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화. 백시준(6)
백시준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생각했다.
이제 홀로 남겨질 백도윤을.
‘아니지.’
아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장, 자신의 동생이 멀쩡히 살아 있지 않는가?
백시진.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 제 죽음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죄책감을 느끼면 안 되는데.’
안 그래도 멸망에 가까운 세상에서 하루하루 생과 사를 오가고 있는 녀석이었다.
무엇보다 이 죽음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으니. 동생이 그런 죄책감을 가지지 말았으면 했다.
‘그래.’
사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죽기를 바라 왔었다.
자신이 죽은 후 남게 될 아들을 생각해 꾸역꾸역 이 목숨을 붙들고 있었던 거나 다름 없다.
‘아…….’
시야가 검게 물들어 간다.
“시준이 삼촌! 안 돼요, 안 돼! 안 된다고요!”
하나뿐인 친구의 딸이 울부짖으며 자신을 불렀지만.
‘미안, 리사.’
아마, 이 아이에게 자신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겠지.
결코 잊히지 않을 거다.
‘정말 미안해.’
그래도 다행인 건, 적이 노린 것을 아이에게 양도했다는 것.
‘다행인가?’
백시준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행이 아니야.’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 아이는.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의 딸은 평생 자신의 짐을 짊고 살아가게 될 터.
그걸 어떻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해야.’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인사 좀 하고 올 걸, 아니. 도윤이를 부탁한다고 똑바로 말할걸.
‘그랬다면 너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얼굴을 찌푸렸겠지.’
절로 상상이 됐다.
그 때문일까?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나왔다.
“시준이 삼촌? 삼촌!”
윤리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삼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뒤로하며 백시준은 기어코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 그의 꿈이 시작됐다.
결코, 깨어나지 못할 꿈이.
***
“여보.”
백시준이 멍하니 눈을 떴다.
꿈에서 몇 번이고 그리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 우리 애 이름을 도윤이로 지을 거예요?”
자신보다 짙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부푼 배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무 센스 없잖아요. 제 이름을 거꾸로 뒤집은 이름이라니.”
백시준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도아?”
“응?”
여자가 백시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도아? 정말 당신이야?”
백시준은 몇 번이고 읊었다.
“윤도아. 도아.”
백도윤이 태어나던 날, 며칠을 못 넘기고 죽어 버린 제 아내를. 자신의 실수로 인해 타국에서 잃은 소중한 연인을.
“어머? 무슨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예요?”
가느다란 손가락이 남자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왜 눈물을 흘리고 그래요?”
“도, 도아야.”
윤도아.
그녀는 원래 제거할 대상으로 만난 여자였다.
지금에야 다르지만, 안보국은 원래 뒤가 구린 일을 자주 맡는 기관이었으니까.
그런 그녀와 사랑에 빠진 죄는 무척 컸다.
“도아야.”
“네, 여보. 저 여기 있어요.”
선하게 미소를 그리며 여자가 백시준을 다정하게 안았다.
“그간 고생 많았어요.”
백시준의 두 눈이 커졌다.
부푼 배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있던 여자는 없었다.
여자는 짙은 갈색 머리칼을 가슴 아래로 길게 내린 채, 그저 웃고 있을 뿐.
“아.”
백시준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저 모습을 도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인데.
“도아야.”
“네, 여보.”
다정하게 답하는 목소리에 남자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미안해…….”
그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여자를 향해 사과했다.
“내가 정말, 너무 미안해.”
윤도아.
그녀가 죽을 때 자신에게 남긴 말이 뒤늦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 도윤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해요.’
지키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뿐인 아들을 꼭 지키라고 했는데.
그 유언을 차마 지키지 못하고 저 또한 죽고 말았다.
“괜찮아요.”
비난이 날아올 줄 알았건만, 너무나도 착한 아내는 자신을 다시 다정하게 안아 주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백시준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 때문에 하루하루 지옥에 사는 기분이었을 텐데.”
“아니야!”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남자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랬을 리가 없잖아!”
윤도아를 꼭 닮은 아들이 있었다.
