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5화 (5/206)

#  5

5. 꿈자리 한 번 요란하다

-투여되는 약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정부의 요청 시 실험에 응해야 합니다.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음에 동의하십니까?

“동의서는 표면상입니다. 약을 투입하지 않으면 훈련을 소화할 수 없을 겁니다.”

싸가지 일병 조교가 말했다.

그리고 그가 팔을 걷었다.

힘줄이 솟은 그의 팔뚝은 근육이 촘촘하게 박힌 것처럼 데피니션이 훌륭했다.

“기간병들도 먹습니다. ‘D’를 먹으면 근육 재생량이 늘고,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딜 수 있습니다.”

‘지금 뭐라는 거야?’

약을 먹고 육체를 개조한다는 말이다.

세주는 심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살고 싶으면 동의서에 동의하고 훈련에 참여합니다.”역시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먹자.’

이대로라면 외계인을 만나기 전에 죽겠다.

동의서에 전부 브이표를 표시했다.

한 명도 빠지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버텨온 게 신기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훈련 시작한 지 일주일.

탈영을 시도한 병사는 총 열다섯.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세주는 그들이 죽었다는 거에 전 재산과 왼 손목을 걸 수 있었다.

‘약을 먹으면 뿅 하고 나아진다고?’

그런 약이 있다면 이미 사람들한테 알려지고 보급되어야 정상 아닐까?

잡념이 끼어들었지만, 피곤한 몸은 축 늘어지고, 세주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

“꼬마야.”

잠이 들자마자 들리는 소리에 세주가 고개를 들었다.

올해로 서른셋, 꼬마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네 눈에는 내가 여덟 살 먹은 애로 보이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네.”

자신의 입에서는 놀랍게도 얌전한 대답이 나왔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맞았어.”

눈가가 축 처져, 보기만 해도 우울해 보이는 얼굴의 40대 남자였다.

세주는 한쪽 발에 반깁스를 하고 목에 보자기를 둘러매고 있었다.

‘아, 그때구나.’

다리가 부러지고, 집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기억났다.

“하, 이 넓은 땅에 세상을 구할 사람 하나 없구나.”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맨 시리즈에 중독된 꼬마 반세주가 말했다.

“제가 할게요. 저요!”

“진짜냐?”

“네!”

“약속한 거다?”

“물론이죠!”

“그래, 네가 해라.”

40대의 우울한 얼굴의 남자가 세주에게 사탕을 건넸다.

그 사탕은 정말 달고 맛있었다.

상큼했고, 달콤했다.

‘내가 왜 이걸 까먹었었지?’

순간 눈을 떴다.

-늦었어. 멍청이.

‘뭐야?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쪽이다.

세주는 몸을 일으켰다.

불침번을 서던 조교 하나가 그를 보고 무시했다.

세주는 내무실 건물을 나갔다.

매일 땀에 절어 뛰다 보니, 추위는 첫날 담배를 피울 때 말고는 못 느꼈는데.

그사이 바람이 더 싸늘해졌다.

-이쪽.

그는 부름에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 이제 열 살이나 되어 보이는 눈매가 치켜 올라간 소년이 보였다.

분명 사람은 아니었다.

확실했다.

소년의 몸은 반투명했고, 은은한 빛을 냈으니까.

반투명한 꼬마가 입을 삐죽하게 내밀고 말한다.

“뭘 봐?”

다른 건 모르겠고, 버릇은 없었다.

“너.”

“너무 늦었어.”

세주는 고민 했다.

일단 이 버릇없는 꼬마에게 어른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줘야 할지.

아니면 현재 반투명한 몸을 가진 이 녀석이 대체 어떻게 자신을 불렀는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세 가지 중 하나를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물음을 던졌다.

“꿈 아니지?”

“꿈? 속 편한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두들겨 패고 싶다.

세주는 마음속 깊숙이 이 모든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을 외면한 채, 꼬마의 이마에 딱밤을 먹이고 싶었다.

“뭐가 늦었다는 거냐?”

