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지키기 위해(3)
“할머니…….”
윤사희가 나를 보며 웃었다.
“아주 꼴이 엉망이구나!”
유쾌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와락 얼굴을 구겼다.
“장천의는요?!”
“나를 보고 생각나는 말이 그것 하나뿐인 게냐?”
“네!”
“거참, 당당하기도 하지.”
윤사희가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찾았다.”
그 담담한 목소리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윤사희가 장천의를 찾고자 힘을 쓴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그를 찾았다고?
“……대도깨비 님도 찾기 어렵다고 했었는데.”
“그거야, 그 양반의 힘이 나보다 못해서 그런 거고.”
〖사희, 듣는 양반 섭섭하게 말하는군.〗
대도깨비가 순식간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 그를 보는데, 윤사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키득거렸다.
“가까이 있었군!”
그러고는 말했다.
“내 손녀를 계속 잘 부탁하네.”
〖물론이지.〗
대도깨비가 싱긋 웃고는 가볍게 나를 들었다.
〖내 소중한 계약자 아니신가? 그립고 그립던 이 땅을 다시 밟게 해 준 계약자이니 귀한 몸 다치지 않게 소중하게 모셔야지.〗
소중하게 모시고 자시고!
“내려 주세요!”
나는 있는 힘껏 발버둥쳤다.
이제 곧 스무 살을 앞두고 있는 나이였다.
내가 안으면 몰라, 남에게 안기는 취향따위 없었다.
그렇지만 망할 대도깨비는 묵묵부답이었다.
“대도깨비 님!”
그때였다.
“리사.”
윤사희가 부드럽게 나를 불렀다.
“장천의, 그 녀석은 찾아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옆으로 문이 생겼다.
“이 문을 열면 곧바로 장천의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할머니.”
“이곳은 내게 맡기고 그 망할 녀석을 만나러 가 보거라.”
어서 움직이라는 듯, 윤사희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 고갯짓에 대도깨비가 물었다.
〖자, 어떻게 하겠느냐?〗
능청맞게 묻는 질문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죠.”
〖그럴 줄 알았지.〗
대도깨비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는 윤사희가 만들어 낸 문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대도깨비 님, 저 다리 멀쩡하게 잘 있는데요.”
〖물론, 두 다리가 멀쩡하게 잘 있는 거 알지. 하지만 서 있는 것도 힘든 몸이지 않느냐?〗
“아닌데요.”
〖거짓말하기는.〗
대도깨비가 이마를 살짝 부딪치고는 물었다.
〖내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네 몸 상태를 알지 못할 것 같으냐?〗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괜히 불퉁해져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니 대도깨비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눈을 감고 있거라. 사희는 장천의한테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위험하거든.〗
“뭐가요?”
끼이익―!
대도깨비가 윤사희가 만들어 낸 문을 가볍게 열어젖히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것들이.〗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안에는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머리 위로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겁먹지 말거라.〗
흠칫 몸을 떨고는 고개를 올렸다.
대도깨비가 두 눈을 휘게 접으며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내가 있지 않으냐? 저것들은 감히 네게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저것들이라니.
‘하나만 있는 게 아니구나.’
나는 꿀꺽 침을 삼킨 후 거주자들과 대적 중인 윤사희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녀가 히죽 웃었다.
“대도깨비 님의 말이 맞다. 너무 겁먹지 말고 그 치를 꼭 붙잡고 있기나 하거라. 그럼 알아서 장천의의 앞에 도착하게 될 테니.”
그렇다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대도깨비의 옷깃을 꼭 잡으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잠깐.
“할머니!”
나는 대도깨비의 품에 안겨 문에 들어가기 전, 다급하게 윤사희를 불렀다.
“잘 부탁할게요!”
이매망량의 모두를 일컫는 말이었다. 내 말에 윤사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 걱정도 참.”
그와 동시에 윤사희의 중심으로 그림자가 회오리치며 일어났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어서 가기나 하거라. 내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인 저 녀석들의 뿌리를 아주 그냥 뽑아 버릴 테니.”
분노가 깃든 목소리에 나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갈까?〗
대도깨비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눈을 뜨지 말도록 하거라.〗
문에 들어서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도착했다.〗
이지 장천의의 앞이었다.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벅이다 대도깨비의 품에서 내려왔다.
장천의는 내가 올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당장, 그의 앞에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멋들어지게 장식된 찻잔 두 개가 놓인 테이블이 말이다.
나는 말이 없는 장천의를 잠시 쏘아보다 그를 향해 움직였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서 잔잔하게 물결이 일었다.
‘물?’
아니, 물은 아니었다.
이곳은 장천의가 만들어 낸 아공간이니, 물처럼 보이게끔 바닥을 그저 꾸며 놓은 것일 터.
나는 그렇게 장천의의 앞에 섰다.
“오랜만입니다, 리사 양.”
“네, 오랜만이네요.”
“앉으시지요.”
따악!
장천의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의자가 생겨났다.
“편하게 앉으십시오. 특별히 리사 양이 좋아할 만한 차도 준비했으니 말입니다.”
“그것 참 고맙네요.”
장천의가 베푸는 친절에 비아냥거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장천의는 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군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지.’
장천의는 방관자였다.
또한,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려 이 세계가 다시 시작되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장천의 삼촌.”
이제 알아봐야지.
나는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고는 입을 열었다.
“세계가 이렇게 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죠?”
“오랜만에 만났는데 바로 본론을 꺼내는군요. 섭섭하게.”
“그만큼 급한 일이라서요.”
싱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알고 있었죠?”
장천의는 말없이 찻잔을 들었다.
그 침묵이 몇 초, 아니. 몇 분을 넘어갈 때 장천의가 드디어 대답했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태의 원흉은 아닙니다.”
혹시 모를 오해를 막고자 미리 말해 준다며 장천의는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에게 물었다.
“왜 막지 않은 거죠?”
“흐음?”
장천의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에 이를 드러내고 말았다.
“당신이라면 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잖아요.”
미래를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왜 손을 놓고 있었어요? 왜 어떤 경고도 없이 모습을 숨긴 거예요?”
한 번 터진 질문이 막을 새도 없이 계속 튀어나왔다.
“당신이 잠적하기 전에 진달래 언니한테 미리 이 사태를 예견하기만 했다면!”
“뭐가 달라질 것 같습니까?”
장천의가 내 말을 차갑게 끊고는 되물었다.
“그리고 하나 알려드리죠. 당신이 아니었다면 진달래 양께서는 살지 못했을 겁니다. 비나리 고등학교가 초랭이 탈에 의해 습격당했을 때 죽을 목숨이었지요.”
담담하게 내뱉은 목소리는 끝도 없이 가라앉아있었다.
“뭐, 물론 진달래 양께서 멀쩡히 살아있던 세계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달래 양에게 말한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죠.”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에 의해 세계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세계를 되돌렸죠.”
장천의가 음울한 눈을 보였다.
“리사 양, 저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세계를 경험했답니다. 그리고 그 세계 모두 같은 길을 걸었지요.”
멸망.
“그 이유는 설명해 드렸지요?”
주인공이 잘못 설정됐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리사 양. 당신은 지금 훌륭하게 세상의 멸망을 막아 내고 있답니다.”
장천의가 싱긋 웃었다.
“저세상 군이었다면 분명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겠지요.”
백시준에게 양도받은 힘을 가리키는 게 분명한 말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퍽!
냅다 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