨면 외출권 드립니다.”
그 날 아무도 그 장애물을 통과한 사람은 없었다.
식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장애물 코스에 매진했다.
앞으로 오전에는 이제까지 했던, 아침 구보라 부르고 죽음의 산행이라 느껴지는 걸 하고.
오후에는 불가능 10분 코스를 탄다고 했다.
그날 밤이었다.
‘시발.’
욕이 절로 나왔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침상에 누운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이 마약 중독자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손뿐 아니었다.
전신이 떨렸고, 결국 침을 줄줄 흘렸다.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발작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그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뭘 먹은 거야?
머릿속으로 말이 울린다.
건방진 유령 꼬마였다.
-뱉어.
뭔 개소리냐고.
세주는 몸을 일으키려다 넘어졌다.
쿵.
“무슨 일입니까?”
박민우였다.
오늘 불침번이 그였나 보다.
그가 세주를 일으켜 세운 뒤 밖으로 나왔다.
“의무대로 가길 바랍니까?”
차가운 말투가 들렸다.
찬 공기를 쐬자 금세 몸이 나아졌다.
“아닙니다.”
세주는 점점 나아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면, 원인은 하나뿐이었다.
‘스팀팩.’
마린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처럼, 부작용이 있었다.
“부작용입니다.”
때마침, 박민우가 말했다.
“오늘 낮에 맞은 주사 말 한 겁니다. 본인만의 문제는 아니니, 너무 심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뱉어!
그 사이에도 유령 꼬마가 시끄럽게 말했다.
“시끄러워.”
자기도 모르게 읊조리고 아차 했다.
하지만 박민우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라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당신들과 같습니다. 훈련받고 약을 투여받습니다. 그리고.”
박민우가 모자를 벗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어떤 상황에도 모자를 벗지 않았었다.
그의 머리 한쪽이 인두로 지진 것처럼 벗겨졌다.
오른쪽 이마부터 뒤까지, 잔인한 흉터가 그의 일부를 차지했다.
“고작 침 좀 흘리고 손을 떠는 정도라면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나한테 당장 와!
유령 꼬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의 머리를 보며 세주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몸을 바쳐서 싸워야 할 이유가 있나?
애국심?
지랄 같은 소리다.
세주는 알고 있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면 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이다.
박민우의 눈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읽혔다.
“전 결혼을 일찍 했습니다. 이제 애가 3살이죠.”
겉보기에 고작 스물다섯 전후로 보인다.
불편한 침묵이 오갔다.
인사도 없이 세주는 몸을 돌려 내무실로 도로 들어갔다.
-먹은 거 토해내야 해.
하고 싶다면 세주도 그러고 싶다.
자기 몸에 생긴 이상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멈추지 않았으니까.
총은커녕 유리잔 하나 제대로 쥐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해줄 게. 내가 있는 곳을 파.
이 목소리는 약을 먹기 전부터 들었으니, 이 부분은 세주가 가진 고유의 정신병이리라.
“좋다. 내가 오늘, 네 정체를 밝혀주마.”
3단 야삽을 꺼내고, 야밤에 밖으로 나갔다.
야외 불침번을 서는 싸가지 일병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는 어제 유령꼬마를 봤던 곳으로 갔다.
그곳에 꼬마는 그대로 있었고,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세주는 손에 침을 탁 뱉고는 야삽을 들었다.
“오냐. 아주 땅끝까지 파주마.”
손 떨림이 어느새 멎어 있었다.
*
팍! 팍!
싸가지 일병이 잠깐 들른 뒤에도 세주는 쉴 새 없이 땅을 팠다.
스팀팩으로 스팀 받은 몸뚱이가 평소에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정력을 불러일으켰다.
“으랴앗!”
땅을 파다 보니, 신명이 난다.
깊게 박힌 돌을 꺼낼 때는 이상한 쾌감까지 느껴졌다.
“조용히 합니다.”
지나가던 싸가지가 한마디 했다.
“네.”
그가 가고 세주는 앞에 선 유령 꼬마에게 물었다.
“넌 나한테만 보여?”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응. 말이라고 하지. 아니면 내가 너한테 지금 짖고 있겠냐?’
세주가 슬그머니 삽을 꼬마의 몸에 밀었다.
역시나, 걸리는 게 없다.
“자가 영상 홀로그램에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난 네 눈깔을 통해서 세상에 구현되어 있다고.”
역시나.
‘내 눈이 문제구나.’
거기에 뇌도, 귀도 다 문제다.
