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안보국(4)
“못본 사이에 입이 굉장히 험해졌네요? 아, 원래 그랬던가?”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 이매.
그가 웃는 낯으로 내게 인사했다.
“그간 건강하게 지내셨나요? 도깨비께서도 잘 지내고 계시고요?”
이매는 자신의 얼굴을 탈로 가리는 일이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의 얼굴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매.”
“네, 도깨비의 따님.”
친구의 딸을 부르는 것처럼, 이매가 정답게 나를 부르고는.
“그새 많이 자랐군요?”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다가오는 검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안 돼!’
이대로면 당한다.
급히 창을 들었지만 막기에는 이미 늦은 때.
‘그렇다면!’
팔 하나를 내줄 각오로 탈쟁이 새끼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또 다른 탈이, 아니. 탈이었던 자가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윤!”
이매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친 윤이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속삭이듯 빠른 템포로 말했다.
“이매는 유랑단의 가장 오래된 탈. 더욱이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지 않은 녀석이죠.”
윤의 말에 이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오므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혹시 스파이?”
“어떻게 보면 비슷하겠네요.”
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이매가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네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 보니 유랑단 소속의 탈인 것 같은데…….”
이매가 고개를 기울였다.
“선비나 초랭이가 여자였을 리가 없는데?”
선비와 초랭이.
그 둘 모두 유랑단을 배신한 탈쟁이들이었다.
정확히는, 탈쟁이였던 놈들.
여하튼 윤은 말했다.
“당신이라면 쉽게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하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탈이란 존재가 교체가 꽤 자주 이뤄지잖아요?”
지금은 더욱 그렇다면서 이매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장, 조금 전에도 백정이 된 지 얼마 안 된 어린 녀석이 죽었다고 해서 얼마나 곤란한지 몰라요. 지금 탈의 공석이 얼마나 많은데!”
백정.
이매의 입에서 떨어진 그 이름에 윤이 표정을 굳혔다.
아마, 죽은 연인을 떠올린 거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윤의 정체를 드러나게 만들었다.
이매가 윤을 보며 유쾌하게 웃음을 흘리며.
“당신, 부네구나?”
그녀의 정체를 밝히며 검을 날린 거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 때문일까?
윤은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린 거다.
“윤!”
다급하게 그림자를 움직여 윤의 목을 향해 날아들던 검을 막아 냈다.
챙!
윤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동시에 내게 사과했다.
“고마워요.”
아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픽 웃고는 말했다.
“감사 인사는 아직 일러요.”
빌어먹을 탈쟁이 새끼가 안보국을 습격했다.
그가 노리는 건.
‘백시준.’
그일 터.
‘애초에 이 사태가 유랑단에 의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중에서도 저세상. 망할 주인공 새끼가 힘을 빌려줘서 저지른 일이겠지.
‘백시준은 현재 그걸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그러니까 이렇게 습격한 거다.
무엇보다 전적이 있는 그들이었다.
‘혼자서 온 건 아니겠지.’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이매 뿐이었다.
그때였다.
“누구를 찾으세요?”
가까이에서 이매가 말을 걸었다.
나는 황급히 창을 들어 있는 힘껏 휘두르며 그를 멀찍이 떨구어 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내 공격을 가볍게 피한 그가 싱긋 웃으면서 투덜거렸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아이답게 귀여운 구석이 많았는데, 다 커서 다시 이렇게 만나니.”
망할 탈쟁이 새끼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아주 도깨비를 빼닮았네요.”
“그거야 당연하지.”
나는.
“윤사해의 딸이니까.”
이매가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즐겁다는 듯이 말이다.
‘빌어먹을 탈쟁이 새끼.’
속으로 그를 욕하며 경계하는데.
“아쉽네요.”
그가 난데없이 서글프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재미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상 군이 당신을 보면 감회가 꽤 남달랐을 것 같은데.”
저세상.
그의 이름이 이매한테서 떨어졌다.
