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그래서 나는(1)
세상한테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웃기지 마…….”
장천의가 제 연인과 아이를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그럼,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세상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래. 내게 이러면 안 됐다.
“돌려줘.”
쿠르릉―!
이미 무너진 건물이 한차례 흔들렸다.
후두둑, 장천의는 자신의 머리 위로 파편이 떨어지는 걸 느꼈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더 말했다.
“돌려 달라고!”
최설윤을,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자신의 아이를.
“나를 사랑한다면 돌려 달라고!”
장천의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제 머리 위로 떨어지는 파편을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살아남은 인간들을 모두 죽이고 싶은지, 히죽 웃고 있는 얼굴이 하나 보였다.
‘신’이었다.
미지 영역이 무너지며 그곳에서 튀어나온 신. 그 망할 신이 인간들이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죽이고 있었다.
장천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설윤은 분명 아이를 지킬 수 있었다.
그뿐이랴?
자신의 몸 또한 지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한 건, 저 망할 ‘신’ 때문인 게 분명할 터.
“죽여 버리겠어.”
장천의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는 사이 파편은 그의 머리 위로 더더욱 가까워졌다. 죽음을 앞에 둔 상태로 장천의는 또다시 목소리를 토했다.
“죽여 버리겠어!”
그때였다.
장천의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큰 파편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모두를 잃은 남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건.
“장천의 회장님.”
저세상이었다.
이매망량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게 전부인 녀석.
비각성자인 몸인데도 이매망량에 당당히 입단하여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루키라고 하던가?
그가 음영이 진 얼굴로 장천의를 보며 말했다.
“그 상태로는 저 녀석들을 죽일 수 없어요.”
장천의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목소리였다. 저세상은 그가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놓아주세요.”
장천의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저세상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자신의 연인은, 제 아이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렇지만 장천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저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저세상이 말했다.
“대신 복수하죠.”
손을 내밀며, 저세상이 장천의와 똑같이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 한 번 더 목소리를 뱉어냈다.
“신들을 향해 복수해요, 우리.”
장천의는 홀린 듯이 저세상의 손을 잡았다.
비각성자.
신들에게서 꾸준히 위협받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에는 결코 힘든 몸이었다.
하지만 저세상은 끊임없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아 장천의를 구해 줬다.
그러나 결국 끝은 찾아왔다.
“장천의!”
장천의는 흐릿해지는 시야를 겨우 잡으며 저세상을 쳐다봤다.
“정신 차려요! 지금 당장……!”
소용 없어.
그 말을 해야하는데,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장천의는 실소했다.
‘천의야, 기억하렴. 너는 세상한테서 사랑받는 존재란다.’
세상한테서 사랑받는 존재는 개뿔, 결국 이렇게 죽게 되다니.
최설윤의 복수도, 아이의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장천의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신 차려요, 제발!”
그런 그를 저세상이 붙잡았다.
장천의는 저세상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다.
제게 다시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사태를 막으리라. 눈 앞의 남자를 더 강하게 만들어 모든 신을 몰아내리라.
“눈 감지마요! 장천의, 눈 감지 말라고! 제발, 나를!”
이 세상에 다시 홀로 두지마.
멀어지는 목소리에 장천의는 어떤 답도 들려주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까맣게 물든 시야.
장천의는 자신의 죽음을 그 순간 직감했으나.
【<[특수 스킬] 관리자>가 활성화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푸른 창에 두 눈을 떴다.
“헉……!”
가쁘게 숨을 터트린 장천의가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온통 백색인 공간에서 푸른 창이 문구를 바뀌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YES | 수락
YES든, 수락이든 의미하는 바는 같았다.
“이게 뭐야?”
장천의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뱉으며 읊조렸다.
그 순간 떠올렸다.
‘천의야, 기억하렴. 너는 세상한테서 사랑받는 존재란다.’
사랑받는 존재라더니.
“정말……?”
장천의가 히죽 웃었다.
