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지키기 위해(2)
“허억……!”
입가를 틀어막으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심장이 쥐어뜯기는 감각에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렸다.
더욱이 고개를 숙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땅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우욱.”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올라오는 신물을 억지로 삼키며 생각했다.
‘미친.’
이대로면 정신줄 놓고 쓰러질 것 같았다.
그만큼 고통이 상당했지만.
‘버티자.’
쓰러지면 안 됐다.
윤사희가 장천의를 찾을 때까지 귀수산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니 어떠한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버텨야만 했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쉰 후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던 거주자들 대부분이 사라진 게 보였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된다고?”
한때, ‘신’으로 추앙받던 자들이 이런 식으로 삭제된다니.
‘우습네.’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죽음을, 아니. 소멸을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지만 허탈한 웃음이 계속해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이, 괴물 같은……!〗
〖지금 죽여 싹을 없애야 한다!〗
〖옳소! 보아하니 그 괴이한 힘을 이제 사용하지 못하는 건데 지금 죽입시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
남아 있던 거주자들이 나를 보며 이를 세웠다.
‘곤란하네.’
모두 소멸됐으면 좋으련만, 힘이 부족했던 탓인지 남아 있는 거주자들의 수가 상당했다.
처음보다는 꽤 줄어든 숫자였지마는.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새삼 그런 걱정이 들었다.
‘걱정은 무슨.’
픽 웃고는 생각을 고쳤다.
‘감당해야지.’
윤사희에게 맡겨만 달라며 당당하게 말했던 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앞을 쳐다봤다. 거주자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똑바로 노려봤다.
“부끄럽지 않으세요?”
내 질문에 거주자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그 동요에 나는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유랑단에 소속되어 있나요? 아님, 다른 지하 길드?”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때문에 나 혼자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들이 암만 지하 길드 소속이라고 해도, 엄연히 이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당신들은 그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거주자들 곁에 붙어 있고 싶어요?”
까드득, 이를 갈았다.
“저 자식들 곁에 붙어 있으면, 맛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나요?”
“닥쳐!”
거주자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버럭 소리 질렀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그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보며 다시금 외쳤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떤 미련도 없다!”
“맞아!”
남자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지킬 사람도 없는 세상 따위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지하 길드 소속이라서 다행이에요.”
“뭐?”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묻는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답해줬다.
“괜히 이제 와서 제 말에 죄책감이라도 가졌으면 정말 미안할 뻔했거든요.”
그러면서 창을 꺼내 들었다.
<[특수 스킬] Delet>의 힘을 사용한 부작용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준이 삼촌도 이랬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이매의 생명을 몇 번이고 삭제시키며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렸을 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참아야 했다.
내게 이 힘을 양도한 백시준을 생각해서라도.
“후.”
작게 숨을 토해 낸 후, 적들을 향해 창을 치켜들었다.
절반 정도 사라진 거주자들.
그리고 그들 곁에 붙어 있는 수십 명의 인간들.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까?’
문득 드는 불길한 생각을 고개를 저으며 떨쳐냈다.
‘할 수 있어.’
나라면 분명 저들 모두 혼자서 상대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지며 그림자를 움직였다.
파아앗!
촉수처럼 뻗은 것이 거주자들을 노렸다.
〖흩어져라! 흩어져서 공격해!〗
〖어차피 수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죽여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야만 한다!〗
〖움직여라, 인간들아!〗
거주자들과 함께 온 인간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가볍게 그림자를 움직였다.
“으악!”
“꺅!”
그림자에 잡힌 사람들은 곧바로 바다로 날려 버렸다.
바다에 빠져 꼴사납게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주자를 불렀다.
‘대도깨비 님.’
〖오냐, 아해야.〗
부르기 무섭게 대답이 들려왔다.
‘저 녀석들, 다시 뭍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 줄 수 있나요?’
〖그 정도는 될 것 같구나.〗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말했다.
〖바다에 잠기지 않게 몸뚱이의 절반만 묶고 있으면 괜찮겠지.〗
하긴, 그러면 바다에 빠져 죽을지 모르는 ‘인간’을 구한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 괜찮을 거다.
