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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86)화 (486/500)

486화. 악(惡)이란 것(2)

〖말 한번 잘하는구나.〗

“시끄러워요.”

다행히 아빠는 대도깨비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애초에 아빠가 듣지 못하도록 내게만 말한 거겠지.

‘이 능글맞은 도깨비가.’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말했다.

“우선, 가죠.”

〖어디로?〗

“밖으로요.”

나는 아빠를 뒤로하며 걸음을 옮겼다.

“악신이 움직이고 있잖아요.”

쿠르릉!

말하기 무섭게 다시금 땅이 흔들렸다.

아니, 땅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지상까지 전해지는 거였다.

“멈춰야죠.”

그러지 않으면 악신은 계속해서 힘을 키울 거다.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움직이려는 것이냐?〗

대도깨비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능글맞은 도깨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죠?”

천지해(天地海).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었다.

또한, 누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는 거주자였다.

천지해가 짧게 혀를 찼다.

〖나 원, 참. 불나방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려는구나.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지.〗

“들었어요.”

그래서 움직이려는 거다.

“악신이 계속 활동하게 두면 더 골치 아파질 거예요.”

그 존재는 사람들의 공포를 계속 잡아먹으며 성장하게 될 테니.

“그러니까 지금 바로 처리하러 가야죠.”

〖홀로?〗

천지해가 진심이냐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럼, 네 아비와 함께 싸우려는 것이냐?〗

“아빠는 이매망량을 지켜야 해요.”

그는, 이곳의 주인이었으니까.

내 대답에 대도깨비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럼 도대체 누구와 함께 싸우려는 것이냐? 네 오라비들?〗

“오빠들도 안 돼요.”

분명, 내가 하려는 일을 막으려고 들 테니까.

“운조 언니한테 부탁할 거예요.”

〖운조? 운조라면…….〗

이내 생각났다는 듯, 대도깨비가 내게 물었다.

〖탈쟁이 놈과 함께 살고 있는 녀석 말이냐?〗

“네.”

그리고 뒤늦게 덧붙였다.

“하나 말해두겠는데, 탈쟁이‘였던’ 놈이에요. 지금은 하현이란 이름을 되찾고 잘살고 있다고요.”

〖하현이든 뭐든, 관심은 없고. 뭐,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녀석들이기는 하구나. 하나, 그게 끝은 아니겠지?〗

대도깨비가 물끄러미 나를 봤다.

그 시선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최설윤 길드장님께도 상황을 알려 도움을 받으려고요.”

〖최설윤?〗

대도깨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장천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분명 너를 방해할 게야.〗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대도깨비가 입을 다물었다.

“대도깨비 님?”

거듭 그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대도깨비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놈이 사랑했던 존재가 바로 그 처자다.〗

“최설윤 길드장님이요?”

〖그래.〗

대도깨비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장천의가 말했듯, 그 녀석은 그 처자를 위해 몇 번이고 수도 없이 실패했던 세상을 되돌린 놈이다.〗

“어떻게든 저를 방해하려고 하겠네요.”

최설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래. 그러니 포기해라.〗

괜히 그녀를 끌어들였다가 본전도 못 찾을 거라면서 대도깨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도깨비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나는 웃었다.

“싫어요.”

〖뭐라?〗

대도깨비가 얼이 빠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진심인 게냐? 장천의, 그놈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지독한 녀석이다!〗

“알아요.”

장천의를 직접 만나보고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미쳤어.’

그래,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완벽한 세상.

정확히는, 사랑하는 연인이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있었다.

‘바라는 것도 아니지.’

그는 집착 중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대도깨비가 말한 것처럼 몇 번이고 수도 없이 세상을 되돌렸을 리가 없다.

되돌린 끝에 그 세상을 기반으로 이 세상을 만들었을 리도 없고.

그러니까.

“저는, 최설윤 길드장님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끌어들일 거예요.”

〖허어…….〗

“생각해 보세요, 대도깨비 님.”

〖무엇을?〗

“장천의 말이에요.”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악신이 나타났는데도 장천의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잖아요?”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이 세상이 망가지는 걸 구경만 하고 있다.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너, 설마.〗

대도깨비가 경악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장천의를 이 싸움에 참여하게 만들려는 것이냐?〗

“참여가 아니라 수습이죠.”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누군가의 ‘패’가 되는 게 싫거든요.”

