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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84)화 (484/500)

484화. 그래서 나는(6)

대도깨비의 말대로였다.

신이었으면서 인간이 된 존재도 있는 마당에 그 반대가 불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선례가 없잖아요.”

신위(神威)를 버리고 인간이기를 선택한 존재는 알고 있었다.

‘윤사희.’

그녀뿐만이 아니다.

청(淸) 가문을 일으킨 남해 용왕 역시 인간이기를 선택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반대는 없었다.

듣도 보도 못했다.

그건…….

“대도깨비 님도 마찬가지죠?”

〖음?〗

“인간이 신이 된 경우 말이에요.”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대도깨비에게 물었다.

“본 적 없죠?”

대도깨비는 싱긋 웃었다.

“대도깨비 님. 그렇게 웃지만 말고 말 좀 해 줘요.”

웃기만 하던 대도깨비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래, 본 적 없다. 그렇기에 내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

악신이 아닌 다른 신이라고 해도 그 힘을 받아들이는 건 위험한 일일 거다.

그런데 모든 악을 한데 모아 놓은 악신의 힘이라니.

“저세상이 계속 실패했던 이유가 있었군요.”

그는 악(惡)을 혐오했다.

비단, 『각성, 그 후』에서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장천의가 끊임없이 되돌린, 그 많은 세계에서도 줄곧 그랬겠지.

“정말 멍청한 사람이네요.”

당연히 장천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악(惡)을 혐오하는 저세상이 악신을 물리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바보같이 주인공으로 만들어, 계속 세상을 되돌리다니.

“장천의를 다시 찾아가는 건 좀 그렇겠죠?”

〖왜? 한 대 또 때리려고?〗

“네.”

고민도 않고 답했기 때문일까?

천지해가 재미있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 계약자께서는 정말 재미있단 말이지.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반대다. 네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짓이야.〗

“그럴 줄 알았어요.”

이미 벌어진 일.

장천의를 한 대 더 때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랬다면 진작 달라졌겠지.’

애초에 악신을 막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장천의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지 못한 거겠지.’

어쨌든.

“저 악신을 물리칠 수는 있다는 거네요.”

내 말에 대도깨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방법이 있다는 게 중요해요.”

무엇보다 나는 저세상과 달랐다.

나는 저세상처럼 악(惡)을 극도로 혐오하지 않았다.

유랑단과 같은 지하 길드를 이해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들 모두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말일 뿐.

그러니까…….

“아마, 할 수 있을 거예요.”

〖무엇을?〗

“악신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이요.”

할 수 없다고 해도 해야 했다.

〖리사.〗

부르는 목소리에 괜히 말했다.

“괜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죽을 생각 따위 없으니까요.”

또한.

“무리할 생각도 없어요.”

거짓말이었지만.

물론, 천지해 역시 알 거다.

내가 지금 거짓을 늘어놓고 있단 것을.

그러나 그는 조용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에 곰방대를 문 채로 나와 함께 붉은 물든 하늘을 쳐다보기만 했다.

“악신을 죽일 때까지, 하늘은 계속 저러겠죠?”

〖그래.〗

후, 연기를 뱉어 내며 천지해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지겹도록 보게 될 거다. 악신을 죽일 때까지.〗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겠네요.”

〖악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세상을 몇 번이고 끝없이 멸망에 이르게 만든 원흉.

그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해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늘만 붉게 물들었을 뿐.

그렇지만 나는 알았다.

“대도깨비 님이 어련히 잘 알고 계시겠죠.”

그러면서 이어 말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게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야, 아직 이 세상은.

“끝나지 않았잖아요?”

〖허…….〗

대도깨비가 탄식하듯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너는 참 사희를 많이 닮았구나.〗

“칭찬이죠?”

〖욕이다.〗

대도깨비가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꾸나.〗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대도깨비 님, 저 안 죽어요. 꼭 살 거예요.”

