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149)

“누구……?”

이나가 여전히 멍한 시현은 제쳐 두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K인가 싶어서 경계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이나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하고 있었다. 이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도하가 히죽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오랜만이네.”

게다가 아는 사이인지 친근하게 인사를 받아 주기까지 했다.

……아니다. 친근하다는 말은 취소다. 서로를 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도하에게 슬쩍 물었다.

“도하 씨, 누구예요?”

“전에 나한테 시비 걸었다가 발린 놈.”

“누가 발렸다는 거냐!”

도하가 대놓고 크게 얘기하자 상대방이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이나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증거로 상대 헌터가 무기를 꺼내 도하를 겨누었다.

“이번에야말로 네놈의 그 오만한 자신감을 꺾어 주마!”

“오. 해 보자는 거?”

도하도 마찬가지로 언월도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아까 그 준비 운동은 지금을 위한 것이었던 듯했다.

이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시현이 그랬던 것처럼 도하에게 슬쩍 말했다.

“적당히 해요.”

“알았어.”

도하가 지루하던 차에 잘됐다는 얼굴로 상대 헌터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상황을 주시하던 주변의 몇몇 헌터들도 싸움을 구경하러 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여간에 정상인이 없어, 정상인이.’

이나는 속으로 푸념하며 시현을 힐끗 보았다. 그는 여전히 어딘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그의 나사 빠진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이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현 씨, 괜찮아요?”

“괘,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이나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시현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모습이 또 어여뻐서 시현은 차마 이나의 얼굴에다 대고 그녀 때문에 그렇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지금 상황을 회피하기로 결정했다.

“크흠! 그나저나 K로 짐작되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군요.”

“그러게요.”

K가 언급되자 이나도 표정을 싹 바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걸까요?”

“그렇다 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몸을 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음.”

이나는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시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십니까?”

“그게…… 조금 아쉬워서요. 이번에야말로 K의 꼬리를 밟을 수 있나 싶었는데.”

“너무 초조해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찾고 있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요.”

“무엇이 말입니까?”

“K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까 봐요.”

그 말에 시현이 멈칫하고 이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나 씨 걱정은 안 하십니까?”

“네?”

“K가 노리는 건 이나 씨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이나 씨 걱정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시현은 다른 사람들보다 이나가 더 걱정이었다.

하늘의 새처럼 모든 걸 내려다보고 곤란한 사람을 돕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 천조. 그곳의 길드장답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랬다.

그만큼 이나는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지금으로선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그런 존재가.

그래서 답답했다. 모처럼 생긴 정말로 지켜 주고 싶은 존재가 정작 자신은 챙기지 않으니까.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나는 피식 웃었다. 어쩐지 씁쓸한 기운이 담긴 미소였다.

“괜찮아요. 아마 전 무사할 거예요.”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건…….”

이나는 말끝을 흐렸다. 칼릭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현에게 해도 될지 망설여진 탓이었다.

아마 칼릭스가 있는 한 이나는 죽지 않을 터였다. 그가 그녀를 원하고 있으니까.

세계를 넘어 쫓아온 정성으로 봐선 이나가 죽게 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

칼릭스의 말을 떠올린 이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시현의 얼굴도 따라서 어두워졌다.

이나가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시현도 알고 있었다. 누구나 비밀은 있는 법이라지만, 시현이 보기에 이나는 그 비밀로 인해 무척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현은 그녀의 비밀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토록 그녀를 괴롭게 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길 원했다.

그러려면 우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연회장에 은은하게 퍼지던 음악이 뚝 끊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의아해하는 얼굴을 했다.

오직 한 사람, 데이비드만 제외하고.

어느새 준비된 단상에 올라가 있던 그가 목을 가다듬더니 눈앞의 S급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파티가 무르익어 가는 이 시점에서, 슬슬 이벤트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이벤트?’

이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응시했다. 때마침 데이비드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의아해하는 그녀를 보며 데이비드가 빙긋 웃더니 설명을 해 주었다.

“제 연회에 처음 오신 분들은 무슨 얘긴지 모르실 테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연회를 열 때마다 매번 이벤트를 준비하곤 합니다. 상품은 S급 아이템으로, 그것을 얻는 방법은 매 연회마다 다르죠.”

“아.”

