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그래도 희망은 있다(3)
“시준이 삼촌이 가지고 있던 특수 스킬.”
Delet.
“내가 가지게 됐어.”
“……뭐?”
윤사해가 한 박자 늦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리사?”
잔뜩 당황한 얼굴에 나는 미소를 그렸다.
“시준이 삼촌이 마지막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수 스킬을 내게 양도했거든.”
“양도라니!”
윤사해가 난생처음 듣는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백시준이 네게 그 스킬을. 정말, 그 특수 스킬을 양도한 게 맞니? 정말 맞는 거야?”
“응, 맞아.”
쉽게 믿지 못하는 그에게 백시준이 가지고 있었던 <[특수 스킬] Delet>의 힘을 직접 보여 주기로 했다.
‘아직 어떻게 운용하면 좋은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본 게 있었다. 때문에 나는 공황에 빠진 듯한 윤사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믿지 못하겠으면 내게 그림자를 펼쳐 봐.”
윤사해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웃으며 말했다.
“어서, 아빠.”
채근하는 목소리에 결국 그가 나를 향해 그림자를 펼쳤다.
살기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힘이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백시준에게 받은 그의 유산을 사용했다.
파앗!
작게 빛이 이는 것과 동시에 나를 덮치려고 들었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럴 수가…….”
윤사해가 멍하니 읊조렸다.
“도대체, 왜 네가 그 스킬을.”
그러면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빠!”
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고 들었지만 윤사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고서는.
“백시준, 이 망할 자식!”
죽어 버린 친구를 원망했다.
“도대체 왜 리사 네게, 네게 그 스킬을!”
이윽고 그는 현실을 부정했다.
윤사해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백시준의 스킬은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자신을 불태워야 꽃피울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
그래서 윤사해는.
“아, 그래. 리사,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걸 거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자신의 스킬을 양도할 수 있다니. 그런 사례는 들어본 적 없어.”
“아빠.”
“백시준한테서 그 망할 스킬을 양도받았다니!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빠!”
윤사해가 말을 멈췄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아빠도 알고 있었잖아.”
백시준이 처음부터 <[특수 스킬] Delet>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윤사해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착잡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현실을 부정해도 소용없어.”
“리사.”
“나는 시준이 삼촌한테 이 힘을 넘겨받았어.”
“리사!”
윤사해가 버럭 소리 지르고는 내 말을 끊었다.
이윽고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힘, 내게 넘기렴.”
“……아빠.”
“그래, 리사. 네 말이 맞아.”
윤사해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어 말했다.
“백시준, 그 자식은 처음부터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과 함께 돌아와서는.”
<[특수 스킬] Delet>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는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양도받은 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힘이었다면.”
윤사해가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그가 삼킨 말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윤사해라면 백시준한테서 그 힘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했겠지.
혹여 하나 남은 친구를 잃을까 걱정하면서.
그렇지만 백시준은 끝까지 자신의 힘에 대한 비밀을 친구에게 절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역시, 알려 주는 즉시 윤사해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아서 그런 걸 거다.
‘친구는 친구였네.’
새삼스레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그러니, 리사. 백시준이 네게 넘긴 힘을 내게 양도해 주렴.”
윤사해가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기에는 무척이나 위험한 힘이야.”
“아니. 이건 위험한 힘이 아니야.”
세상을 구원할 힘이었다.
“리사!”
윤사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백시준이 왜 안보국에 갔던 건지 잊은 거니? 바로 그 힘 때문이야! 그 힘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라서 안보국으로 갔던 거잖아. 그곳에서 시준이 삼촌의 힘을 연구하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걸 알면서도 계속 가지고 있겠다는 거니?!”
“응, 아빠.”
싱긋 웃어 주며 말했다.
“분명, 시준이 삼촌은 나를 희망이라고 여겨 넘긴 걸 테니.”
“그럴 리가!”
“없을 거란 말은 하지 마.”
윤사해의 말을 끊으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게 아니면, 시준이 삼촌이 내가 죽기를 바라서 이 힘을 넘긴 거란 말이 되잖아.”
