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화. 그래도 희망은 있다(1)
〖곧 건물이 무너질 거다.〗
그 정도는 나도 알 수 있었다.
건물을 단단히 보호하고 있던 그림자가 요동쳤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틸 수 없다.
나는 차갑게 식어 버린 백시준의 몸을 꼭 끌어안고서는 물었다.
“대도깨비님. 저세상을 제외한 모두를 데리고 귀수산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물론.〗
천지해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보아하니 저 녀석, 우리를 막을 것 같지 않구나.〗
저세상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헛웃음이 절로 튀어 나왔다.
자신의 손으로 백시준을 죽인 게 믿기지 않는 건지, 아님. 그를 죽여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황망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럼, 지금 바로 이동해요.”
나는 대도깨비에게 부탁했다.
곧, 시야가 바뀌었다.
쿠르릉―!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굉음을 뒤로하며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안보국은 무너졌다.
그 속에서 저세상이 어떻게 됐는지 관심 없다.
없어야만 한다.
“리사?!”
반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질끈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윤사해가 보였다.
나의 아버지.
해를 등지고 있는 그는 나를 보며 두 눈을 떨고 있었다.
아니, 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내 품에 안겨 죽어 있는 백시준.
그의 유일한 친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윤사해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힘겹게 입술을 뗐다.
“미안해, 아빠.”
백시준을 지키지 못했다.
***
“아빠!”
이매망량에서 보호받고 있던 도윤이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아이는 그대로 백시준을 가린 흰 천을 걷어내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곧,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도윤이는 그러면서 백시준을 계속 흔들었다.
“아빠! 저 도윤이에요! 일어나 봐요! 네? 아빠!”
그렇지만 백시준은 답이 없었다.
애초에 죽은 사람이 대답을 해 줄 리가 없었다.
“거, 거짓말.”
도윤이의 얼굴이가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거짓말이죠?”
이내 아이가 윤사해를 보며 물었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린채로 말이다.
그에 윤사해는 대답했다.
“미안하다.”
도윤이의 얼굴에서 어색하기 그지 없던 미소가 사라졌다.
아이는 그대로 무너졌다.
“아… 안 돼…….”
주저앉은 채로 도윤이는 눈물을 끅끅 참아내며 백시준을 흔들었다.
“아, 아빠. 일어나 봐요.”
차갑게 식은 몸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도윤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일어나 보라고요! 아빠!”
나는 그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내가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도윤이에게 백시준을 무사히 지키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그러니 피해서는 안 됐다.
“리, 리사. 리사야.”
도윤이의 눈물을.
“우리 아빠 지켜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도윤이의 원망을.
백시준을 끊임없이 흔들던 손이 내 멱살을 잡았다.
“리사!”
“괜찮아.”
윤사해를 안심시킨 후 애써 미소를 그렸다.
“자리 좀 비켜 줘, 아빠. 도윤이랑 이야기 좀 나누게.”
하지만 윤사해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친구의 아들이 하나뿐인 딸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그의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라 작게 숨을 내쉰 후 말했다.
“정말 괜찮아. 그보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한테 가 봐. 두 사람 모두 크게 다쳤잖아.”
천지해는 도대체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안보국 밖에 있던 두 사람도 이매망량으로 데리고 왔다.
정신이 없어 그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크게 다쳤다고 들었다.
내 말에 윤사해는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윤사해가 떠난 후에야 나는 도윤이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사실, 보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도윤이가 나를 얼마나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을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도윤이는 울고 있었다.
그 눈에는 어떠한 원망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아이는 내게 말없이 묻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왜 저렇게 누워 어떠한 대답도 들려주고 있지 않는 거냐고.
읽혀지는 물음에 일그러진 얼굴로 사과를 전했다.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도윤이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거짓말이지?”
그러고는 일그러진 미소를 보이며 내게 물었다.
“우리 아빠 지금 어디 있어?”
“도윤아.”
“우리 아빠가 죽었을 리가 없잖아! 돌아온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백도윤.”
“리사 너도 지켜 준다고 했잖아!”
두 눈에 가득 맺힌 눈물에 그제야 원망이 서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다시 한번 더 말했다.
“미안.”
도윤이가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곧, 백시준이 누워 있는 병상에 부딪치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안 돼…….”
