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지키기 위해(1)
“길드장님! 큰일입니다!”
벌컥, 문이 열렸다.
“거주자들이 귀수산으로 몰려 왔습니다! 윤사희 님 혼자서 막을 수 있을 군세일지……!”
서차웅이 다급히 말을 쏟아내다 입을 다물었다.
“길드장님?”
윤사해가 어떠한 동요도 없이 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차웅은 이상하게 그 모습이 무척 위태롭게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물론, 괜찮지.”
윤사해가 옅게 미소를 보이고는 물었다.
“사야는 지금 어디 있나?”
“아, 그게.”
서차웅이 곧장 대답했다.
“부산 쪽에 지원을 나갔다가 이제 막 돌아온 참입니다.”
“그렇군.”
윤사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하나 부탁할 일이 있으니 불러와 줬으면 하는군.”
“알겠습니다. 저, 그보다…….”
서차웅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윤사희를 걱정하는 질문이었다.
그에 윤사해는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게.”
덤덤하게 말한 그는 이어 목소리를 뱉어 냈다.
“리사는 약하지 않으니까.”
그 말에 서차웅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서 왜 갑자기 윤리사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설마, 아가씨께서 지금 저 군을 물리치러 간 겁니까?”
“그래.”
윤사해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빠의 하나뿐인 딸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전장으로 떠나는 아이를, 윤사해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두 손을 꽉 주먹 쥐고서 말이다.
“서 비서.”
“네, 길드장님.”
“리오도, 리타도.”
그리고.
“리사도.”
윤사해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서글프게 말했다.
“내 마음대로 크지 않는군.”
자신의 아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사람을 적대하는 일 또한 겪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은 제 바람대로 크지 못했다.
이매망량의 헌터로 지하 길드와 대적하고 그 과정에서 죽이며 또한 다쳤다.
윤리사는 어떤가?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린 나이에 말이다.
윤사해가 그 사실을 상기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이내 말했다.
“이매망량으로 피신 온 사람들이 밖을 보지 못하도록 말게. 저 군을 보면 분명 동요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또한.”
윤사해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말을 뱉어 냈다.
“윤리사 헌터를 제외한 다른 헌터는 모두 이매망량을 지키는 데 집중할 것을 명령한다.”
아이는 홀로 싸우기로 했다. 그 싸움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게 할 수는 없었다.
암만 위험한 전장이라고 해도 그랬다.
서차웅이 놀란 눈으로 윤사해를 보고는 이어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
‘많기도 하네.’
가볍게 허공을 딛으며 귀수산에 몰려든 거주자들을 쳐다봤다.
모여 있는 꼴들이 꼭…….
“개미들.”
그래, 개미들처럼 보였다.
‘그것도 아니면 벌들.’
결국에는 벌레였다.
나름 작게 말한다고 한 건데, 내 목소리를 대체 어떻게 들었는지 거주자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우리를 벌레 취급한 것 같고.〗
〖인간 주제에 겁도 없군.〗
〖겁이 없으니 저렇게 혼자 우리 앞을 막으러 온 거겠지!〗
거주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희는 없느냐! 그 주제도 모르는 계집은 없느냔 말이다!〗
〖사희를 불러 와라!〗
〖그래!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그 계집을 우리 앞에 데리고 와라! 이 자리에서 그 몸을 기필코 찢어 버리고 말 거다!〗
귀수산은 지금까지 윤사희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즉, 겁도 없이 귀수산을 침략하려 드는 거주자들을 그녀가 혼자서 막아내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윤사희를 찾는 목소리들에 비딱하게 웃었다.
“당신들, 우리 할머니가 무섭구나? 거주자란 이름이 쪽팔리게!”
〖뭐라?!〗
“그게 아니라면 한 번 말해보지 그래? 이런 식으로 우루루 몰려온 이유를 말이야.”
〖닥쳐라!〗
거주자들의 기세가 흉포해졌다.
〖사희, 그 녀석은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 없다! 그런 녀석을 우리가 왜 두려워하겠느냐!〗
〖사희를 닮은 계집이 주제도 모르고 떠들어대는구나!〗
윤사희를 닮은 계집이라니.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닮을 수 밖에 없지. 당신들이 말하는 ‘사희’는 내 할머니니까.”
나를 향해 시끄럽게 쏘아붙이던 거주자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놀란 눈치였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들에게 물었다.
