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화. 지키기 위해(10)
미지 영역이 무너졌다.
처음, 이상을 알아차린 건 많은 도깨비와 계약 중인 윤사해였다. 그는 곧장 AMO를 비롯한 길드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인간들을 죽여라! 감히, 우리를 이 땅에서 쫓아낸 저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라!〗
때는 늦었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이 인간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신’이라 불렸던 자들은 무척이나 강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은 끝장입니다.”
“이미 북쪽은 끝난 것 같더군요.”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바랄 수도 없습니다.”
‘신’에 대항할 힘을 가진 각성자들은 AMO에 모여 말했다.
“이대로는 가망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AMO의 본부장인 강산에가 말했다.
“그래도 지켜야지.”
나지막하게 토해내는 목소리에 각성자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들 중에는 장천의도 있었다.
강산에는 그들 모두를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들, 모두. 각자 지켜야 할 대상이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윤사해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그에게 있어 지켜야 할 대상.
그건 바로 아이들이었다.
다음으로 대답한 건 그 아이들의 대부인 서차윤이었다.
“강산에 본부장님 말이 맞습니다. 암만 가망이 없다고 해도 최대한 힘을 내야죠.”
그러면서 그는 장천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장천의 회장도 그렇지?”
“네, 맞습니다.”
최설윤의 출산이 곧 임박했다.
사랑하는 연인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땅을 꼭 지켜야만 했다.
“다들, 각오는 모두 되어 있는 것 같군.”
강산에의 말에 모두 침묵했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고 하던가?
강산에는 그들의 침묵에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미지 영역이 왜 갑자기 터진 건지 알아내지는 못했네. 하지만 곧 알아낼 수 있을 거라네.”
AMO를 비롯한 국가 기관 모두 힘을 합쳐 원인을 밝혀내고 있는 중이라며 강산에가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 다들 잘 부탁하네.”
이 땅을, 그리고 ‘신’의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을.
“자, 그럼 다음을 기약하지.”
강산에의 말과 함께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강산에가 말했던 ‘다음’이 영원히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고객님, 리오 군과 리타 군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이매망량에 꽤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 전해 들었습니다만.”
“자네 걱정이나 하게. 곧 아이가 태어난다고 들었다만.”
“설마, 우리 고객님께서 지금 제 걱정을 해주고 계시는 겁니까?”
“말을 말지.”
장천의는 몰랐다.
***
결과적으로, 인간은 패배했다.
가장 먼저 쓰러진 건 DMO였다. 그 다음은 AMO.
“강산에 본부장께서 죽었다는군.”
장천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군요.”
강산에는 한국의 모든 각성자를 규합하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죽었다니.
“어쩌다 돌아가신 겁니까?”
“태양신을 막다 그렇게 됐다고 하더군.”
“그 망할 신은 막았답니까?”
“다행히도.”
윤사해의 말에 장천의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태양신을 막았으면 뭐 합니까? 다른 신이 계속 이 땅을,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그래서 포기할 건가?”
장천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윤사해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 옆에 앉았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들었네. 딸이라고 하던가?”
“네.”
장천의가 마른세수를 한 뒤, 애써 웃는 낯을 보였다.
“최설윤 길드장님을 닮아 무척 예쁜 아이입니다.”
“자네는 아직도 최설윤 길드장을 그렇게 부르나?”
“이 상황이 정리되면 여보, 자기 등등 마음대로 부르려고요.”
장천의의 말에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신혼이군.”
“고객님께서도 신혼 때 이러지 않았습니까?”
“그러지 않았다만.”
윤사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꽤 발랄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맞아, 사해는 그러지 않았어.”
“서차윤 씨.”
서차윤이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해는 린이랑 매일 싸웠거든. 리오랑 리타가 태어난 후에도 계속 싸웠을걸?”
“닥쳐, 서차윤.”
윤사해가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물었다.
“리오랑 리타는?”
“이매망량으로 먼저 돌아갔어. 자, 우리도 이제 그만 가자.”
“그래야지.”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장천의 회장.”
서차윤과 함께 자리를 떠나려던 그가 장천의에게 선물을 쥐여 줬다.
“뭡니까?”
“축하 선물.”
윤사해가 장천의에게 준 건 작은 신발이었다.
“아이는 금방 자라거든. 걸음마를 뗄 때 신기게.”
장천의가 멍하니 제 손에 쥐어진 작은 신발을 보다 기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 고객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 혹시 제 아이의 대부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찼다.
