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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88)화 (488/500)

488화. 악(惡)이란 것(4)

“오랜만이에요, 최설윤 길드장님.”

크게 흉터가 남은 얼굴.

그럼에도 최설윤은 환했다.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최설윤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입니다.”

하현과 마찬가지로 탈이었던 자.

한때 부네였던 윤이 웃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반기며 물었다.

“두 사람 다 잘 지내셨죠?”

“물론이지!”

최설윤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잠시, 그녀가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보다, 리사. 이 망할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았다는 게 사실이야?”

“네.”

최설윤이 표정을 굳혔다.

“망할 신들의 손에서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단 말이지.”

〖모두가 인간을 적대하고 있는 건 아니라네.〗

“당연히 알고 있죠!”

최설윤이 대도깨비의 말에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제가 설마 대도깨비님과 다른 도깨비분들을 포함시켰을까 봐요? 인간을 위해 움직이는 신들도 많이 있다는 거 알아요.”

단지, 그 수가 적을 뿐.

대도깨비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말했다.

〖농이었다네. 너무 신경 쓰지는 말아 줬으면 하는군.〗

“당연하죠!”

최설윤이 사람 좋게 웃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최설윤 길드장님이라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예요.”

“물론이지.”

최설윤이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색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최설윤이 낮게 읊조렸다.

“당장 세상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게 됐잖아.”

그 말대로였다.

한참 동안 하늘을 보던 최설윤이 돌연 물었다.

“악신이라고 했지? 이름은 그게 다야?”

진명(眞名)을 묻는 건가 보다.

그 질문에 대도깨비가 대신 답해 줬다.

〖악신. 그게 끝이다.〗

불리는 이름 자체가 진명.

대도깨비는 그렇게 말하며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그것은 온갖 삿된 것이 모여 이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 이름 따위 없다.〗

“왜 그러시나, 깨비님.”

조용히 있던 윤사희가 짓궂게 웃는 낯으로 말했다.

“붙여 줄 존재가 없어 그리된 것 아니겠는가?”

〖사희.〗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시게. 그냥 한 말이니.”

윤사희 역시 이 세상에서 태어난 ‘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름이 있었다.

‘붙여 준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악신에게도 이름을 붙여 줄 존재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기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악신에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거라는 것을.

‘나도, 참.’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을 털어 내려고 하던 순간.

“자, 리사. 그럼 말해 보거라. 네 계획이 무엇일지 기대되는구나.”

윤사희가 말을 건넸다.

어디 한번 떠들어 보라는 듯이 보는 그녀의 시선에 나는 미소를 그렸다.

“간단해요.”

***

회의는 금방 끝났다.

사실, 회의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악신이 모습을 드러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거예요. 그 존재를 이 세상에 불러들인 배후가 있을 거예요.’

당연히 내가 말하는 ‘배후’를 모두 쉽게 짐작했다.

‘유랑단 녀석들이 기어코 일을 벌인 모양이네.’

이운조는 내 말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찢어 죽여 버릴 새끼들이라니까. 아, 전직 탈쟁이 씨들한테 한 말은 아니야.’

최설윤은 윤과 하현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쨌든 회의의 결론은 하나였다.

악신을 물리치며, 동시에 그 존재를 불러들인 유랑단 역시 제거하는 것.

당연히 유랑단의 모두가 악신의 곁을 지키고 있을 리는 없을 터.

‘먼저, 이운조는…….’

어떤 식으로 흩어지기로 했는지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리사.”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이운조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던 하현이었다.

그의 부름에 나는 웃었다.

“다시 이름으로 부르네요?”

“그걸 원하시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러니 ‘오빠’라는 말도 안 되는 호칭은 집어치워 주십시오.”

“당연하죠.”

알겠다고 하는데도 하현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제게 할 말이 많나 보네요?”

“네.”

하현이 고민도 않고 답했다.

“사실, 당신 계획에서 이운조는 제외해 주셨으면 합니다.”

“운조 언니는 하현이 빠지기를 원하고 있을 텐데요?”

“관심 없습니다.”

“거짓말.”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현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아니, 노려봤다.

“뭐라고요?”

