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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48)화 (448/500)

448화. 부네(6)

장내가 조용해졌다.

부네와 백정.

둘이 서로 연인 사이였다니.

탈쟁이들끼리 지지고 볶고 뭘 하든 상관없지만, 그 앞의 이야기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그런 걸까?

다들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바로, 그때.

“아하하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청정하의 것이었다. 부네가 그 반응을 예상했는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끼리끼리 놀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럼, 당연하지!”

청정하가 키득거렸다.

“미친, 내가 암만 너희한테 관심이 많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탈쟁이들끼리 서로 정분이 났었다니!”

얼마나 우습냐며 그가 비죽거렸다.

그런 그의 뒤통수를 청해솔이 세게 때려 버렸다.

“아, 뭐야?!”

청정하가 신경질적으로 그녀를 봤다.

그 시선에 청해솔이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웃지마.”

“아니, 웃긴 걸 어떻게 하라고!”

“웃겨도 웃지 마.”

청해솔이 짧게 혀를 찼다.

그럼에도 청정하가 계속 웃으면 아예 기절을 시켜 버리겠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그 매서운 시선에 청정하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꽤 불만 어린 얼굴이었지마는.

‘어쩌겠어.’

청(淸)의 가주님께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주자들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천지해.

우리 대단하신 대도깨비님 하나뿐이었지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부네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과 함께 그는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침묵을 고수했다.

가람 역시 마찬가지.

두 거주자의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왜 그러느냐, 아해야? 뭐 궁금한 것이라도 있느냐?〗

천지해가 싱긋 웃으며 묻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내게만 목소리가 들리게끔 했는지, 청해진이 뭐하냐는 얼굴로 봤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처웃던 청정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장내는 다시 침묵했다.

그 고요함 가운데에서 부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친애하는 유랑단의 수장님께서는 제 소중한 이의 목숨을 두 번이나 거둬 갔습니다.”

“두 번이라니…….”

“어머, 도깨비의 따님. 모르는 척 구는 건가요? 아님, 믿고 싶지 않은 건가요?”

부네가 내 혼잣말을 듣고는 히죽 웃었다.

“제 마을과 서낭신의 후손들이 모인 모든 마을을 불태운 분이 바로 유랑단의 수장님이었답니다.”

한때, 청(淸)의 후손들을 향해 복수를 불태웠던 청정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표정을 굳혔다.

웃는 사람은 오직 부네뿐.

“청정하, 당신 말이 맞아요. 저는 복수를 하기 위해 유랑단의 수장님께 무릎을 꿇었답니다.”

자신의 마을, 혈육 모두를 죽인 그를 죽이기 위해.

“다행히도 수장님께서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부네는 스스로 ‘탈’이 되었다.

그때의 분노를 다시 되새기고 있는 듯, 곱게 웃고 있던 부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드디어 복수를 할 때가 왔어요.”

부네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초랭이, 당신의 심장을 가져왔고. 백정의 목숨을 당신들께 드렸죠.”

지금의 백정은 부네가 사랑했던 그 ‘백정’이 아니니까.

“자, 성의를 더 보여 드려야 하나요? 그래야 저를 믿어 주실 건가요?”

연갈색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야말로, 지금의 부네는 복수에 눈이 먼 사람처럼 보였다.

청정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해진도 그랬다.

청(淸)의 후손들 중 입을 연 건, 한 사람뿐.

“됐어.”

청해솔이었다.

“리사,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청정하가 유랑단의 수장에게 바친 심장을 가지고 온 그녀다.

꽤 위험했을 거다.

도대체 어떻게 훔쳐 온 건지 모르겠지만.

“성의를 더 보여 줄 필요는 없어요. 부네, 당신의 말을 믿을게요.”

그러니.

“이름을 가르쳐 주세요.”

부네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름이요?”

“네. 당신께도 이름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청정하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가르쳐 주고 그 탈을 아주 벗어 버리세요.”

역시, 청정하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 손에 묻은 피만큼.”

잠시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유랑단의 수장한테 진심을 다해 복수한 후 속죄하시고요. 이왕이면 당신 연인이었던 백정의 몫까지요.”

“하하…….”

부네가 실없이 웃고는, 기쁘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

호롱불이 일렁이는 공간 속,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이가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구나.”

“무엇이?”

