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화 (1/206)

#  1

프롤로그.

강남 한복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시간이다.

12시 10분만 되도 식당 앞에 줄을 서지 않고는 점심 식사가 불가능한 서울 제일가는 번화가였다.

강남역 부근, 바삐 걷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모두 짙은 먹구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리 위에 현실과 동떨어진 물건이 날고 있었다.

은은한 노란 빛이 나는 거대한 동체.

한눈에 담을 수 없어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젖혀진다.

“비행기?”

“와.”

“뭐야?”

“영화 촬영인가?”

떠드는 사람들보다 말문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

SF 영화에서나 보던 우주선이었다.

배처럼 밑이 둥글었고,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로 거대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할 때, 우주선 밑이 빛을 내며 열렸다.

육각 모양의 흐릿한 잔상이 배 밑에 생겨났다.

그리고 그건 곧 모습을 바꿨다.

몇몇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하늘을 찍었다.

“대박.”

놀라운 일에 감탄을 쏟아졌다.

“레이저라도 쏠 것 같은데.”

누군가 말했다.

말 그대로 긴 포탑의 형태 같았다.

아무리 처음 보는 물건이라지만, 보기만 해도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피해야 하나?”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아무도 저기서 포탄이 쏘아져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과 함께 육각형의 끝, 어두운 구멍에서 빛이 번쩍였다.

2014년 10월.

서울 강남, 뉴욕 타임 스퀘어, 런던 트라팔가 광장, 하노이 36거리 등.

전 세계 도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외계 비행선, UFO의 습격이었다.

1. 반세주

8살 때로 기억한다.

목에 보자기를 감고 3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중력의 법칙에 충실히 따라 다리가 부러졌다.

병원 침상에 누운 아들을 보며 어머니가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왜? 슈퍼맨이 되고 싶었어?”

“응.”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아들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그럭저럭한 대학과 연애, 치열하게 공부하진 않았지만, 치열하게 잘 놀았다.

술과 담배를 즐기며 전체 사원 수 150명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서른셋의 남자.

그게 반세주였다.

그 남자가 지금 꿈인가 싶어 볼이라도 꼬집고 싶었다.

‘꿈일 리가 없지.’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건 굳이 팽이를 돌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훑었다.

입영통지서.

당신은 만 32세 현역으로 입대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외계인과 싸움으로….

주저리주저리 긴 프린트의 끝은 하나였다.

너 걸렸어, 군대로 튀어 와.

징병제로 운영하던 군대는 변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을 뺑뺑이를 돌린다.

재수 없으면 걸리고, 재수 좋으면 산다.

“이 나이에 군 생활을 다시 하다니.”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린다.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오피스텔 1층, 우편함에 한참을 그렇게 서 있자 경비 아저씨가 다가왔다.

“뭔 일 있어? 601호?”

“강아지 음경 같은 일이 있습죠.”

“으이?”

“군대 오랍니다.”

“군대?”

“네. 군대.”

“아따, 그 외계인이랑 싸운다고 하는 그 군대? 사망률이 50%라는 거기?”

뭐, 그렇게 자세히 말할 필요까지야.

말 안 해도 안다.

사망률 50%.

군에 끌려간 두 명 중 하나는 국립묘지에 시체도 없이 무덤이 만들어진다.

시체라도 돌아오면 다행이고.

세주는 경비 아저씨를 본체만체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익숙한 방이고, 익숙한 환경이다.

20살 때 신검을 받고 입대가 결정되었을 때도 담담했다.

‘아니, 당연하지.’

그 당시 군대는 남자들의 통과의례일 뿐이었고.

지금은 정말로 싸우러 가니까!

밤새 잠이 오지 않고, 소주라도 몇 병 까야 속이 시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주는 잠만 잘 잤다.

‘이미 벌어진 일 걱정해서 뭐 하냐?’

다행히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연봉은 좋아진다.

덕분에 사정이 어려운 집안 형편은 나아질 수도 있겠다 싶다.

좋은 면을 보려니, 또 괜찮아도 보인다.

“정말 다 좋은데.”

딱 하나가 싫다.

입대.

그거 하나만큼은 죽도록 싫었다.

*

“뭐라고?”

가는귀먹을 나이가 아닌데도 어머니가 되물었다.

옆에서 아버지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니 신기하긴 했다.

33년 동안 아버지의 저런 표정은 처음 봤으니까.

