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화. 그래도 희망은 있다(2)
백시준이 죽었다.
그의 장례는 짧게 치러졌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에 의해 수시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었다.
짧게 그의 죽음을 애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마는.
“도윤아.”
쏴아아―!
백시준의 죽음을 슬퍼하듯, 하늘은 비를 줄기차게 뿌리고 있었다.
어느 거주자가 이 비를 그쳐 줬으면 좋으련만, 하늘을 쉴 새 없이 계속 비를 내렸다.
도윤이는 그 한가운데에서 푹 젖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도윤이가 느릿하게 나를 쳐다봤다.
흠뻑 젖은 얼굴이 눈물 때문인지, 아님 빗물 때문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리사야.”
부르는 목소리에 알았다.
도윤이의 얼굴이 젖은 건, 모두 눈물 때문이란 것을.
“응, 도윤아.”
힘겹게 대답을 내뱉으며 그를 향해 우산을 내밀었다.
“그러다 감기 걸려.”
“아니, 괜찮아.”
화르륵, 도윤이의 온 몸을 불길이 감쌌다.
“내가 무슨 스킬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 각성한 후로, 감기에 걸린 적 없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난 괜찮으니까.”
거짓말.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
하지만 나는 어떠한 위로도 건넬 수가 없었다.
그야, 도윤이에게 있어 나는 죄인이었으니까.
백시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내가 어떻게 그의 아들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설사 건넨다고 할지라도 도윤이의 입장에서는 우습기 그지없는 말로 들릴 거다.
그렇지만 말했다.
“미안해.”
위로가 아닌, 사과를.
“정말 미안해, 도윤아.”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빗물에 젖어 울고 있는 도윤이에게 거듭 사과했다.
멍하니 나를 보던 얼굴이 이윽고 일그러졌다.
“사과하지 마.”
“도윤아.”
“사과하지 말라고!”
도윤이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면서 두 손을 꼭 주먹 쥐었다.
“제발 사과하지 마, 리사.”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들려왔다.
“네가 계속 그렇게 사과하니까, 너를 원망하게 되잖아.”
도윤이가 주먹 쥔 손을 풀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게 모두.”
잠시 말을 멈춘 도윤이는 이윽고 일그러진 얼굴로 짓씹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모두, 너 때문인 것 같다고.”
내가 백시준을 제대로 못 지켜서.
그래서 그가 죽은 거라고.
나는 물끄러미 도윤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원망해도 돼.”
도윤이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잔뜩 떨리는 얼굴을 보며 나는 옅게 미소를 그렸다.
“내가 시준이 삼촌을 제대로 못 지킨 것 맞잖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니까.
“나 원망해도 돼, 도윤아. 아니, 그냥 원망해. 계속 속에 담아두지 말고 나 편하게 저주해도 돼.”
“리사…….”
도윤이가 서글프게 나를 부르며, 한 발자국씩 걸음을 내딛었다.
“리사, 윤리사!”
이내 내 앞에 선 도윤이가 곧장 멱살을 잡았다. 들고 있던 우산이 손에서 떨어졌지만.
“응, 도윤아.”
나는 우산을 줍는 대신, 다정하게 그를 불렀다.
도윤이가 어떤 원망을, 무슨 저주를 쏟아내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렇게 그를 불렀다.
“왜…… 왜……!”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곧, 도윤이가 다그치듯 물었다.
“왜 우리 아빠를 지키지 못했어? 도대체 왜? 왜!”
나는 아무 말도 않고 들었다.
가만히, 원망을.
“지켜 준다고 했잖아! 나랑 그렇게 약속했잖아! 너만 믿었는데, 나는. 리사, 너만…….”
또한.
“미안해. 미안해, 리사.”
눈물을.
도윤이가 나를 놓아 주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젖은 땅에 옷이 망가지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엉엉 울었다.
“내가, 내가 직접 아빠를 지켰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어서 네게 부탁한 건데, 그런데. 그런데, 나는.”
“도윤아.”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엉엉 우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네 잘못은 아무것도 없어.”
