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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72)화 (472/500)

472화. 지키기 위해(4)

“윽……!”

장천의는 꼴사납게 쓰러졌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남자는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그 모양새가 보기에 꽤 웃겼다. 물론, 말로만 그랬다는 거다.

나는 웃는 대신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반대로 장천의는 나를 올려다보며 실실거렸다.

“리사 양, 못 본 사이에 주먹이 많이 매워졌군요.”

“닥쳐.”

장천의의 말을 끊고는 짓씹듯이 목소리를 뱉어냈다.

“내가 훌륭하게 세상의 멸망을 막아 내고 있다고?”

우습지도 않은 소리였다.

나는 곧장 장천의의 멱살을 잡아 억지로 그를 반쯤 일으켜 세웠다.

“당신은 그 전에 세상이 이렇게 되는 걸 막아 낼 수 있었잖아.”

“없었다니까요.”

장천의가 차갑게 대꾸했다.

“제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저는 리사 양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이 상황을 겪었다고.”

“그래, 들었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이며 장천의를 조롱했다.

“당신은 수도 없이 실패했고, 결국 포기했지.”

장천의가 표정을 굳혔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소리 할 거면 집어치워.”

장천의의 입을 다시 한 번 더 닫게 하고는 말했다.

“당신이 말했지? 주인공은 저세상이 아니라 ‘윤리사’였다고.”

그렇지만 아이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리고 이 세상을 다시 구축하든, 그 아이는 계속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데려왔지.”

내가 살고 있던 지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윤리사’의 몸을 장악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하던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는지, 아닌지 관심 없다.

중요한 건.

“당신은 그러면 안 됐어.”

장천의는 이 세상을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거였다.

아무리 그 아이가 ‘마리아’였던 내 몸에서 함께 살다시피 했다고 해도 그랬다.

문득, ‘윤리사’ 내게 남긴 인사가 떠올랐다.

‘정말로 고마워, 윤리사. 이 말을 줄곧 하고 싶었어.’

아이는 내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자신의 가족이 서로 화해하게끔 만들어 줘서, 자신의 가족이 행복하게끔 만들어 줘서 고맙다며.

‘억지로 괴로운 길을 걸을 필요 없어.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하거든.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만큼이나.’

그렇게 인사하며 사라졌었다.

나를 원망해도 모자랄 판에…….

그 아이는, 더없이 행복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렇게 나의 행복을 빌어 줬었다.

떠올린 과거의 대화에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방법을 찾았어야지.”

‘윤리사’와 작별한 후, 다시 만난 장천의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나는 계속해서 쏟아 냈다.

“몇 번을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어야지!”

그 아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또한.

“저세상이 당신이 그렇게 원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았어야지!”

장천의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고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던 내 손을 힘주어 떼어 냈다.

“당신이 뭘 안다고 지껄입니까?! 저는 몇 번이고 찾았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번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실패했습니다! 몇 번이고 계속!”

장천의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그 절망을 압니까?”

무슨 수를 써도 멸망하는 세상을, 사랑하던 사람을 그 속에서 잃는 그 좌절을.

“당신은 모릅니다. 절대로 알 수 없을 겁니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죠!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을 저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장천의는 그렇게 말하며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장천의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웃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정말이지.

“한심해.”

그래,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해 보였다.

장천의의 웃음이 뚝 그쳤다.

곧, 그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빤히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한심하다고, 당신.”

장천의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렇게 그가 내게 말하려고 하는 찰나에.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은 지금 그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먼저 선수 치며 비웃었다.

장천의는 그대로 표정을 잃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곧 그가 종잇장처럼 구겨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도대체 왜 찾아온 겁니까?”

나는 침묵했다.

그런 나를 향해 장천의가 성난 목소리를 토해냈다.

“뜬금없이 왜 저를 찾아온 건가 했더니, 제게 뒤늦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겁니까?! 아님, 조롱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요?”

대답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나는 계속 입을 닫았다. 장천의가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아하! 그래서 찾아온 거군요!”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서 아주 잘 논다 싶었지마는.

“무슨 말이라도 해 보시죠!”

곧, 장천의가 내 멱살을 잡았다. 내가 그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픽 웃고는, 퍽! 대답 대신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 장천의는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는 말했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천의 삼촌.”

장천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곧장 나를 올려다보는 그에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하나 더.”

한쪽 무릎을 굽혀 장천의와 눈을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 따위 없어요.”

아, 하나 더 있다.

“천의 삼촌의 절망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했죠?”

장천의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일그러진 미소를, 아니. 더없이 환하게 웃어 주며 답해줬다.

“저는 알아요.”

윤사해를 잃었었다. 윤리오 또한 잃었었다.

윤리타는 또 어떻고.

그리고…….

“여기에서 줄곧 제가 막고 있는 멸망을 지켜봤으면 알고 있겠죠?”

나의 소중한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존재를 잃던 순간을, 그 순간에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을.

“그러니까 저는 충분히 잘 알고 있어요.”

장천의가 겪었던 절망을.

“그 좌절을, 천의 삼촌은 모르겠지만 아주 잘 알고 있다고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후 장천의한테서 몸을 돌렸다.

“저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사실은 아니었다.

원래, 장천의에게 백시준한테서 양도받은 <[특수 스킬] Delet>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면 좋을지를 물어보러 온 거였지마는.

‘됐어.’

장천의가 있던 공간을 보자마자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커다란 시계를 중심으로 펼쳐진 수십, 수백 개의 화면.

장천의가 있던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여러 개의 화면은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사실, 저 화면이 비추는 장면들은 모두 한정적이란 것을.

아마도 그 장면들의 주인공들은.

‘나와 저세상이겠지.’

저세상도 알고 있을까?

장천의가 이런 식으로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장천의에 의해 버림받은 주인공이었다.

‘모를 리가 없어.’

그럼에도 저세상은 기꺼이 구경거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장천의의 뜻대로 내가 이 세상을 구원할 ‘주인공’이 되었으면 해서.

‘멍청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천의나 저세상이나 모두 바보였다.

“천의 삼촌.”

그의 공간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잠시 멈춰 섰다.

등 뒤로 장천의의 시선이 닿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생겨난 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버린 세계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어요.”

나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장천의가 내 말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구태여 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며 갈 뿐이었다.

〖리사.〗

장천의와의 대화 내내 침묵하고 있던 대도깨비가 다정하게 나를 불렀다.

〖울지 말거라.〗

“안 울어요.”

〖그래, 그럼 말을 바꾸마.〗

대도깨비가 훌쩍 자란 키로 나와 나란히 걸으며 목소리를 내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그에 거짓말처럼 눈물이 뚝뚝 뺨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황급히 눈가를 닦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결국 눈물을 닦는 걸 포기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대도깨비는 그런 내 곁에 앉아 등을 토닥여줬다.

〖옳지, 그래.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그리 험난할 것 같지 않으니 마음껏 울거라.〗

제발 입 좀 다물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이라도 된 것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아주 꼴사납게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래, 울거라. 어차피 네가 우는 소리를 들을 인간은 이곳에 그 누구도 없으니까.〗

그러니, 마음 놓고 울거라.

자장가처럼 들리는 다정함이 섞인 위로에 나는 잠을 청하는 대신 계속 울었다.

두 눈이 아주 퉁퉁 부을 때까지.

이번이 마지막으로 우는 거라고 다짐하며, 그렇게 눈물을 비처럼 쏟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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