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149)

소피아의 손짓에 수룡 아라베우스가 입을 쩍 벌리고 이나를 공격했다.

이나는 뒤로 훌쩍 물러나 피하긴 했지만 이나가 서 있던 곳의 땅은 처참히 파헤쳐졌다.

그것을 본 이나가 소피아를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왜 수룡이 저 녀석 말을…….”

“별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소피아가 싱긋 웃으며 답해 주었다.

“키메라를 제작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세요?”

“알 게 뭐야.”

“바로 살아 있는 몬스터예요. 하지만 전투계 헌터도 아닌 제가 살아 있는 몬스터를 얻을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그래서 제게 부여된 스킬이 하나 더 있답니다.”

소피아가 손뼉을 짝 치며 쾌활하게 말했다.

“바로 테이밍 스킬이죠. 이게 있다면 몬스터들을 손쉽게 길들일 수 있으니까요.”

이나가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저 말은 즉, 수룡 아라베우스를 테이밍 스킬로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르르…….”

공격에 실패한 아라베우스가 낮게 울며 무언가를 몸 안에서 끌어 올렸다.

잠시 후 수룡의 눈이 번쩍하더니 입에서 물 대포가 쏟아져 나왔다.

물은 정확히 이나를 노렸지만 이나가 요리조리 피하는 통에 그 과정에서 약한 키메라들이 쓸려 나갔다.

제 키메라들이 쓸려 나갔지만 소피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

물 대포를 피하던 중 마르코스와 싸우고 있는 시현과 도하가 이나의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꽤 버거운지 이미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반면 마르코스는 상처 하나 없이 쌩쌩했다.

마르코스가 다시 두 사람에게 달려들려 하자 이나는 일부러 그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수룡의 물이 마르코스를 향해 날아갔다.

“쯧!”

혀를 찬 마르코스가 어쩔 수 없이 물을 피하기 위해 물러섰다. 그러더니 소피아를 향해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봐, 할망구! 방해하지 말라고!”

“지금 말 다 했어요, 마르코스?”

소피아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대꾸했다.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느라 공격이 잠깐 멈추었다. 그사이 이나는 시현과 도하에게 다가갔다.

“둘 다 괜찮아요?”

“안 괜찮아. 망할. 안 그래도 힘이 센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괴력을 가지고 나타났어.”

도하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독에 찬 눈이 소피아와 말다툼하는 마르코스를 노려보았다.

시현도 숨을 고르다 도하의 말을 거들었다.

“게다가 저 검, 이상한 능력이 생겼습니다.”

“이상한 능력이요?”

“검이 저희의 피를 먹을수록 마르코스의 힘이 더욱 강해집니다.”

이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해괴한 능력이었다.

‘이대론 안 돼.’

여기서 두 사람을 도와야 했다.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신경은 계속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루엔…….’

루엔은 텅 빈 눈으로 소피아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소피아가 루엔에게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초조했다.

그런 이나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시현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나 씨, 여긴 저희끼리 알아서 해결해 보겠습니다.”

“……아뇨. 저도 같이 싸울 거예요.”

“이나 씨.”

“괜찮아요. 이번엔 어느 한쪽도 놓치지 않을 거니까.”

의미심장한 말에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는 그를 향해 살포시 웃어 보인 뒤 스킬 창을 열어 한 스킬명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면 쓸 수 있어.’

<일체화>. 지금까지 스스로 봉인해 두었던 능력.

하지만 이제는 써야 했다.

이나는 망설임 없이 <일체화>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일체화(L)>를 사용할 정령을 선택해 주십시오.

사용 가능 정령: 이즈, 리카, 파인, 볼트, 윈티, 네움⌟

다행히 전체적으로 감응도가 부쩍 올라 그녀의 정령들 모두 스킬 사용이 가능했다.

이나는 고민하다가 그중 이즈를 선택했다.

[어?]

이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더니 이나에게 물었다.

[이나야?]

‘이즈, 내가 전에 <일체화> 스킬에 대해서 말해 주었던 거, 기억하고 있지? 지금부터 그걸 쓸 거야.’

이나는 이즈에게 <일체화> 스킬을 쓰게 되면 일어날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믿음을 담아 물었다.

‘잘할 수 있지?’

[응!]

‘좋아.’

이나는 이즈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때마침 마르코스와 소피아가 말다툼을 끝내고 다가왔다. 어쩌다 보니 팀전이 되어 버렸지만 이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모두 쓸어 버릴 예정이니까.

‘일체화.’

이나가 스킬을 발동한 순간, 몸 안에 있던 마력이 쑤욱 빠져나갔다.