그래, 잘못은 내게 있다.
저세상의 등장에 곧장 그를 죽이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던 죄.
그를 죽일 기회가 분명 있었음에도 망설인 죄.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차라리 나를 욕해 줘.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키며, 나는 그렇게 도윤이의 어깨를 몇 번이고 토닥여줬다.
“흐윽, 윽.”
도윤이가 눈물을 그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는 결국 백시준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도윤이가 눈물을 그친 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퍼붓던 비가 그친 후였다.
***
“혜원이 언니, 도윤이는 어때요? 괜찮아요?”
도윤이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도 몸살 감기.
각성자가 된 이후로 감기에 걸린 적 없다고 하더니, 아이는 비가 그친 후 그대로 몸져눕고 말았다.
도윤이를 살피고 나온 광혜원이 싱긋 웃었다.
“네, 괜찮아요.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고마워요, 언니.”
광혜원은 그런 인사는 됐다며 내게 고개를 살짝 꾸벅인 후 자리를 떠났다.
나와 오래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 거다.
거주자와의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녀가 보살펴야 할 환자가 계속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사실, 광혜원은 지금 한계일 거다.
눈 밑에 내려온 다크써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매망량을 포함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힐러. 그런 그녀가 쓰러지면 다친 사람은 그대로 죽게 될 테니.
‘그 전에 이 싸움을 끝내야겠지.’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꼭 그래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미지 영역을 복구시켜야 해.’
그것을 삭제하든, 아님 구멍을 아예 메꿔 버리든.
그곳에서 더는 거주자들이 멋대로 튀어나오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와 사람들을 위협하던 거주자들을 처리하는 데에 그쳤지마는.
‘이제 아니야.’
아주 작은 희망이 생겼다.
‘백시준의 스킬.’
내게 양도된 그것을 이용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무슨 희생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내 목숨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해야지.’
그게 백시준이 내게 자신의 스킬을 넘겨 준 이유일 거다.
마지막 희망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테고.
‘저세상.’
잠시 그를 생각하고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꾹 깨물었다.
저세상과 함께했던 모든 추억은 이미 낡은 사진처럼 변했다.
빛이 잔뜩 바란 추억을 회상한들 도대체 뭐가 달라질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크게 숨을 내쉰 후 걸음을 옮겼다.
“아빠.”
윤사해, 그가 있는 곳으로 말이다.
이매망량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주인은 백시준이 뿌려진 바다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리사.”
그가 피곤에 절은 얼굴로 미소를 그렸다. 나 역시 그와 똑같이 웃어주며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그래?”
윤사해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왜 갑자기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거야?”
“백시준과 했던 옛날 약속이 생각났지 뭐니?”
“응?”
윤사해가 되묻는 질문에 아련하게 웃었다.
“백시준, 그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던 녀석이거든.”
아마,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한 것 때문에 그런 걸 거라며 윤사해는 이어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 자식은 나한테 말하고는 했지. 만약, 우리가 사이좋게 아들과 딸을 낳는다면 서로 결혼시키자고.”
“그런 약속을 했었어?”
“아니, 리사.”
윤사해가 픽 웃었다.
“그 말에 나는 좋다고 한 적 없단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머리를 때린 적은 있어도.”
“……그래?”
“응, 그래.”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잔잔하게 이는 물결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그 약속에 장난이라도 동의를 할 걸 그랬구나. 그 망할 자식. 손주 얼굴 볼 때까지 꼭 살 거라고 하더니.”
그러면서 윤사해는 중얼거렸다.
“어쩜, 내 곁에 있던 놈들은 다들 그리 거짓말쟁이들인 건지.”
비단, 백시준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곁을 진작 떠난 서차윤. 그 역시 부르는 말이었다.
윤사해의 마음이 얼마나 썩어 문들어져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꼭 끌어안아 주며 위로해 주고 싶었지마는.
“아빠, 할 말이 있어.”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하나 있었다.
“뭐니, 리사?”
다정하게 묻는 목소리에 나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