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안보국(2)
“잡담할 생각이라면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게!”
진민천이 마뜩잖다는 얼굴로 우리 남매를 향해 말했다.
그에 윤리오가 얼굴을 찌푸렸지만.
“죄송합니다.”
윤리타가 그 뒤통수를 잡고 누르며 사과했다.
나 역시 웃는 낯으로 사과했다.
“잡담할 생각은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국장님.”
“흠!”
진민천이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기가 무섭게.
“놔.”
윤리오가 험악하게 윤리타의 손을 치우며 구시렁거렸다.
“별 볼 것도 없는 국장인 주제에 왜 저렇게 기고만장한 거야?”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자.”
윤리타가 윤리오의 화를 풀어 주며 말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리오 오빠. 여기에서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정말 밖에서 기다리게 될 거야.”
백시준의 경호로 따라온 건데, 그 곁에 있지 못하면 안 됐다.
윤리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껏 찌푸린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윤리타가 그 곁에 붙으며 계속해서 그의 기분을 풀어 줬다.
나는 그런 둘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윤이 말했다.
“아무래도 안보국의 국장님께서는 도깨비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아빠한테요?”
“네.”
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도깨비의 첫째 아드님이 말한 것과 같이, 저 인간은 별 볼 것도 없는 녀석이죠.”
하지만 윤사해는 아니었다.
한 손에 꼽히는 S급 각성자이자, 이매망량의 길드장.
“저 인간은 제가 알기로 B급 각성자입니다. 머리 쓰는 것이 좋아 저 자리에 앉은 것뿐. 가지고 있는 힘은 볼품없지요.”
그러니까 윤이 하고 싶은 말은.
“안보국의 국장님께서 아빠한테 가진 열등감을 지금 우리한테 풀고 있는 중이란 건가요?”
“그렇죠.”
역시 똑똑하다면서 윤이 웃었다.
“정말이지, 도깨비의 첫째 아드님께서 말한 것처럼 별 볼 것도 없는 인간이지요.”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안보국의 국장님 앞에서 괜히 그런 소리는 하지 마세요.”
“물론이지요.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답니다.”
없으면 세월이 아깝지.
어쨌든 나는 윤과 함께 마지막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백시준과 진달래, 두 사람이 이미 자리에 앉은 게 보였다. 상석에는 당연히 진민천이 앉아 있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지. CW 회장 대리님께서 알아낸 사실부터 먼저 말해 보도록 하게.”
“네, 국장님.”
진달래가 미소를 그린 낯으로 입을 열었다.
***
“이상입니다.”
진달래의 말을 끝으로 회의실 안이 고요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시준이 가지고 있는 <[특수 스킬] : Delet>를 이용해서 미지 영역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 모두 지울 수 있다니.
‘가정일 뿐이지만.’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 가정이 정말 사실이면 거주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인간에게 우호적인 도깨비들 같은 거주자들 말이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도깨비가 말을 걸어 왔다.
〖우리는 괜찮을 거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불퉁하게 생각을 전했다.
‘확신할 수 있어요?’
〖그럼!〗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처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지워지는 건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뿐이라고!〗
‘아.’
대도깨비를 비롯한 다른 도깨비는 모두 계약자가 있었다.
내가 아는 한 그랬다.
〖하지만 걱정이구나.〗
‘뭐가요?’
〖일이 잘 풀려 미지 영역이 사라지고, 만약 계약자가 죽어 버리면.〗
천지해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혹시 계약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까봐 두려우세요?’
〖설마!〗
천지해가 까르르 웃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종류란다.〗
‘그게 뭔데요?’
〖계약자가 죽은 후, 그와 계약했던 거주자가 자유롭게 이 세상에 다시 풀려나는 것.〗
원래 계약자가 죽으면 거주자는 다시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면 됐다.
하지만 미지 영역이란 공간이 사라지면? 그 거주자는 어디로 갈까?
〖죽지는 않을 거다.〗
천지해가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비롯한 우리 도깨비는 원래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보다시피 아니다.〗
그러지 않는 녀석들이 훨씬 많다며 천지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우리 말고 인간과 계약 중인 다른 거주자들 역시 그렇겠지.〗
인간과의 계약 없이 미지 영역의 밖으로 나온 거주자들은 마음대로 인간을 해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과 계약 중인 거주자들은 그럴 수 없다. 당장 천지해를 비롯한 다른 도깨비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같은 거주자는 해칠 수 있지만, 인간은 결코 다치게 할 수 없다.