〖그래.〗

대도깨비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꼭 살거라. 나는 너와 함께 다시 맑은 하늘을 보고 싶으니.〗

다시 연기를 길게 뱉어내는 그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아름답구나.”

저세상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를 보는 기분이야.”

유랑단의 수장이 황홀하다는 듯이 웃었다.

진심으로 기쁜 것처럼 보였다.

“……꽤 즐겁나 봐?”

“그럼, 즐겁지.”

유랑단의 수장이 키득거렸다.

“고향을 되찾은 기분인데 즐겁지 않겠니?”

고향이라…….

“당신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군.”

“그럼, 물론이지.”

유랑단의 수장은 두 눈을 여전히 붕대로 감은 채였다. 하지만 저세상은 그의 두 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세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유랑단의 수장은 꿈결에 젖은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르겠지.”

“당신 눈에는 지금의 모습도 꽤 아름답게 비칠 것 같은데.”

그야말로 핏빛으로 얼룩져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유랑단의 수장은.

“아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금보다 더 망가져야 한단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에 의해 곳곳이 망가졌음에도 아직 부족하다는 듯이 유랑단의 수장은 말했다.

“웃는 사람 따위 아무도 없도록. 모두 울며 끝을 염원하도록 그리되어야 한단다.”

“악취미군.”

“네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랑단의 수장이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너는 가족을 배신했잖니?”

저세상은 침묵했다.

그것도 잠시, 저세상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토해냈다.

“가족 따위 둔 적 없어.”

“저런.”

유랑단의 수장이 탄식했다. 그렇지만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도깨비의 따님께서 방금 네 말을 듣는다면 무척 실망했을 거란다.”

“상관없어.”

이미 나한테 실망할 대로 실망한 상태일 테니까.

‘그뿐일까?’

윤리사는 어떻게든 자신을 죽이고자 할 거다. 그녀의 앞에서 백시준을 죽인 자신이었다.

‘저세상!’

자신을 부르짖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내가 꼭 죽여 버릴 거야! 너, 내가 죽여 버릴 거라고! 기필코 죽여 버릴 거야!’

자신을 저주하던 그 목소리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지끈거렸다.

‘가증스럽네.’

저세상이 욱신거리는 가슴을 쥐며 자조했다.

“그보다 대단하구나.”

자신을 칭찬하는 목소리에 저세상이 가슴을 쥐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정말 악신을 이 세상에 불러올 줄이야.”

저를 칭찬하던 유랑단의 수장은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티 없이 맑게 웃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불러온 거니?”

묻는 목소리에 저세상은 순순히 답해줬다.

“계약을 맺었으니까.”

“흠?”

유랑단의 수장이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었지만.

“당신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어.”

저세상은 입을 닫았다.

쿠르릉―!

붉게 물든 하늘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호오.”

유랑단의 수장이 히죽 웃었다.

“악신께서 벌써 움직이려는 모양이군.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야.”

“그렇겠지. 그가 있던 세상에서는 먹을 게 없었을 테니까.”

저세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악신에 의해 끝도 없이 무너지던 세상이 떠올랐다. 동시에 자신이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야, 저세상! 얼굴 좀 펴! 너는 아직 어린애가 왜 그렇게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굴고 있냐?!’

이운조부터.

‘나를 생각하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생각해.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니까.’

청해솔까지.

그리고.

‘세상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던…….

‘고맙다.’

윤사해의 마지막도.

“하.”

저세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기까지 했다.

‘망할.’

저세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잊자.’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운조도 청해솔도 살아있으며, 윤사해 역시 멀쩡하게 살아 있다.

그뿐이랴?

이운조와 청해솔, 각자의 연을 찾았다.

윤사해는 가족을 향해 하염없이 사랑을 퍼부으며 자신의 기억에 없던 미소를 언제나 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괜찮아.’

저세상이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였다.

쿠르릉―!

다시 하늘이 울었다.

저세상과의 계약 하에 이 세상에 넘어오게 된 악신이 활동을 시작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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