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부네(4)
“유랑단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 생겼다고 해도 이상한데?!”
초랭이가, 아니. 청정하가 얼빠진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무거워! 나와!”
그 아래에 깔린 청해진이 비명을 지른 건 그때였다.
“아.”
청정하는 그제야 청해진이 제 밑에 깔린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네가 왜 내 밑에 있어?”
“시끄럽고 나오라니까요?! 무거워 죽겠다고!”
“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청정하가 구시렁거리면서도 청해진의 위에서 비켜줬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도깨비의 따님.”
그 인사에 나 역시 방긋 웃으면서 답해 줬다.
“청정하 오빠도 오랜만이에요.”
‘오빠’라는 호칭에 청정하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오빠라니. 너 내 나이가 몇인지는 아는 거야?”
“몰라요. 그런데, 뭐. 알고 싶지도 않네요.”
청정하가 내 대답에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보였지만.
‘알 바인가?’
지금은 적을 물리치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나와 청해진이 전황에 합류하기 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청정하였다.
그 때문에 물었다.
“상황은 어때요?”
“몰라! 내 심장이 돌아왔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중요하지.
‘누가 탈쟁이 새끼 아니랄까 봐.’
결계의 보호를 받으면서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나 보다.
〖도령! 괜찮소이까?!〗
그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가람.”
〖리사 아씨! 오랜만이오!〗
“네, 그렇네요. 그보다 상황은 지금 어떤가요? 정하 오빠는 지금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요.”
‘정하 오빠’라는 내 말에 청정하의 얼굴이 더욱 더 일그러졌지마는.
‘역시 내 알바 아니고.’
속으로 한껏 비웃고는 가람에게 다시 물었다.
“저랑 해진이 오빠는 이제 막 합류했거든요. 일단, 보이는 녀석들은 다 처치 중이기는 한데.”
“알아서 물러날 거야.”
청정하가 갑작스럽게 내 말을 끊어 버렸다.
“네?”
알아서 물러날 거라니? 남해를 몰락시키겠다고 이렇게 많이 몰려왔으면서?
당황하여 그를 보니, 청정하가 제 가슴 부근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솔직히 잘 몰라. 저 자식들이 계속 날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심장이 돌아왔어.”
“그게 뭐 어쨌다고…….”
“내 심장은 유랑단의 수장 새끼가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그러면서 청정하는 말했다.
자신은 어떻게 보면 시한부나 다름없는 인생이었다고.
“수장 새끼가 언제 내 심장을 멈춰 버릴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 심장이 돌아왔다.
남해에 거주자들이 몰려온 바로 이 시점에서 말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상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 많은 거주자가 유랑단의 수장의 말을 따라 이곳까지 온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뭐?”
“오빠한테 심장을 돌려준 거요.”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한 유랑단의 함정일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편이 아닌,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의 편이었으니까.
‘우리를 막아섰던 백정 새끼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최설윤은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쯤 상황이 정리됐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다들 물러갑니다!〗
가람이 외쳤다.
그 말대로 남해에 몰려왔던 거주자들이 물러가고 있었다.
“뭐야……?”
청해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정말, 유랑단의 수장 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
청정하가 그를 타박하며 말했다.
“암만 우리 수장이 인간 같지 않은 새끼라고 해도, 저 많은 거주자를 통솔할 힘은 건 없어.”
청정하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청해솔에게 가 봐야겠어.”
“우리 누나한테는 왜요?”
청해진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 이마에 청정하가 딱밤을 먹였다.
“당연히 걱정되니까 그러지!”
“아, 그럼 저도……!”
청해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그와 함께 움직이려고 했지만.
“너는 상황이나 통솔해. 내 말보다 가주님의 동생인 네 말을 더 잘 들을 테니까.”
청정하가 멋대로 그에게 명령했다.
“아니, 쟤네가 제 말을 들을 리가 없잖아요! 저기요? 정하 형?! 야!”
청정하는 청해진의 고함을 못 들은 척 무시하며 사라져 버렸다.
〖그, 그럼 쇤네도 이만.〗
가람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나는…….
“해진이 오빠, 수고해.”
청해진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뭐?”
청해진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청(淸) 가문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잖아. 이렇게 된 거, 일단 회포나 풀면서 기운 좀 북돋아 줘. 나 역시 해솔이 언니가 걱정되니까 가 볼게.”
