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61)화 (461/500)

461화. 백시준(4)

“괴물 자식…….”

백시준이 질린 눈으로 이매를 쳐다봤다.

“삭제된 시간이 꽤 될 텐데.”

“그만큼 쌓아 온 시간이 있으니까 말이지요.”

윤이 낭랑하게 그의 말을 이었다.

“유랑단의 역사는 당신의 생각보다 더 오래됐습니다. 이매는 그중 가장 오래된 탈이고요.”

또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탈’이었다.

“쉽게 죽일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죽기는 한다는 거네요?”

윤이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싱긋 웃어 주며 다시금 물었다.

“아니에요?”

“맞아요, 리사. 당신의 말대로 이매 역시 결국은 우리와 같습니다.”

죽으면 그대로 끝인 생명체.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놈을 죽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군.〗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웃었다.

어차피 인간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으면서 말이다.

때문에 말했다.

“대도깨비님은 시준이 삼촌이랑 윤이나 똑바로 지켜 주세요. 물론, 우리 진달래 언니도요.”

진달래의 앞에 ‘우리’를 붙인 건 당연히 윤리타 때문이었다.

미래의 새언니가 될 사람은 미리 내 편으로 만들어놔야지!

천지해가 내 부탁에 능글맞게 웃는 낯으로 물었다.

〖내 계약자는?〗

“알아서 잘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래요.”

천지해가 내 말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시준이 삼촌. 저 괴물 자식의 발을 좀 묶어 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윤, 당신은 제게 버프 스킬을 계속 부탁할게요. 진달래 언니도요.”

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리사.”

진달래 또한 굳은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맡겨만 줘.”

아주 든든했다.

거주자의 후손인 윤과 함께 백시준, 그리고 진달래와 함께라니.

‘천지해.’

미지 영역의 거주자인 위대한 대도깨비도 함께였다. 이 멤버로 이매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저 자식을 죽일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여기에서 기필코 이매를 물리쳐야만 했다.

백시준을 위해서라도.

거주자들에게 고통받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매는 제가 상대할게요.”

“혼자서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백시준의 걱정에 대수롭지 않게 싱긋 웃어 주며 말했다.

“시준이 삼촌은 제가 다치면 조금 전, 제 상처를 없앤 것과 똑같이 힘을 사용해 주세요.”

“하지만, 리사. 그건.”

“알아요. 혜원이 언니나 윤과 같이 치료하는 게 아니라는 걸요.”

그렇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나는 곧장 창을 쥔 채 이매 앞에 섰다.

이매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대화는 잘들 나누셨나요?”

“그래.”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물어보다니.

‘성격 참 나쁘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대화하는 사이에 얌전히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아, 혹시.”

손을 들어 턱을 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움직이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거야? 시준이 삼촌 때문에?”

“닥치시죠.”

이매의 두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동시에, 쐐액!

날아든 검격이 내 뺨을 베며 지나갔다.

고개를 급히 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얼굴이 반으로 쪼개졌을 터.

‘무섭네, 무서워.’

백시준의 말대로였다.

저 자식은 미친놈인 것과 동시에 괴물 자식이었다.

타앙!

총성이 울린 건 그때였다.

이매가 순간적으로 검을 들었다가 황급히 그것을 놓았다.

“윽!”

물론, 그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백시준의 힘이 깃든 탄알이 그대로 그의 어깨를 관통했으니까.

또다시 이매의 시간이 삭제됐다.

“제기랄!”

이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좋은 신호다.

이대로 몰아붙이면…….

“리사! 조심해요!”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이매의 검격이 쇄도했다.

창을 휘둘러 그것을 상쇄하려고 했지만 모두 막는 건 불가능했다.

빠른 속도로 내 몸 곳곳을 베어 낸 것이 뒤로 넘어갔다.

“윤! 조심해요!”

내 외침에 윤이 보호막을 펼쳤다.

진달래가 자신의 힘을 얹어 그녀의 보호막이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위로 천지해의 힘이 덧씌워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방어막.

‘좋아.’

다행히 저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문제는, 나.’

그렇지 않아도 피를 많이 흘렸던 몸인데 조금 전 공격으로 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리사!”

백시준이 내 몸에 난 상처를 제거해 줬지만 흘린 피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게 최선이라 할지라도.