귀신 들려서 땅을 팠으면 할 만큼 한 것 같다.
발부터 허리까지 잠길 높이까지는 팠다.
더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스팀팩의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부작용을 통해 얻은 이 힘을 기왕 낭비할 거면 섹시한 걸프렌드에게 하고 싶었다.
“관두자.”
삽을 들고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가 판 구멍 밑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드디어.”
유령 꼬마가 말했다.
반쯤 미친 정신으로 세주가 밑을 내려다봤다.
그가 손을 뻗어 흙 사이에 묻힌 그것을 잡아 뽑았다.
‘팔찌?’
얇은 은빛의 팔찌다.
아니, 착각이었다.
스르르륵!
팔찌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대로 그의 팔목을 감더니, 팔을 휘감아 올라온다.
“염병!”
급하게 왼 팔뚝을 오른손으로 잡았지만, 놈은 그대로 지나쳐 세주의 심장 어림에서.
푹하고 안으로 자신의 몸을 찔러 넣었다.
“컥!”
고통에 신음이 터진다.
“이런 개 같은 유령 새끼….”
말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네가 가지고 있던 건, 중추 신경과 기억, 인간으로 치자면 뇌. 그리고 여기에 묻힌 건, 그 외 나머지 나의 기능들. 축하해.”
꼬마 유령이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인간이 만든 불세출의 오버 테크놀로지. 프로비던스의 주인이 된걸.”
그 말을 끝으로 세주는 정신을 잃었다.
꿈에서 그는 흰 뱀한테 쫓겼다.
그러다 반대쪽에서 나타난 외계인 성폭행범을 만나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그러자 흰 뱀이 놈을 막았다.
덕분에 살았다.
번쩍.
눈을 뜨니, 아직도 흙바닥 위다.
“훈련병, 그런대서 자면 입 돌아갑니다. 입 좌우로 움직여 봅니다. 멀쩡한지.”
해가 어슴푸레 뜨고 있었다.
아직 새벽이었다.
싸가지 일병은 깨우지도 않고, 비웃으며 세주를 지켜만 봤다.
“아에이오우. 잘 돌아갑니다.”
“그럼 내무반으로 돌아갑니다. 실시.”
“실시!”
세주는 곧바로 돌아갔다.
‘무슨 짓을 한 걸까?’
우습게도 자신이 팠던 땅이 도로 메꿔져 있었다.
그리고 야삽도 손에 없다.
‘꿈이냐?’
아니, 실제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니, 몽유병에 가까울 것이다.
빠-.
기상나팔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세주가 형광등을 켰다.
빠빠빠빠빠.
그 뒤로 멱살을 잡고 싶은 작곡가의 명곡이 울려 퍼졌다.
‘스팀팩의 효관가?’
반응속도가 끝내줬다.
“기상! 기상!”
세주는 모두를 깨우고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리고 매일 하던 것과 같이 아침 점호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줄을 서고, 가볍게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돈다.
스팀팩을 받은 병사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어제 화장실만 서른 번 갔습니다. 형님.”
김치용이 말했다.
이 자의 부작용은 아무래도 요실금인 것 같다.
“그래도 개운하지 않네요.”
아니면, 그냥 신장에 이상이 있던지.
그렇게 힘들던 ‘엄마 찾는 새끼오리’를 하면서 다들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세주는 힘들었다.
그것도 많이!
“후, 후.”
그는 대답도 못 하고 마냥 끊어질 것 같은 허벅지 근육에 괴로웠다.
“약 효과 없는 거 아닌가?”
그에게 관심이 지대한 두 번째, 안경 남자 이인준이 옆으로 붙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관심 좀 꺼라 이것들아.’
첫날과 같았다. 힘들어 뒤질 것 같았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참아. 일단 몸에 침투한 그 쓰레기 같은 외계인의 피를 뽑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 해.
꽈당.
“형님?”
세주가 놀라서 앞으로 굴렀다.
-너 뭐야?
-잘 들리지? 금세 까먹은 거야? 기억력이 최악이야. 지각생. 나야. 프로비던스.
‘잠깐 지금 내가 입으로 말했나?’
아니다. 속으로 말했는데.
-너, 너, 너.
-일단 움직여, 인간의 육체는 땀과 소변을 통해 노폐물을 배출할 수 있다. 그걸 토대로 가속해서 독을 빼내겠다.
-잠깐, 스탑!
-여유 있어? 외계인의 피를 안 뽑아내면 정확히 580일 이후에 사망해. 320일 이후에는 벽에 똥칠하며 미칠 확률이 80%에 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