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파란(3)
“아빠, 리오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줘.”
“리사!”
윤사해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불렀다. 내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가 잠시 앓는 소리를 내고는 입을 열었다.
“리오는.”
“다 나았잖아.”
윤사해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아빠가 리오 오빠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
그런데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윤사해가 나를 쳐다봤다.
그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아빠는 리오 오빠가 평생 누군가한테 보호받으면서 살기를 원해?”
“그거야…….”
윤사해가 말을 하다 멈췄다. 이내 그는 두 손을 꼭 주먹쥐었다.
그런 윤사해를 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리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잖아.”
윤리오는 윤사해의 모든 점을 꼭 닮은 그의 아들이었다.
닮지 않은 건 오직 하나.
에일린 리.
그녀에게서 물려받은 머리칼뿐. 나머지는 모두 윤사해 그 자체였다.
그러니 윤사해도 알거다.
윤리오가 지금 얼마나 답답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싸우고 싶어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기에 윤사해는 또한 걱정하고 있는 걸 거다.
그러니까.
“아빠.”
나는 그를 붙잡고서 말했다.
“내가 리오 오빠랑 같이 시진이 삼촌 경호할게.”
윤사해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
“리사…….”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듯 나를 부르고는 백시준을 쳐다봤다.
백시준이 그 시선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와는 달리 윤사해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나 좀 보지.”
곧바로 백시준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사해야? 잠깐! 그냥 여기에서 이야기 나눠도!”
“안 돼.”
윤사해는 그렇게 단호하게 대꾸하고는 백시진을 끌고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고.
“하아.”
윤리오가 한숨을 터트렸다.
“리오 오빠, 너무 걱정하지마. 내 생각대로 될 테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윤리오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웅얼거렸다.
“미안, 리사.”
“응?”
“쉬고 싶을 텐데 나 때문에 또 힘든 일을 맡게 됐잖아.”
“오빠도, 참!”
윤리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활짝 웃었다.
“그런 말 하지마! 나도 시진이 삼촌 돕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오빠 혼자 보내기에는 걱정도 되고!”
“그렇다니 뭔가 부끄러운데?”
윤리오가 멋쩍게 웃을 때였다.
“서로 사이가 좋군요?”
윤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윤리오가 깜짝 놀라 윤을 보고는 내게 물었다.
“리사, 저 여자는 누구야?”
“아, 이 사람? 그게 말이지.”
나는 두 눈을 데굴 굴렸다.
윤의 정체는 부네.
암만 그들을 배신했다고 해도 유랑단의 아홉탈 중 하나인 몸이었다.
‘그걸 윤리오한테 말해 줘도…….’
되겠지.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윤에 대해 하나하나 모두 상세하게 윤리오한테 설명을 해 줬고.
“뭐?! 윤리사, 너!”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윤리오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 말하지 말 걸.’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
이매망량의 건물이 있는 곳과는 다소 떨어진 곳.
―우우!
귀신들이 울고 있는 귀수산의 입구 언저리.
윤사해는 그곳에서 멈춰섰다.
“후우.”
이윽고 멈춰선 그가 한숨을 토해 내고는 백시준을 노려봤다.
그 매서운 시선에 백시준이 두 손을 들며 사과했다.
“미안, 사해야.”
“미안한 걸 아는 새끼가 리오한테 그런 수작질을 벌여?”
“딱히, 수작질은…….”
“시끄러.”
윤사해가 백시준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왜 복귀하려는 거야?”
“응?”
“네 아들 녀석과 이곳에서 계속 지내도 되는데 왜 복귀하려는 거냐고. 네 동생 때문에 그래?”
“그건 아니야.”
“그럼?”
묻는 말에 백시준이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가,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내 힘이 이 사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대.”
“뭐?”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멸망을 앞둔 것이나 다름없어진 세상.
이 세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놀란 그를 향해 백시준이 웃는 낯을 보이며 말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어. 비밀 보안 유지 때문에.”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면 비밀 보안 유지고 자시고 말해 주는 게 좋을 텐데?”
“나 죽이려고?”
백시준이 짓궂게 웃으며 윤사해를 쳐다봤다.
