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49)

성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가 나타나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심지어 거대한 짐승을 타고 나타나는 듀라한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해치우기는 쉬웠다. 파인의 불을 이용하면 짐승이 놀라서 듀라한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시현이 냅다 짐승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오늘 처음 합을 맞춰 본 것임에도 두 사람의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진짜 같이 싸워 본 게 처음이냐며 놀라움을 터뜨릴 것 같을 정도였다.

물론 그 공로는 대부분 이나에게 있었다. 이나의 서포트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시현이라도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굳이 공격하려고 달려 나갈 필요도 없었다. 그럴라치면 이나가 눈앞에 몬스터를 대령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불필요한 움직임도 최대한 줄였고, 체력 소모도 줄어들었다.

그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에 시현은 놀라움을 담아 이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길드의 서포터들만큼 뛰어나.’

같은 길드 소속으로 수년간 호흡을 맞춰 온 그와 천조 길드원들이었다. 그런 길드원들과 비견될 정도라는 것은 이나에게 있어 커다란 칭찬이었다.

‘만약 정식으로 헌터가 된다면 스카우트하려는 사람이 많을지도. 아니, 분명 많을 거야.’

그리고 그중엔 아마 시현 본인도 있을 터였다.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이나는 그저 듀라한을 잡는 데 집중했다. 마침 한곳에 모여 있는 녀석들이 있어 파인의 힘을 이용해 단번에 태워 버렸다.

“후우. 이제 거의 다 와 가네요.”

“네. 듀라한들이 나타나는 빈도도 줄어들었습니다. 아마 이제 보스 몬스터만 남았을 겁니다.”

시현이 아까보다 한층 더 가까워진 건물 지붕을 보며 말했다.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뗐다.

“그럼 얼른 때려잡고 여길 나가죠.”

“그 전에.”

시현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인벤토리를 열어 무언가를 찾던 그는 웬 액체가 담긴 병을 이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마셔 두십시오.”

“이게 뭔데요?”

“마나 포션입니다. 마시면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될 겁니다.”

“오.”

이나는 거절하지 않고 냉큼 받았다. 마침 마나가 반 정도 떨어져 불안하던 찰나였다.

빈손이 된 그는 다른 색의 액체가 담긴 병을 꺼내 마셨다.

“그건 또 뭐예요?”

“체력 포션입니다. 보스를 잡으려면 최상의 컨디션을 준비해 놓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간단히 설명해 준 그는 체력 포션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나도 마나 포션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나네.’

이나는 거부감 없이 포션을 원샷 했다.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아까보다 마나가 늘어나 신기했다.

“포션은 처음 접해 봤는데, 이거 마음에 드네요.”

이나가 빈 병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시현이 물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당장 가죠.”

“좋습니다.”

시현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단둘이서 보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미소는 곧바로 사라졌다.

지붕이 뾰족하다 싶더니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성 같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여느 성이라면 갖추고 있을 법한 예의 고귀함은 찾아볼 수 없는 폐허였다.

문 앞에 선 시현이 이나에게 눈짓했다. 준비됐냐는 뜻이었다.

이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시현이 커다란 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낡아서 녹슬어 버린 경첩 탓에 소름 끼치는 소리가 성 안을 울렸다.

안은 꽤 넓었다. 하지만 어두워서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나는 파인에게 눈짓했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파인이 허공에 불을 띄웠다.

그러자 망가진 내부가 훤히 드러났고.

“그르르…….”

맞은편 끝 왕좌에 앉아 있는 듀라한이 깨어났다.

시현이 빠른 움직임으로 검을 꺼내 들었다. 그의 눈빛에서 작은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가 검 손잡이를 꽉 쥐는 순간, 듀라한이 달려들었다.

“그어어어!”

확실히 밖에 있던 듀라한들보다 힘이 월등한지 놈은 거대한 대검을 한 손에 들고 달려왔다. 저걸 그대로 받아 낸다면 팔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나는 이즈에게만 들릴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놈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알았어!]

이즈가 팔을 뻗었다. 동시에 허공에서 거대한 물방울이 생겨 듀라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타격을 입을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분산시키기엔 충분했다. 듀라한의 대검이 시현 대신 허공의 물을 갈랐다.

그 틈을 타 시현이 잽싸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촤악-

시현은 단번에 심장을 찌르기보단 먼저 듀라한이 입은 방어구를 제거할 심산인 것 같았다.

은은하게 오러를 머금은 그의 검이 듀라한이 입은 경갑옷을 베었다. 꽤 단단한지 듀라한의 피부까지 베진 못했지만 그 틈으로 다시 한번 공격을 가한다면 피부에까지 상처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쉽게 끝낼 수 있겠는걸요.”

이나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시현의 생각은 달랐다.

“말했지 않습니까. 방심은 금물이라고.”

