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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59)화 (459/500)

459화. 백시준(2)

‘저 바빠요.’

이매와의 전투에는 집중이 필요했다. 한 눈이라도 팔았다가는 금방 목이 달아 날 게 분명한 상황.

윤의 스킬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그에 의해 사지 중 하나가 절단됐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천지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네가 바쁜 것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나 역시 바쁜 일이 생겨서 연락을 한 거다.〗

머릿속에서 들려온 말에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시준이 삼촌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아님, 진달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진민천은 관심 없었다. 그라면 분명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숨긴 채 벌벌 떨고 있을 테니까.

그때였다.

〖백시준이라고 했지? 이 인간이 지금 너를 돕고 싶다고 아주 난리구나.〗

천지해가 경악할 말을 전했다.

‘막아요.’

〖안 그래도 그러고 있단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과연 잘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 녀석이 가진 힘이 워낙 특이해서 말이지.〗

자신의 힘을 계속해서 삭제하고 있다며, 천지해가 혀를 찼다.

〖진달래라고 했던가? 그 아해와 함께 지금 몸으로 직접 막고 있는 중인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천지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 힘이 정말 세구나. 네 아비랑 똑같아.〗

‘우리 아빠랑 붙어 본 적 있어요?’

〖아니. 하지만 사희의 피를 이었다면 분명 힘이 세겠지.〗

정답이었다.

어쨌든.

‘시준이 삼촌 좀 막아 줘요. 밖에 절대 나오게 하면 안 돼요.’

〖오냐,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대도깨비와의 대화를 끝냈다.

“후.”

이매의 검격을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피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기로, 백시준이 가진 스킬 중 도움이 되는 건 <[특수 스킬] Delete>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매와의 전투에 합류하게 된다?

‘분명 죽을 거야.’

그래, 백시준은 죽게 될 거다.

심지어 곱게 죽지도 않을 거다.

이매에 의해 스킬을 강탈당한 채, 그 숨이 끊어지게 될 거다.

‘망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도윤이와 약속한 게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은 결코 없었다.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역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윤!”

한때, 이매와 같은 탈을 썼던 자와 손을 잡고 그를 공격했다.

내 외침에 맞춰 윤이 또 다시 스킬을 걸어줬다.

조금 전, 그녀가 걸어 준 스킬에 근력이 강화됐다면 이번에는 속도였다.

파앗!

이매의 검격을 피하며 순식간에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하핫!”

이매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 역시 그를 향해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동시에 쥐고 있던 창을 힘껏 휘둘렀다.

안타깝게도 내 창 끝은 허공을 베어 냈다.

‘망할!’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저 망할 탈쟁이 새끼는 대체 같은 인간이 맞는 걸까?

‘아님…….’

윤을 흘겨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분명 말했다.

이매는 유랑단에서 가장 오래된 탈이라고. 수십,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오직 저 자리만 바뀌지 않았다고 말이다.

‘거주자의 후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도깨비의 따님. 아무래도 제가 우습게 보였나 보네요?”

푹!

어깨 부근이 꿰뚫렸다.

“리사!”

윤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깨를 꿰뚫은 것이 한 바퀴 빙글 돌았기 때문이다.

“이, 미친……!”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에 내색하지 않고 탈쟁이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오.”

이매가 감탄하며 내 공격을 피해 냈다.

대신, 검을 잃었지만 말이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어깨를 뚫은 것을 뽑아냈다.

“리사! 괜찮아요?!”

윤이 다급하게 달려와 내 상처에 손을 댔다.

곧, 따스한 기운과 함께 고통이 수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윤, 괜찮은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네요?”

“아니요.”

윤이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제가 한 건 임시방편이에요.”

그저 피를 멎게 한 것뿐.

“격하게 움직이면 상처가 터지고 말 거예요.”

“곤란하네요.”

이매는 생채기가 났을 뿐,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내게 검 하나를 잃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저렇게 웃고 있는 이유야 쉽게 알 수 있었다.

인벤토리와 같은 아이템에서 또 다른 무기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아끼는 검을 하나 잃었네요.”

그가 처음 보는 검을 꺼내 들며 싱긋 웃었다.

나 역시 보란 듯이 웃어 보이며 내 어깨에 꽂혔던 검을 그림자를 이용해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아주 으스러뜨려 버린 거다.

이매가 그것을 보고서 슬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아끼는 검이었는데.”

“그것참 미안하네.”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 검은 부디 아끼는 검이 아니기를 바랄게.”

“왜요?”

“당연히 새로 꺼낸 그 망할 검도 이렇게 부서뜨려 버릴 거니까.”

내 말에 이매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는.

“아하하하!”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도깨비의 따님, 당신은 정말 무척 잘 컸다니까요?”