“거주자면서 그런 것도 몰라? 뭔가 느낌이 오지 않아? 내가 그 핏줄이라는 걸?”
〖이… 이익……!〗
인간에게 놀림을 받은 것에 꽤 화가 난 모양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거주자들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시끄럽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죽여 주마! 이렇게 된 거, 사희를 대신해 네년을 죽이마!〗
〖그래! 한낱 인간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우리를 놀리려 들다니!〗
〖죽인다! 기필코 죽인다! 죽여 그 시체를 사희에게 보여 주겠다!〗
〖맞아! 그렇게 해 주마!〗
분노가 섞인 목소리들에 나는 픽 웃었다.
“그거 알아요?”
나는 그림자를 이용해 만들어 낸 창을 손에 쥐고는 비아냥거렸다.
“원래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더 설친다는 거?”
〖뭐, 뭐라?!〗
“참고로 제가 가리키는 대상은 바로 당신들이에요.”
미지 영역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저들은 지금 어쩌고 있었을까?
분명, 인간과의 계약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을 거다. 그렇게 미지 영역을 나와 세상을 구경하려고 들었을 거다.
그랬을 주제에…….
“미지 영역이 무너지니 아주 살 맛이 났지?”
까드득, 이를 갈고는 그들을 노려봤다. 거주자들은 그런 내가 같잖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래, 지금 실컷 웃으라지.
‘곧 울게 될 테니까.’
나는 이 자리에서 백시준한테서 받은 힘을 사용할 거다.
‘특수 스킬.’
Delet.
나는 그 스킬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아는 거라고는 상대의 힘을 지울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이 이 힘을 그런 데에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용법은 그 밖에도 많았어.’
백시준이 가지고 있었던 이 힘은 사용할 곳이 많았다.
당장, 이매의 수명을 지우기까지 했었으니.
‘백시준도 그렇게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지만.’
그가 이매의 수명을 지운 후, 무척 놀랐던 것이 생각났다.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만 하면.’
귀수산에 몰려든 거주자들의 힘을, 혹은 그 존재를 지울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나 혼자서 해야만 해.’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누군가 휘말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할 수 있어.’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아버지!”
자신을 다급하게 찾는 목소리에 윤사해가 고개를 돌렸다.
“리사 혼자 거주자들을 막으러 나갔다면서요?!”
“리오.”
윤사해가 다정한 목소리로 첫째 아들을 부르고는 타일렀다.
“안정을 취해야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저는 다 나았어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윤사해가 윤리오의 얼굴 한쪽에 감겨진 붕대를 물끄러미 봤다.
윤리오가 그 시선에 움찔하고는 외쳤다.
“어쨌든 괜찮아요! 다 나았다고요! 그러니까 저도 가겠어요!”
“어디로?”
“당연히 리사가 있는 곳에 가겠다는 말이죠!”
윤리오의 손에는 윤사해가 선물해 줬던 검이 들려 있었다.
윤사해는 첫째 아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는.
“앗!”
순식간에 그것을 빼앗아 버렸다.
“무슨 짓이에요?! 내놔요!”
“그럴 수는 없다.”
윤사해가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만약, 돌려받고 싶으면 내게서 직접 빼앗아 가거라.”
그럼, 윤리사를 도우러 가는 것도 허락해 주겠다며 윤사해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
윤리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심이세요?”
“그럼.”
윤사해가 싱긋 웃었다.
“나는 언제나 진심이란다.”
윤리오가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진심이죠? 그러다 다쳐도 저는 몰라요.”
“그래.”
윤사해가 싱긋 웃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덤비거라.”
그 말에 윤리오가 곧장 윤사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땅을 박찼지만.
“윽!”
그는 너무나도 쉽게 윤사해에게 제압당했다.
“움직임이 훤히 보였단다. 분명, 마음이 급해서 그런 거겠지.”
“아버지!”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안 된다. 리사에게 방해만 될 거다.”
“방해라니요!”
윤리오가 버럭 소리 질렀다.
“리사의 앞 길을 막는 일따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약하지도 않고요!”
“물론, 리오. 너는 약하지 않지. 하지만 내게 제압당한 상태이지 않니?”
그 말에 윤리오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때였다.
파아앗―!
밝은 빛이 하늘을 감쌌다.
하늘뿐만이 아니었다. 밝은 빛은 우글우글 귀수산으로 몰려든 거주자들을 모두 감쌌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보이는 건.
“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