윤사해의 얼굴이 구겨졌다.
‘망할 놈.’
백시진은 언제나 그랬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속을 긁는다.
그때도 그랬다.
‘서차윤.’
이매망량의 부길드장.
한때, 가장 소중한 친구라 여겼던 그를 제 손으로 죽였을 때에도 그랬었다.
‘빌어먹을.’
과거를 잠시 회상하던 윤사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해야.’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인 걸 알고 있음에도 윤사해는 쉽사리 진정할 수가 없었다.
‘죽이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나는 몇 번이고 네 아이들을 노릴 테니.’
잊자, 잊어.
10년도 지난 일을 이제와 기억해 낸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그래, 그러니까 잊어야 하는데.
‘안녕, 사해야.’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윤사해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리사 부탁을 받고 왔어.’
‘뭐……?’
‘리사가 너를 많이 그리워하더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친구가 멀쩡하게 제 앞에 나타났던 그때를 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왔어. 너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 주려고.’
그 망할 자식은 결국 자신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냈다.
뻔뻔하게 딸아이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렇게 자신을 대신해 멸망해 버린 세계에 남아 버렸다.
‘망할!’
윤사해가 가슴 부근을 쥐어잡았다. 속이 답답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백시준이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말해 보지 그래?”
“응?”
백시준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시준.”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듯 그를 부르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네 아들 녀석이 이곳에서 무사히 지내기를 원하면 잠자코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우리 도윤이를 가지고 협박이라니 너무하네.”
백시준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곧 입을 열었다.
“내가 가진 특수 스킬 있잖아.”
Delet.
어느 힘이든 지울 수 있는 힘.
“그 스킬로 미지 영역을 완전히 지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뭐?”
“확실하지는 않아. 가서 이것저것 실험을 해봐야 해. CW의 도움으로 연구 시설은 그래도 갖춰진 것 같다고는 하던데…….”
“잠깐.”
윤사해가 급히 그의 말을 끊고는 물었다.
“너는?”
“응?”
“그런 식으로 힘을 사용해도 괜찮은 거냐고 묻는 거다.”
백시준이 두 눈을 끔뻑이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야? 실험이 실패하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백시준!”
장난치지 말라는 듯, 윤사해가 버럭 소리 질렀다.
“내가 지금 너랑 장난이나 치자고 이러는 줄 알아?! 나는 진지해!”
“나도 진지해.”
백시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어 내며 중얼거렸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 애초에 내가 가진 힘으로 미지 영역을 지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설사 지운다고 해도.
“거주자들이 그에 영향을 받을지, 그러지 않을지도 몰라.”
한 마디로 불안정한 실험이었다.
“그래도 나밖에 할 수 없다니 어쩔 수 없잖아?”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는 수밖에.
“그러니까, 사해야. 만약,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도윤이 좀 부탁할게.”
“이 미친 놈이……!”
윤사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그에게서 휙 고개를 돌리며 구시렁거렸다.
“네 아들은 네가 챙겨.”
백시준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윤사해가 결국에는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챙겨줄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웃음소리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렸다. 그것을 깬 건 윤사해였다.
“경호가 필요한 건, 너를 습격한 놈들 때문이겠지.”
그들은 분명 백시준이 가진 힘을 노린 게 분명하니.
“리사와 리오를 붙여 주지.”
“정말?”
“싫으면 말고. 이참에 그 실험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되겠군.”
“아니, 아니야!”
백시준이 다급하게 두 손을 젓고는 활짝 웃었다.
“고마워, 사해야.”
“그런 인사는 지금 하지말고 돌아와서 해.”
그러니까, 나중에.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세상이 모두 잠재워진 후에 말이다.
백시준이 윤사해의 불퉁한 목소리에 활짝 웃었다.
“응, 그래.”
윤사해는 그와 똑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멍청한 놈.”
하고 욕을 하며 걸음을 돌렸다.
백시준은 그것만으로도 좋다는 듯이 웃으며 윤사해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돌아온 곳.
윤사해는.
“아버지! 윤리사가 탈쟁이 새끼를 데리고 왔어요!”
뒷목을 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