결국, 세주는 이게 꿈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보다 지금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저 건방지고 싸가지 없는 유령 꼬마는 설명하는 역할이었고, 세주는 좋은 청자가 돼야 했다.

“이미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서 몇 년이나 늦었어.”

“그러니까 뭐가?”

“그건 당신이 알아야 할 문제고.”

염병할 꼬마 새끼.

세주는 한 번 더 참았다.

‘이게 바로 어른의 인내심이로다.’

“네 몸은 왜 투명하냐?”

“본체가 아니니까.”

“아, 그랬구나. 본체가 아니구나.”

“제대로 들어. 시간 많이 없어. 내 이름은 프로비던스, 우리는 같이 침공을 막아야 해.”

“왜애애애?”

절대로 꼬마를 상대로 비아냥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말꼬리가 조금 늘어졌을 뿐.

“그게 내가 만들어진 이유니까.”

‘만들어져?’

“엄마, 아빠가 널 낳을 때 그런 말을 했니? 그리고 이름 누가 지어줬니? 한국인치고는 너무 개성이 넘치네.”

“말귀를 못 알아먹네.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을 파.”

“뭘 파?”

“내가 선 곳.”

자, 꿈이라면 깨어야 할 시간이고.

현실이라면 조교를 붙잡고, 자신의 상황을 토로할 시간이 왔다.

정신병이 걸린 것 같으니 의병 제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세주는 몸을 돌렸다.

유령 꼬마가 잡을 줄 알았지만, 그는 묵묵히 돌아가는 세주를 지켜봤다.

이상하게도 그 눈빛이 섬뜩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알고 지낸 아이 같았다.

‘자자. 자고 일어나서 이 일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신병이 걸렸다고 의병제대를 요청하면 천국으로 이송을 보내줄 것 같았기에.

깔끔하게 모든 걸 잊어야 했다.

빠빠빠빠-빠빠빠.

기상나팔을 만든 자식의 대가리에 샷건을 쏘아주고 싶은 아침이 밝았다.

온몸에서 지르는 비명은 하나였다.

- 이대로 있다가는 과로로 뒤진다.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지구 맨틀에 닿을 것 같았다.

“으으윽.”

그건 A급 체력을 가진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그 개새끼 죽여야 하는데.”

김치용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침상을 정리했다.

우리 치용이는 참 한결같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욕을 내뱉지 않고는 깬 적이 없다.

모두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니, 여기가 훈련소인지 병실인지 구별이 안 된다.

34소대 5분대 전원이 아침 점호를 위해 모였다.

보통 모이자마자 뛰거나, 기괴한 짓을 시키는 조교들이 통제만 하고 그들을 놔뒀다.

“놔두니까 더 불안하네.”

옆에서 안경 남자가 말했다.

“그러게.”

세주가 답하자, 김치용이 옆에서 눈을 부라렸다.

“야, 안경.”

“이인준이다.”

“형님한테 말 놓지 마라. 죽여 버린다.”

김치용이 말하면 정말 죽일 것 같다.

고작 일주일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한 건 아니고, 본래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듣기로 그는 무슨 무슨 파의 행동 대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담스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당장 하루하루 살기 바쁜데, 옆자리에서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놈이 조폭인지, 교순지 알게 뭐냐.

“동기끼리 말을 왜 높여.”

시비시비 열매와 용기용기 열매의 2차전이었다.

역시나 말리는 건 세주의 역할이었고.

“분대장한테 물어보고 올 테니. 기다려 봐.”

세주가 말하고 강아지상의 누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은 분대장을 찾았다.

그는 막, 조교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분대 쪽을 향해 뛰어왔다.

“분대장.”

“네?”

“왜 훈련 안 해?”

“어제 동의서 쓴 거로, 약을 받으러 모두 의무실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서.’

몸이 너무 힘드니까, 머리도 안 돌아간다.

어제 동의서라는 것에 사인을 한 걸 잊고 있었다.

논산 훈련소에 모인 훈련 인원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의무대 앞에 모인 인원을 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어림잡아 천 명은 넘는 것 같다.

