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백시준(3)
“시준이 삼촌?!”
그가 난데없이 등장했다.
‘어떻게?!’
백시준에게 대도깨비를 뿌리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그때였다.
“오, 백시준 씨죠? 제 발로 나타나 주셨네요?”
이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이런!’
백시준에게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라며 소리 치고 싶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리사! 정신 차려!”
그런 나를 백시준이 불렀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안전한 곳을 박차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파아앗!
이매에 의해 당한 상처에서 빛이 내뿜어지더니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아니, 아문 게 아니다.
‘삭제…….’
이매의 검에 베인 적 없었던 듯, 상처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놀란 눈으로 백시준을 쳐다봤다. 백시준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뭐?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그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무슨 생각이에요?!”
“아니, 그게. 이런 식으로 스킬을 활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매가 노리는 건 시준이 삼촌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나오면!”
“좋죠.”
이매가 내 말을 끊고는 웃었다.
“도깨비의 따님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만약 나를 죽였으면 윤사해의 분노로 의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질 뻔했다면서, 이매가 키득거렸다.
‘미친놈.’
이매는 백시준이 나타났든, 그러지 않았든 나를 죽일 생각일 거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그야, 지금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으니까.’
아주 살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열받네.’
망할 탈쟁이 새끼가 내뿜는 살기에 나도 모르게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것이 화가 났다.
‘망할.’
그렇게 입술을 꾹 깨무는데.
“자, 그럼 백시준 씨. 이렇게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이매가 백시준을 향해 낭랑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래.”
백시준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 필요한 거지?”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백시준의<[특수 수킬] Delet>.
그것의 소유자인 그가 이매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스킬이 필요한 이유가 뭐지?”
“글쎄요. 그에 대해서는 전해 들은 게 없어서요.”
이매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명령을 수행할 뿐이랍니다.”
즉, 백시준의 스킬을 원하고 았는 건 유랑단의 수장이란 말이었다.
‘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쉽게 해결됐다.
유랑단의 수장은 저세상과 함께 세상을 혼란하게 만든 장본인.
즉, 알고 있는 거다.
백시준의 스킬이 자신들이 기껏 벌인 일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준이 삼촌.”
나는 작게 숨을 내쉰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아니.
“윤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누군가를 지키는 데 있어 탁월한 건, 내가 아닌 윤이다.
내 말에 윤이 자신만 믿어 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하지 마렴, 리사.”
백시준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아들의 친구에게 이 목숨을 맡길 정도로 나는 나약하지 않단다.”
하물며 그럴 생각으로 나온 것도 아니라며, 백시준이 권총을 꺼내 손에 쥐었다.
“시준이 삼촌……!”
윤리타가 다루는 총이라면 몰라, 그가 쥐고 있는 총은 이매에게 있어 장난감이나 다름없을 터.
소용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타앙!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매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 검을 휘둘러 탄알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 순간이었다.
“윽?”
이매의 몸이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나도, 이매도 놀라 백시준을 쳐다봤다.
백시준은 우리의 시선에 담담하게 권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CW에서 이번에 개발한 무기야. 소유자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담을 수 있다고 하더군. A급 이상의 힘을 담기는 불안정하지만.”
백시준이 가지고 있는 힘. 즉, 그의 스킬은 등급이 정해져 있지 않은 특수 스킬이다.
“이매. 너에 대해서는 계속 듣고 있었어. 대도깨비 님께서 친히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편하게 해 줬거든.”
그랬단 말이야?
‘이 망할 대도깨비가!’
백시준을 지키는데 집중할 것이지, 왜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한 거야!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아해야, 내가 말했지 않느냐?〗
대도깨비가 내 뒤에서 나타났다.
〖저 놈, 힘이 아주 장사라고. 막기 버겁더구나.〗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가 얄미웠다.
나는 대도깨비를 노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말은 잘하시네요.”
