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조우(3)
―으아아아악!
시끄러운 비명이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꺄아아악!
거주자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또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에게 손을 뻗는 절망 중에는 거주자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닌 것도 있었다.
―아이가 있어요! 제발, 아이만은 살려 주세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들과 같은 사람들.
사람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또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손을 뻗어 왔다.
저세상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수히 많은 손을 그저 바라봤다.
‘괜찮아.’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다.
그때에는 실패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받아들일 수 있어.’
저세상은 두 눈을 감았다.
그가 악신을 물리치는 데 실패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우리도 살기 위해 그런 거라고!’
‘죽이지 마! 차라리 AMO에 넘겨! 안 돼! 으아악!’
악신의 안에 있던 절망 중에는 저세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꽤 많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고 제 안에 악신을 품지 못했다.
이후 저세상은 곧장 도망쳤다.
그 누구보다 악인을 혐오했던 자신이, 빌어먹을 쓰레기들과 같은 악인이었다니.
당장에라도 자신의 목을 조르며 죽어 버리고 싶었지마는.
〖왜 그래? 죽을 필요 없어!〗
자신이 삼키지 못한 절망이 말을 걸어왔다.
정확히는, 악신이.
〖다시 시작하면 돼! 그보다, 너. 궁금하지 않아?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너는 또 어떻게 태어났는지!〗
저세상은 무시하고 싶었다.
아니, 당장 검을 들어 그를 베어 버리려고 했다. 자신의 사슬을 움직여 저 몸을 꿰뚫으려고 했었지마는.
〖너는 주인공이 아니야!〗
그 말에 멈추고, 세상의 진실을 듣기로 했다.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떴을 때에는.
―이 빌어먹을 놈! 쓸모없는 놈!
자신을 때리던, 분명 죽었을 아버지가 제 앞에 있었다.
저세상은 귓가를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
짧게 숨을 내쉰 그는 곧 익숙한 손을 발견했다.
“아버지.”
매일 술에 취해 자신을 때리던 아버지. 그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쓸모없는 자식! 그냥 죽어 버려! 아니, 그래! 죽자! 같이 죽어!
저세상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당신에게 있어, 나는.
“존재 자체가 절망이었군요.”
저세상의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안녕! 또 만났네!〗
악신이 말을 걸어왔다.
인간의 형태만 지니고 있는 것이 이윽고 저세상을 향해 뻗친 모든 손을 사라지게 만든 후.
〖그 몸, 정말 나한테 줄 거야?!〗
아가리를 벌리며 물었다.
저세상은 도저히 인간이라 볼 수 없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파아앗!
저세상을 집어삼킨 악신의 입이 터져 나갔다.
〖리사!〗
다행히 대도깨비 덕분에 다치는 곳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그 전에 그림자를 움직여 나를 보호했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이죠?”
악신이 저세상을 먹었다.
“저세상은요? 괜찮나요?”
대도깨비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눈앞을 노려볼 뿐.
“대도깨비님?”
조심스럽게 묻기 무섭게 대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상황이 곤란하게 됐다.〗
“네?”
〖악신이 인간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급히 물었지만 대도깨비한테서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도깨비님!”
〖직접 보는 것이 좋겠구나.〗
대도깨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놓아줬다.
그렇게 저세상을 볼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문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그를 말이다.
“저세상……?”
“아.”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있던 저세상이, 아니. 그의 몸을 뒤집어쓴 녀석이 나를 보고는.
“안녕! 처음 뵙겠습니다!”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뭐야, 너.”
“나? 나는, 음, 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필요하겠네.”
그러고는 말했다.
“얘 이름을 가지기는 싫어! 너무 못난 이름이야. 부모도 너무하지. 자식 이름이 저세상이라니!”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 녀석이 이내 물었다.
“명으로 할까?”
“명…….”
“그래! 항상 나를 기다려 온 아주 불쌍한 아이의 이름이야! 그렇지만 뜻은 다르지!”
작게 손뼉을 친 녀석의 정체를 나는 이윽고 알아차렸다.
“그 아이의 명은 어두울 명, 나는 밝을 명.”
악신이다.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녀석이 저세상을 차지해 버렸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악신을 쳐다봤다.
그가 내 시선에 방긋 웃었다.
“나는 이 세상을 밝게 비출 거야. 그 전에 못된 아이는 없애야겠지. 그래, 그래야 할 거야.”
작게 읊조린 목소리와 함께 그는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다.
〖리사!〗
대도깨비의 목소리에 급히 그림자를 움직였다. 악신이 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움직인 그림자는.
“아하하하!”
거짓말 같이 사라져 버렸다.
나를 해치려고 들던 악신이 몸을 뒤로 빼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착한 아이가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 줬어! 너무 좋아!”
유쾌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소멸……!”
저세상의 힘을 잊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망할!’
도윤이가 곁에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세상! 야! 내 말 안 들려?!”
“안 들려. 들릴 리가 없어.”
“너는 좀 닥쳐!”
악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소리 질렀다.
“대도깨비님!”
〖그래.〗
대도깨비가 나와 악신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오, 재미난 재주.”
악신이 놀란 눈으로 주변을 잠깐 살펴보고는 대도깨비를 향해 재잘거렸다.
“그래, 너. 나 너 알아.”
〖그래, 알겠지.〗
대도깨비가 내 곁을 지키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언제나 최후의 순간까지 나는 너와 함께했었다.
“역시 기억하고 있구나!”
〖너처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 아쉬워라. 하지만 괜찮아! 너는 친구니까!”
〖누구 마음대로 친구라고 하는 거냐?〗
대도깨비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악신을 보며 물었다.
악신은 유쾌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내 마음대로지!”
악신이 유쾌하게 웃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면 모두 친구라고 그랬어!”
“대체 누가?”
천지해를 대신해서 물었다.
“어느 누가 그런 개소리를 지껄였대?”
“개소리…….”
악신이 멍하니 내 말을 읊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쁜 말은 쓰지 않는 게 좋아.”
“닥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목소리를 토해 냈다.
“저세상을 어떻게 한거야?”
“먹었지!”
악신이 키득거렸다.
“그 아이는 착한 아이야. 나와의 약속을 지켰어.”
“약속이라니?”
“자신의 몸을 주겠다는 약속!”
악신은 그러면서 두 팔을 펼쳤다.
“이 세상은 무척이나 잘못됐지! 나는 그래서 그 아이한테 세상의 진실을 알려 줬어!”
그렇게 모든 것을 알게 된 저세상은…….
“내게 자신의 몸을 바쳤지!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그 아이는 정말 착해!”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저세상은 악신에게 자신의 몸을 바칠 생각 따위 없었을 거다.
그와의 약속에 강제란 없었다.
즉, 그러니까.
‘저세상은 죽이려고 했을 거야.’
자신의 세상을 파괴했던 악신을.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에.’
이 세상의 주인공은 저세상이 아닌, ‘윤리사’였으니.
‘그래서 그런 거야.’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인가 들었던 저세상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멍청이.”
아마, 저세상은 그때부터 악신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을 거다.
그래야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테니.
‘진짜 바보.’
바보라는 말도 아까웠다.
저세상은, 정말 멍청이였다.
그래서 말했다.
“야, 저제상.”
그의 몸을 차지한 악신을 향해 검을 들며.
“좋게 말할 때 당장 튀어나와.”
내 주인공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