무슨 답을 고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날 수 있고,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제 아이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장천의는 망설임 없이 답을 눌렀다.
“수락.”
***
다시 돌아온 세계.
“도련님, 당신이 이제부터 CW의 주인입니다.”
장천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세상이 무너질 때로 돌아갈 줄 알았더니.
그래도 장천의는 괜찮았다.
어린 시절로 돌아온 만큼, 세상의 멸망에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이 무척 늘어난 거니까.
이대로 어른이 되면.
‘최설윤.’
그래,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가 고백하는 거다. 장천의는 그렇게 두 번째 세계를 다시 시작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지난 세계보다 더 일찍 자신의 마음을 최설윤에게 고백했고, 다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이번에는 이름도 지어줬다.
다음은 저세상이었다.
“이 아이를 부탁한다고?”
“네, 크게 될 재목입니다.”
아이는 학대받고 있었다.
장천의는 그런 아이를 구해 윤사해에게 맡겼다.
“분명 이매망량에 크게 도움이 될 아이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윤사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천의 회장, 자네는 분명 내가 아이를 받아들일 줄 알고 이렇게 찾아온 거겠지.”
장천의는 웃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윤리오와 윤리타.
두 아이가 지하 길드에 납치를 당해 그만 죽고 만 것이다.
윤사해는 그날로 망가졌다.
‘왜지?’
장천의는 혼란스러웠다.
지난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윤리오와 윤리타의 죽음도, 윤사해가 그로 인해 망가지는 것도.
‘이대로는 안 돼.’
미지 영역이 무너져 신들이 바깥 세상으로 튀어나오기도 전에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말 거다.
“아빠?”
그래서 장천의는 제 손을 잡는 아이를 애써 외면하며 다시 시작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YES | 수락
그렇게 또 수락했다.
하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지하 길드에 의해 납치당하고, 윤사해는 결국 아이들을 구하는 데 실패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장천의가 악을 내지르며 그렇게 소리 질렀다.
한 사람을 떠올린 건 그때였다.
‘서차윤.’
윤사해와 항상 같이 다니는 그.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있어서는 하나뿐인 대부인 존재.
“그래…….”
서차윤을 이용하자.
<[특수 스킬] 관리자>로 세상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그 세상을 멋대로 조작도 할 수 있을 거다.
‘미지 영역은 논외인 것 같지만. 나머지는 가능한 것 같으니까.’
장천의는 곧장 자신의 생각을 실천시켰다. 서차윤이 아이들을 납치하도록 만든 거다.
그러지 않으면 윤사해와 그 아이들이 망가지는 세계를 몇 번이고 보여 주면서.
그렇게 하나의 변수를 처리했다.
다음은 저세상이었다.
“이 아이를 내게 부탁한다고?”
“네, 고객님.”
저세상은 학대받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구출해낸 장천의는 곧장 윤사해에게 맡겼다.
“분명 이매망량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아이는 세상이 멸망하던 그 끝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장천의에게 있어 저세상은 ‘주인공’이었다.
세상의 끝까지 살아남은 존재. 비각성자인 몸으로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에게 맞선 몸.
“리오 군과 리타 군도 남동생이 생겼다면서 좋아할 겁니다.”
윤사해는 그 말에 결국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믿었던 삼촌에 의해 납치를 당한 이후, 두 아이 모두 세상과 벽을 치고 있었으니.
윤사해는 그런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있었다.
아이들이 납치를 당한 게 자신의 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장천의는 윤사해를 향한 사과를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이대로 미지 영역이 무너진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에 불과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YES | 수락
세계는 계속 망가졌다.
저세상이 죽거나, 아님 그전에 사랑하던 연인이 죽거나.
계속, 끊임없이 변수가 나타났다.
“망할……!”
그 변수를 처리하며 다시 세상을 몇 번이고 돌이켰을 때.
“안녕, 장천의.”
윤사해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했던 서차윤이 장천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