시현이 아까보다 더 거센 오러를 검날에 둘렀다.

“옵니다.”

그 순간 이나는 보았다. 듀라한의 대검에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시현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뚜렷한 오러였다.

이나는 굳은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이래서 그렇게 긴장한 거였구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현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오라를 머금은 검이 그가 낸 상처로 향했지만, 그 앞을 대검이 가로막았다.

쾅!

검이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 못 할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성에 울려 퍼졌다. 순간 성이 흔들린 것도 같았다.

그 와중에도 시현은 듀라한과 검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큭……!”

만만치 않은지 시현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지켜보던 이나가 이즈에게 재차 명령했다.

“물 폭탄을 몬스터에게 쏴 버려. 틈이 생겨서 저 사람이 물러설 수 있도록, 세게.”

[맡겨 줘!]

이즈가 집중력을 발휘해 듀라한에게 물방울을 쐈다. 리카의 바람만큼은 아니었지만 날아가는 속도가 꽤 빨랐다.

펑!

물 폭탄을 맞은 듀라한의 뒷발이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타 대검을 쳐 낸 시현이 뒤로 살짝 물러섰다.

‘이대로는 끝이 없어.’

이나의 날카로운 눈이 시현과 듀라한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S급 헌터라지만 체력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저 듀라한은 힘도 세고 오러까지 다룰 수 있었다.

시현이 검에 엄청나게 두른 오러만 봐도 그가 상대를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듀라한에겐 없고 시현에겐 있는 게 있었다.

‘내가 힘 좀 써야겠네.’

간혹 서포터들이 약해서 서포트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나는 그 의견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서포터들도 훌륭한 공격수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약점을 잡히기 쉽기 때문에 멀찍이 물러나 있는 것뿐이었다.

그들도 뛰어난 검사라는 훌륭한 서포터가 있다면, 충분히 제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의 이나처럼.

“이시현 헌터, 제 서포트 없이 버틸 수 있겠어요?”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만.”

“그럼 좀만 더 버텨 봐요.”

시현의 황당하다는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하지만 이나는 이미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파인, 아까보다 더 높은 열기의 불이 필요해.”

[더 높은?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파인, 내가 아까 뭐랬지?”

파인이 멈칫했다. 무언가를 떠올린 파인이 즐거워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마나는 신경 쓰지 않을게!]

“좋아.”

이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얼음 여왕의 목걸이. 얼음 여왕을 해치우고 얻은 목걸이였다.

이 목걸이는 마력을 8이나 증가시켜 주는 효과가 붙어 있었다.

이나는 그것을 손에 꾹 쥐었다.

“오랜만에 온 힘을 다해 볼까?”

[좋아!]

신난 파인이 이나의 마나를 마음껏 가져갔다.

이나는 듀라한과 검을 나누고 있는 시현을 보며 이즈에게 말했다.

“이즈, 아까처럼 물 폭탄 한 번 더 던져. 이번에도 세게.”

[알았어!]

이즈가 아까처럼 듀라한에게 물 폭탄을 날렸다. 동시에 이나가 외쳤다.

“이시현 헌터, 뒤로 물러서요!”

“뭐라고요?”

“어서요!”

머뭇거리던 시현은 이나가 재촉하자 뒤로 조금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의 앞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열기에 물러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크윽……! 무슨 열기가……!”

눈도 못 뜰 정도로 뜨거웠다. 눈알에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열기였다.

뒤로 멀찍이 떨어진 뒤에야 시현은 눈앞의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불기둥……?”

거대한 불기둥이 성의 지붕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듀라한이 있었다.

엄청난 광경인 건 맞았지만 시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런 불기둥으로는 듀라한을 해치우지 못합니다. 나오면 그만이에요.”

“몸성히 나올 수 있다면 말이죠.”

“네?”

“그어어어!”

성을 울리는 비명 소리에 시현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감옥처럼 사위를 가로막고 있는 불기둥에서 빠져나오려는 듯 듀라한이 불기둥을 향해 직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기둥에 닿은 팔이, 발끝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닿기만 해도 타서 사라질 정도의 열기인 것이다.

“대체…….”

눈을 부릅뜬 시현이 이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런 인재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나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나 씨!”

시현이 얼른 이나를 붙잡았다. 그 덕에 넘어지진 않았지만 이나는 지금도 충분히 힘들었다.

‘역시 힘드네.’

파인은 정말로 그녀의 마나를 신경 쓰지 않고 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흡족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몸이 고되었다.

[이나야,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해.”

“이나 씨?”

시현이 의아해하며 쳐다보았지만 이나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직 불기둥을 바라보며 파인에게 명령할 뿐이었다.

“집어삼켜 버려.”

그녀의 말을 따르기라도 하듯 불기둥이 안쪽으로 휘어졌다. 그리고 단숨에 듀라한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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