도윤이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아빠! 아빠, 제발 눈 좀 떠 봐요!”
다급하게 백시준을 흔드는 손에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아아악!”
도윤이는 결국 비명을 질렀다.
자식은 부모를 잃으면 ‘고아’라고 불린다고 하던가?
우스웠다.
고아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부모를 잃은 저 감정이 표현된다니.
“도윤아! 백도윤!”
백시진이 다급히 병실 안으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백도윤, 정신 차려!”
백시진 역시 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거다. 하지만 그는 하나뿐인 조카부터 챙겼다.
“리사.”
누군가 나를 불렀다.
백시진의 아내이자 한때 나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제인 아일리였다.
“도윤이는 우리한테 맡겨요.”
“하지만.”
“괜찮아요.”
아니, 괜찮지 않다. 괜찮을 리가 없다.
그들 역시 소식을 들었을 거다.
내가 백시준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제인은 말했다.
“괜찮으니 나가 봐요. 리사도 많이 놀랐을 텐데, 몸 좀 추슬러요.”
그럴 필요 없지만, 나는 홀린 듯이 밖으로 나왔다.
“삼촌! 아, 아빠! 우리 아빠가!”
도윤이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왔다.
오열하며,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그 목소리에 나는 무릎을 끌어 안은 채로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A급 각성자인 ‘백시준’이 S급 각성자인 ‘윤리사’에게 <[특별 스킬] Delet>를 양도하고자 합니다.】
백시준이 마지막에 내게 남긴 것이 떠올랐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지 영역에서 멋대로 튀어 나와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빌어먹을 거주자들한테서 우리의 세상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 희망이 내게로 넘겨졌다.
‘어떻게든.’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백시준이 내게 남긴 유산을 이용해 세상을 다시 평화롭게 만들어야 했다.
저세상이 막아서든 말든 이제 아무 상관 없다.
〖아해야.〗
나지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앞만 보고 걸으며 말했다.
“죽일 거예요.”
망설임따위 없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 꼭 죽일 거다.
백시준을 죽인 그를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윤리오와 윤리타에게도 큰 상처를 입히지 않았나?
진작 죽였어야 했다.
“대도깨비님.”
나는 나의 거주자를 부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인연이란 게 참 바보 같아요.”
그 어린 날, 저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지 말 걸 그랬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의 인연이 악연이 되어 이렇게 서로를 괴롭히지 않았겠지.
일그러진 얼굴로 미소를 보였다.
언제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른 건지, 뺨을 타고 그것이 흘러내렸다.
나는 다급히 눈물을 닦아냈다.
내게 눈물을 흘릴 자격은 없었다.
***
청사초롱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공간이 뒤틀렸다.
곧, 균열 사이로 웬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왔니?”
유랑단의 수장이 그를 향해 여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아니.
저세상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이매가 죽었어.”
“그래, 알고 있단다. 적의 손에 죽는 것보다 자결하는 걸 선택했겠지. 참 아까워. 내 든든한 검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말과는 달리 퍽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수장이 돌연 물었다.
“우리를 위협하는 스킬은 얻었니? 아님, 제거했니?”
저세상은 두 손을 꼭 주먹쥐었다.
유랑단의 수장은 그에게서 들려올 답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곧,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제거했어.”
“오.”
수장이 감탄했다.
“얻지는 못했고?”
“그래.”
저세상이 두 손을 들어 급히 마른세수를 했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백시준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렸다.
어릴 적부터 봐 온 친구의 아버지.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 준 또 다른 사람.
생각하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만.’
어차피 죽여야 할 사람이었다.
진작 죽었을 사람이었고.
‘그래, 그랬어.’
윤리사가 지금까지 살아 있지 않았다면, 자신의 세계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어릴 적에 이미 죽었을 사람이다.
저세상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입을 열었다.
“스킬은 얻지 못했어.”
아마, 백시준이 가지고 있던 <[특수 스킬] Delet>은 윤리사에게 갔을 거다.
‘양도가 되는 스킬이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뭐가 됐든 상관없다.
‘갖춰줘야 할 건 다 갖춰졌어.’
남은 건, 윤리사.
그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진심을 다해 움직이는 것뿐이다.
저세상이 자신의 인연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