천 명이라고 하면 그리 많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한 장소에 모이니까 개미 떼 같아 보였다.

다만, 신병 훈련소와는 확실히 분리되었는지, 전부 군대를 다녀왔거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신병은 따로 훈련을 시킨다고 했지.’

박민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사이 모두가 의무대로 우르르 이동한다.

그리고 345분대도 안으로 들어갔다.

“참 받아들이기 힘든 처사다.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서명했지만, 이건 불합리해.”

시비시비 열매의 안경 남자가 옆에서 재잘댔다.

그런 얘기는 크고 우렁차게 하는 거다.

하지만 여긴 법보다 무서운 주먹보다 더 살벌한 총기가 있는 곳이기에.

모두 말없이 주사를 맞았다.

어깨에 따끔하게 바늘이 들어왔다.

“아.”

“엄살 부리지 않습니다.”

어깨에 바늘을 꽂는 의무병이 말했다.

어째 이 부대에 예의 바르고 싹싹한 청년은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참아야지.’

군대는 계급이 깡패고, 의무병은 작대기 네 개, 병장이었다.

주사기에 맑은 액체가 어깨를 통해 들어왔다.

싸늘한 감각이 어깨를 타고 내려온다.

‘안 좋은데.’

“웁.”

세주는 주사를 맞자마자, 구역질이 나왔다.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의무병은 그를 관찰할 뿐, 어떤 조치도 없었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간신히 참았다.

“본래 이런 겁니까?”

“거부반응이 있는 것 같은데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음!”

그가 나오자, 김치용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형님!”

그보다 바로 앞에서 주사를 맞은 김치용이 말했다.

“느껴지십니까?”

그러니까 뭐가?

‘아!’

근육통.

세주는 방금까지 전신에 어린 근육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

그날 밤.

세주는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거기 훈련병 뭐합니까?”

손전등이 그가 있는 곳을 비췄다.

손등으로 빛을 가리며 세주가 말했다.

“힘이 남아돌아서 나왔습니다.”

“뭐, 마음대로 합니다.”

싸가지 일병이 불침번이었다.

그는 말하고 돌아갔다.

‘염병.’

세주는 다시 삽을 들었다.

3단 야삽이 세차게 바닥을 찍었다.

“너 확실한 거지?”

“100%. 사람 못 믿고 살았어?”

세주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 꼬마가 말했다.

‘네가 사람이어도 불안한데, 유령이라 더더더더더더 불안해.’

라고 말할 순 없었다.

*

약을 맞은 직후 세주는 알 수 있었다.

근육통을 없애준 게 끝이 아니라는 걸.

“무슨.”

왜 운동선수들이 약을 빠는지 확실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스팀팩을 맞은 이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점프했다.

김치용은 가볍게 뛰어 1m 가까이 허공에 몸을 띄웠다.

‘저게 말이 돼?’

말이 된다.

지금 투입된 약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첫날 봤던 인간에게 교미 없이 알을 까는 성폭행 외계 괴물과도 할 만했다.

“그 괴물도 죽일 수 있겠는데.”

그건 세주 혼자만의 자신감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다시 연병장에 모였을 때, 악마 조교가 3중대 앞에 나섰다.

“어제 약속한 대로 나랑 싸워 볼 놈?”

많이 봐줘야 20대 후반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는 절대로 훈련병을 존대해주지 않았다.

소위라는 직책이 가져다준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었다.

“3455번 훈련병! 지원합니다!”

역시 주입식 교육이 최고다.

김치용의 입에서 일주일 만에 군인다운 말투가 나왔다.

가라! 너로 정했다.

김치용이 앞으로 나서자 하나둘 손을 들었다.

“다음에 제가 합니다! 3477번 훈련병!”

“3422번 훈련병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탈영과 기타 등등 빠진 사람을 제외한 180명의 중대원 중 다섯 명이 나섰다.

소위의 건방짐만큼이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광경이다.

“덤벼.”

소위는 웃는 낯으로 뒷짐을 진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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