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파란(2)
―우우……!
귀수산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제는 익숙해진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나를 반겼다.
“언제 들어도 소름끼친단 말이야.”
청해진이 소름이 일어난 팔을 벅벅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오빠, 이매망량에 입단한 지 이제 10년 다 되어 가지 않아?”
“그렇기는 한데.”
통 익숙해지지 않는다면서 청해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다 이매망량에서 잘 때에는 저 소리 때문에 악몽도 꾼다면서, 그가 질린 표정을 보였다.
그에 우리와 함께 이동한 여자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윤이었다.
“가주님의 동생 분께서는 생각보다 겁이 많으시군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청해진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러고는 내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데리고 와도 돼? 그냥 AMO 쪽에 신병을 맡기면.”
“어떻게 될지 몰라.”
청해진의 말을 단호히 끊고는 그에게 도로 물었다.
“AMO에 넘겨진 탈쟁이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거야 당연히…….”
청해진이 말을 하다 말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곧,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목소리를 내뱉었다.
“설마, 제대로 처벌받은 새끼들이 한 명도 없는 거야?”
“네.”
대답한 건 내가 아니었다.
윤이 웃는 낯으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거주자의 피가 짙나 보네.’
랑야의 딸인 사야만큼은 아니겠지마는.
어쨌든 윤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수장님께서 친히 죽이거나 다시 데리고 왔지요.”
“뭐?”
청해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진작 예상하고 있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윤이 그런 나를 보고는 미소를 그렸다.
“도깨비의 따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네.”
내 대답에 청해진의 두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기도 했다.
그것을 못본 척 무시하며 말했다.
“아빠한테 들은 이야기가 꽤 많아서요.”
정확히는 그가 혼잣말하는 걸 듣고 멋대로 판단한 거지만.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윤도 알고 있겠지만, 제가 탈쟁이들이랑 또 인연이 깊잖아요?”
그들 중 다수가 붙잡혀 AMO에 신병이 넘겨졌지만, 그 이후 생사를 전혀 알지 못하게 됐다.
‘강산에.’
내 최애님께서 유랑단의 수장과 손을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림짐작하고 있던 그 사실을 직접 탈에게 듣게 되다니.
‘씁쓸하네.’
작게 숨을 내쉰 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참고로 최설윤은 금강산으로 돌아갔다. 아래아를 오래 비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쪽에도 지킬 사람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겠지.’
최화백 혼자서 일을 처리하기에는 그는 아직 미숙했으니까.
물론, 최설윤은 나와 헤어지기 전 윤과 함께 귀수산으로 돌아가려는 우리에게 당부했었다.
‘저 탈쟁이 새끼가 허튼짓을 할 것 같으면 그냥 죽여 버려.’
그것도 윤에게 다 들릴 목소리로 말이다.
그 살벌한 목소리에 윤은 웃기만 했다.
‘아니, 아니지.’
웃기만 했을까?
‘최설윤 길드장님의 말씀대로 하시지요. 제가 혹여나 당신들을 배신할 것 같으면 그냥 죽여 버리세요.’
이렇게 말을 붙이기까지 했다.
그 말에 최설윤의 표정이 얼마나 험악해졌는지 모른다.
어쨌든 간에.
“윤, 당신은 조용히 있도록 해요. 아빠한테는 제가 알아서 말할 테니까요.”
“물론이지요.”
윤이 싱긋 웃었다.
“도깨비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릴 생각은 없답니다. 더욱이 그는 제게 좋은 감정이 없을 테니까요.”
“아아, 백정 때문에요?”
정확히는, 전대 백정.
이미 죽은지 오래인 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청해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윤리오와 윤리타, 그리고 청해진.
그 셋은 전대 백정에게 목숨을 크게 위협받은 적이 있으니까.
‘윤사해라면 부네가 그 자식과 꽤 친한 사이였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다는 건 몰랐겠지만.
‘알아서 좋을 건 없어.’
그래서 나는 윤에게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다. 당연히 청해진에게도 해당되는 사안이었다.
“해진이 오빠도 윤의 정체에 대해 섣불리 말하지 마. 아빠한테도 그리고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한테도.”
“네네, 알겠습니다.”
청해진이 다소 불만스레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매망량으로 움직였다.