더욱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모두 제가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요.”

나는 대도깨비를 향해 싱긋 웃어주며 다시 바깥으로 움직였다.

“야, 윤리사! 너 어디가?!”

중간에 윤리타가 붙잡았지마는.

“리타 오빠는 리오 오빠랑 같이 아빠 좀 도와줘. 곤란해하는 모습 안 보여?”

내 말에 곧장 나를 놓아줬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어수선한 지하를 벗어났다.

***

“정말 멋진 풍경이네요.”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이제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붉은 색이었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에요.”

〖정말로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대도깨비가 입에 곰방대를 물며 중얼거렸다.

〖이제 막 움직였을 텐데, 그릇이 너무 커졌다. 힘이 너무 모였어. 너 혼자서는 무리다. 지금에라도 네 아비나 네 오라비들을 불러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싫다니까요.”

대도깨비의 고운 미간이 살포시 접혔다.

〖다른 녀석들은 되지만, 네 가족은 안 된다는 게냐?〗

“네.”

나는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내 계약자께서 이리 이기적인 인간일 줄은 몰랐는데.〗

“좋게 생각해 주세요.”

대도깨비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라면 좋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운조든 하연이든, 지금 네가 말한 녀석들과 함께 움직이면 그냥 개죽음일 것이다!〗

“최설윤 길드장님도 계세요.”

〖어쨌든!〗

대도깨비가 답지 않게 흥분하며 말을 쏟아냈다.

〖나는 네게 죽으라고 악신에 대해 정보를 말해준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앞날을 생각해 보라며 말해 준 것이지!〗

“그것도 악신을 처치해야 생각할 수 있잖아요.”

〖윤리사!〗

내 이름을 부르짖는 목소리에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대도깨비 님께서 저를 그렇게 부르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허튼소리 말고, 다시 한번 더 제대로 생각해 보거라.〗

“여기에서 생각할 게 더 있나요? 저는 없어 보이는데?”

쿠르르릉!

검붉게 물든 하늘이 울렸다.

산사태라도 일어난 것 같은, 그러니까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였다.

“그리고 저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아요. 만약, 정말로 제가 이기적이었다면 모든 가족을 희생시키려 하지 않았겠죠.”

〖뭐?〗

대도깨비가 무슨 소리를 하냐며 나를 쳐다보는 순간.

“이런, 우리 깨비 님께서 내 손주 녀석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희?〗

이매망량이 자리 잡은 귀수산을 수호 중인 존재.

그리고 나의 또 다른 가족.

“할머니, 제게 힘을 빌려주실 수 있나요?”

“그럼, 물론이지.”

윤사희가 유쾌하게 웃었다.

〖사희, 너! 진심인 게냐?! 너는 이곳을 벗어나면!〗

“죽지는 않아. 애초에 깨비 님, 이 몸은 죽은 몸인 걸 잊은 모양이군.”

〖사희, 이 녀석아! 내가 지금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느냐?!〗

대도깨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이곳을 벗어나면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귀수산을 벗어나 네가 가진 힘을 사용하면 필시 죽을 거다. 아니, 네 몸은 이미 죽은 몸이니끼.〗

“소멸하겠지.”

윤사희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괜찮아, 깨비 님. 어차피 이 몸은 내가 남긴 껍데기일 뿐. 소멸한다고 해도 진짜는 소멸하지 않을 테니.”

윤사희는 키득거렸다.

“진짜는 지금쯤 우리 신랑과 함께 손잡고 사이좋게 환생했겠지. 아님, 죽었거나.”

〖농이 나오느냐?〗

“깨비 님, 내 성격을 몰라?”

윤사희가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히죽거렸다.

“원래 이런 상황일수록 농담도 하며 움직여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냐, 리사?”

“맞아요.”

나는 윤사희와 똑같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대도깨비 님. 이제 불만 없죠? 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 아니란 것도 아셨을 테고요.”

〖대체, 사희 저 녀석에게 언제 말을 한 것인지.〗

“말한 적 없어요.”

그저, 윤사희라면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를 돕고자 나설 거라 근거 없이 믿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대도깨비는 말했다.

〖그래, 좋다.〗

쿠르르릉!

대도깨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이 울렸다. 이번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나는 검붉은 하늘을 쳐다봤다.

악신이 내게 손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재미있네.’

이상하게도, 그에 나 역시 손을 흔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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