순간 잘못 들은 건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매는 분명 저세상의 이름 석 자를 말했다.
“어디 있어?”
나도 모르게 물었다.
“네?”
“저세상, 그 새끼! 지금 도대체 어디 있냐고!”
저세상의 행방을 말이다.
“같이 왔지?”
내 질문에 이매가 매혹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웃음에 나는 다급히 대도깨비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머릿속으로 말이다.
‘대도깨비님, 이상 없죠?’
〖그래, 없다. 이곳은 안전해.〗
다행히 백시준과 진달래가 있는 회의실은 안전했다.
진민천은 내 알 바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다만, 아해야. 문제가 있다.〗
천지해가 말했다.
‘무슨 문제요?’
곧바로 질문을 던졌지만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쿠구궁!
건물이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 나와 윤을 향해 이매가 유쾌하게 말했다.
“밖에서 세상 군이 꽤 즐겁게 놀고 있는 모양이네요. 자신을 가족으로 품어 줬던 옛 형제들과 함께요.”
그 말에 깨달았다.
대도깨비가 말한 문제는.
‘윤리오, 윤리타!’
두 사람이 저세상과 싸우고 있는 거란 것을.
***
“이런, 망할! 윤리타!”
윤리오가 다급하게 헤어진 쌍둥이 동생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굉음은.
쿵! 쿠궁!
계속해서 흔들리는 땅이 만들어 낸 굉음에 파묻히고 말았다.
설상가상, 땅울림으로 인해 자욱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망할.’
윤리오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시야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윤리타가 가진 힘은 치명적이었다.
그가 적의 위치를 분간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물론, 윤리타는 이런 상황에서 적을 쉽게 분간할 수 있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다만, 문제라면.
“윤리타! 내 말 들리면 그냥 쏴!”
그 적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얼굴이란 거였다.
저세상.
자신들에게 있어 남동생이나 다름없었던 그가 지금 적으로 대적하고 있었다.
윤리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인 윤사해에게 저세상에 대한 행방이나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어도 그랬다.
물론, 윤리사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는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았다.
무언가 서로 오해가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훗날 만나서 잘 타이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리오는 자신들을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저세상의 모습에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리오 형!’
자신을.
‘리타 형!’
아니, 자신들을 반갑게 부르던 그는 더는 없다는 걸.
가족이서 행복하게 웃고 떠들던 그 시절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윤리타! 적이야!”
저세상은.
자신들의 동생이었던 그 아이는.
“적이라고!”
윤리오는 입 안에서 감도는 쇠 맛을 느끼며 다시 한번 더 소리 질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리오 형, 목소리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자신의 앞에 저세상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거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를 뚫고 나타난 아이는 자비가 없었다.
촤르륵!
저세상의 손 끝에 걸려 있는 사슬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동시에.
“윽!”
윤리오는 그의 무기에 팔이 잡히고 말았다.
“저세상……!”
윤리오가 이를 악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저세상이 웃었다.
“역시 리오 형은 상황 판단이 빠르네요. 윤리사도, 그리고 리타 형도 계속 저를 가족처럼 여겼는데요.”
하지만 윤리오는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한 후, 저세상을 적으로 규명했다.
윤리오가 일그러진 얼굴로 제 팔을 감은 무기를 노려봤다.
이윽고 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움직여 그것을 잘라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악!”
손을 옭아매고 있는 사슬이 옥죄어들지만 않았으면 그랬을 거다.
“으윽……!”
윤리오가 고통에 신음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아니. 쓰러지기 전의 그였다면 이깟 고통 따위 아무렇지 않게 대응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때와는 달리 연약한 몸이었다.
즉, 고통에 한없이 취약한 몸이란 거였다.
저세상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문에 외쳤다.
“리타 형! 리오 형의 손이 이대로 잘리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저를 공격하는 게 좋을 거예요!”
라고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목소리에는 제발 부디 그래 달라는 듯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