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조우(1)
이동은 손쉬웠다.
문제라면.
“윽……!”
악신이 있다는 장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 거다.
“이것, 참. 냄새 한번 지독하군.”
다행히 그 냄새는 윤사희의 손짓 한 번에 사라졌지마는 말이다.
윤사희가 우리 편이라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여하튼 악취가 가신 장소에서 크게 숨을 내쉬는데.
“그럼, 이제 따로 움직여야겠네.”
최설윤이 기지개를 쭉 켰다.
나는 당장에라도 떠날 것처럼 구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물론이지!”
최설윤이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리사, 몸조심해. 그럼, 우리 먼저 움직일게.”
최설윤은 그 말을 끝으로 윤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우리도 움직여야겠네.”
“잠깐만요, 이운조. 그래도 잠시 정비할 시간은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정비는 무슨 정비?”
이운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설마, 이제 와서 겁먹은 거야? 그런 거라면 돌아가도 돼. 집으로 가는 길 알지?”
“겁 안 먹었습니다!”
하현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운조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내게 말했다.
“리사, 나중에 보자.”
“네, 언니.”
나는 옅게 미소를 그렸다.
이윽고 이운조와 하현 역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럼, 우리도 가죠.”
“아니.”
윤사희가 마뜩잖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따로 움직이자꾸나.”
“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따로 움직이자니?
윤사희는 나와 함께 악신의 중심부를 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게 됐는지 윤사희가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글쎄…….”
윤사희가 말꼬리를 흐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문제라면 문제지.”
무언가 경계하는 듯한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사랑하는 내 누이.”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두 눈을 자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천으로 묶고 있는 그 모습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유랑단의 수장!”
저 존재가, 『각성, 그 후』에서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존재란 것을 말이다.
유랑단의 수장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웃었다.
“안녕, 리사. 이런 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어 슬프구나.”
“닥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씹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악신을 이 세상으로 불러들인 게 당신이야?”
“나 혼자 저지른 일은 아니란다. 알지 않니?”
나긋하게 묻는 목소리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두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 내 속을 훤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통찰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야, 저 존재는.
“그만하거라, 명(冥)아.”
윤사희와 같은 존재였으니.
이 세상에서 태어난 거주자라고 했던가?
윤사희가 유랑단의 수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나를 만나러 온 모양이구나.”
“그럼, 당연하지. 내 누이는 모를 거야.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윤사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상이 엉망이 되기를 바랐었지.”
유랑단의 수장이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누이. 그래서 누이는 내 곁을 떠났지. 내 마음도 모르고.”
웃는 것도 잠시, 유랑단의 수장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는 누이와 언제나 함께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닥치거라, 명.”
윤사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인간이다. 우리는 이제 두 번 다시는 함께할 수 없다.”
“누이, 그런 섭섭한 소리는 하지 말아 줘. 내 누이를 위해 이 무대를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으니.”
그러면서 추억에 잠긴 얼굴로 재잘거렸다.
“기억나지 않아? 우리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인간들이?”
“그 입 닥치라고 했을 텐데.”
“사랑하는 누이, 떠올려 봐. 신에 의해 억압받던 인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추앙했었는지.”
유랑단의 수장이 키득거렸다.
“그렇게 우리는 신을 사냥했지. 이 세상의 신으로서.”
나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윤사희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말이다.
그때였다.
“깨비님.”
윤사희가 천지해를 불렀다.
그러기 무섭게 천지해가 나를 안아 들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네게 맡겨야 할 것 같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리사, 아해야.〗
진정하라는 듯, 대도깨비가 부드럽게 나를 부르며 물었다.
〖악신을 처리하는 게 최우선인 상황이지 않느냐?〗
“그렇지만!”
〖사희는 강하다.〗
알지 않느냐면서 묻는 목소리에 입을 닫았다. 나는 윤사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중에 봐요, 할머니.”
“물론, 그래야지.”
윤사희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가서 네 할 일을 하거라.”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다정하게 어르는 목소리에 나는 결국 몸을 돌렸다.
“가요, 대도깨비님.”
말하기 무섭게 주변이 바뀌었다.
이윽고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쿠르릉!
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악신이었다.
“웁!”
처음 맡았던 악취가 다시금 코를 찔러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죽을 거야.”
유랑단의 수장, 아니.
명(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누이의 피를 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 결코 이겨 낼 수 없을 거야.”
“여전히 혀가 길구나.”
윤사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너는 여전히 아이처럼 굴어.”
“그러니 이런 일을 벌였지.”
명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누이, 아직 늦지 않았어.”
그가 두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건, 흰자위가 검게 물든 백색의 눈이었다.
“다시 우리의 세상을 만들자. 이 세상의 신을 사냥하며 다시 인간들에게 추앙받는 거야.”
“그래서 이런 일을 벌였느냐?”
“알면서.”
명이 키득거렸다.
“누이는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를 준비했는지.”
명은 재잘거렸다.
“가호의 어리석은 아이를 홀려 속삭였지. 이 세상의 신들은 거짓 존재들이라고.”
그렇게 가호의 로저 에스테라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도 모르고 움직였다.
진짜 신을 찾겠다면서,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첫 번째 단추를 끼워 맞춘 거다.
“슬프게도 그 아이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지.”
말하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명은 꽤 기뻐 보였다.
“그래도 상관없었어. 악신을 막을 수 있는 신이 제 후손이 죽은 것을 알고 분노했으니.”
그렇게 신은 이 세상을 버렸고, 결과적으로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 모두가 이 세상으로 튀어나올 수 있게 됐다.
“자, 그러니 누이.”
명이 윤사희를 향해 손을 건네며 입꼬리를 올렸다.
“다시 인간들 위에 서자.”
“아무래도 내 말을 듣지 않은 것 같구나.”
윤사희는 그를 향해 검을 들며 말했다.
“나는 인간이다. 그런 내가 같은 인간 위에 서자는 헛소리를 들을 것 같으냐?”
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이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다.”
윤사희가 차갑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그러고자 했고, 그렇게 이 몸을 이 세상에 남기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지.”
명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이는 나와 같은 신이야. 벌레 같은 인간들 위에 설 수 있는 진짜 신.”
“어리석은 녀석.”
윤사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래서 너를 버린 거다.”
“누이…….”
시종일관 웃음기가 가득하던 명의 얼굴에 슬픔이 드리워졌다.
곧, 그의 백색 눈이 금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왔잖아. 나를 버린 누이를 붙잡으려고.”
쿠르릉!
하늘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