‘죽인다.’

저 빌어먹을 탈쟁이를.

내 친구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의 친구를 노리는 저 망할 ‘탈’을.

‘이 자리에서 꼭.’

죽여야만 한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곧장 발을 움직였다.

타앗!

유리 조각이 으깨지는 것과 동시에 단숨에 이매의 앞에 서며 창을 휘둘렀다.

카앙!

쇠붙이끼리 맞부딪쳤다.

윤과 진달래가 내게 힘을 걸어주고 있는 덕분일까?

그것도 아님, 이매의 시간이 삭제되면서 그 힘이 약해진 덕분일까?

괴물 자식의 검을 막기가 한층 더 수월해졌다.

“이런, 빌어먹을!”

이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보란 듯이 웃어 줬다.

“여유가 사라진 것 같네?”

“그 입 닥치시죠.”

“닥쳐야 할 건 너야.”

싱긋 웃어주며 발아래에 있던 그림자를 움직였다.

푹!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그림자가 이매의 어깻죽지를 뚫었다. 백시준에게 관통당한 바로 그곳을 말이다.

이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나는 다시 창을 휘둘렀다.

캉!

다시금 그의 검과 내 창이 맞부딪쳤다.

부들부들.

이매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좋아.’

이대로 몰아붙이면 된다.

그때였다.

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나를 향해 돌풍과도 같은 검격이 쇄도했다.

온몸이 베이고, 또한 찢겼지만.

“시준이 삼촌!”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어차피 이깟 상처 따위 지워 버리면 되니까.

상처에서 흘린 피는.

‘나중에 생각하지, 뭐.’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는 이매에 맞서 그림자를 움직였다.

파바밧!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온 그림자에 이매가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렇게 한다고 모든 그림자를 피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이매가 입고 있던 수의와 같은 옷이 곧 붉게 물들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래.

“이매, 상황이 역전됐네?”

조금 전만 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나였는데 말이다.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는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아프지?”

또한.

“고통스럽지?”

이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에 비딱하게 웃어주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도 당신을 이 정도로 몰아붙이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매’로 자리를 지키고 왔을 테니.

“기분이 어때?”

“하하!”

이매가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쿨럭, 피를 토해 내면서 말이다.

“재미있네요, 재미있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재미있다며 웃고 있다니.

“미친놈.”

절로 욕이 나왔다.

이매가 내 말에 싱긋 웃었다.

“맞아요. 저 미친놈이에요. 다른 모든 탈이 언제나 저를 보며 미쳤다고 했지요.”

하지만, 그게 뭐?

이매는 마치 그렇게 묻는 것처럼 재잘거렸다.

“저를 미쳤다며 욕한 탈들은 모두 죽었죠. 아, 모두 죽은 건 아니군요. 저기, 부네가 있고.”

피로 흠뻑 적셔진 남자의 손가락이 윤을 가리켰다.

그것도 잠시.

“선비와 초랭이도 있으니까요.”

그가 유랑단을 배신한 다른 탈을 입에 올리며 키득거렸다.

“이것, 참. 곤란하네요. 선비 씨와 초랭이 씨도 죽여야 하는데…….”

이매의 두 눈에 내가 담겼다.

이상하게 그 눈빛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읽혔다.

‘착각이겠지.’

그래, 착각일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창을 쥔 손에 힘을 줄 때였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게 됐다니. 너무 곤란해요, 정말.”

이매가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뭐하는 거야?”

“저는 도깨비의 따님께 죽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이매가 싱긋 웃고는.

“뒷일을 잘 부탁해요, 세상 군.”

자신의 목을 베어 버렸다.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매!”

비명을 지르듯 그를 부르는 순간.

〖조심하거라!〗

천지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푹!

무언가 옆구리를 찔렀다.

나를 찌르건 사슬이었다.

불유쾌한 소리를 내는 사슬.

이 무기의 정체를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저세상…….”

그가 지하로 내려왔다.

어느새 저세상의 손에 백시준의 멱살이 잡혀 있었다.

윤과 진달래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처박혀 정신을 잃은 채였다.

그 참혹한 광경에 나는 파르르 입술을 떨다가.

“저세상!”

그를 부르짖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