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안보국(1)
“아빠! 왜 저는 안 데리고 가요?!”
백시준과 귀수산을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아들인 도윤이 때문이었다.
“리사도! 그리고 리오 형도 함께 가면서 왜 저는 안 데리고 가요?!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도윤아…….”
백시준이 앓듯이 아들을 부르고는 타일렀다.
“리사와 리오는 아빠의 경호원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까,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저도 아빠를 지킬 힘이 있다고요!”
“물론, 우리 도윤이가 강한 건 잘 알고 있지. 하지만, 도윤아.”
백시준이 도윤이의 어깨를 꽉 끌어 잡고는 말했다.
“너는 학생이잖니?”
그래, 도윤이는 학생이었다.
윤리오와 나처럼 어느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길드원’이 아닌,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학생.
도윤이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아들을 백시준이 다정하게 안았다.
“도윤아, 아빠 금방 돌아올 거야.”
“하지만.”
“다치지 않을게.”
“정말요?”
“그럼, 물론이지.”
백시준이 다정하게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때까지 사해 아저씨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아저씨가 아니라 삼촌.”
그 말을 윤사해가 고쳤다.
윤사해가 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힌 도윤이를 내려다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삼촌이라고 불러라.”
“아… 네…….”
도윤이가 살짝 겁에 질린 얼굴로 대답하며 백시준의 뒤로 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사해는.
“리사, 리오.”
우리를 부르고는 당부했다.
“지원이 필요하면 바로 연락하렴. 사람을, 아니. 내가 직접 도우러 갈 테니.”
윤사해의 말에 나와 윤리오는 싱긋 웃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길드장님!”
우리의 대답에 윤사해가 잠시 벙찐 표정을 보였다가 이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러고는 우리를 꼭 끌어안았다.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지면 함께 별장에 놀러 가자꾸나.”
여름이면 해바라기가 얼굴을 활짝 내밀었던 그곳.
“좋아, 아빠.”
“그래요.”
윤리오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내년에 꼭 가요.”
지금은 이미 지나가 버린 여름.
윤리오의 말에 윤사해가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그렸다.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귀수산을 나서게 됐다.
“안보국에 직접 들어가는 건 처음인데 말지요.”
물론, 윤도 함께였다.
윤이 ‘부네’인 것을 알고 있는 백시준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물었다.
“하긴, 안보국은 유랑단의 표적이 된 적이 없으니까요.”
“얻을 게 없으니까요.”
윤이 나긋하게 대답했다.
“AMO든, DMO든, 공격하는 즉시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가.
“피해를 입는 것과는 다르게 안보국은 그러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숨기지 않느냐며 윤이 웃었다.
“뭐, 맞는 말이죠.”
백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담담하게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는 사이 도착했다.
안전관리보장국(全企管理保障局).
소위, ‘안보국’이라고 불리는 곳에 말이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에게 공격이라도 당했던 모양인지, 안보국은 폐허나 다름없어 보였지만.
“가자.”
백시준은 아무렇지 않게 형체를 반쯤 잃은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
놀랍게도 안보국의 모든 것은 땅 밑에 존재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본 건물은 국제 사회의 눈을 돌리기 위해 만든 거야. 실상, 모든 업무는 지하에서 이루어졌지.’
때문에 안보국은 사실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을 거라며, 백시준은 우리와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그 말대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안보국은 무너진 곳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구경도 잠시, 우리에게 곧장 다가온 사람이 있었으니…….
“이게 누구야?! 백시준 아닌가!”
“국장님.”
안보국의 국장.
그러니까 최고 지휘자였다.
“어서 오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뒤에 있는 녀석들은…….”
녀석들이라니.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안보국의 국장이라면, 분명 나와 윤리오를 보자마자 우리가 윤사해의 자식들이란 걸 알아차렸을 터.
‘그런데도 녀석들이라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백시준은 웃는 낯으로 우리를 안보국의 국장에게 소개해 줬다.
“경호원분들입니다. 이매망량에 소속되어 있는 길드원분들이시죠.”
“아아.”
안보국의 국장이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비딱하게 말했다.
“윤사해 길드장님의 아드님과 따님이신가 보군.”
“네, 윤리오라고 합니다.”
윤리오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나는 마뜩잖은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윤리사라고 합니다.”
“흠.”
안보국의 국장 역시 나 못지않게 못마땅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내 인사가 무척이나 시건방지다고 느낀 모양이다.
‘어쩌라고.’
비딱하게 웃으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저는 윤이라고 합니다.”
윤이 자신을 소개하며 국장 녀석의 눈길을 돌렸다.
“호오.”
