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파란(1)
귀수산의 이매망량.
그곳을 지키고 있는 윤사해는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원, 참. 정신 사납구나!”
그 곁에 서 있던 윤사희가 한심하다면서 혀를 찼다.
“사해, 이 녀석아. 네 딸은 절대로 약한 녀석이 아니다.”
“압니다.”
윤사해가 마른 세수를 한 후, 애끓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할머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자식이란, 암만 커도 부모의 눈에 한없이 어려 보인다는 것을.
“더욱이 리사는 아직 성인이 아닙니다.”
열여덟, 전장에 나서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윤사해는 딸을 막지 못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 이매망량을 계속 지켜 온 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는 자신이 없던 사이에 훌쩍 커 버리고 말았다.
“할머님께서도 이러셨습니까?”
“음?”
“제 어머니 말입니다.”
윤사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봤을 때도 이런 기분이셨습니까?”
그 질문에 윤사희는 말이 없었다.
대신, 물끄러미 제 손주를 바라볼 뿐.
그렇게 한참 동안 윤사해를 응시하던 그녀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마침, 식후 운동거리로 놀러 온 녀석들이 몇 있는 것 같으니.”
그 녀석들이나 상대 좀 하고 오겠다며 윤사희가 몸을 일으켰다.
윤사해는 그 뒷모습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알아차렸음에도 윤사희는 유유자적 제 갈 길을 떠나 버렸다.
‘망할.’
살아서도, 그리고 죽어서도 제 속을 긁는 데는 선수인 가족이었다.
윤사해가 와락 얼굴을 구겼지만, 그 표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아버지.”
윤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리오. 무슨 일이니?”
윤사해가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 웃는 낯으로 물었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
그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과 동시에 윤사해는 제 가족 모두를 귀수산에 머물게끔 했다.
자식들뿐만 아니라, 친구와 그의 가족까지도.
여하튼 윤리오는 물었다.
“할머니는요?”
“잠시 일을 보러 나가셨단다.”
“거주자들이 또 찾아왔나 보네요?”
“그래.”
윤사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붙였다.
“도우러 가겠다는 소리를 하려고 찾아온 건 아니지?”
윤리오가 뜨끔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리오…….”
윤사해가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니? 너는 아직 쉬어야한다고.”
“충분히 쉬었어요!”
윤리오가 윤사해의 말을 끊어 내며 버럭 소리 질렀다.
“리사도, 그리고 윤리타도 싸우고 있어요!”
그뿐이랴?
청해진도 그들과 함께 싸우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왜 계속 저만 안 된다는 거예요?!”
윤리오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저도 사람들을 구하게 해 주세요! 망할 거주자들에게 맞서 제 보금자리를 지키게 해달라고요!”
“윤리오.”
윤사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그러다 네가 다치면?”
“안 다칠 거예요!”
“리사도 그리고 리타도 언젠나 그런 식으로 말하지.”
하지만 자식들은 매번 다쳐서 돌아오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윤사해는 가슴이 북북 찢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제 자식들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에일린 리.
현재 거주자들의 위협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곳이라는 미국.
그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물론, 보낼 수만 있다면.
‘하늘길도 바닷길도 모두 막혀 버린 상태니까.’
윤사해가 작게 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리오, 네 마음은 충분히 안다.”
하지만.
“나는 네가 귀수산에서 안전하게 있어 줬으면 하는구나.”
그 말에 윤리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윤사해의 말에 반박하며 등을 돌리고 싶었다. 아니, 화를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윤사해.
자신의 아버지인 그가 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래서 윤리오는.
“알겠어요…….”
이번에도 다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돌렸을 때.
“잠시만.”
누군가 그들 부자(父子)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남해를 무너뜨리고자 몰려들었던 모든 거주자가 모습을 감췄다.
또한.
“오, 뭐야? 청(淸)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이 있는데?”
최설윤이 백정을 꺾고 나타났다.
그녀가 피가 묻은 뺨을 아무렇게나 닦아 내고는 활짝 웃었다.
“리사, 누구야?”
청해솔이나 청해진에게 물어도 될 법한데, 굳이 나한테 묻는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최설윤이라면 부네가.’
아니.
‘윤이라고 했지?’
부네 탈에 감춰졌던 이름, 윤.
최설윤은 분명 그녀가 ‘탈’인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렸을 터.
그러니 내게 묻는 거다.