‘부탁할게요.’
〖그래, 아해야.〗
웃음기 섞인 대답으로 대화가 끝날 줄 알았지만.
〖조심하거라.〗
아니었다.
대도깨비가 걱정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로 내게 당부했다.
〖네 몸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거라. 그렇지 않아도 네 몸은 지금.〗
“알아요.”
나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대도깨비는 조용했다.
입 밖으로 내뱉은 내 대답을 들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말했다.
“제 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특수 스킬] Delet>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심하면.
‘옷이 다 젖을 정도.’
그래, 그 정도로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나면 안 되죠.”
거주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충 해결이 됐다. 남은 건 겁도 없이 귀수산에 쳐들어온 저 망할 거주자들뿐이었다.
“그럼, 대도깨비 님.”
나는 그림자로 만들어 낸 창을 꼭 쥐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토해 냈다.
“계속 부탁할게요.”
〖……그래.〗
다소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에 싱긋 웃고는 잔뜩 화난 얼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망할! 다들 조심해라! 저 인간에게 닿으면 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닿지 않아도 소멸한 자들이 있지 않소?!〗
〖나, 나는 떠나겠소!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군!〗
〖비겁하게 어디를 간다는 거냐! 하찮은 인간에게 등을 보이지 말고 싸워라! 우리는 신이다!〗
신이라…….
‘말은 잘하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에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가 보여준 힘이 대단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분란을 만들어 낼 줄이야.
‘거주자의 이름이 울겠네.’
아니.
‘신이란 이름이 울겠어.’
나는 생각을 고치며 거주자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으윽! 이 빌어먹을 인간이!〗
“스친 것 가지고 엄살은.”
조소하며 비아냥거렸다.
“목이라도 날아가면 아주 그냥 울 것 같네요?”
〖뭐라?! 인간 주제에 감히!〗
“감히는 무슨.”
푹!
거주자의 목에 창을 찔러 넣으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토해 냈다.
“당신들이야말로 감히 귀수산에 발을 들여?”
목에 찔러 넣은 것을 그대로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쫓아냈어도 다시 찾아온 걸 보면, 죽을 각오가 됐다는 말이겠지?”
일그러진 얼굴로 짓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걸로 봐선, 암만 거주자들이라고 해도 이 땅에서 죽으면 그대로 소멸하는 것 같던데 말이야.”
그러니까, 인간과 계약하지 않고 멋대로 세상에 나온 거주자들에 한해서 말이다.
“맞지?”
내 말에 거주자들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내 창에 목이 달아난 거주자의 몸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중이기 때문이겠지.
최설윤과 함께 죽기 살기로 태양신을 상대했을 때 봤던 광경.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누구야? 한 명씩 올 것 없이 다 같이 달려들어도 좋아.”
그러면서 나는 빌었다.
제발, 저 망할 거주자들이 내 말에 겁을 먹고 도망치기를.
‘다 같이 달려들면 분명 당해 내지 못할 거야.’
속에서 계속 신물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뿐이랴?
“쿨럭.”
작게 기침을 할 때마다 비릿한 맛이 나기도 했다.
내상을 입은 모양이다.
‘두 번 사용할 힘은 못 되네.’
그런 생각을 하며 거주자들을 보던 그때.
〖으, 으아악! 나는 못하겠소! 저 인간을 죽이지 못하겠단 말이오!〗
〖나도! 빌어먹을 인간한테 소멸을 당하는 굴욕을 겪는 것보다 그냥 다음을 기약하겠소!〗
이탈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너희들이 그러고도 신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어디를 가는 거야! 돌아와!〗
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파아앗!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단번에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아빠?”
윤사해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어이쿠, 이런.”
그와 무척이나 닮은 여자가 픽 웃으며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렇게 이 땅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말라 했는데 말이지. 다들 하나같이 멍청하군.”
윤사희.
“자, 죽을 각오로 다들 귀수산에 찾아온 것이겠지?”
그녀가 웃는 낯으로 거주자들을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