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93)화 (493/500)

493화. 조우(5)

“괜찮나요, 윤?!”

최설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윤은 너잖아.”

한때, 부네의 탈을 썼던 여자가 최설윤의 목소리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괜찮으신 것 같네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진심으로 하는 소리랍니다.”

윤이 싱긋 웃고는 말했다.

“정말 아프면 입을 놀리지 못하거든요. 그간 봐 온 것들이 있기에 알 수 있답니다.”

“그것 참 대단하시네요.”

최설윤의 비아냥거림에 윤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잠시뿐.

“큰일이네요.”

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거주자들은 우리를 죽일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모양인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최설윤은 현재 윤과 함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상태였다. 최설윤이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윤은 왜 저를 보호하신 건가요?”

다름 아닌, 윤.

최설윤이 그토록 혐오했던 유랑단의 탈쟁이였던 그녀를 지키는 과정에서 입은 부상이었다.

타박하는 목소리에 최설윤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윤의 목을 노리려고 드는 놈에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을 뿐.

“그나저나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아?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죽었을걸?”

“당신은…….”

윤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곧,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요.”

한숨을 내쉬듯이 전하는 감사 인사에 최설윤이 키득거렸다.

“알면 됐어.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대로면 저 망할 신들한테 개죽음당할 것 같은데.”

거주자들은 자신들을 집요하게 찾고 있는 중이었다.

“리사한테 가면 좋을 텐데.”

“농이 나오시는 걸 보니 정말로 괜찮으신 것 같네요.”

“들켰어?”

최설윤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전직 탈쟁이라서 그런가? 사람 마음 읽는 솜씨가 좋단 말이야?”

“제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알아차렸을 겁니다.”

“내 거짓말을?”

“네, 윤은 지금 도깨비의 따님을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거든요.”

“아, 이런.”

최설윤이 짧게 혀를 찼다.

“표정 관리를 못 하다니. 아무래도 그렇게 괜찮은 건 아닌 모양이야.”

“그걸 이제 알았나요?”

윤이 타박하듯 물었다.

최설윤은 그저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던 윤이 입을 열었다.

“제가 거주자들의 주의를 끌도록 하겠습니다.”

“뭐?”

“당신도 알잖아요.”

이대로 계속 숨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물론, 숨어 있어도 됩니다.”

다만, 거주자들이 자신들을 찾는 걸 포기한다면 윤리사를 노리러 갈 터.

“도깨비의 따님은 지금 악신을 상대 중입니다.”

“그래도 리사 곁에는…….”

“윤사희라고 했던가요. 그분은 현재 도깨비의 따님 곁에 있지 않습니다.”

“뭐?!”

최설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분은 지금 어디 있는데?”

“수장님과 함께 있군요.”

“수장님이라면, 설마.”

“네, 그 설마랍니다.”

윤이 비릿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유랑단의 수장님과 알던 사이였던 모양이네요. 치열하게 전투 중에 있습니다. 제 눈으로 보는 건 이제 한계지만요.”

윤이 두 눈을 깜빡이며 피가 섞인 눈물을 떨궜다.

“괜찮아?”

최설윤의 걱정에 윤은 웃었다.

유랑단을, 그에 속해 있는 탈을 그 누구보다도 혐오했던 존재가 저를 걱정하고 있다니.

‘당신도 참 물러.’

물러도 너무 물렀다.

이러다 자신이 거주자들과 손을 잡고 배신하면 어쩔 생각인 건지.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

윤은 거주자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싫었다.

일족을 수호하던 거주자가 유랑단의 수장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 그들은 방관했으니.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지.’

혼자서 복수를 꿈꿔야만 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윤이 입을 열었다.

“제가 저들의 주의를 끌겠습니다. 그때를 틈타 몸을 피하시지요.”

“뭐?”

최설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저는 당신과는 다르게 농을 쉽게 하지 않는답니다.”

윤은 웃었다.

“당신도 알잖아요. 지금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는지. 이대로면 죽고 말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말 거다.

“그러니 제가 저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도망치세요.”

“싫어.”