그 앞에서 저세상이 관심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이는 그가 던진 질문에 선하게 미소를 그렸다.

“초랭이의 심장이 사라졌지 뭐니?”

“뭐?”

저세상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자식 심장을 여태 가지고 있었다고?”

“그럼.”

곤란하다는 듯, 선한 미소를 내보였던 유랑단의 수장이 웃었다.

“언제 써먹을지 모르니, 고이 간직하고 있었지. 원래 소중한 패는 가장 중요할 때 꺼내야 하는 법이니.”

때문에 초랭이가 청(淸)의 후손들에게 붙었어도 가만히 뒀다.

그의 목숨은 어차피 자신의 손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선비는?”

“흠?”

“선비, 그 자식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선비 새끼를 가만히 두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에 유랑단의 수장은 무척이나 친절하게 대답을 들려줬다.

“친구가 생겼으니 말이지.”

“뭐?”

“이운조라고 했던가?”

이운조.

유랑단의 수장에게서 나온 이름에 저세상이 한순간 표정을 굳혔다.

장천의에 의해 버려진 세상.

그 세상에서 끝까지 함께 싸웠던 동료.

“약점이 있으니 굳이 건드릴 필요 없지.”

유랑단의 수장은 저세상을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킬 것이 있는 존재는 건드리기 무척 쉽거든.”

그러고는 물었다.

“너도 그렇지 않니?”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저세상이 무덤덤하게 대답한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초랭이의 심장을 훔친 녀석은?”

“응?”

“이미 눈치챈 것 아니야?”

저세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해에 내려갔던 거주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그들과 함께 떠난 탈쟁이 새끼들 중에 범인이 있겠지.”

그러니 거주자들이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는 걸 거다.

눈앞의 ‘녀석’이 그러라고 명령과 다름없는 부탁을 했을 테니.

저세상의 지적에 유랑단의 수장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너는 참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러니까 계속 곁에 두고 있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런 이유로 신들이 돌아온 이 세상에서 아직까지 너를 곁에 두고 있겠니?”

유랑단의 수장이 듣기 좋은 웃음을 흘리며 재잘거렸다.

“너와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네가 원하는 세상은 이미 만들어 줬어.”

“너 역시 원하던 세상이지.”

저세상의 말을 고쳐 주며, 유랑단의 수장이 입을 열었다.

“신들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쩡한 세상이지. 참 안타깜게도.”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저세상은 듣지 못한 척 무시하며.

‘빌어먹을.’

부글거리는 속을 잠재웠다.

윤리사의 ‘적’으로 계속 남으려면 분노를 숨겨야만 했다.

아니, 잠재워야 했다.

‘유랑단의 수장을 죽일 수는 없어.’

그는 계속 저 목숨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 세상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그 파멸의 끝에서 윤리사가 끝내 저 목숨을 거둘 때까지는.

‘맘껏 웃으라지.’

저세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속을 다스렸다.

윤리사.

그 이름을 떠올리기 무섭게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이라니.

‘나도, 참.’

멍청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래서야, 유랑단의 수장과 함께 그녀를 기다리다 끝에서 보란 듯이 웃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

저세상은 왜인지 모르게 입 안에서 감도는 쓴맛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야.”

유랑단의 수장이 그를 부른 건 그 순간이었다.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너는 나에 비하면 한없이 어린 아이인걸?”

그런데 어찌 자신과 같은 취급을 하며 이름을 부르냐며 유랑단의 수장이 웃었다.

“어쨌든 네가 좀 이매와 함께 다시 한번 더 움직여 줬으면 하는구나.”

저세상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인 그를 향해 유랑단의 수장이 말했다.

“내어준 것이 있으니 무언가 하나 빼앗아 와야 하지 않겠니?”

“도대체 뭐를?”

“네가 놓친 것.”

유랑단의 수장이 비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따.

“백시준이라고 했던가? 백시진이라 했던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구나.”

저세상이 굳은 표정으로 유랑단의 수장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수장이 히죽거렸다.

“여하튼 형제 중 하나가 가지고 있는 귀한 것.”

어떤 힘이든 지울 수 있는 스킬.

“그것을 다시 빼앗아 와 줬으면 하는구나. 네가 가진 힘이라면 가능할 테니.”

명령이나 다름없는 부탁.

저세상이 협탁 아래에 놓여 있는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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