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49)

최성찬이 이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근처의 넓은 공터였다. 사람이 찾지 않아 녹슨 철봉이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최성찬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나와 옆에서 그녀를 빤히 응시하는 한주원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기회야.’

그것도 초특급 기회 말이다.

성찬 길드는 S급 헌터가 없는 중소 길드로서 지금껏 A급 이하의 던전들만 전전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려 S급 스킬이 있었다. 비록 다른 스킬들의 등급이 낮아 S급 헌터는 되지 못했지만 이 스킬만 있다면 S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헌터 협회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S급 스킬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의 등급은 A에 그쳤으니까.

최성찬은 그 사실이 못내 분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자신의 능력을 헌터 협회에 보여 주기로 했다.

S급 헌터인 이나를 누르면 그와 길드의 위상이 올라갈 터. 헌터 협회도 어쩌면 마음을 바꿔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무명의 길드장이라는 확실한 증인도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이나를 이겨야겠지만, 최성찬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S급이라 해도 이나는 이제 막 각성한 애송이 헌터였다. 던전 몇 군데 돌아 봤다고 해 봐야 그보다 더 많이 돌진 않았을 것이었다.

경험으로 따지면 그가 위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 스킬만 있다면…….’

최성찬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이나의 맞은편에 섰다. 그들의 주위를 성찬 길드원들과 한주원이 빙 둘러 에워쌌다.

이겨야 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 생각에 검을 잡은 최성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가 손을 들어 올리면 시작하는 겁니다.”

심판을 자처한 한주원이 중앙에서 팔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최성찬도 이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한주원이 시간을 두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시작!”

한주원의 구호 소리와 함께 최성찬이 공격을 시도했다.

그의 검이 가장 먼저 이나의 정면을 베어 왔다. 이나는 뒤로 가볍게 점프해 그것을 피했다.

아니, 점프했다기보단 가볍게 날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우아한 움직임이었다.

최성찬은 바로 공격을 이으며 이나의 능력에 대해 떠올렸다.

‘분명 정령사라고 했지.’

주변에 둥둥 떠 있는 저것들이 정령들일 터였다. 그는 이나가 기자 회견에서 정령들을 소개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성찬은 일단 그녀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가벼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이나도 같은 생각인지 적당히 능력을 쓰고 피하며 그를 상대했다.

그녀와 대련을 이어 나갈수록 최성찬에게 드는 생각은 한 가지뿐이었다.

‘꽤 귀찮은데.’

그의 공격은 계속 가로막히고 있었다.

그가 이나의 옷깃이라도 벨라치면 그녀는 곧바로 바람을 일으키며 피해 버렸다. 심지어는 땅을 일으키거나 얼음 방패를 만들어 막기도 했다.

주변 환경이 모두 이나를 돕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성가신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다못해 피하는 거라도 막을 수 있다면…….’

최성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빠르게 정령들을 훑었다.

그러다 이나가 또다시 바람으로 회피하는 순간, 날개를 파닥거리는 정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인가?’

최성찬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동시에 그는 숨겨 두었던 S급 스킬을 발동했다.

‘무력의 반격!’

그의 몸에서 마력이 쑥 빠져나갔다. S급 스킬이라 마력 소모가 상당했지만 그는 버텼다.

이 S급 스킬을 쓰기 위해 착실히 마력 스탯에 포인트를 분배한 보람이 있었다.

<무력의 반격(S)>. 이름만 봐선 무력하기 그지없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스킬 내용을 보았을 때 최성찬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스킬은 상대방의 능력을 일정 시간 동안 봉인, 즉 무효화시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스킬은 ‘반격’을 용이하게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동안 스킬 시전자의 공격력과 속도는 20%나 늘어나니까.

그가 괜히 S급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었다.

최성찬은 무효화시킬 대상을 선택했다. 처음엔 이나를 선택하려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가 기자 회견에서 했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정령의 능력을 쓸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빌려 쓰는 것에 가깝지만요.”

빌려 쓴다. 그 말은 이나의 능력이 그녀의 것이 아니라 정령들의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이나의 능력을 무효화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최성찬은 스킬 대상으로 능력의 주인, 즉 정령을 선택하기로 했다.

특히 그의 공격을 회피하게 하는 정령으로.

스킬을 발동하자 그의 몸에 힘이 돌았다. 그가 아까보다 한층 더 빨라진 속도로 달려들자 이나는 또 한 번 바람으로 피하려 했다.

[어?]

“리카……?”

그런데 리카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날개를 빠르게 파닥거렸다.

[능력이 안 써져!]