〖그러니 속에 얼마나 불만이 많이 쌓여 있겠느냐?〗
‘그럴 거면 인간이랑 계약을 하지 말 것이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들 바깥을 많이 그리워했거든! 그러니 어쩔 수 없을 거란다.〗
천지해의 유쾌한 목소리에 입술을 불퉁하게 씰룩이는데.
“자자, 그래서?”
진민천이 입을 열었다.
“우리 백시준 요원이 희생을 하면 된다는 건가?”
희생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벌리는데.
“백시준 요원님께서 굳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진달래가 나긋하게 말했다.
그 말에 진민천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봐, 진달래 회장 대리. 조금 전에 말한 것과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진민천이 껄렁하게 물었다.
“목숨이 위험할 일이라며?”
“우선, 미지 영역의 흔적을 찾아야 하니까요.”
그래야 없애든 말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국장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미지 영역은 현재 무너진 상태로, 아예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주자들이 끊임없이 나올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 흔적을 찾아 백시준 요원님이 힘을 사용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할 위험을 우려한 것뿐이고요.”
“흠.”
진민천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도 잠시, 곧 비딱하게 입고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거야, 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네?”
진달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여기,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지 않은가?”
진민천이 나와 윤리오, 윤리타를 보며 히죽거렸다.
그 웃음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
저 망할 국장 새끼, 우리를 고기 방패로 삼고 싶은 모양이구나?
“저, 시……!”
“윤리오, 진정!”
윤리타가 황급히 윤리오의 입을 막고 그를 진정시켰다.
“함부로 날뛰면 안 돼!”
맞는 말이었다.
윤리오도, 나도. 그리고 윤리타도 이매망량의 이름으로 온 자리.
함부로 날뛰었다가는 그 이름에 먹을 칠하게 될 거다.
진민천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우리 남매를 보며 킬킬거렸다.
‘아오, 시바.’
저렇게 재수없는 인간은 또 처음 본다.
‘뺨이라도 한 대 때려?’
생각해 보면 진민천은 『각성, 그 후』에서 등장조차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이름도 나오지 않았었고.
윤리오나 윤의 말대로 별 볼 것 없는 인간이란 뜻.
‘진짜 때릴까?’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국장님, 안 됩니다.”
백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윤리사 헌터와 윤리오 헌터는 제 경호로 온 겁니다.”
“그럼, 저 여자는?”
진민천이 윤을 가리키며 물었다.
“윤 헌터 역시 마찬가지고요.”
백시준이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더욱이 아직 아이들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크지.”
진민천이 윤리오와 윤리타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하긴, 윤사해 길드장의 지랄 맞은 성격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기는 할 것 같군.”
누구 성격이 지랄 맞다는 거야?!
‘물론, 윤사해 성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독두꺼비처럼 생긴 망할 국장 새끼한테 들을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망할!’
이매망량의 이름으로 온 게 아니었다면 정말 한 대 쳤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는데.
‘헉!’
윤리오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 있는 게 보였다.
윤리타 역시 마찬가지.
당장에라도 두 사람 모두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큰일났다!’
이대로면 윤리오도 윤리타도 크게 사고를 치고 말 터.
그런 생각을 할 때.
“리타.”
진달래가 입을 열었다.
“잠시 리오와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을까?”
“네?”
“요깃거리 좀 가지고 와 줬으면 해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배가 고프네.”
“아, 네!”
윤리타가 언제 화가 났냐는 듯 활짝 웃고는 윤리오를 끌고 사라졌다.
“뭐야? 놔!”
“진달래 회장 대리님의 부탁을 지금 거절할 생각이야?”
“부탁이고 자시고 나는 시준이 삼촌 경호 임무로 온 거거든?”
“경호는 리사랑 저기 저분이 함께 설 테니 괜찮아.”
“야!”
티격태격하며 형제가 사라졌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국장님, 윤사해 길드장님의 자녀 분들을 너무 자극하지 마시죠.”
진달래가 입을 열었다.
“이봐, 진달래 회장 대리.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내가 언제 자극을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민천의 말을 끊으며 진달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또한, 윤리사 헌터님은 이매망량의 전 길드장님입니다.”
그렇죠! 언니 최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백시준 요원님의 말대로, 윤리사 헌터님도 그리고 조금 전에 나간 두 헌터 분들도 어린 나이라고 하나.”
진달래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며 말을 끝냈다.
“국장님께서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안 되는 분들이란 뜻이죠.”
“진달래 회장 대리!”
진민천이 분을 참지 못하고 성난 목소리를 크게 내뱉는 순간.
쿵!
건물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