그것도 잠시, 그가 장천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뭐, 이 상황이 정리되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네.”
장천의의 얼굴이 환해졌다.
윤사해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서차윤과 함께 사라졌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
이매망량이 습격당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있는 귀수산.
바다를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는 그 산이 망할 ‘신’의 타겟이 되어 철저히 파괴당했다.
“길드장님과 부길드장님은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피신시켰습니다.”
그 결과가 죽음이었다.
장천의는 자신의 앞에서 묵묵히 그들의 죽음을 알려주는 남자를 쳐다봤다.
짙은 검은색 머리칼과 그보다 더 짙은 눈. 한쪽 눈 아래에는 작은 눈물점이 보였다.
“이름이 뭡니까?”
“저세상이라고 합니다.”
“등급은요?”
“없습니다.”
장천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그를 보며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 몸 하나 지킬 힘은 있습니다. 그래서 길드장님께서 이 사람들을 제게 맡겼고요.”
“그렇군요.”
이후, 이어진 건 긴 침묵이었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천의가 CW 본사 건물 지하에서 힘겹게 몸을 추스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다 물었다.
“리오 군과 리타 군은요?”
윤사해라면 분명 자신의 아이들 역시 사람들과 함께 피신시켰을 거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장천의의 질문에 저세상은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이봐요, 세상 군! 리오 군과 리타 군은 도대체!”
“죽었습니다.”
저세상이 장천의의 말을 끊었다.
“길드장님과 부길드장님의 곁을 지켜야한다며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저세상의 두 눈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제가, 그 두 사람을 막지 못했습니다.”
장천의는 멍하니 그를 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네, 고객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 혹시 제 아이의 대부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윤사해는 상황이 이렇게 될 거란 것을 알았을까?
아니, 몰랐을 거다.
‘뭐, 이 상황이 정리되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네.’
알았다면 생각해보겠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겠지.
“아아.”
장천의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는 순간.
“천의 씨?”
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설윤 길드장님.”
내뱉는 목소리가 한없이 떨렸다.
“천의 씨, 왜 그래? 이 사람들은 또 뭐고? 이매망량에 있던 사람들 아니야?”
장천의는 최설윤을 물끄러미 보다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죽었답니다.”
“누가?”
“윤사해 길드장님과 서차윤 부길드장님께서요.”
최설윤의 표정이 굳었다.
장천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제 연인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요?”
윤사해가 서차윤이 죽었다.
AMO의 본부장이 죽으면서 흩어지려던 각성자들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희망이 있을까요?”
“그럼, 있지.”
최설윤이 장천의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 주며 말했다.
“우리 애를 생각해.”
장천의의 두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오늘 나보고 ‘엄마’라고 한 거 있지? 곧, ‘아빠’도 찾겠어.”
“정말입니까?”
“그럼.”
최설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천의 씨. 우리 희망을 가지자.”
최설윤은 그대로 장천의의 뺨을 그러쥐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장천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설윤의 말대로였다. 아직, 이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아바! 아바아!”
아이의 옹알이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죄송해요, 아가씨께서 두 분을 계속 찾으셔서요.”
“이런.”
최설윤이 냉큼 아이를 안았다. 장천의는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최설윤은 아이를 낳았다. 대신, 조카를 잃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를 위해 웃고 있었다.
“자, 저기 아빠가 있네?”
“아바! 아바아!”
“그래, 아빠야. 천의 씨, 들었지? 아빠라고 하는 거?”
장천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궁!
그때,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설윤 씨!”
장천의가 제 연인과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안 됩니다!”
누군가 그를 막았다.
우르르―!
동시에 건물이 무너졌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에서 장천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설윤 씨?”
장천의가 기침을 토해내며 제 연인을 찾았다.
“아가?”
아직, 이름을 지어 주지 못한 제 아이 역시 찾았다.
세상에 평화가 오면 이름을 지어 주자고 했던가? 그 때문에 아이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설윤 씨! 아가!”
장천의는 목이 터지라 두 사람을 찾았다. 곧, 그는 제 소중한 사람들을 찾았다.
“아아…….”
차갑게 식어 죽어 가고 있는 두 사람을 말이다.
왜일까?
‘천의야, 기억하렴. 너는 세상한테서 사랑받는 존재란다.’
이상하게, 죽은 지 수 년이 지난 부모의 목소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