최설윤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암만 탈을 벗었다고 해도 전직 탈쟁이였던 건 변하지 않지.”

“그런 이유로 고집을 피우겠다는 건가요?”

“고집이 아니야.”

“그럼 뭔가요?”

윤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우리는 지금 포위됐습니다. 이대로면 거주자들은 도깨비의 따님께 갈 거고요.”

윤리사는 홀로 악신을 상대 중에 있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을 노린 거주자들이 합세하게 된다면…….

“설마, 도깨비의 따님이 죽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니지요?”

“당연히 아니지!”

최설윤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단지, 네가 저지른 죗값을 모두 치를 때까지 죽는 걸 용납 못 하는 것뿐이야.”

윤은 할 말을 잃었다.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저를 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최설윤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옆구리에 크게 난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다.

‘내부 장기까지 손상된 건 아닌 것 같네.’

혹은 손상 정도가 심해 고통을 잊은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최설윤은 말했다.

“나는 도망 안 가. 몸을 피하지도 않을 거야. 당연히 네가 여기에서 혼자 개죽음당하는 것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고.”

그녀가 벽을 짚었다.

스스슥, 손바닥 아래에서 넝쿨이 자라며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알던 세상을 두 눈에 꼭 담을 거야. 너는 그 세상에서 네 복수를 위해 희생당한 무수한 사람의 죗값을 치러야 하고.”

그러면서 최설윤은 웃었다.

“나는 그 모든 걸 꼭 볼 거야.”

그래서 윤을 데리고 있기로 했다.

그녀가 저지른 죗값을 치르는 걸 보기 위해서.

자신의 동생은 그 죗값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한 것과는 다르게 윤은 분명 치를 테니.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최설윤이 치밀어 오르는 말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가자. 이대로 몸을 계속 숨기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랬다가는 네 말대로 저 망할 신들이 리사한테 갈 테니.”

“최설윤…….”

윤이 그녀의 이름을 낮게 읊조리고는 이내 손을 들었다.

파아앗!

환한 빛과 함께 최설윤의 상처 부위에서 피가 멎기 시작했다.

“알고 있겠지만 임시방편이에요. 무리해서 움직이면 상처가 다시 벌어질 겁니다.”

“오, 알지.”

최설윤이 키득거렸다.

“어쨌든, 이거. 내 뜻대로 움직여 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마음대로 생각하시지요.”

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단검을 손에 쥐었다.

최설윤이 키득거렸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그때였다.

쿠구구궁―!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최설윤이 얼굴을 찌푸렸다.

“리사겠지?”

“그런 것 같네요. 이상하게 볼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요.”

“너무 보려고 하지 마.”

그러다 또 피눈물을 흘릴 생각이냐면서 최설윤이 말했다.

“보고 싶지 않아.”

“걱정하지 마세요. 윤께 보여 드릴 생각도 없답니다.”

“이미 보여 줬으면서.”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보다.”

윤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웃었다.

“지원군이 도착했네요.”

“지원군?”

최설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파지직! 눈이 부시도록 푸른 전격이 가시덩굴 사이로 빛을 내뿜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들려오는 비명에 최설윤이 놀란 눈을 보였다.

“이운조?”

“네, 선, 아니, 하현과 함께 온 것 같네요.”

그 말대로였다.

“이 미친 거주자들아! 신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냐?! 힘없고 가여운 인간 두 명을 상대로 다구리라니!”

“힘없고 가엽지는 않습니다만. 또한 당신이 말한 둘 중 하나인 부네, 아니. 윤은 인간이 아닌 거주자의 후손이고요.”

“어쨌든! 부끄럽지도 않냐!”

최설윤은 벙찐 표정으로 푸른 빛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 참, 못 말린단 말이야.”

자신이 아닌 윤리사를 도우러 갈 것이지.

‘하긴…….’

이운조라면 알았을 거다.

윤리사를 도우러 가 봤자 자신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아주 잔혹한 사실을.

그러니까 이곳에 왔을 거다.

“다행이지요?”

묻는 목소리에 최설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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