“아니, 그게.”

상황을 무마하려던 나는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하현, 기분 좋죠?”

“네?”

“운조 언니가 걱정해 줘서 기분 좋잖아요.”

또한.

“화나죠? 운조 언니가 정말로 제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싶어서.”

하현이 금붕어라도 된 것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곧,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전혀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틀리기는 뭐가 틀려?”

타이밍 좋게 이운조가 등장했다.

“야, 하현. 너 설마 지금 리사 괴롭히고 있는 거 아니지?”

“안 괴롭힙니다!”

오히려 자신이 나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면서 하현은 이운조에게 내가 한 말을 일러바쳤다.

그에 하현이 보였던 것과 똑같은 표정을 지은 이운조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으십니까?”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을 하현이 대신해 줬다.

“웃기잖아.”

하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이던 그때.

“가자.”

이운조가 하현의 손을 잡았다.

“뭡니까? 어디를 가자고 그러는 겁니까?”

“리사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전에 잠시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졌어.”

“둘만의 시간이라니요?”

하현이 당황하여 외쳤다.

“싫습니다!”

“싫으면 그만두고.”

이운조가 순순히 그의 손을 놓아줬다. 제 손을 놓는 이운조를 하현이 다시 잡았다.

“뭐야? 싫다며?”

“그, 그게.”

하현은 꽤 당황한 얼굴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운조의 손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두 눈을 데굴 굴리는 모습이 꽤 안쓰러워 도와주기로 했다.

“손 놓지 말라는 것 같은데요?”

“윤리사, 당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지마는.

하현이 나를 쏘아붙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운조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물었다.

“보기 좋지 않아요?”

내 곁에 앉아 있던 대도깨비가 입에 곰방대를 물며 악담을 했다.

〖저러다 죽지.〗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왜 화를 내느냐? 리사, 너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았느냐?〗

“그런 생각한 적 없는데요?”

물론, 옛날이었다면 했을 거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이야기를 잠시 엿보았던 나였다면 말이다.

아마, 망할 커플이 데드 플래그 한번 열심히 세우고 있다면서 혀를 찼겠지.

하지만.

“이 싸움에서 죽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죽는 건 악신뿐이에요.”

“죽는 게 아니라 소멸이지.”

윤사희가 소리 없이 나타나서는 내 앞에 섰다.

“무섭지 않으냐?”

“무서워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답해 줬다.

“이 세상의 모든 악에서 태어난 존재라면서요?”

더욱이 몇 번이고 세상을 멸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죠.”

최설윤이 건물 잔해 위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그렇게 하늘을 보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시 한번 더 말했다.

“해야만 해요.”

나의 주인공을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했다.

***

“곧 손님이 찾아올 거라고 하는구나.”

무너진 세상이 훤히 보이는 곳.

유랑단의 수장은 곳곳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보며 읊조렸다.

“그것도 여러 명이.”

유랑단의 수장과 함께 멸망을 앞둔 세상을 보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각시탈을 너무 부려 먹는군.”

“원래 그럴 목적으로 만든 녀석들이란다.”

도구에 가까운 존재가 바로 ‘각시’였다.

아니, 그들은 도구나 다름없었다.

유랑단의 수장이 그리는 미래를 보여 주기 위해 태어난 탈.

“물론, 내게 반기를 들었던 녀석 역시 존재했지마는 말이다.”

저세상은 유랑단의 수장이 가리키는 ‘각시’를 쉽게 유추했다.

‘언니! 혜향화 언니!’

어릴 적, 윤리사가 유랑단에 의해 납치됐다가 구출됐을 때 끊임없이 불렀던 이름.

“지금 각시에게는…….”

이름이 있느냐고 물어볼 뻔했다.

‘바보같이.’

이름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각시는 유랑단의 수장에게 반기를 들었던 혜향화가 죽으며 태어난 존재.

이름을 붙여 줬을 리가 없다.

당연히 스스로 이름을 붙였을 리도 없었다.

“저세상.”

유랑단의 수장이 다정하게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도망치고 싶으면 그러렴.”

“하…….”

저세상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안 도망쳐.”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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