윤사해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 웃어줬다.
“아빠는 알잖아? 시준이 삼촌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윤사해는 그의 친구였다.
나는 윤사해의 하나뿐인 딸이자.
‘백도윤.’
그래, 백시준의 하나뿐인 아들인 그의 친구였다.
그런 내가 죽음에 이르기를 바라서 이 힘을 넘겨줬을 리가 없다.
“아빠.”
나는 윤사해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후 그를 끌어안았다.
동시에 말했다.
“나 이제 다 컸어.”
“아니, 리사.”
윤사해가 일그러진 얼굴로 역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단다.”
그러면서 내 머리에 입을 맞추며 애원했다.
“세상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너는 너무 어려. 그러니, 리사. 그 힘을 그냥 아빠에게 넘기렴. 부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미안해, 아빠.”
윤사해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소리 없이 뚝뚝 떨어진 눈물이 내 어깨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나, 절대 죽지 않을게.”
아니, 선언했다.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일 따위 없을 거야.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이내 웃었다.
“아빠가 준 이 목숨을 꼭 붙잡은 채로 세상을 구할게. 약속해.”
윤사해는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눈물을 삼킬 뿐.
‘미안해.’
튀어나오려는 사과를 삼키며 나는 애써 미소를 그렸다.
아빠를 이렇게 울리다니.
나는 정말 불효녀였다.
***
〖이야기는 다 끝냈느냐?〗
윤사해를 달랜 후, 정처 없이 귀수산을 돌아다니던 발이 멈췄다.
“천지해 님.”
〖이런, 아해야.〗
대도깨비가 능글맞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게 좋다고 했을 텐데?〗
“어차피 우리 둘밖에 없잖아요.”
픽 웃고는 말했다.
“천지해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엇을 말이냐?〗
“이 힘이요.”
손바닥을 펼치자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백시준이 사용할 때는 이런 빛은 보지 않았는데 말이지.
‘미숙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의 거주자에게 물었다.
“천지해 님은 제가 이 힘을 이용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대도깨비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모른다.〗
애매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눈가를 살짝 찌푸리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며 대도깨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다.〗
“위대한 대도깨비님께서도 모르는 일이 있네요?”
〖그렇게 비꼬지 말거라. 정말 알 수가 없어 이리 대답하는 것이니.〗
천지해가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곰방대를 입에 물고는 말했다.
〖내가 언제인가 말했지. 나는,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
천지해의 말을 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다고요.”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천지해가 기특하다는 듯이 웃고는 말했다.
〖내가 네 아비를 구해 온 일을 기억하고 있느냐?〗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마, 내가 죽는 순간까지 결코 잊지 못할 터.
천지해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네 말대로 나는 하늘과 땅, 바다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또한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지내 온 무수한 세상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며 천지해는 말했다.
〖본디, 그 스킬을 가지는 자는 네가 아니었지.〗
“그럼.”
〖알고 있지 않느냐?〗
그 말대로였다.
원래 이 스킬을 가졌을 사람은 내가 아닌 저세상이었다. 그러니까, 『각성, 그 후』에 따르면 그랬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멸망을 반복하고 다시 태어나고 있었지. 뭐, 네게 흘러가듯 이야기를 해준 것 같지마는.〗
천지해가 물고 있던 곰방대를 뱉어내며 숨을 내쉬었다.
흰 연기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뿌려져 사라졌다.
〖리사.〗
다정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원래 그 스킬을 가졌던 놈은 계속 세상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 모두 잃고 그 역시 목숨을 잃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지.〗
그럴 때마다 이 세상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정확히는, 세상이 이렇게 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치는 분기점이 되는 시간대로 돌아갔지.〗
그 시간대가 바로.
〖네 형제들이 목숨의 위협을 겪는 시간이었다.〗
그래, 그랬지.
서차윤이 윤리오와 윤리타를 납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이건 장천의한테서도 들은 말.
“그래서요?”
〖흠?〗
“계속 실패했던 과거는 궁금하지 않아요.”
내가 궁금한 건.
“앞으로의 일이에요.”
천지해가 내 말에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