‘윤을 죽이려는데 내가 가장 큰 방해물이 될 테니까.’
최설윤은 청해솔이 초랭이 탈을 썼던 청정하를 받아들인 것에 분노했었다고 들었다.
‘그것도 엄청.’
예전, 그녀의 조카인 최화백과 만나 잠시 안부를 주고 받았을 때에 들었던 이야기다.
이운조가 선비와 함께 동거 중이란 걸 듣게 된다면 아주 뒷목을 잡을 그녀였다.
무엇보다 최설윤은.
‘동생까지 외면한 사람이지.’
할미라는 이름 뒤에 ‘탈’로 얼굴을 가렸던 가족. 최설윤은 그녀에게 어떠한 동정도 품지 않았다.
그냥 외면해 버렸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 목숨이 붙어 있는지 궁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만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최설윤 길드장님.”
우선, 윤을 두둔해야 했다.
그러기 전에.
“백정은 어떻게 됐나요?”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 좀 살짝 누그러뜨리고.
내 질문에 최설윤이 웃으며.
“당연히 죽였지.”
살벌한 소리를 내뱉었다.
윤의 말대로였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제 말이 맞지요?”
윤이 살풋 웃었다.
이 탈쟁이가 분위기 못 읽는 것도 아니고!
“저기, 윤.”
나서지말라며 그녀의 입을 단속하려는데.
“도깨비의 따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지 압니다.”
윤이 싱긋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그러니 제가 말하렵니다. 최설윤 길드장의 성정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웃기고 앉아있네.”
최설윤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너, 최근에 교체된 탈쟁이는 아닌 모양이네?”
“네, 최설윤 길드장님.”
윤이 눈웃음을 짓고는 인사였다.
“저는 부네탈을 썼었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왜 과거형이야? 탈쟁이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그 탈을 벗을 수 있을 텐데?”
최설윤의 붉은 눈이 청정하에게로 향했다.
청(淸)의 보호 아래에 들어온 지 오래됐음에도, 결코 그를 인정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정하는 관심없어 보이지만.’
여하튼 다시금 살벌해지려는 분위기를 말려야 했다.
“최설윤 길드장님, 부네는 탈을 벗고 유랑단을 배신했어요.”
“그럴 리가!”
최설윤이 청정하가 보였던 반응과 똑같이 행동했다.
“리사, 너! 어릴 적에 탈쟁이 새끼한테 납치까지 당했으면서, 아직도 그 새끼들을 모르는 거야?!”
아래아의 길드장이 답답하다는 듯 버럭 소리 질렀다.
“탈쟁이 새끼들은 변하지 않아!”
“아니요.”
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변해요. 저기, 청정하 오빠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부네는 유랑단의 수장을 증오하고 있어요.”
“뭐?”
최설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대변한 것은 윤이었다.
“최설윤 길드장님.”
윤이 부드럽게 그녀를 부르고는 제 과거사를 밝혔다.
이야기가 끝으로 갈수록 최설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또한, 표정 역시 굳어졌다.
윤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미쳤구나?”
최설윤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유랑단의 수장 새끼한테 복수를 하겠다고 입단한 건, 그래. 그렇다고 쳐. 그런데, 뭐? 복수?”
최설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부네 탈을 받자마자 수장 새끼를 죽이지 그랬어?! 그동안 왜 가만히 있었던 건데?! 네 손에 묻은 피가 얼마나 많은 줄은 알아?!”
“네, 안답니다.”
윤이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그래서 속죄하려고 합니다. 먼저 수장의 숨을 끊어 놓고.”
애달프게 미소를 그렸다.
“제 목숨으로 속죄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죄가 너무 깊었다.
무엇보다.
“최설윤 길드장님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최설윤이 정곡을 찔린 얼굴로 윤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 윤이 미소를 그렸다.
“이 숨이 다할 때까지 저는 계속 손가락질을 받을 겁니다. 죽어 버린 피해자들의 연인에게 이 숨이 끊어진다면 몰라도.”
윤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계속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하! 최설윤이 신경질적인 웃음을 뱉어 냈다.
그것도 잠시, 그녀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속죄니 뭐니, 그런 사탕 발림 한 번 안 지껄이는 저 탈쟁이 새끼보다는 낫네!”
최설윤이 지적한 건 청정하였다.
그 목소리에 청정하는 어깨를 으쓱거리기만 했다.
여하튼 상황은 종료됐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