어릴 때 산에서 서바이벌을 한답시고 아들을 이틀을 산에 던져두던 양반이다.

덕분에 아들의 생활력과 생존력은 강해졌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어두운 곳에 가면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인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그런 강심장의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냐?”

“이런 거로 구라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갑니다. 아버지.”

“차라리 손목 하나 날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머니. 그래도 손 하나 버리라는 말씀을 그리 쉽게 하십니까?’

“그건 좀.”

세주는 긴말을 세 음절로 줄였다.

“물릴 순 없고?”

“혹시 집안에 장성급 군인분이나 국회에서 개싸움을 전문으로 하신 분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끝난 거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놈에게 선택지는 여전히 일지선다다.

“이왕 가기로 한 거라면, 차라리 마음 굳게 먹고 가.”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셨다.

충격받은 두 분을 보며 세주는 의외의 즐거움을 맛봤다.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엄마가 어디서 들었는데, 무조건 위험한 곳만 피하면 된다더라. 뭐라드라, 보급병? 그런 특기 받으면 좋다던데.”

“네. 좋겠지요.”

세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넌 어릴 때부터 똑똑했고 재주도 좋았으니까.”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셨다.

어머니가 손을 들어 세주의 뺨을 감쌌다.

“아들, 아들.”

“네.”

“아들.”

“네.”

어머니 눈가가 흐려졌다. 세주는 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어머니 등을 감싸 안을 뿐이었다.

“어릴 때 꿈이 슈퍼맨이었는데, 정말 그럴 기회가 생긴 것 같네요.”

세주가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

탕!

총알 소리가 헤드셋 안으로 들린다.

그리고 화면 상단 우측에 금발의 예쁜 여자 얼굴이 떴다.

그리고 세주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얼굴도.

“메류시 킬.”

헤드셋을 낀 세주가 말하자, 승리라는 두 글자가 화면을 채웠다.

개택구리 : 님. 프로심?

THIRD : 이게 말이 됨?

유이레 : 플필 보셈. 목뎃이 10점대임. 헐, 승률 백퍼.

소울 : 저랑 파티해요.

HARSALL : 이거 실화임?

게임이 끝나자 채팅창이 시끄러웠다.

입영통지서가 날아오면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보름.

당장 회사에 사표를 낸 세주는 집에서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다.

밥도 컴퓨터랑 먹고, 술도 컴퓨터를 친구 삼아 마셨다

“역시 내 클라스는 어디 안 가지.”

부캐를 키워서 양민 학살만 여섯 시간째, 허리가 뻐근했다.

어릴 때부터 맞추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장난삼아 던진 돌로 비둘기를 맞혀서 떨어뜨린 건 회사에 전설로 남남았다.

그건 게임에서도 통용되었다.

돌이 마우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로게이머나 할걸.”

하지만 세주가 어릴 때는 고급 시계란 게임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가 유명할 때다.

자의적으로 나흘 동안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세주는 깨달았다.

‘노는 게 제일 좋아.’

뽀통령으로 환생하고 싶었다.

“에효. 내 팔자야.”

입대라는 두 글자가 돌덩이가 돼서 양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보름을 오로지 노는 데에 집중하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세주는 논산으로 가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재산이랄 것도 없는 걸 부모님께 드렸다.

어머니는 그 날 이후 울지 않으셨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자 아버지가 말했다.

“남자라면 할 땐 하는 거다.”

“나서지 말고, 뒤에 있어. 그럼 돼.”

어머니가 뒤질세라 아들을 향해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그렇게 세주는 논산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자리에 풀썩 앉으니 곧 창밖으로 부모님이 뒤로 밀려 나간다.

사방에 우리 아들은 안 된다. 내 딸은 안 된다고 외쳐 대는 사람들.

눈물로 헤어지고, 화를 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세주는 자기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세주는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뒤로 몸을 기댔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십 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혼자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것 같았다.

그 모습 마지막으로 세주는 잠을 청했다.

*

도착하면 제식 훈련부터 군가 외우는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당최 아는 게 없었다.

인터넷을 포함해 여기저기 찾아봐도 뚜렷한 정보가 없어서, 무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보급대로 가면 안전하다, 또는 통신병이나 CP병이 최고라는 등 뜬소문인 카더라 통신뿐이었다.

열차가 멈추고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다.

“남자는 내가 보는 방향에서 우측, 여자는 좌측으로 움직입니다.”