국장 놈이 윤을 보고서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매망량에 이렇게 아리따운 분이 계신 줄은 몰랐군.”
오우, 미친.
온몸에 소름이 일었다.
“하하, 국장님. 그보다 이야기 좀 나누시죠. 제가 가지고 있는 힘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듣지 못해서요.”
“아아, 그렇지. 곧 CW의 회장 대리 녀석이 올 텐데 그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나도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말이야.”
백시준이 가진 힘과 관련해 의견을 낸 사람은 CW의 회장 대리라면서 그가 툴툴거렸다.
“나 참, 어린 녀석이 운 좋게 회장 대리가 됐다고 얼마나 설치는지.”
저 아저씨가 진짜 뭐라는 거야?
한마디 해 주고 싶어 얼굴을 와락 찌푸리는 순간.
“죄송하네요, 진민천 국장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장 녀석이 구시렁거리며 욕했던 CW의 회장 대리.
진달래였다.
“지, 진달래 회장 대리?!”
안보국의 국장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 지하에는 어떻게 내려온 건가? 안보국 요원의 라이센스가 없으면 결코 내려올 수 없는 곳인데!”
“아, 그게 말이죠.”
진달래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분이 해킹 실력이 좋아서요. 그분께 부탁했답니다. 암만 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으셔서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를.”
진달래가 말한 사람이라면.
‘이운조인가?’
그녀라면 안보국의 보안 시스템을 가볍게 해킹할 수 있을 거다.
안보국의 국장은, 그러니까 진민천이라는 아저씨는 당황한 얼굴을 잠깐 보였다가.
“그래도 진달래 회장 대리! 내가 연락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화를 냈다.
“이곳은 국가의 중요 시설 중 한 곳이야! 그런 곳의 보안 시스템을 해킹해서 마음대로 들어오다니!”
“마음대로 들어온 건 아니죠.”
라고 말한 사람은 CW의 화장 대리가 아니었다.
진민천 국장에게 날카롭게 일갈한 남자가 이내 얼굴을 드러냈다.
“진달래 회장 대리님은 진민천 국장님의 요청에 방문한 것뿐입니다. 그쪽이 먼저 초대했잖아요?”
“자, 자네는 또 뭔가?”
“윤리타라고 합니다.”
윤사해의 모든 색을 닮았지만, 순한 외모는 에일린 린을 닮은 그.
나의 형제인 윤리타가 비딱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시준이 삼촌 곁에 있는 윤리오 헌터의 쌍둥이 동생이자 윤리사 헌터의 둘째 오빠죠. 뭐, 그 뒤에 있는.”
“윤이라고 합니다.”
“네, 저분은 잘 모르겠지만요.”
윤리타가 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국장님, 화낼 시간에 어서 회의를 진행하죠? 국장님께서 말한 운 좋게 회장 대리가 된 진달래 님께서는 바쁜 몸이거든요.”
명백한 조롱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진민천이 버럭 소리 질렀지만.
“이, 이 버릇 없는!”
“국장님.”
백시준이 타이밍 좋게 그의 말을 끊고서는 말했다.
“진달래 회장 대리님께서도 도착하셨으니 어서 이야기를 나누죠.”
백시준의 말에 진민천이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백시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미안, 우리 국장님의 성격이 좀 까탈스러워서.”
“좀이 아니라 많이.”
퍽, 윤리오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을 끊게 했다. 그러고는 선하게 웃으며 나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 리오.”
백시준이 이해해 줘서 고맙다며 싱긋 웃을 때.
“백시준, 자네! 따라오지 않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진민천이 지랄했다.
“진달래 회장 대리님께서도 어서 오시지요!”
백시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CW의 회장 대리를 맡고 있는 진달래한테도 똑같이 지랄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그녀와 함께 안보국에 온 윤리타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리타, 진정.”
진달래가 그의 손을 가볍게 쓸어 주고는 진민천의 뒤를 따랐다.
백시준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세 사람의 뒤를 따르며.
“야, 윤리타.”
“CW 지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더니, 실은 언니랑 연애한다고 바쁜 거였지?”
“맞아. 아주 진달래 회장 대리님이 손을 쓸어 줄 때 기분 좋아서는 넋 나간 새끼처럼 웃던데 말이야.”
윤리타를 구박했다.
“우리한테 여기 오는 것도 알리지 않고.”
“아주 나랑 리오 오빠는 이제 관심 밖이라는 거지?”
“아버지가 속상해하겠어.”
윤리타가 귀를 막았다.
그런다고 멈출 우리가 아니었지만.
“거기, 자네들!”
진민천의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에 대화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