〖하하! 말주변이 좋다는 이야기를 꽤 듣기는 했지!〗
“칭찬으로 들리나 봐요?”
뾰족하게 묻는 목소리에 천지해가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다, 아해야. 하지만 백시준이 아니었다면 너는 죽었을 거다. 지금 당장도 서 있는 게 고작이지 않느냐?〗
그 말대로였다.
백시준 덕분에 이매의 상처가 치료, 아니 삭제됐다고 해도 그뿐.
그 상처로 인해 흘린 피를 생각해 보면.
‘지금 서 있는 것도 기적이지.’
순간, 현기증이 일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천지해가 그런 나를 부축하며 말했다.
〖백시준은 죽지 않을 거다.〗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말할 기운도 없었기에 나는 소리 없이 그에게 물었다.
천지해가 어깨를 으쓱였다.
〖봤으니까.〗
말은 잘하지!
나는 짧게 혀를 찼다.
타앙!
그때, 또 다시 총성이 울렸다.
이매는 이번에도 역시 탄알을 막아 냈지만.
“윽!”
그러기무섭게 그의 몸이 한 번 더 급격하게 무너졌다.
“이게, 도대체.”
이매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백시준이 말했다.
“내가 말했지?”
이매, 그에 대해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고.
“가장 오래된 탈이라고 해서 한 번 시험해 봤는데 잘됐네.”
백시준이 총을 장전하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네 시간을 삭제할 수 있어서.”
그 말에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시간!’
백시준이 삭제하고 있는 건, 바로 이매의 생명력이었다.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다니.’
여러모로 놀라운 힘이었다.
저세상도, 그리고 그 전에 이매도 저 힘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각성, 그 후>의 이야기.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때, 천지해가 유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정말이지, 아해야. 참 신기한 힘이지 않느냐? 한낱 인간에게 어떻게 저런 힘이 깃들게 된 건지…….〗
웃는 것도 잠시, 그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구나.〗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지금 중요한 건.
“대도깨비 님. 시준이 삼촌을 보호해 주세요.”
백시준을 지키는 것.
내 말에 천지해가 걱정하지 말라며 싱긋 웃었다.
〖아무렴, 내 계약자의 말을 들어줘야지.〗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나는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윤.”
나와 똑같이 망신창이인 몰골인 여자를 불렀다.
“네, 리사.”
윤이 뭐든 들어주겠다는 눈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에 싱긋 웃었다.
“역시, 시준이 삼촌을 잘 부탁할게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시준이 삼촌을 지키는 데 집중해 주세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게 걸린 윤의 힘이 풀어진다고 해도 상관 없어요.”
중요한 건 백시준의 목숨이다.
“더욱이 윤 못지않은 힘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맞아요, 윤.”
엉망이 된 상황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CW 회장 대리, 진달래.
그녀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는 말했다.
“윤의 힘도, 그리고 리사의 힘도 제가 증폭시킬 수 있어요.”
그러기가 무섭게 윤의 버프 스킬이 걸린 그때처럼 몸에 힘이 돌았다.
‘윤이 걸어 줬던 스킬보다는 약한 힘이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언니, 진민천 국장님은요?”
“기절했어.”
“다행이네요.”
진민천이라면 이 상황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됐을 테니.
자, 그러니까.
“시준이 삼촌.”
나는 백시준의 곁에 서서는 창을 들었다.
“리사…….”
백시준이 수많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마, 마음 같아서는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거다.
백시준이 암만 자신의 힘을 사용해 이매의 생명력을 빼앗아도 그뿐.
그 혼자서는 이매를 상대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시준이 삼촌의 뒤도.”
그리고 앞도.
“제게 맡겨 주세요.”
나는 작게 숨을 내쉰 후, 험악하게 구겨진 탈쟁이 새끼의 얼굴을 노려봤다.
빌어먹을 탈쟁이 새끼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재미있네요, 재미있어.”
그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