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화. 악(惡)이란 것(1)
쿠르릉―!
붉게 물든 하늘이 격한 소리를 내며 땅을 울렸다. 나는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다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의 상황은 아주 엉망이었다.
“꺄아악!”
“으아앙! 엄마아아!”
“아악!”
이매망량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땅이 울릴 때마다 그랬다.
“쉬이, 괜찮아. 괜찮아, 아가.”
어머니는 아이를 달랬고.
“이제 그만……! 제발 이 땅에서 모두 사라져! 모두 사라지라고……!”
패닉에 빠진 사람은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저주하며 울먹였다. 그 모든 광경을 윤사해는 무덤덤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의 마음이 닳고 닳는 중이란 것을 말이다.
“윤사해 길드장님! 이번에도 괜찮겠죠? 우리 모두 살 수 있죠?”
“물론입니다.”
윤사해가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에도 울고 보채던 아이를 안아 든 어머니가 윤사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정말이죠?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맞아요, 윤사해 길드장님!”
하나, 둘. 이매망량으로 몸을 피신한 사람들이 그 말에 동조하며 윤사해를 향해 빌었다.
“국가 산하 기관으로 피난을 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들었어요! 이매망량은 안전하겠죠?”
“남해의 청(淸) 가문과는 연락이 되고 있나요? 그쪽으로 제 아들 식구가 피난을 갔어요!”
윤사해 길드장님!
윤사해를, 아니…….
‘아빠.’
그래,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그의 곁에 있던 서차윤이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제발 저희를 살려 주세요!”
“윤사해 길드장님은 강하잖아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요!”
몇 번이고 계속 거주자의 침입을 막아온 이매망량이었지마는.
쿠르르릉!
“꺅!”
악신은,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것도 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는 윤사해를 붙잡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대도깨비 님. 이게 악신이 가진 힘인가요?”
〖정확히는 그중 하나지.〗
대도깨비가 비웃음을 흘렸다.
〖악신이 왜 악신이겠느냐?〗
대도깨비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은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리 키운 공포로 다시 또 힘을 키우지. 그게 바로 악신이다.〗
그런 녀석을, 감히 네가 상대할 수 있겠느냐?
대도깨비는 마치 그렇게 묻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악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고통받은 세상이다.
“사람들은 많이 지쳤을 거예요.”
〖특히 너와 같지 않은 녀석들이 그럴 테지.〗
대도깨비의 말대로였다.
윤사해를 붙잡고 울부짖는 사람 모두가 비각성자였다.
“악신의 힘은 비각성자들에게 크게 작용하는 모양이네요?”
〖그래.〗
대도깨비가 수긍하며 말했다.
〖애초에 너와 같이 힘을 가진 자들은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것도 강한 각성자들한테 해당되는 이야기죠.”
공격계나 수비계가 아닌 힘을 지닌 각성자들은 아니었다. B급이나 C급 이하의 각성자들에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류화홍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윤사해를 붙잡고서 울고불고하며 빌고 있는 사람들처럼 굴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빠, 사람들이 윤사해 아저씨 붙잡고 막 울어.”
“무서워, 아빠. 엄마는 어디 있어? 나 엄마 보고 싶어. 아빠는 엄마 데리고 올 수 있잖아.”
“맞아, 아빠. 엄마 데리고 와 줘. 무서워.”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대도깨비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서는 말했다.
〖지킬 것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당연한 반응이다.〗
“그건 우리 아빠도 그런데요?”
〖네 아빠는 저 녀석보다 강하지 않느냐?〗
할 말이 없었다.
조용히 침묵하는 나를 보며 대도깨비가 키득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악신에 대해 더 말해 주마.〗
곰방대를 입에 물며 대도깨비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녀석은 저를 보고 느끼는 모든 두려움을 먹고 힘을 키우는 녀석이다.〗
두려움이라고는 하지만, 편하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을 하라며 대도깨비는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 야기하는 두려움은 다양하다.〗
대도깨비가 마뜩잖다는 얼굴로 계속 말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겁을 먹게 할 수도 있고, 한 존재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생각하게끔 하여 공포를 드러내게 할 수도 있지.〗
“골치 아픈 녀석이네요.”
〖그래. 인간이든 거주자든 감정이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녀석이니 꽤나 골치 아프지.〗
더욱이 통제되지 않은 그 감정을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니.
“죽일 수 있는 거 맞죠?”
〖죽이는 게 아니라 제압.〗
“그게 그거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대도깨비 님 말씀을 들어보니, 저세상이 왜 그렇게 실패했는지 아주 잘 알 것 같네요.”
〖흐음?〗
대도깨비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렇지만 말해 주지 않았다.
묻지도 않는 질문에 답해 줄 의무 따위 없었으니까.
그보다.
“아빠한테 가야겠어요.”
공포에 점철된 얼굴들 사이에서 아빠는 꼼작도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하로 내려온 윤리오와 윤리타가 아빠를향해 가려고 했지만 역부족.
내가 나서야했다.
〖갈 수 있겠느냐?〗
대도깨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였다.
나는 픽 웃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따악!
경쾌한 소리에 맞춰 내 밑에서 아른거리고 있던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있던 아빠를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윤사해 길드장님이 사라지셨어! 우리를 버렸다고!”
이야기가 왜 저렇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진정하세요.”
나는 손뼉을 치며 사람들을 내게 집중시켰다. 다들 하나같에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악신…….’
얼굴조차 만나보지 못한 신을 향해 속으로 몇 번이고 이를 갈며 나는 말했다.
“이매망량은 안전해요.”
“안전하다니!”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에 맞춰, 쿠르릉! 하늘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지하까지 들릴 정도로 아주 강한 소리였다.
“저 소리 안 들려? 이러다가 모두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에요?”
공포로 인해 이성이 아주 마비된 사람처럼 보였다.
어쨌든, 나는 말했다.
“이곳이 안전한 것 같지 않으면 말하세요. 남해로 보내 줄 테니.”
“뭐……?”
“그게 싫다면 이매망량을 믿어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곳을 지킨 우리잖아요?”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던 남자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나는 물러나지 않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당신이 어떤 위험을 느끼고, 또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믿으세요.”
그렇게 천천히 사람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목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이매망량은 강하니까.”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 고요에 나는 싱긋 웃고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치, 아빠?”
“리사…….”
그림자에 삼켜졌던 아빠는, 내 뒤에서 머리를 짚고 앉아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가 상황에 맞지 않게 웃으며 나를 칭찬해 줬다.
“그림자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구나.”
“그럼, 누구 딸인데!”
아빠를 향해 배시시 웃어주고는 말했다.
“아빠, 아니지. 길드장님도 사람들한테 한마디 하세요. 안심할 수 있도록요.”
윤사해가 두 눈을 끔벅이며 나를 쳐다보고는.
“윤리사 헌터의 말대로 하지.”
픽, 웃음을 흘렸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아빠가 사람들 앞에 섰다.
“다들, 진정해 주십시오.”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되는 목소리였다.
“우리 이매망량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여러분을 죽게 두지도 않습니다.”
아빠를 붙잡고 울고불고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모두들 많이 당황했을 것 압니다. 하지만 미지 영역이 처음 무너진 것과 별반 다름없는 상황임을 모두 인지해 주십시오.”
누구 아빠인지 말 한번 잘했다.
어쨌든, 아빠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지의 두려움과 공포에 먹히지 말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만 보십시오.”
한 박자 쉰 윤사해가 힘있게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강합니다.”
그래, 윤사해의 말대로였다.
쿠르릉!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저 소리가 악신이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라고 할 지라도.
“우리는 여러분을 지킬 겁니다.”
이매망량은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