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149)

“끝이라…….”

칼릭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나는 곧바로 그에게 공격을 가했다. 끝을 내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듯 그의 주변 땅이 뾰족하게 일어나 그를 공격했다.

칼릭스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얼음 송곳이 튀어나왔다.

칼릭스는 마치 검은 불길처럼 타오르는 검을 만들어 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얼음 송곳은 가볍게 썰려 나갔다.

쿠르릉-

그의 위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칼릭스가 제 머리 위를 힐끗 올려다보는 순간 번개가 그를 향해 내려쳤다.

콰아앙!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쨍한 빛이 눈을 찌르는 듯했다. 이나가 잠시 손등으로 눈을 가리는 동안 볼트가 중얼거렸다.

[성공한 건가?]

“아니.”

이나는 제게 날아오는 마력의 흐름을 눈치채고 곧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녀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어둠으로 이루어진 비수가 꽂혔다.

피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땅에 박혀 있던 비수가 갑자기 그녀에게로 훅 뻗어 와 다리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어둠이 끌어당기는 힘 탓에 이나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옆쪽에서 다른 비수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날아왔다.

“리카!”

마치 검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이나를 붙잡은 어둠을 끊어 냈다. 이나가 빠르게 옆으로 피하자 비수가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이나는 비수가 날아온 방향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칼릭스가 검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씩 웃고 있었다.

“역시 셀리나. 감이 전혀 죽지 않았구나.”

“시끄러.”

이나는 눈살을 찡그리고는 그의 주변에 불을 만들어 냈다.

불은 마치 감옥처럼 칼릭스를 조여 갔다. 이내 그의 모습이 불의 감옥에 완전히 삼켜지던 찰나, 갑자기 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런 장난 같은 공격만 할 생각이야?”

자신의 마법으로 불을 상쇄시킨 칼릭스가 그 안에서 빠져나오며 이나에게 달려들었다.

까맣게 타오르는 검이 이나를 노리고 허공을 갈랐다. 이나는 뒤로 피하며 물방울을 만들어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물방울이 그의 검을 삼켜 붙잡자 칼릭스가 이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그 안에서 어둠으로 이루어진 대포 같은 것이 튀어나와 이나에게 쏘아졌다.

“이즈!”

허공에서 물이 뭉쳐지더니 그의 공격을 삼켜 버렸다. 그것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칼릭스는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퍼엉!

어둠으로 이루어진 구가 얼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 파편들이 날아오자 이나는 두꺼운 얼음의 벽을 세워 그것들을 막아 냈다.

채앵!

하지만 얼음의 벽은 칼릭스의 이어진 공격에 산산조각 났다.

얼음의 벽에 가까이 붙어 있던 이나는 팔을 들어 올려 쏟아지는 얼음덩어리들을 막았다.

그 순간 눈앞에서 손이 쑤욱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커윽……!”

“계속 이런 식으로 했다간 나한테 잡아먹힐 텐데?”

칼릭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주원의 몸을 차지할 때도 흘러나왔던 연기였다.

그것이 이번엔 이나를 삼키고자 움직였다.

“누가 누구한테 잡아먹힌다는 거야?”

이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그녀의 뒤편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져 칼릭스는 고개를 들었다. 불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그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용은 그를 덥석 물더니 그대로 뒤로 밀어냈다. 칼릭스는 그 상황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역시. 이렇게 나와야지.”

콰앙!

그의 몸이 화염룡과 함께 땅에 처박혔다. 이나는 목을 문지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나 보네.”

그녀의 말대로 칼릭스는 곧바로 일어나 이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즐거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좋아. 바로 그거야, 셀리나!”

“미친놈.”

이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태연한 말투와 달리 몸은 긴장한 상태였다. 칼릭스의 몸에서 수상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탓이었다.

“어디 본격적으로 해 보자고.”

그 말과 함께 칼릭스가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편에서 검은 연기가 뭉쳐졌다.

그것은 점점 거대하게 변하더니 이내 드래곤의 모습을 띠었다. 뿔까지 완벽하게 돋아난 드래곤이 눈을 뜨자 칼릭스의 것처럼 붉은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쿠어어어!”

검은 드래곤이 천지를 울릴 정도로 거대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나는 귀를 막고 있다가 기가 죽은 정령들에게 말했다.

“우리라고 못 할 게 뭐가 있어?”

이나는 제 어깨 위의 파인을 힐끗 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파인이 다시 기를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파인은 아까 칼릭스를 공격했던 그 용을 다시 한번 만들어 냈다. 용을 본 검은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쿠어어!”

드래곤과 용이 하늘에서 맞닥뜨렸다. 드래곤은 잠시 힘을 모으더니 용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용은 길고 날씬한 몸을 움직여 브레스를 피해 다녔다. 물론 피하기만 하진 않았다.