“너같은 놈한테 그런 칭찬은 듣고 싶지 않은데.”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랍니다!”

얼마나 크게 웃은 건지, 이매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는 말했다.

“나이에 맞지않게 당돌하다는 건 당신이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매가 기분 나쁜 눈빛으로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잘 클 줄이야. 도깨비가 얼마나 기쁠까요.”

그리고.

“양반과 각시가 얼마나 기쁠까요. 분명, 하늘에서 보고 있겠죠?”

까드득, 이가 갈렸다.

“그 입에 언니와 오빠를 함부로 올리지마.”

“언니랑 오빠요?”

이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하하! 아하하하!”

우습지도 않다는 듯 광소를 터르렸다.

조금 전보다 더 즐겁다는 듯이 웃는 그 모습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런 나를 보며 이매가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거 아나요? 당신 곁에 있는 탈이.”

“백정을 사랑했다는 거?”

윤이 살짝 표정을 굳혔다.

그런 그녀를 무시하며 이매를 향해 되물었다.

“그게 뭐?”

“오, 알고 있었구나? 그럼, 혹시 이것도 아나요?”

이매가 눈웃음을 지었다.

“부네께서 사랑한 그 백정이 양반을 죽였다는 것을요.”

쿵, 심장이 한순간 내려앉았다.

“……윤.”

내뱉은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물었다.

“정말이에요?”

“미안해요.”

윤이 곧장 사과했다.

“말릴 수 없었답니다. 백정은.”

“양반을 마뜩잖아했었으니까요. 언제나 그를 죽일 기회를 봤죠. 아, 물론 우리 아름다우셨던 각시도요.”

이매가 유쾌하게 말했다.

그 두 사람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처럼.

“그래도 하늘에서 분명 오순도순 잘 살고 있을 거예요. 두 사람 모두 잘 어울렸으니까. 아, 천생연분이기도 했죠.”

한날한시에 갔으니까.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리사, 저는.”

“괜찮아요.”

분노를 억누르며 윤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은 저 새끼를 처리하는데 집중해야죠.”

이매가 암만 진실을 말했다고 한들, 지금 중요한 건 그를 물리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윤을 붙잡고 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짓을 벌이도록 내버려 뒀냐고 따질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까.

“도와줘요, 윤.”

나는 말했다.

윤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리사.”

그런 우리를 보며 이매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오, 이런. 도깨비의 따님. 부네와 계속 손을 잡으려고요?”

“응, 그리고 부네가 아니야.”

굳었던 표정을 풀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부네에게는 ‘윤’이라는 이름이 있어. 너한테는 그런 이름도 없겠지만.”

아니.

“있었다고 해도 불러 주는 사람이 없어 잊혔겠지만 말이야.”

이매의 표정이 한순간 굳었다.

그에 알았다.

내가 그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을.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됐지.’

자고로 용의 약점이 역린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매의 약점을 잡은 나는 마치 석상처럼 굳어 버린 탈쟁이 새끼를 보며 비열하게 웃어 보였다.

“혹시, 정말 잊어버렸어? 네 진짜 이름을?”

“그 입 닥치는 게 좋을 텐데.”

이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리사, 조심해요.”

윤이 소곤거렸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주변의 그림자를 움직였다.

자고로 역린이 드러난 상대는 쉽게 흥분하기 마련.

역시, 이매는 내가 움직이는 그림자를 쉽게 피하지 못했다. 그대로 몸 곳곳이 꿰뚫렸다.

하지만 그는 아프지도 않은지, 잔뜩 화난 기색으로 나를 노려봤다.

동시에 중얼거렸다.

“귀여워해 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내뿜는 살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어.’

이대로 이매를 물리쳐야했다.

내 그림자에 몸 곳곳이 꿰뚫린 이매가 거칠게 검을 휘두른 건 그 순간이었다.

“피해요!”

윤의 외침과 함께 다급하게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쿨럭……!”

옆구리가 깊게 베었다.

“리사!”

윤이 다급히 내 상처를 살피기도 전에.

“윽!”

그녀의 머리채가 이매에게 순식간에 잡혔다.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 그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입꼬리를 비딱하게 올렸다.

“잡혔네요?”

두 사람, 다.

“나한테.”

즐거움이 듬뿍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힘겹게 손에서 떨어진 창을 쥘 뿐이었다.

‘망할.’

이매가 원래 이렇게 강했었나?

잘 모르겠다.

순식간에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안 돼.’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백시준도, 바깥에서 저세상을 상대하고 있을 윤리오와 윤리타도 위험해진다.

‘정신차리자.’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있어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매를 향해 창을 들어 올릴 때.

“리사!”

그림자로 단단히 막아 두고 있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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