지금쯤이면 청해솔이 내가 자신의 저택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조치도 취해 놨을 테니까.
“야, 리사야! 윤리사!”
청해진이 애타게 나를 불렀지만.
“수고해!”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그렇게 청해솔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건만.
“야, 가주님. 이 새끼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녀는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
청해솔이 혼자 있는 게 아닌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계를 맡고 있던 그녀다.
그런 그녀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이 있을 터.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야, 가주님! 말해 보라고!”
웬 여자만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자가.
물론, 다른 사람도 있었다.
〖아해야, 잘 다녀왔느냐?〗
사람이 아닌 도깨비였지만.
대도깨비의 능글맞은 질문에 나는 활짝 웃으며 답해 줬다.
“네, 잘 다녀왔어요. 별로 힘쓸 것도 없이 금방 끝나서 시시했지 뭐예요?”
〖저런, 아쉬웠겠구나.〗
“네, 그보다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저 여자는 또 누구고요?”
대도깨비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청정하는 그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혹시 몰라 옆에 있던 또 다른 거주자에게 물었다.
“가람 님도 아는 분이세요?”
〖모르오.〗
천지해에게 친근한 척, 다가가려던 가람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청해솔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내쉬었다.
“청정하, 바깥 상황은?”
“다 물러갔어!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심장이 돌아오자마자 거짓말처럼 모두 다 물러갔다고!”
“그래?”
청해솔이 픽 웃고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네 말이 맞았네, 부네.”
“그렇지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여자가 고운 얼굴을 들었다.
꽤 선이 고운 외모였다.
남자고 여자고, 꽤 여러 사람을 울릴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넋이 나갈뻔했지만.
‘부네라니?’
유랑단의 아홉탈 중 하나인 그녀가 왜 여기 있는 건데?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청정하가 대신 말해줬다.
“가주님! 대답하라니까?! 탈쟁이 새끼가 왜 여기 있어?!”
“청정하, 너도 탈쟁이 새끼였잖아.”
“과거형이잖아, 과거형! 저 자식은 지금 현재형이고!”
청정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청해솔은 피곤하다는 듯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이내 말했다.
“항복했어.”
“뭐?”
“우리 쪽에 붙기로 했다고.”
“그, 그게 무슨…….”
청정하가 말을 더듬었다.
꽤 당황한 듯한 그를 대신해 내가 물었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청해솔이 피곤한 낯을 쓸어내린 후 입을 열었다.
“부네가 유랑단을 배신했어.”
“거짓말!”
청정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자식 말을 믿어?!”
“못 믿을 것도 없지.”
청해솔이 부네를 물끄러미 보며 입을 열었다.
“저 탈쟁이가 네 심장을 가지고 내게 왔으니까.”
“뭐……?”
청정하가 멍하니 물었다.
진심이냐는 듯,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에 부네가 말했다.
“어떠세요, 초랭이? 심장이 뛰고 있는 기분이?”
“네, 네가 정말 내 심장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고?”
“네, 그럼요. 수장님께 들켰다면 그 자리에서 곧장 죽었겠지요.”
부네가 푸스스 웃었다.
청정하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수장이 나를 놓아준 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 말에 부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수장님께서는 당신의 심장을 언제 터트릴지를 계속 고민하고 계셨답니다?”
청정하를 깔보며 웃는 부네의 목소리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정해요, 정하 오빠. 일단은 우리 편이라는 거잖아요.”
“확실하지는 않지.”
청정하가 날카롭게 말했다.
“부네는 절대 혼자서 움직이지 않아. 도깨비의 따님, 여기 오는 길에 다른 탈쟁이 새끼를 만났을 텐데?”
“아.”
그렇기는 했다.
“리사, 그게 정말이니?”
청해진, 이 자식이 백정 새끼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해 주지 않았나 보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청(淸)의 가주님께 설명해 줬다.
“네, 뭐. 백정을 만났어요. 최설윤 길드장님이 상대하는 중이고요. 아마, 지금쯤.”
“승부가 났겠지요.”
부네가 내 말을 끊고는 웃었다.
“최설윤 길드장님께서 이겼을 겁니다. 백정은 죽었을 테고요. 그러려고 데리고 온 거라서요.”
선이 고운 여자가 미소를 그렸다.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이.