원래는 곧장 이매망량에 도착했겠지만, 길드 내부에 피난민이 지내게 되면서 그럴 수 없게 됐다.
괜히 함부로 이동했다가 피난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도착한 귀수산.
“아가씨!”
류화홍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언제 돌아오셨어요? 남해는 정리 다 됐나요? 해솔이는 괜찮죠?”
“화홍이 오빠…….”
류화홍은 사야를 대신해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품에 곤히 잠든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다 픽 웃고는 대답해줬다.
“일단, 돌아온 건 조금 전.”
“그런 거라면 저를 부르시지! 바로 데리러 갈 텐데!”
“바쁠 것 같아서 안 불렀어.”
당장, 사야를 대신해 아이들을 보고 있는 그였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는 곳곳에 요청이 있을 때마다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동계 S급 각성자는 귀한 몸이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남해는 정리됐어. 해솔이 언니는 무사하고.”
“다행이다!”
류화홍이 크게 안도하고는 내 뒤를 흘긋 쳐다봤다.
“저 분은…….”
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따로 소개할게. 아빠는 지금 어디 있어?”
“길드장님은 지금 후원에 계세요. 리오랑 이야기 중일 거예요.”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해진이 오빠는 먼저 들어가.”
“리사, 너는 저 탈…… 이 아니라 윤 씨랑 같이 길드장님께 가려고……?”
“그래야지.”
무덤덤하게 답하는 목소리에 청해진이 걱정된다는 얼굴을 보였다.
류화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탈?”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싶은 얼굴이었다.
곧, “해진이가 잘못 말한 건가?”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마는.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류화홍이 무엇이라 말을 붙이기 전에 윤을 데리고 사라졌다.
“야! 윤리사!”
청해진이 뒤늦게 나를 불렀지만 역시 무시하고 윤사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 그가 보였다.
“안 돼.”
“왜요! 시준이 삼촌도 좋다고 하잖아요!”
정확히는 윤리오와 말다툼 중인 윤사해가.
그들 사이에서 백시준이 난처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갔다.
“리사, 안녕?”
백시준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는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시준이 아저씨. 몸은 좀 어떠세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단다. 이렇게 사해랑 리오가 싸우는 걸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말 한번 잘한다 싶었다.
“아빠랑 오빠는 또 왜 싸우고 있는 거래요?”
“나 때문에.”
백시준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내가 아무래도 무리인 부탁을 한 모양이야.”
도대체 무슨 부탁을 했기에.
“리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단다.”
“아버지!”
윤리오와 윤사해가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싸우고 있는 걸까?
백시준이 부자(父子)의 말다툼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역시 작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빠! 리오 오빠!”
그제야 두 사람이 내가 온 것을 알아차렸다.
“리사!”
“꺅! 리오 오빠!”
윤리오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내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말이다.
윤리오는 내가 아직도 일곱 살의 어린 아이인 줄 아나보다.
“리오 오빠! 갑자기 무슨 짓이야? 어서 내려 줘!”
윤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 흐뭇하게.
윤이 왜 탈을 쓰게 됐는지 알게 됐다고 해도, 그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윤리오는 나를 내려 주지 않았다.
대신 부탁했다.
“리사! 아버지 좀 설득해 줘!”
“응?”
“내가 시준이 삼촌 경호를 맡을 수 있게 말이야!”
윤리오는 애가 타는 얼굴이었다.
윤사해가 윤리오의 말에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리오, 네가 암만 그렇게 말해도 내 의견은 변함이 없이 없단다.”
그러니 나를 앞세워 설득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며 윤사해가 엄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무슨 일로 그러는 건데?”
사정도 모르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시준이 삼촌 경호는 또 무슨 말이고?”
백시준은 유랑단에 의해 습격을 당한 뒤 줄곧 이매망량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내 의문에 백시준이 멋쩍게 미소를 그렸다.
“이제 복귀를 하려고 그러거든.”
“복귀요?”
“그래. 하지만 무작정 복귀할 수는 없어서.”
윤리오에게 경호를 부탁한 참이었단다.
그걸 윤사해가 막는 중이었고.
‘아하, 그래서 싸우고 있었구나?’
부자(父子)의 상황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