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화. 조우(7)
“윽!”
건물 잔해에 부딪힌 이운조가 짧게 신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운조! 괜찮습니까?!”
“괜찮아. 안 다쳤어.”
갑작스럽게 내던져지면서 고통이 잠깐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의 스킬에 휘말려 다칠 뻔했던 것과 비교하면 양호했다.
어쨌든 간에.
“아저씨는?”
“네?”
“윤사해! 그 인간 말이야!”
하현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이운조가 조금 전까지 있던 곳으로 말이다.
곧, 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도깨비……!”
윤사해가 거주자의 목을 붙잡고 서 있었다.
〖끄으!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그 벌레만도 못한 인간한테 짓밟히고 있으면서 잘도 말하는군.”
윤사해는 그렇게 말하고는 거주자의 목을 터트려 버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신의 잔해를 물끄러미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윤사해 길드장!”
그와 눈이 마주친 최설윤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아무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윤사해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곧장 자신의 그림자를 풀었다.
마치, 낫과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이 순식간에 주위를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아악!〗
〖끄아아악!〗
정확히, 거주자들의 목만 노린 아주 깔끔한 솜씨였다.
최설윤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귀신같은 놈.”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사해는 코웃음을 쳤다.
“이깟 녀석들한테 시달리고 있을 줄이야.”
고개를 가볍게 저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설윤 길드장, 그리고 이운조. 내 생각보다 실력이 많이 녹슬어 버린 모양이군.”
“아저씨가 너무 괴물인 거거든?”
이운조가 입술을 씰룩였다.
“이매망량은 어쩌고 왔어?”
“아들들한테 맡겼다.”
윤사해는 담담하게 말했다.
“리오와 리타도 이제 사람들을 이끌 방법을 배울 때지.”
“하!”
이운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이 이렇게 된 때부터 계속 보호만 하던 주제에?”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하지만 리오와 리타가 말하더군. 아버지라면 보호만 하지 말고 좀 믿어 달라고 말이다.”
“아저씨의 과보호가 좀 심하기는 했지? 리사는 마음껏 날뛰게 뒀으면서 말이야.”
“그런 적 없다.”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리사는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사라졌던 동안, 제 보호 밖에서 자유롭게 날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다시 잡아 와 새장 속에 가두고 보호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뒀던 것뿐.
“그래서 리사는 지금 어디 있지?”
윤사해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군. 할머님도.”
그 말에 모두가 눈치를 보다 윤이 말했다.
“윤사희라고 했던가요. 그분은 지금 수장님과 싸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윤사해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유랑단의 수장과? 그럼, 지금 우리 리사는.”
“혼자서 악신을 상대 중이야.”
이운조가 윤사해의 말을 자르며 덧붙였다.
그에 윤사해가 놀란 눈을 보였다.
“리사 혼자서 악신을 상대 중이라고?”
곧, 그는 분노했다.
“자네들은 뭐 하고 있었던 건가!”
“당신이 산산조각 낸 거주자들을 상대 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 당신의 따님 앞을 벌레 같은 거주자 녀석들이 막으면 안 되니 말입니다.”
비록, 처음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마는.
“다행히도 도깨비 당신 덕분에 이제 윤리사 양을 도우러 갈 수 있게 됐군요.”
하지만 아니었다.
윤사해에 의해 온몸이 찢겼던 거주자들뿐만 아니라, 그 전에 먼저 처리됐던 거주자들 모두.
〖으으…… 인간……!〗
〖가, 감히, 인간 주제에!〗
〖죽인다…… 죽여 버린다……!〗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한 거다.
모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봐, 선비.”
“하현입니다.”
하현이 저를 부르는 호칭을 고쳐 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실언을 한 모양이군요.”
“그래, 이 망할 새끼야! 빌어먹을 부활 플래그를 세우면 어떻게 해?! 바보!”
이운조가 하현의 뒤통수를 때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는데.”
“그럼, 끝이 날 때까지 싸우면 되는 일 아닌가?”
윤사해가 가볍게 땅을 짚었다.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길게 뻗어 나간 그림자가 회복하기 시작한 모든 거주자를 휘감았다.