브레스를 피하는 척 점점 드래곤의 가까이로 향하던 용이 이내 드래곤의 목덜미를 콰직, 물어뜯었다.

“크어어!”

드래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제 목을 물고 있는 용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잡아 뜯으려 했다.

용은 당하기 전에 드래곤의 목을 놓고 멀어졌다. 그리고 드래곤이 그랬던 것처럼 입에서 붉은 불꽃을 내뿜었다.

“어딜.”

그 순간 칼릭스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드래곤의 앞에 검은 장막이 펼쳐지더니 용의 불꽃을 막아 냈다.

그것을 방패 삼아 드래곤이 용을 향해 날아갔다. 이내 두 신화 속 존재가 맞부딪쳤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겠지?”

칼릭스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 이나를 향해 말했다.

마찬가지로 용에 힘을 집중하고 있던 이나는 제게로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칼릭스가 검을 만들어 내 이나에게 달려들었다. 시현이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거대하고 검은 기운이 그의 검을 감쌌다.

다만 그것은 시현의 것과는 다른 사악한 기운이었다.

이나는 제게 향하는 검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까처럼 괜히 방어에 집중했다가 발목이 잡히는 일은 사양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격에는 공격으로 방어하는 게 최선일 듯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나는 전기로 이루어진 창을 만들어 내 그에게 던졌다. 조금만 닿아도 몸이 마비될 정도의 높은 전력을 지닌 창이었다.

칼릭스가 그것을 제 검으로 모두 쳐 냈지만 반으로 갈라진 전기의 창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번쩍거렸다.

그 탓에 전기에 몸이 닿은 칼릭스가 몸을 떨며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 이나는 하늘로 손을 들어 올렸다.

쿠르릉-

마치 분노한 것처럼 하늘이 울더니.

콰아앙!

순간 주변이 번쩍하며 번개가 칼릭스를 향해 내리꽂혔다.

“큭……!”

번개를 제 검으로 막은 칼릭스가 힘에 눌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까의 공격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막기가 버거운 것이었다.

이나는 그가 반격할 틈은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번개를 계속 내리치며 다른 한편으론 칼릭스의 양쪽으로 석창과 빙창을 만들어 내 그에게 날렸다.

퇴로가 모두 막혀 버리자 칼릭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설마 이것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그의 입 모양을 본 이나가 멈칫했다.

그 순간 그녀의 모든 공격이 칼릭스를 강타했다.

쿵! 슈우우-

칼릭스가 또다시 땅에 처박히고, 그 주변으로 먼지바람이 날렸다.

이나도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이미 그들의 전투에 휘말려 대부분 목숨을 잃은 뒤였다.

이나는 확인을 위해 천천히 칼릭스가 떨어진 장소로 걸어갔다.

그러자 곧 입에서 피를 흘리며 제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는 칼릭스가 보였다.

이나는 서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뭘 하려고 했던 건진 몰라도 여기서 널 없애면 그 짓을 하지 못하겠지.”

“글쎄. 어떨까.”

칼릭스가 히죽 웃었다. 이나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낼 때였다.

이나의 손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검이 잡혔다. 이나가 그것으로 그대로 칼릭스를 베어 내려는 순간이었다.

텁-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린 이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 공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중얼거림이 이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을 들은 정령들이 이나를 쳐다보았다.

[이나야?]

[저 정령은 누구야?]

이나는 그 질문들을 듣지 못하는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무시한 채 칼릭스의 옆에 서는 인간 모습의 정령을 응시했다.

문득 눈앞의 정령이 과거에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셀리나,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정령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말했었다.

[당신은 제가 지금껏 만난 계약자들 중에서도 특별해요. 그러니 당신이 언제나 웃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정령은 그녀의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쭉 올리기도 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면서.

그리고 그건 과거의 이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정령이 늘 그때처럼 웃길 바랐다.

이나는 이를 까득 갈며 중얼거렸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웃었으면 좋겠다며. 그런데 너는 칼릭스의 곁으로 간 거야……?”

하지만 언제나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주던 정령은 지금 그 입을 일자로 다문 채였다.

이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정령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 좀 해 봐, 엘리아스!”

“하하하하!”

그 순간 칼릭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만족에 찬 웃음소리였다.

이나는 칼릭스를 노려보았다. 엘리아스가 그를 부축하고 일으켰다.

이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칼릭스는 여전히 히죽 웃는 채로 입을 열었다.

“이런, 셀리나. 엘리아스는 더 이상 네 정령이 아니야.”

“뭐?”

“엘리아스는 이제 내 정령이야. 엘리아스가 언제까지고 네 정령으로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어?”

이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엘리아스. 전생의 세계에서 일평생 그녀와 함께했던 정령.

그 정령이 지금 칼릭스와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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