세주의 앞에서 머리를 빡빡 민 남자가 말했다.

“총 200명. 완료. 출발합니다.”

200명씩 조를 나눴고, 세주는 세 번째 조였다.

“자, 3조. 인원 보고 완료. 출발합니다.”

3조의 인솔자는 작대기 세 개를 단 상병이었다.

그는 짬밥을 좀 먹었는지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그들을 이끌었다.

‘조교 운은 좋네.’

보통 훈련소에서 조교 잘못 만나면 고생하는 법이다.

성격이 지랄 맞은 조교보다 계급 낮은 조교가 더 나쁘다.

남들 쉴 때 잡초 뽑고, 훈련 동선이 꼬여서 남들의 배나 걷고 싶지는 않았다.

“오와 열 맞춥니다. 거기, 세 번째!”

조교가 외쳤다.

“괜찮아요?”

세주가 옆을 보고 물었다.

옆에서 아까부터 으으 거리면서 신음을 흘리고 있다.

“전원 정지!”

조교가 결국 200명을 멈췄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배가….”

말하며 남자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나 되는 것 같았다.

“이봐요!”

세주가 급히 그의 어깨를 잡았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목덜미부터 발목까지 쫙 흘렀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떼고 뒷걸음질을 쳤다.

“물러나!”

거의 비슷한 타이밍으로 누군가 외쳤다.

파아악!

쓰러진 남자의 등이 터졌다.

붉은 피가 나와야 할 곳에서 녹색의 체액이 뿜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의 등에서 촉수가 튀어나왔다.

정면에서 그걸 본 세주는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졌고, 조교가 다가와 그를 당겼다.

“소위님!”

조교의 외침.

동시에 남자 넷이 튀어나온다.

처음 보는 두꺼운 장갑을 몸에 걸친 이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소총이 불을 뿜었다.

투다다다다다!

세주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놀란 몸은 반응하지 못했다.

총알 세례가 정체 모를 괴물에게 쏟아졌다.

녹색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떨어진 탄피가 주변에 널렸다.

“정지!”

필요 이상으로 집중된 화력이었지만, 견착 후 정확히 목표를 노린 사격이었다.

그들은 도탄 한 발 없이 목표물을 걸레로 만들었다.

넘어진 세주의 발밑으로 녹색의 피가 물처럼 흘렀다.

“다들 물러나!”

총을 쏜 남자 하나가 외쳤다.

그러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르르 큰 원을 만들며 물러났다.

“뭐야?”

“아이, 시발.”

“저거 외계인 아냐?”

다른 조들이 먼발치서 보며 떠들어댔다.

“여기 격리하고, 체액 감염된 사람 전부 소독실로 보내.”

“넵!”

조교가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답했다.

“근방에 있던 훈련생, 조교 따라옵니다.”

그 남자 옆으로 소총을 맨 남자 셋이 그대로 녹색 물을 뱉은 시체, 아니 이제는 걸레로 쓰지 못하게 분해된 것을 감싸듯이 섰다.

세주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그다음이었다.

‘간 떨어질 뻔했네.’

방금 봤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애초에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조교 말 들리지 않습니까?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한 열에 5명씩, 앞뒤로 총 열네 명이 조교를 따라가야 했다.

세주도 그중 하나였다.

간신히 일어나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러니 좀 걸을 만했다.

“출발!”

그는 다른 조교에게 자신의 조를 맡기고는 그들을 인솔했다.

“여기로 들어갑니다.”

커다란 컨테이너 같아 보였다.

본래 군대란 실용성을 최고로 친다지만, 멋이라고는 세주가 가진 재수만큼이나 없었다.

‘첫날부터 아주 액땜하는구나.’

“그거… 외계인입니까?”

누군가 조교에게 물었다.

각진 모자 밑으로 조교의 눈이 질문한 이에게 향했다.

“지금 본 조교에게 말씀하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질문했던 사람은 겉보기에는 마흔 줄이 넘어 보였다.

추첨제로 바뀐 입대 제도는 자원하지 않으면 40대 이상의 사람은 제외된다고 알고 있었다.

‘설마 자원한 건가?’

“본 조교 아직 질문 안 받습니다. 신속히 들어갑니다.”

세주는 입을 다물고 안으로 향했다.

물음에 대답은 없었지만, 전부 알았다.

그건 외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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