도하가 말한 게 이거구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나가 얌전히 데이비드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이번 연회의 이벤트에 대해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오늘의 이벤트 주제는 바로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찾기?”

“그냥 찾으면 되는 건가?”

헌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데이비드에게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그저 웃으며 연회장 바깥을 가리켰다.

“주제 그대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현재 이 저택 곳곳에 여러 아이템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중 S급 아이템은 오직 하나뿐이죠. 이벤트는 그 아이템을 찾는 사람이 나오면 끝입니다.”

힌트는 없지만 스킬 사용에 제한은 없다.

이어진 설명에 헌터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 말은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소리였으니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데이비드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정확히 5초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3, 2, 1……. 시작!”

헌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회장 바깥으로 우르르 달려 나갔다. 남아서 연회장부터 뒤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나와 시현은 멀뚱멀뚱 서 있다 연회장에 남아 있는 쪽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S급 상품에는 관심이 없었다.

데이비드도 그것을 느꼈는지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 분은 이벤트에 참여 안 하십니까?”

“어……. 쉬엄쉬엄 하려고요.”

모처럼 준비한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뭐했기에 이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둘러댔다.

그때 바깥에서 쾅,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 보니 내가 먼저 찾았다, 하며 싸우는 소리였다.

꽤 소란스러웠지만 데이비드는 평온했다.

“이번에도 아이템 때문에 다투는 분들이 나타났군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S급 아이템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찾는 사람이 나올 때까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드는 허허 웃었다. 가만 보니 이 사람도 성격이 그다지 좋진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들이 자신의 밑에서 구르는 것을 보는 걸 즐기는 듯한…….

‘……아니, 더 이상 상상하지 말자.’

아무튼 도하가 말한 변태 같은 취향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상황이었다.

잠시 대화의 흐름이 끊기자 이나는 이쯤에서 아이템을 찾으러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 쌍둥이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있던데, 혹시 손주분들인가요?”

“네?”

데이비드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이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요?”

“허허. 이곳은 S급 헌터들의 연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제 손주들을 데리고 올 리가 없잖습니까.”

“네?”

“그리고 제 손주들 중엔 쌍둥이가 없습니다.”

단호한 말에 이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그 애들은 누구지?’

데이비드는 어디서 애들이 몰래 들어왔나 보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에 이나도 의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나와 시현도 아이템을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이미 사람들이 한바탕 헤집었는지 바깥의 정원은 아주 엉망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물론 S급 아이템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그들의 마음도 이해는 됐지만, 아름답던 정원이 망가지니 이나는 조금 씁쓸해졌다.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던 시현이 한 곳을 가리키며 이나에게 말했다.

“저는 저곳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저쪽을 살펴볼게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이나와 시현은 떨어져서 아이템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미 사방이 잔뜩 파헤쳐진 상태였지만 그냥 기분이라도 내기 위함이었다.

[이나야, 이나야. 나 저쪽 찾아봐도 돼?]

[그럼 이 몸은 저쪽을 찾아보겠네!]

“그래, 그래.”

노는 걸 좋아하는 정령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금의 상황을 즐겼다.

이나는 파인과 네움만 남기고 다른 정령들을 풀어서 아이템을 찾아보게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분수대 근처를 기웃거렸다.

그때 파인이 그녀를 불렀다.

[어? 이나야.]

“왜? 뭔가 찾았어?”

[아니. 그건 아니고…… 저기.]

파인이 꼬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쪽을 본 이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애들은…….”

아까 그 쌍둥이가 건물 모퉁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들은 방긋 웃으며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마치 와 보라는 듯한 행동에 이나는 순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쌍둥이가 동시에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래, 안녕. 근데 너희들, 대체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고.”

“그냥 들어왔는데?”

“뭐?”

S급 연회가 열리는 만큼 이곳은 보안이 철저했다. 이나가 아이들을 데이비드의 손주라고 생각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이나가 당황하는 사이 쌍둥이는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대뜸 말했다.

“우리랑 같이 가자!”

“같이 가다니……. 어딜?”

“누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쌍둥이의 푸른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은 이나가 뒷걸음질을 쳤다.

“너희 대체…….”

하지만 자리를 벗어나기엔 늦어 버렸다.

쌍둥이와 눈을 마주한 순간 이나의 정신은 깊은 환상의 호수에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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