그녀의 외모, 성품.
모든 걸 빼닮은 아들이 언제나 저를 반겨 줬다.
그런데 지옥이라니?
“천국이었어.”
백시준이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신이 있는 세상도, 당신이 없던 세상도.”
백시준의 얼굴이 이내 일그러졌다.
“내게 있어 모두 천국이었어.”
“그래요?”
여자가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다행이다.”
윤도아.
<[특수 스킬] Delet>를 가장 처음 지녔던 여자.
그 스킬로 인해 백시준을 비롯해 많은 이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여자.
끝내 죽으며,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가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그 스킬을 양도해 준…….
“정말 다행이에요, 시준 씨.”
백시준의 연인.
윤도아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당신을 지옥에 밀어 넣은 것 같아서. 그래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올 때까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죽어 오는 건 원치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사랑은 결국 죽어 제 곁에 온 것을.
“도아야.”
백시준이 두 눈에 여자의 얼굴을 담았다. 동시에 두 손을 들어 고운 뺨을 감싸 쥐었다.
“가자.”
여자가 제게 준 것은 이기적이게도 친구의 딸에게 넘겼다.
자신의 짐을, 윤리사에게 준 거다.
그로인해 윤사해한테 원망을 듣게 된다고 할지라도 괜찮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착하기 그지없는 아들이 상심하게 될지라도.
“괜찮아.”
백시준은 이기적이게도 웃으며 다시 만난 제 연인의 손을 꼭 잡았다.
윤도아가 그를 보며 미소를 그렸다.
금방에라도 다시 눈물을 흘릴 듯, 슬픈 미소였으나 그녀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그저.
“그래요.”
다정하게 대답하며, 남편의 손을 잡고 길을 떠날 뿐.
“가서 기다려요. 이번에는 부디 아주 오래 기다리게 됐으면 좋겠네요. 나는 우리 아들이 좋은 여자 만나서 사랑하고 아이들을 낳는 게 보고 싶거든요.”
종달새가 노래하듯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백시준은 웃었다.
왜인지 모르게 언제인가, 이런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식으로 홀가분하게 웃지 않은 듯한 기분이다.
그래, 그때는…….
‘지켰어야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목숨을 계속 지켰어야죠! 우리 도윤이가 그렇게 됐다고 할지라도 당신이라도 살았어야지!’
원망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 분명 사랑하던 연인이 쏟아 내는 원망에 눈물을 흘렸었다.
도대체 무슨 기억일까?
이 기억은 뭘까?
백시준이 흰 국화꽃이 만발한 들판 가운데에서 돌연 걸음을 멈췄다.
“여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가볍게 고개를 털고는 옅게 미소를 그렸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죽음을 향해.
***
“시준이 삼촌……?”
백시준의 두 눈이 감겼다.
“가, 삼촌, 눈 좀 떠 봐요.”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전혀 미동이 없었다.
“삼촌!”
이럴 수는 없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그래, 있을 거야.’
파르르 입술을 떨던 그때.
〖없다.〗
대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죽은 자를 살릴 방법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설사 살린다고 해도 그건 인간이 아닌 괴물일 거다.〗
“그, 그런 말 하지 마요.”
백시준을 꼭 끌어안으며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질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모르잖아요!”
하지만 대도깨비는 말했다.
〖안다.〗
담담한 목소리로.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놓아 주거라.〗
잔인한 진실을 알려줬다.
“아…… 아아…….”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백시준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내게 세상의 희망이 될지도 모를 자신의 스킬을 양도하며, 그렇게 숨이 멎은 것을 말이다.
“저세상!”
살인자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내가 꼭 죽여 버릴거야! 너, 내가 죽여 버릴 거라고! 기필코 죽여 버릴거야!”
백시준을 죽인 주제에, 멍청하게 굳어 있던 저세상의 표정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내보이면서 일그러졌다.
웃기는 자식.
망할 자식.
“저세상!”
지옥으로 보내 버릴 나의 주인공.
쿠르릉!
건물이 무너질 듯 울리기 시작한 건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