“뭐?”

그사이 최성찬은 그녀의 코앞에 도달했다. 이나는 급한 대로 땅을 일으켜 벽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의 공격력은 20%나 강해진 상태였다. 얇은 흙벽 따위는 얼마든지 베어 버릴 수 있었다.

서걱- 후드득-

흙벽이 지탱할 힘을 잃고 무너질 때 최성찬은 확신했다.

이길 수 있다. 이건 나의 승리다.

그는 희열에 젖어 흙이 전부 흩어지기도 전에 검을 뻗었다. 이나의 목에 닿지 않을 만큼, 그러나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는 있을 만한 정도로.

그런데 흙이 모두 떨어져 그 너머가 보이는 순간, 그는 눈을 부릅떴다.

“……없어?”

검 끝엔 아무도 없었다. 분명 피하지 못하는 것을 봤는데.

이윽고 그는 땅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구멍?”

땅에 구멍이 나 있었다. 정확히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지만 늦어 버렸다.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동작 그만.”

무덤덤한 목소리에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이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얼음으로 된 송곳을 그에게 겨눈 채로.

“내가 이겼지?”

이나가 씩 웃으며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의 패배였다.

최성찬은 입술을 짓씹으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나가 얼음 송곳을 거두었다.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주변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성찬 길드원들이 우르르 그에게 달려왔다.

최성찬은 애써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나는 그런 그를 힐끗 보다 제게 다가온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한주원이 웃으며 그녀에게 축하를 전했다. 그녀의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에 이나도 무심하게 말했다.

“네.”

“기뻐 보이지 않네요.”

“애초에 원해서 한 대련도 아니었는걸요. 저에게 이득 되는 것도 없고.”

“저에겐 이득이었습니다. 이나 씨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한주원이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왠지 꺼림칙해서 이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릴 겸 서준이 준 서류를 꺼내 훑어보았다.

방해되는 것도 사라졌겠다, 다시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빤히 보던 한주원이 대뜸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나 씨는 연회에 참가하나요?”

“연회요?”

이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주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혹시 초대장 안 받았나요?”

“초대장이요? 누구한테서요?”

“음.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보네요.”

그가 알 수 없는 말을 하자 이나가 미간을 좁혔다.

좀 더 설명해 보라고 이나가 눈빛으로 말했지만 한주원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마 조만간 이나 씨에게 초대장이 도착할 겁니다. 금박이 덧씌워진 흰색 봉투를 붉은색 봉랍으로 봉한 초대장이 말이죠. 자세한 건 그걸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저한테 온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올 수밖에 없을걸요? 이나 씨는 S급 헌터니까요.”

그의 설명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나가 설명을 더 요구하려 했지만 한주원은 시간을 확인하고 그녀에게서 몸을 돌린 뒤였다.

“이런. 저는 이만 가 봐야겠네요. 그럼 나중에 연회에서 뵙죠.”

“그러니까 그 연회란 게 대체……!”

이나가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한주원은 저만치 가 버렸다. 결국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여간에 이상한 사람이야.”

[이나야, 연회면 파티지?]

[우리 파티 가는 거야?]

정령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물었지만 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파티는 무슨. 그런 데 갈 시간 없어.”

[쳇…….]

“그나저나 리카.”

이나는 정령들 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리카를 콕 집어 물었다.

“어때?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어?”

[그게…… 아직…….]

리카의 날개가 축 늘어졌다.

이나는 괜찮다는 듯 리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최성찬에게 물었다.

“내 정령에게 건 스킬, 해제 못 해?”

“못 해.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풀리는 스킬이야.”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두 시간 정도…….”

“귀찮네.”

한숨을 살짝 내쉰 이나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정령들이 물었다.

[우리 던전 들어가?]

“아니. 리카의 능력이 없으면 던전을 공략하기가 번거로워져. 피하질 못하니까. 그러니 오늘은 이만하고 집에 가자.”

[휴식!]

“휴식은 무슨. 가서 명상해야지.”

[엑.]

정령들이 하기 싫다는 얼굴을 했지만 이나는 꿈쩍도 안 했다.

명상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단순히 생각을 비워 내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려는 일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자연을 느끼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연과 동화되고, 나아가 정령들과의 친화력도 높아졌다.

그녀의 목적은 이를 토대로 정령들과의 감응도를 올리는 것에 있었다.

다만 활발한 정령들 입장에서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기에 이런 반응인 것이었다.

이나는 축 늘어진 정령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편함에서 낯선 것을 발견했다.

이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것은 한주원이 말했던 초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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