“최설윤 길드장, 나머지는 자네가 처리하도록.”
“뭐?”
최설윤이 미간을 좁혔다.
“윤사해 길드장이 그냥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이제 볼일이 있어서.”
윤사해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랑야.”
나지막하게 불린 이름과 함께 끝이 붉은 하얀 털을 가진 늑대가 나타났다.
〖네 딸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아냈어.〗
“고맙군.”
그러면서 윤사해는 말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할머님께서 도우러 올 거다.”
“윤사희 님이?”
“그래. 할머님은 분명 내가 온 걸 알았을 테니 이쪽으로 오겠지.”
“어떻게 확신해?”
“원래 그런 분이니까.”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버텨. 리사가 버티고 있는 만큼.”
그 말에 모두가 표정을 굳혔다.
윤리사가 홀로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주기를 부탁한다.”
이번에는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윤사해가 ‘부탁’을 한다니.
벙찐 표정의 그들 사이에서 곧 유쾌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최설윤이었다.
키득거리며 웃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버틸게. 당연히 저 망할 거주자 새끼들도 끝내고.”
주먹을 불끈 쥔 최설윤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윤사해 길드장은 이제 그만 리사한테 가 봐.”
자식은 없는 몸이지만 자식처럼 키운 조카가 있는 만큼 최설윤은 알았다.
지금 윤사해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말에 윤사해가 옅게 미소를 그렸다.
“고맙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인가 봐. 세상에, 윤사해 길드장이 나한테 고맙다고 하다니!”
“꽤 자주 했던 말인 것 같다만.”
“네네, 그러시겠죠.”
짓궂게 웃어 보인 그녀가 곧 윤사해와 똑같이 옅게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어서 가.”
“그래.”
윤사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랑야가 출발했다. 빠른 속도로 그들한테서 멀어지던 랑야가 물었다.
〖이대로 네 따님을 도우러 가도 괜찮은 거냐?〗
“그래.”
최설윤과 이운조는 강했다.
물론, 그들과 함께 있는 탈쟁이들 역시 강했다.
“뭐, 전직이지만.”
〖음?〗
“혼잣말이었다네.”
윤사해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 낼 때였다.
〖그보다, 윤사해. 내가 하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랑야가 고민하듯 입을 열었다.
“뭐지?”
담담하게 묻는 목소리에도 계속 고민하던 그가 결국 말했다.
〖네 따님이 있는 곳에서 익숙한 냄새를 하나 더 맡았다.〗
“악신이 있는 곳에서?”
〖그래.〗
윤사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할머님인가?”
〖아니. 사희는 아니다.〗
랑야가 단호하게 답하고는 이어 말했다.
〖뭐, 내가 잘못 맡은 걸 수도 있다만.〗
“그럴 리가.”
윤사해가 일축했다.
“랑야, 자네는 도깨비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개코이지 않나?”
〖지금 놀리는 거지?〗
“칭찬한 거다만.”
랑야가 코웃음을 쳤다.
그것도 잠시, 곧 결정한 듯 그가 입을 열었다.
〖저세상.〗
윤사해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물었다.
“뭐? 누구라고?”
〖저세상. 네가 아들처럼 키운 녀석 말이다.〗
랑야가 머리라도 긁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내뱉었다.
〖분명, 그 녀석의 냄새였다. 네 따님과 함께 있어.〗
“그런…….”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가 곧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세상이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온 건가? 리사와 함께 악신을 물리치기로 한 건가?
그때였다.
〖행복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미안하다만.〗
랑야가 말을 걸어왔다.
〖저세상, 그 녀석은 네 따님과 함께 싸우고 있는 중이다.〗
“……뭐?”
윤사해가 한 박자 늦게 물었다.
“리사가 왜 세상이랑?”
〖그야…….〗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랑야가 곧 말을 끝마쳤다.
〖그 녀석이 네 따님한테 있어서 적이라서 그런 거겠지.〗
윤사해는 하늘에서 추락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쿠구궁!
달려가고 있는 곳으로부터 거센 바람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