높은 마력과 마나 소모량을 40%나 감소시켜 주는 칭호 덕에 이나는 지금까지 마력을 많이 소모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만큼 빠져나가는 것을 보니, 과연 L급 스킬다웠다.

대신 현기증이 좀 일었다.

“윽…….”

“이나 씨!”

이나가 비틀거리자 시현이 놀라서 다가왔다.

하지만 고개를 스윽 돌린 이나와 눈을 마주한 순간 그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까맣던 이나의 눈이 지금은 마치 바다처럼 푸르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 시현은 그게 낯설면서도, 동시에 낯설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즈……?”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나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야, 너……?”

“지금 뭘 한 거죠?”

이나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자 도하도 소피아도 긴장했다.

반면 이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이제는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더니 가벼운 투로 말했다.

“아아. 이 느낌 오랜만이네. 다신 겪고 싶지 않았는데.”

“무슨……?”

“하지만 또 그립기도 했지.”

이나가 푸르게 변한 눈을 시리게 빛내며 웃었다. 그에 소피아가 멈칫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몸을 사리는 소피아와 달리 일단 건드리고 보는 성격의 마르코스가 이나에게 검을 세우고 달려왔다.

“뭘 하려는진 몰라도 내 힘 앞에선 그래 봤자지!”

시현과 도하가 이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퍽!

“컥!”

“……?”

“뭐야?”

시현과 도하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다에서 갑자기 물 덩이가 튀어나오더니 마르코스를 정확히 강타했다.

그 힘이 꽤 셌는지 마르코스가 날아가 나무에 부딪쳤다. 그리고 윈티가 물을 그대로 얼려 그의 몸을 나무에 포박했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한 마르코스까지도.

이나만이 태연한 얼굴로 말할 뿐이었다.

“넌 좀 가만히 있어. 정신 사나우니까.”

“이……!”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마르코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더니 그가 오른팔을 움직여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소피아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뭐 해요, 수룡! 어서 공격하세요!”

소피아가 수룡 아라베우스에게 명령해 이나를 공격하게 시켰다.

그런데 테이밍 스킬로 길들인 수룡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수룡!”

“끄으응…….”

수룡에게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킬을 거부하긴 어려운지 아라베우스가 이나를 힐끗 보았다.

“왜? 해 보려고?”

하지만 이나의 시린 눈과 마주하는 순간, 아라베우스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라베우스……?”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소피아가 수룡을 불렀다.

S급 던전의 주인이자 보스 몬스터인 아라베우스가 이나를 보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자, 잠깐! 멈춰!”

소피아의 외침은 듣지도 않고 아라베우스는 그대로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허망한 광경에 소피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귓가에 이나의 목소리가 꽂혔다.

“현명하네.”

“당신…… 대체 뭘 한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만 다들 그렇잖아. 지배자의 앞에선 모두가 작아지지.”

“지배자……?”

소피아가 중얼거리는 말에 이나가 빙긋 웃었다.

마침 얼음을 모두 깨고 나온 마르코스가 모래사장에 떨어뜨렸던 대검을 쥐고 소피아에게 말했다.

“겁먹지 마, 할망구. 다 허세야.”

“하지만…….”

“지배자든 뭐든.”

마르코스가 검을 치켜들어 그 끝으로 정확히 이나를 가리켰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면 더 이상 지배자가 아니라고!”

“그래? 그럼 한번 내려오게 만들어 봐.”

이나가 빙긋 웃으며 팔을 뻗었다. 이나가 능력을 쓰려는 듯하자 마르코스가 얼른 그녀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물이……?”

퍼석퍼석하던 모래사장이 지금은 얕은 물에 잠겨 그의 발을 적시고 있었다.

게다가 이 거대한 그림자.

마르코스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입을 떡 벌렸다.

“저, 저게 뭐야!”

거대한 파도가 바다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을 한두 개쯤은 우습게 삼켜 버릴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다.

마르코스는 그들을 집어삼킬 듯 점점 가까워지는 쓰나미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할망구!”

“그렇게 부르지 말랬죠!”

소피아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다급히 키메라를 불렀다. 날개가 달린 사자 모습의 키메라가 그녀와 마르코스에게 달려왔다.

두 사람은 키메라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에서라면 저 쓰나미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어딜.”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일대의 모든 물은 이나의 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하늘로 올라갈수록 쓰나미는 점점 더 거대해졌다. 소피아와 마르코스가 아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콰아아아-

쓰나미는 기어코 두 사람을 삼켜 버렸다. 아니,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던전의 모든 필드를, 쓰나미가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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